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산, "시는 의미 해석 아닌 작품 미감(美感) 느끼는것"
이어산, "시는 의미 해석 아닌 작품 미감(美感) 느끼는것"
  • 뉴스N제주
  • 승인 2020.07.24 22:43
  • 댓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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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산 칼럼]토요 시 창작 강좌(96)
이어산 시인, 평론가

■ 토요 시 창작 강좌(96)

□ 시의 미감(美感)과 시안(詩眼)

이어산시인, 평론가
이어산시인, 평론가

흔히 시는 쓸수록 어렵다고들 한다. 시어 하나하나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조합하여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방식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시는 우리의 언어관습을 벗어난 새로운 문장양식을 지향하기 때문에 쓰기도 어렵고 해석도 쉽지 않은 이유이다.

읽기 쉽고 정서적이거나 사랑을 다룬 시집이 많이 팔린다.

그러나 현대시는 그런 진부한 표현의 감옥을 탈출하여 자유롭고 다양한 언어의 조합으로 사람들이 미처 가보지 못한 세계로 훨훨 날아갈 것을 권고하고 있다.

옛날 시에서 흔히 나타나는 지시적이거나 규범화 된 문장을 현대시에서 권장하지 않는 이유는 인간의 생각이 백인백색(百人百色)인데 흔한 관습의 감옥에 갇혀서 미세하고 다양한 표현의 확장성을 억제하지 말자는 것이다.

현대시의 태생적 숙명이자 딜레마이기도 하지만 이런 작법을 시를 공부하는 사람은 반드시 공부를 해야 된다.

다시 말하거니와 언어의 불완전성과 비 규범화를 동원하여 다른 사람이 느끼지 못한 미묘하거나 처음으로 느낀 감성을 새롭게 표현하는 양식이 현대시 짓기의 기초이기에 그렇다.

기초를 튼튼히 하지 못한 시인의 시는 뿌리없는 나무와 같다.

다음의 시 두 편을 보자.

버팀목에 대하여

복효근

태풍에 쓰러진 나무를 고쳐 심고
각목으로 버팀목을 세웠습니다.
산 나무가 죽은 나무에 기대어 섰습니다.

그렇듯 얼마간 죽음에 빚진 채 삶은
싹이 트고 다시
잔뿌리를 내립니다.

꽃을 피우고 꽃잎 몇 개
뿌려 주기도 하지만
버팀목은 이윽고 삭아 없어지고

큰 바람 불어와도 나무는 눕지 않습니다.
이제는
사라진 것이 나무를 버티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허위허위 길 가다가
만져 보면 죽은 아버지가 버팀목으로 만져지고
사라진 이웃들도 만져집니다.

언젠가 누군가의 버팀목이 되기 위하여
나는 싹틔우고 꽃피우며
살아가는지도 모릅니다

 

극단적 선택

심언주

똑같이 고개를 숙여 인사했는데
내 목은 그대로 있고
꽃은 목이 부러져 있다.

배관 공사를 엉터리로 한 공무원 목을 자르겠다고
꽃나무 아래서
아버지는 핏대 세우며 소릴 지른다.

안녕히 계세요.

아주 간 줄 알았는데

작년에 뛰어내렸던 똑같은 장소에
꽃이 다시 몰려나와 있다.

매달려 있거나 말거나
떨어져 내리거나 말거나

나라에서는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않는다.

예시 두 편 중에서 복효근 시인이 발견한 미감의 백미는 “사라진 것이 나무를 버티고 있기 때문”이라는 구절이다.

이런 해석은 네 번째 연과 다섯 번째 연으로 확장되었다.

“만져보면 죽은 아버지가 버팀목으로 만져지고/사라진 이웃들도 만져집니다.”라는 시인의 고유한 서정은 규범화 된 문장을 벗어난 것이지만 독자의 공감을 획득할 수 있는 시어로 승화되었다.

심언주 시인의 시는 좀 더 정독을 해야만 뜻이 잡히는 방법을 택했지만 우리의 굳어진 의식의 문을 열면 얼마든지 해석의 확장성이 있는 시다.

꽃과 화자와 공무원, 그리고 ‘극단적 선택’이라는 제목이 함의하는 이미지를 연결하면 이 시가 말하고자하는 열쇠가 보인다.

이 시가 말하고자하는 뜻이 잡히면 댓글로 여러분의 생각을 달아주시기 바란다. 몇 분께 시집을 보내드리려 한다.

