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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산 "자기만의 향취는 시적 대상에서 찾아낸 시인만의 해석이자 편견"
이어산 "자기만의 향취는 시적 대상에서 찾아낸 시인만의 해석이자 편견"
  • 엔디소프트(주)
  • 승인 2021.04.17 00:40
  •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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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산 칼럼](120)토요 시 창작 강의
이어산 시인, 평론가

■토요 시 창작 강좌(120)

□시인의 향취와 편견

이어산 시인
이어산 시인

“나에게 시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한 번 쯤은 자신에게 해 봤을 것이다.
사람에 따라서 대답을 달리 할 수 있으나 ‘자기만족(자기치유)’이거나 ‘시를 통해서 세상을 표현하고 싶어서’라는 대답이 대체적으로 많지만 시는 그 이상의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14년 전의 이야기다. 당시 모 교회의 문화관련 여러 프로그램 중에 시 창작 분야가 있었는데 필자가 강사로 내정되어 등록한 수강생들과 첫 대면이 있었다.

그날 나이가 제일 많은 할머니 한 분이 눈에 띄었는데 황모 할머니였다. 자기소개 시간에 느릿하고 우물거리는 듯 한 말투로 자기를 소개했는데 예순아홉이고 시를 배워본 적이 없으며 그냥 시를 쓰기만 하고 있다고 했다.

“일흔을 바라보는 연세에 왜 시를 쓰려합니까?”라고 했더니 그는 “내가 생각했던 것을 일일이 말로 못하니 시를 쓴다.”고 했다. 나는 또 물었다. “그러면 소설을 쓰시지 왜 시를 쓰려고 하십니까?” 그의 대답이 나의 머리를 탁 쳤다. “소설에는 제 생각을 숨겨놓을 수가 없는 것 같아서요”

그날 이후 그 할머니의 시에는 딴죽을 걸지 않았고 인생을 배우는 마음으로 나는 약간의 조언과 자기 나름의 시를 쓰도록 용기를 북 돋어줬을 뿐이다. 지금껏 그 분이 낸 시집은 열한 권이다.

시는 살아있는 사람의 핏줄과 같아서 시인의 성격과 환경에 따라 셀 수 없을 만큼 여러 가닥으로 갈린다. 시를 획일화 시킬 수 없는 이유다. 그러므로 살아있는 사람이 쓴 모든 시는 같을 수 없고 그 모든 시는 훌륭하다.

다만 약간의 수준차이만 있을 뿐이다. 그 수준이라는 것도 엄밀하게 따지만 사람의 취향이다. 클래식 음악만이 좋은 음악이라고 우길 수 없듯 필자는 비시(非詩)만 아니라면 작품의 높낮이에 너무 치우치지 말자고 주장한다.

시는 자꾸 쓰다보면 점점 좋아진다. 시가 좋아진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맞는 시를 쓴다는 의미다. 다른 표현으로는 그 사람의 향취가 나도록 한다는 것이다. 시에서의 향취는 공감을 말하는 것이고 체취를 느끼는 것이다. 그 공감이란 것은 감동이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처음부터 그런 시를 쓰기는 어렵다.

시 쓰기를 포기하지 않고 자꾸 쓴 사람이 그런 시를 쓸 수 있다. 그래서 시를 사랑하는 사람이 많아지도록 하는 것이 우선이다. 시를 좋아하는 사람이 시의 소비자이고 시인으로 성장해 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쭙잖은 시인 열 명보다 시를 사랑하는 독자 한 사람이 더 시의 발전에 이바지 하는 사람이라는 말이 나온다. 여기서 ‘어쭙잖다’는 말은 공허하고 감동이 없는 시를 말한다.

자기 시에만 빠져있어서 남의 시를 함부로 비난하거나 관심이 없는 사람은 독자보다 못한 시인이고 시를 발표할 자격이 의심되는 사람이다. 혼자 써놓고 즐기면 된다. 자기자랑이나 지적수준을 뽐내듯 쓴 글, 또는 정제되지 않은 감정을 배설하는 것은 언어를 동원한 폭력이다.

시의 근본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일이고 독자와 공감하기 위해 발표하는 예술이다. 그 아름다움이란 항상 강조하지만 최소한의 언어로 최대한의 말이 담긴 말의 덩어리를 생산해 내는, ‘언어경제의 법칙’에 충실한 서정이다. 서정(抒情)이라는 말은 ‘보이지 않는 여러 뜻’을 품고 있는 사람의 정서다.

‘깜도 되지 않는’이라는 말이 있다. ‘그에 걸 맞는 자격이 없다’는 말이다. 모든 시인이 일류가 될 수 없고 명작이 될 수는 없지만 남의 시를 흉내나 내고 시와 비시를 구분할 줄 모르며 자기만의 향취가 나는 글을 쓰지 못한다면 결국 공허한 글이나 배설하는 ‘깜도 되지 않는 시인’의 낙인이 찍힐 수 있다.

자기만의 향취는 시적 대상에서 찾아낸 시인만의 해석이자 편견이다. 그 편견이 향취가 있는 시인으로 이끌어 준다.

■ 이주일의 디카시 한 편


그날
 

 

     어린 초록도 눈물을 매달았다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이천십사 년 봄날 
 
                   _ 박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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