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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산, “'행복 쓰기' 아닌 '시 쓰기'는 쓰레기통에 버려라"
이어산, “'행복 쓰기' 아닌 '시 쓰기'는 쓰레기통에 버려라"
  • 뉴스N제주
  • 승인 2020.11.14 00:00
  •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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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산 칼럼](102)토요 시 창작 강좌
이어산 시인, 평론가

■ 토요 시 창작 강좌(102)

□ 생명시의 평온함

이어산 시인. 평론가
이어산 시인. 평론가

우리가 쓴 시에는 기쁨을 노래한 것도 있지만 속으로 삭여왔던 아픔을 시적 대상을 빌려서 표현할 때가 많다. 그런 시를 ‘시인의 작은 신음’이라고도 한다.

어떤 사안에 대해 감정을 억제하지 못한 표현은 욕이 될 수도 있지만 시적 여과장치를 통하여 걸러내고 걸러내어서 작은 신음처럼 들리도록 하는 것이 생래적 시 작법이고 독자에게서 공감을 불러내는 방법이다.

공감이 되는 시는 거대한 불길을 일으킬 수도 있는 힘이 있다. 그 힘이란 대개 우리에게 용기나 희망을 주는 것들이거나 시대를 증언하는 울림이 있는 작은 외침이다.

큰 실패를 당한 사람에게 “너는 실패한 인간이다”라는 낙인을 찍는 시를 썼다면 그것은 시가 아니라 사람을 상하게 하는 흉기다. 절망에 쌓인 사람에겐 위로 한 마디가 죽어가는 사람을 살릴 수도 있다. 누구나 그런 시만 써야하는 것은 아니지만 될 수 있으면 사람을 이롭게 하거나 시대적 양심을 거스리지 않는 시를 써보자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꽃은 꺾여도 향기가 남 듯/실패에도 향기는 있다.”는 시,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하여/천둥은 먹구름 속에서/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라는 시는 누구에게는 큰 위로가 될 수 있다.

시를 아무리 잘 썼어도 모두를 만족 시킬 수는 없다. 어떤 이는 세상을 다 준다고 해도 위로를 느끼지 못할 수도 있지만 어떤 사람은 “괜찮아요, 다시 설 수 있어요.”라는 의례적인 말 한마디에도 감동을 받을 수 있다.

말은 미래를 부르고 사람의 그릇을 결정한다. 말버릇대로 사람은 되기 쉽다. 좋은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은 좋게 풀리고, 나쁜 말을 버릇처럼 하는 사람은 잘 풀리지 않는 것이 인간사다.

논어에는 “군자는 평온하고 너그럽지만 소인은 늘 근심하며 두려워한다.”는 내용이 있다. 시도 그렇다. 좋은 시를 쓰는 사람은 우선 평온하다. 위기는 인간의 바닥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다. 세찬 바람이 불어야 억센 풀인지 알 수 있고 나라가 어지러워야 진실한 신하를 알아본다.

눈물을 억지로 짜내는 신파극 같은 시 보다는 고난을 당해도 평온하게 풀어내는 작법을 선한 시인들은 선호한다. 그러면서 독자에게 직설적이 아니라 간접화법으로 그것을 짐작토록 한다. 그럴 때 더욱 마음에 스며드는 것이다.

독자들의 눈치는 시를 쓰는 사람보다 몇 배 빠르다는 생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  다 설명하지 말고 상황을 돌려서 진술해도 알아듣는다. 혹 시인이 의도하는 것을 다 몰라도 상관없다. 다 설명해야 하는 산문과 시(詩)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다. 여러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시, 확장성이 큰 시 일수록 좋은 시로 평가받는 이유다.

시를 쓴다는 것은 복 받은 일이다. 세상의 많은 일들 중에서 가장 비경제적이면서도 가장 행복한 일을 꼽으라면 나는 망설임 없이 시 쓰기를 말할 것이다. 전에도 말했듯이 연필 한 자루와 노트 한 권, 아니 요즘은 휴대폰만 있어도 나폴레옹이 그렇게 손바닥에 넣고 싶었지만 실패한 세상을 내 손바닥 안에 넣을 수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시 쓰기의 지향점은 행복 쓰기가 되도록 하자는 입장이다. 세상 죄를 다 짊어진 듯, 천형의 고통을 품은 듯 시를 쓴다면 그런 시 쓰기를 그만 두라고 권하고 싶다. 그런 시를 즐겨 쓰는 사람은 그 쪽으로 가도록 내버려 두고 우린 시가 나의 세상살이에 활력소가 되고 희망이 되고 행복의 길잡이가 되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것이 필자가 추구하는 시론의 기본이다.

■ 디카시 한 편 감상

너만 배부른 게 아니다

디카 詩도 한 줄이면 넉넉히
      배부르다      
- 최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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