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인 칼럼](18)천마와의 만남
[경제인 칼럼](18)천마와의 만남
  • 현달환 편집장
  • 승인 2020.11.28 16: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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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이 만난 제주인, "아, 제주마씸?"
[김택남 자서전] 제주 소년, 꿈을 투망하다
(주)천마그룹 김택남 회장의 인생 스토리
천마그룹 조감도
천마그룹 조감도

뉴스N제주가 창간기념에 맞춰 '제주경제인 칼럼'을 게재하는 가운데 그 첫 순서로 선보인 김택남의 자서전, '제주 소년, 꿈을 투망하다'라는 내용이 독자들로부터 많은 감동의 후기들이 전해오고 있다.

이번에 올린 '천마와의 만남'이라는 주제는 김택남 회장이 육지에서 생활을 청산하고 다시 제주에서의 귀향하는 모습을 그렸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우여곡절 끝에 천마기업을 인수하고 제주에 안착한 김택남 회장의 제주의 삶.

흔히 우리는 살면서 이런 말을 줄곧한다. "선택과 집중"

김택남 회장은 선택에 있어서 신중한 모습을 보이지만, 선택이 되면 집중하는 모습은 더 강렬하게 느껴진다.

많은 경험으로 엮어진 천마의 인수과정에서 그는 돈 보다도 인간관계를 더 중시했다.

기업 인수금이 없는데 차용증 없이 돈을 빌려주는 모습, 천마를 인수하고 한탕해서 도망가는 그런 기업가 모습이 아닌 직원들과의 끈끈한 정을 우선시 해서 직원들에게 신뢰를 주려는 노력이 김택남 회장이 이제까지 버티어 온 힘이라고 생각된다.

사람은 뒷모습이 아름다와야 한다.

우리들이 걸어가는 인생길에 뒷모습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함부로 행동을 못한다. 앞에서는 그럴 듯하게 포장해도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은 그 사람의 진실이 보이는 것이다.

그는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이다. 포항에서 사업을 하면서도, 제주에 토종기업을 인수하려고 할 때도 아름다운 뒷모습을 보여줬다.

그러기에, 그의 진심이 통했기에, 아내가, 친척이, 가족이 응원하고 결국 직원들도 감복해서 최선을 다해 기업을 살리려고 노력한 것이다.

자만하지 않고 늘 책을 읽으면서 자신의 마음의 수양을 쌓고 있는 사람, 좋은 책이 있으면 언제나, 누구나할 것 없이 책 선물을 주는 사람.

요즘은 공자의 일생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 자신의 수양을 위해 온 시간을 보내고 있는 김택남 회장은 지난 과거 힘들었던 기억을 잊지 않으려고 늘 노력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은 광령리로 천마그룹 본사가 이전됐지만 그전 탑동에 위치한 천마그룹의 건물은 아름다운 건물로 비춰졌다.

"꿈(목표)을 만들고 끊임없이 도전할 때 비로소 그 꿈이 현실이 된다"

'꿈의 두 날개, 도전과 양보'라는 주제로 한림중학교 모교에서 후배들에게 꿈을 갖고 도전하는 삶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깨닫게 하는데 특강을 하면서 한 말이다.

자신이 실업계 고교를 졸업한 뒤 육지에서 30여 년만에 고향 제주의 향토기업을 인수하는 과장에서 김 회장은 자신의 인생스토리의 성공요소로 '양보'를 꼽는다.

김 회장은 "삶을 살다보면 남을 이겨야 인생에서 성공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사람이 있지만 시간이 흘러 자신의 뒤를 돌아보면 남에게 양보하며 살아온 삶이 행복하고 그 열매도 달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된다"고 말한다.

그는 "내 삶은 도전과 양보의 연속이었다"며 "그런 삶 속에서 작은 성공들이 이뤄졌고 그것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있게 만들었다"고 당당하게 말하고 있다.

제주의 천마기업을 인수한 김택남 회장이 어떻게 헤쳐 나갔는지 다음 편을 기대하며 기업하는 분들에게 이 글을 통해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기를 빌면서 많은 필독이 있기를 바랍니다[편집자 주]

천재일우 제주도로 돌아오다

내가 아내와 결혼을 할 때 장모님의 반대가 심했다. 내가 제주도 출신이기 때문이다. 장모님은 결혼승낙을 받으러 간 내게 질문 하나를 던지셨다.

“그래, 나중에라도 자네 제주도에 내려가서 살 텐가?”

나를 마음에 들어 하신 장인어른이 나에게 눈짓으로 이 상황을 모면해보라 힌트를 주셨지만 장모님께 거짓말을 할 수는 없었다.

“예. 언젠가는 고향으로 내려가야죠.”

지금처럼 교통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 육지 사람들에게 제주도는 참 멀었다. 제주도는 평생 한번, 신혼여행 때나 가는 곳으로 인식됐고, 귀한 맏딸을 먼 섬으로 데리고 가고 싶다는 사위를 반길 장모는 없었다.

