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산, " 좋은 시를 써도 인격이 피폐한 자는 시인될 수 없어"
이어산, " 좋은 시를 써도 인격이 피폐한 자는 시인될 수 없어"
  • 뉴스N제주
  • 승인 2020.05.22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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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산 칼럼]토요 시 창작 강좌(87)
이어산 시인, 평론가

■ 토요 시 창작 강좌(87)

□ 쉬운 시와 유식한 시

이어산 시인, 평론가
이어산 시인, 평론가

문자나 종이가 없었을 때, 어떤 말을 오래토록 기억하고 전달하는 방법으로 노래가 이용되었고 노래가 되기 위해서는 시는 정형화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노래는 정형시이고 운율이 있어야 했다. 그러다가 시에도 혁명이 일어났다.

인쇄술이 개발되어 책이 나오면서 시가 기록성이나 전달성에 얽매이지 않아도 되었다. 그 위치를 "책"이 담당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시가 외재율(겉으로 드러나는 일정한 음격音格에 의하여 생기는 운율)을 지킬 필요도 자연스레 줄어들고 표현이 다채로운 자유시가 나오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인쇄술은 서양보다 훨씬 앞섰지만 한자문화 속에서 10만자(拾萬字)도 더 되는 문자적 구조로 인하여 책은 널리 보급되지 못했고 양반으로 통칭되는 귀족문화의 향유에 그친 점이다.

그러는 사이 영어는 100자 정도의 글자로 책을 다 만들 수 있었지만 한문은 말할 것도 없고, 세계적인 문자라는 우리의 한글이 보편화 된 이후에도 1,000자를 동원해도 순한글로는 내용을 다 표현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우리 말에는 한문을 병기하지 않으면 정확한 뜻을 알기 어려운 말이 많기 때문이다.

특히 한글의 띄어쓰기나 맞춤법 등은 국문학을 전공한 사람도 틀리기 일쑤이니 완전한 책을 만들기가 힘들다.

언어의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시인들의 시집(詩集)을 살펴보면 띄어쓰기나 맞춤법이 100% 정확한 책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다.

KBS TV의 ‘우리말 겨루기’는 우리의 말을 정확하게 알리고자 하는 좋은 뜻으로 방영되고 있지만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우리말은 어려운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데 일조하는 프로그램이다.

국어선생들도 틀리는 어려운 내용이 너무 많다.

소리글자인 한글을 간단하고 쉽게 하는 방법을 획기적으로 연구해야 한다.

그리고 지식인들이 제발 유식한척 자랑하려는 자세에서 벗어나서 우리의 보통 언어로 시든 산문이든 논문, 판사의 판결문이든 이해하기 쉽게 쓰자는 게 필자의 입장이다.

시를 쉽게 쓰자는 필자의 말을 잘못 이해하여 누구에게나 친숙한 것들로 쉽게 쓰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의 보통 말, 쉬운 말을 결합하여 새로운 의미를 창출하는 것, 상투적 표현과 습관적 문맥에 치명적 일격(致命的 一擊/coup degree)을 가해서 아름다움을 살필 수 있는 안목(심미안審美眼)으로 새로운 결(texture)을 만드는 시 짓기를 하자는 것이다.

시 짓기의 목적은 사물들이 알려진 그대로가 아니라 새로운 감각을 부여하는 것이다.

우리의 행동, 개념, 물체 등이 지닌 특성을 그것과 다르거나 상관없는 말로 바꾸어서 간접적이나 은유적으로 나타내어 공감을 불러일으키자는 것이다.

이것이 현대시 짓기의 가장 기초적 작법인데 영어로 메타포(metaphor)라고 한다. 이것은 언어가 잘 조립되어야 시(詩)가 완성되는 것이라는 말이다.

언어 조립 시 참고할 네 가지

1, 감동이 있어야 하고
2, 말의 품격이 있어야 하며
3, 시대를 읽을 줄 알아야 하며
4, 시인의 진술이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시의 깊은 맛을 모르는 사람은 언어를 새롭게 하거나, 언어의 조립에 필요한 낯선 요소들을 무시한다.

그들은 달고 목으로 넘기기 좋은 시를 선호한다. 그런 시가 좋은 시라고 가르치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그런 시 중에 좋은 시도 있다.

그러나 현대시가 추구하는 시작법과 조탁능력을 기르지 않으면 깊이 있는 시를 쓰기가 쉽지 않다. 그런 사람들에게 시의 가벼움을 지적하면 오히려 대들기도 한다.

이것은 마치 언어의 정화능력이 없는 어린아이들이 비속어로 대화하는 것을 나무라는 어른에게 대드는 것과 같다.

자기들끼리 잘 통하고 재미있는데 무슨 상관이냐고 항변한다.

그런 시를 쓰려는 사람들을 말리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시가 추구하는 새로움을 무시하지 말자는 이야기다.

시인이 아무리 좋은 시를 썼다고 할지라도 삶이 엉터리인 사람, 인격이 피폐한 사람은 시 만드는 기술자(글쟁이)는 될 수 있어도 시인이 될 순 없다.

시인이란 “온전한 사람”이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 디카시 한 편 읽기

       경 쟁

 옆에 있는 친구는 알까
왜 달리는지
 난 모르고 뛴다 

-. 유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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