이어산 시인, 평론가
■ 토요 시 창작 강좌(109)
□ 몸 바꾸기와 제목 가치 매기기
2021년 첫 토요 강좌에 무엇을 쓸까 생각하다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도 막상 시에서는 그것이 반영되지 않는 시 작법을 다시 강조한 것으로 시작하려 한다.
시인은 언어의 마술사라고도 한다. 마술을 할 때 누구나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은 재미가 없듯 뭔가 새로운 것이 아니면 세상에서 통하지 않는다.
“시를 쓸 때 마다 새로운 것을 쓰려니 머리에서 쥐가 난다”고 시 짓기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사람이 많다. 필자는 머리에 쥐가 날 정도의 고통 속에서 시를 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시란 외면 풍경이 있어야 내면 풍경을 쓸 수 있다. 외면 풍경이란 시인의 직, 간접 체험이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많은 일들을 겪기도 하지만 영화나 소설, 또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간접으로 경험하는 것이 훨씬 많다. 이런 경험으로 외면 풍경을 쓰지 못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외면 풍경은 정물화처럼 묘사, 서술을 하는 것이다. 이것만으로는 시가 되지 않는다. 내면 풍경을 그리는 일이다.
내면 풍경도 그리 어려운 개념이 아니다. 시인의 마음, 시인의 정신을 담는 일이다. 즉 ‘자기의 생각 넣기’다. 현상을 빗댄 상상력이다.
예를 들어서 “바늘 가는데 실 간다”는 누구나 아는 것이라면 “바늘 가는데 뱀 간다”는 시적 내면 풍경이라고 할 수 있다.
내면 풍경을 연마하는 방법으로는 “사물에게 말 걸기”가 있다. 계속 말을 걸어보면 어느 순간 그 사물이 내게 대답을 할 것이다. 기회는 이때다.
이것을 놓치면 안 된다. 놓치지 않는 방법은 “사물과 몸 바꾸기”다. 내가 그 사물이 되어서 이야기 하는 것이다. 이 방법은 이승훈 교수의 표현을 빌리자면 “친숙해 보이던 사물이 낯설게 보일 때가 있다. 이 때가 시의 때다”
그리고 앞으로 시의 제목을 달아놓고 스스로 점수를 매기던지 가격을 매겨보라. 당신의 시 제목은 얼마의 가치가 있는지를 스스로 확인한 습관이다.
결국 시 짓기는 외면 풍경과 시인의 정서를 담은 내면 풍경의 재료로 정교하게 짜맞춰가는 언어의 구조물이다. 이 구조물의 대들보가 '제목'이다. 대들보가 약하면 집이 무너지기 쉽다.
다음의 시 한 편을 소개하는 것으로 시 짓기의 좋은 강의가 될 듯 하다.
시짓기
임영조
말을 고른다
고르다가 버리고
버린 뒤에 새로 얻는 말
그래, 이거다 싶은 놈만
하얀 연병장에 도열해놓고
일개 분대씩 또는 일개 소대씩
차례로 끊어 사열해본다
너무 순하면 긴장이 풀리고
너무 조이면 주제가 망가진다
비약이 지나치면 난해해지고
요설이 길어지면 무게를 잃어
가차없이 자르고 갈아끼운다
몇 번씩 마름질한 말들이
자개처럼 붙박여
반짝반짝 스스로 빛을 낸다
다시 구령을 붙여본다
각자 헤쳐모여!
앞으로갓! 뒤로돌아갓!
(일 열 중 둘째놈이 박력이 없다)
좌향앞으로갓!
(이 열 중 셋째놈이 삐걱거린다)
우향앞으로갓!
(삼 열 중 넷째놈이 리듬을 깬다)
또 빼고 더하고 갈아끼운다
제자리섯! 열중쉬어!
나도 그만 돌아와 쉰다
직성은 아직 풀지 못한 채.
■ 디카시 한 편 감상
덫에 걸린 저녁
구름의 덫에 걸려 안간힘을 쓰는 저녁
쏟아지듯 퍼붓는 무수한 빛줄기에
얼이 빠진 바다는
금새 눈이 멀어져 가고
_ 이인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