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산 시인, 평론가
■ 토요 시 창작 강좌(96)
□ 시의 미감(美感)과 시안(詩眼)
흔히 시는 쓸수록 어렵다고들 한다. 시어 하나하나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조합하여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방식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시는 우리의 언어관습을 벗어난 새로운 문장양식을 지향하기 때문에 쓰기도 어렵고 해석도 쉽지 않은 이유이다.
읽기 쉽고 정서적이거나 사랑을 다룬 시집이 많이 팔린다.
그러나 현대시는 그런 진부한 표현의 감옥을 탈출하여 자유롭고 다양한 언어의 조합으로 사람들이 미처 가보지 못한 세계로 훨훨 날아갈 것을 권고하고 있다.
옛날 시에서 흔히 나타나는 지시적이거나 규범화 된 문장을 현대시에서 권장하지 않는 이유는 인간의 생각이 백인백색(百人百色)인데 흔한 관습의 감옥에 갇혀서 미세하고 다양한 표현의 확장성을 억제하지 말자는 것이다.
현대시의 태생적 숙명이자 딜레마이기도 하지만 이런 작법을 시를 공부하는 사람은 반드시 공부를 해야 된다.
다시 말하거니와 언어의 불완전성과 비 규범화를 동원하여 다른 사람이 느끼지 못한 미묘하거나 처음으로 느낀 감성을 새롭게 표현하는 양식이 현대시 짓기의 기초이기에 그렇다.
기초를 튼튼히 하지 못한 시인의 시는 뿌리없는 나무와 같다.
다음의 시 두 편을 보자.
버팀목에 대하여
복효근
태풍에 쓰러진 나무를 고쳐 심고
각목으로 버팀목을 세웠습니다.
산 나무가 죽은 나무에 기대어 섰습니다.
그렇듯 얼마간 죽음에 빚진 채 삶은
싹이 트고 다시
잔뿌리를 내립니다.
꽃을 피우고 꽃잎 몇 개
뿌려 주기도 하지만
버팀목은 이윽고 삭아 없어지고
큰 바람 불어와도 나무는 눕지 않습니다.
이제는
사라진 것이 나무를 버티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허위허위 길 가다가
만져 보면 죽은 아버지가 버팀목으로 만져지고
사라진 이웃들도 만져집니다.
언젠가 누군가의 버팀목이 되기 위하여
나는 싹틔우고 꽃피우며
살아가는지도 모릅니다
극단적 선택
심언주
똑같이 고개를 숙여 인사했는데
내 목은 그대로 있고
꽃은 목이 부러져 있다.
배관 공사를 엉터리로 한 공무원 목을 자르겠다고
꽃나무 아래서
아버지는 핏대 세우며 소릴 지른다.
안녕히 계세요.
아주 간 줄 알았는데
작년에 뛰어내렸던 똑같은 장소에
꽃이 다시 몰려나와 있다.
매달려 있거나 말거나
떨어져 내리거나 말거나
나라에서는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않는다.
예시 두 편 중에서 복효근 시인이 발견한 미감의 백미는 “사라진 것이 나무를 버티고 있기 때문”이라는 구절이다.
이런 해석은 네 번째 연과 다섯 번째 연으로 확장되었다.
“만져보면 죽은 아버지가 버팀목으로 만져지고/사라진 이웃들도 만져집니다.”라는 시인의 고유한 서정은 규범화 된 문장을 벗어난 것이지만 독자의 공감을 획득할 수 있는 시어로 승화되었다.
심언주 시인의 시는 좀 더 정독을 해야만 뜻이 잡히는 방법을 택했지만 우리의 굳어진 의식의 문을 열면 얼마든지 해석의 확장성이 있는 시다.
꽃과 화자와 공무원, 그리고 ‘극단적 선택’이라는 제목이 함의하는 이미지를 연결하면 이 시가 말하고자하는 열쇠가 보인다.
이 시가 말하고자하는 뜻이 잡히면 댓글로 여러분의 생각을 달아주시기 바란다. 몇 분께 시집을 보내드리려 한다.
이처럼 현대시의 특성상 해석이 어려운 시도 많지만 시는 의미를 해석이 아니라 작품이 지닌 미적 어감을 느끼는 것이다.
이런 것들을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시안(詩眼)을 가지고 있어야 제대로 시를 쓸 수 있다.
■ 디카시 한 편 감상
시의 침묵
시의 바다로 쏟아지는 저 무수한 언어의 빗발
한 마리 실한 시어(詩語)를 낚기 위해
움쩍도 않고 빗속을 겨냥하는
무위의 침묵을 깨고
언제쯤이면 어신(語信)이 내게 올까
- 이인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