이처럼 현대시의 특성상 해석이 어려운 시도 많지만 시는 의미를 해석이 아니라 작품이 지닌 미적 어감을 느끼는 것이다.

이런 것들을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시안(詩眼)을 가지고 있어야 제대로 시를 쓸 수 있다.

■ 디카시 한 편 감상

시의 침묵

시의 바다로 쏟아지는 저 무수한 언어의 빗발
한 마리 실한 시어(詩語)를 낚기 위해
 움쩍도 않고 빗속을 겨냥하는
무위의 침묵을 깨고

언제쯤이면 어신(語信)이 내게 올까

  - 이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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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열 2020-07-29 07:09:35
매달려 있거나 말거나
떨어져 내리거나 말거나

대목에 이르러 그리스인 조르바라는 소설에서 늙은이는 살고 젊은이들이 죽어가는 세상이라고 주인공이 세상을 한탄을 하던 대목이 떠올랐습니다

여리고 약한 꽃들은 살짝 숙이기만 해도 목이 꺾이는데 해마다 힘없는 말단 근로자들의 죽음 앞에 정부가 하는 대책이라고는 겨우 성난 민심을 달래는 척하다 조용해지면 또 똑같아지는 반복되는 나아질 기미가 없는 사태들과 사고들 그러거나 말거나 자신의 밥그릇 만 챙기기 바쁜 저의 모습까지..

교수님 강좌에 예전의 글 쓰기 습관을 바꾸어보자 싶지만 흉내조차 내지를 못한체 머뭇거리기만 합니다

좋은강의 늘 감사히 애독하고 있습니다

이호재 2020-07-26 17:01:57
유익한 강좌 삼가 배독합니다.
순수한 영혼인 꽃은 목을 자르겠다는 아버지의 고함에 상심하여 극단적 선택으로 낙화가 되고 말았네요. 남의 잘못도 제 잘못으로 받아 드리는 것은 그만큼 순수하다는 징표가 되겠네요. 하지만 새봄이 되면 다시 피어나 재생하는 것은 꽃이 순수한 영혼이기 때문에 부활을 거듭할 수 있는 것이겠지요.
반면에 메너리즘에 빠진 공무원은 자신의 잘못에 대하여 책임전가와 면피에 급급하고, 문책을 받게될지 모르나 세월이 지나면 똑같은 잘못된 행정이 반복되고, 당국에서도 담당자 문책하고 나면 그뿐이고 항구적인 재발 방지책은 나오지 않음을 풍자하는 시 인듯 합니다.

이인철 2020-07-25 19:40:55
극단적 선택을 한다고 해서
상황은 기대만큼 달라지거나 호전되지 않는다.
그것은 자칫
삶을 죽이는 화를 자초하거나
우를 범하는 행위일지 모른다
목이 떨어진 꽃이 때가 되면 다시 피어나듯
공무원의 목을 날아가도 또 그 자리에는
다른 공무원이 대신하기 마련.
또한,
이러한 극단적 행위가
나라든 개인이든 제 삼자의 이목을 끌거나
관심을 유발시킬 수도 없다는 것을
말함으로써
사회 일각의 극단적 선택에 대한 경종을
울리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김승 2020-07-25 14:00:30
오늘도 강의에서 예시해준 두편의 시 잘 보았습니다.
심언주 시인의 극단적 선택이라는 시를 보니
저의 졸작 달팽이의 최후가 생각납니다.
아무튼 경제가 어려워지면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한 사람들이 가장 먼저 어려워지는게 이치인것 같습니다.
빨리 코로나 정국이 나아져서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없어지길 희망해 봅니다. 늘 감사드립니다. 건강하십시오

이둘임 2020-07-25 11:56:21
교수님,

오늘도 훌룡한 강의 잘 배우겠습니다. 기초가 단단한 시인의 길 참 어렵습니다. 아직 유추하기 어려운 시가 많은것 보면 뿌리가 약한 저의 기본 실력인듯합니다. 어려운 두편의 시 잘 감상했어요. 간략한 저의 느낌 몇자입니다.

복효근 시인의 버팀목 -
참 좋은 시입니다. 나무를 비유하여 우리도 버팀목 울타리에서 자랐고 또 누군가의 버팀목으로 살아가는것 같습니다.

심언주 시인의 극단적 선택 -
공무원들의 행정편의 주의에 손을 놓은 정부 민의 목소리에 대답없는 대책을 탓한듯 합니다.

이인철 시인의 디키시 시의침묵 잘 감상했습니다

교수님
고맙습니다
행복한 주말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