장모님의 반대를 극복하는데 꽤 애를 먹었지만 맏사위 감으로 나를 든든하게 생각하신 장인어른과 변하지 않는 아내의 신뢰로 결혼에 성공할 수 있었다.

가진 것 없이 꿈만 꾸었던 그 시절, 나는 아버지의 사업타령처럼 아내에게 제주타령을 했다.

‘언젠가 내 사업을 할 거야, 그리고 제주도로 돌아가야지.’

그 꿈은 서른두 살 ‘태평양기전’을 창업하면서 시작됐지만 제주로의 귀향은 그리 쉽지 않았다. 포항의 사업이 안정되자 몇 번 귀향을 계획하기도 했다.

그러나 제주 산업의 대부분은 관광산업이 차지하고 있었고, 제조업으로 잔뼈가 굵은 내가 제주에서 사업을 시작한다는 것은 여의치 않았다. 늘 귀향을 꿈꾸던 내게 생각지도 못한 기회가 찾아왔다.

2006년 가을이 시작될 무렵, 포항에서 지인과 저녁식사를 하던 중이었다. 오랜만에 사촌동생 영호로부터 연락이 왔다.

영호는 우리 사촌형제 중 유일하게 서울대학교 상대를 나와 전공을 살려 기업투자와 M&A를 전문으로 하는 금융전문가가 됐다.

“형님, 제주도에 천마라는 기업이 있는데 형님이 인수하면 좋을 것 같은데요?”

의례적인 안부 인사를 마치자 영호는 뜻밖의 제안을 했다.

“뭐하는 회산데?”

30년 가까이 육지에 터를 잡고 살았던 나는 제주 사정에 어두웠다.

“LPG를 유통하는 회사인데요, 좋은 주인만 만나면 비전있는 회사예요. 지금은 경영의 어려움이 있지만 자산은 탄탄하고요.”

워낙 빈틈 없는 동생의 추천이라 믿음이 갔다. 귀향을 꿈꾸는 내게 다시없는 기회가 될 것 같았다.

“인수금액이 얼만데?”

쉽게 말을 하지 못하던 영호는 뜸을 들이다 인수금액을 털어놨다.

“야, 내가 그 돈이 있으면 사업 그만두고 반은 사회에 기부하고 나머지로 우리 식구 잘 먹고 살지, 왜 사업하면서 고생을 해?”

생각보다 높은 인수가격에 놀란 나는 동생에게 거절의 뜻을 밝혔다.

동생은 고맙게도 나의 퉁명스런 거절에도 설득을 포기하지 않았다.

“형님, 제가 내일 다시 전화 드릴게요, 오늘 밤에 한번 잘 생각해 보세요.”

동생과 전화를 끊고 왠지 모를 아쉬움이 생겼다. 고향으로 내려갈 좋은 기회가 될 것도 같았지만 자금이 문제였다. 옆에서 동생과의 통화를 들은 지인들은 무슨 일인지 궁금해 했다. 내가 사정을 이야기하자 지인들은 나보다 더 큰 관심을 보였다.

“김 사장이 해 봐. 제주도로 내려가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더니 드디어 기회가 왔네.”

지인들은 뜻밖의 소식에 나를 격려하며 모자란 인수자금은 융통해주겠다고 나섰다. 아무리 형, 동생하며 가족처럼 지내는 사이지만 선뜻 돈거래를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친한 사이일수록 돈거래를 하게 되면 돈도 잃고 사람도 잃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천마물산 본사 전경내게 귀향의 꿈을 이루게 해준 ‘천마’하늘을 나는 말의 날개는 내 꿈에 새로운 날개를 달아주었다.
천마물산 본사 전경....
내게 귀향의 꿈을 이루게 해준 ‘천마’하늘을 나는 말의 날개는 내 꿈에 새로운 날개를 달아주었다.

그러나 포항의 지인들은 자신의 일처럼 나서 내게 필요한 인수자금을 보태주었다. 그 흔한 차용증 한 장 없이 말이다.

그때처럼 내 자신에게 대견했던 적이 없다. 내가 사업을 하면서 주변에 폐를 끼치지 않고 약속을 지키며 성실히 살아온 것에 대한 상을 받는 것 같았다.

내 과거를 지켜본 사람들이 내 미래를 믿어준다면, 제주에서의 새로운 사업도 충분히 잘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이번 기회를 잡지 못하면 앞으로 10년 동안 제주에 내려갈 꿈만 꾸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언제나 그렇듯 뒤늦은 후회보다 섣부른 도전이라도 행동에 옮기는 것이 좋겠다, 결심했다. 다음날 영호와 긴 통화를 하며 천마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가 있었다.

천마를 설립한 사람은 재일교포 고(故) 김봉학 회장이었다. 내가 육지에서 꿈을 찾았듯, 해방이 되기 전 김봉학 회장은 일본으로 건너가 꿈을 키웠다.

1966년 일본에서 일군 부(富)로 제주에 세운 회사가 천마였다.

서울에서도 연탄을 떼던 시절에 제주에 LPG를 도입해 천마의 근간을 세웠고 이후 제주은행, 천마학원, 천마목장 등으로 사업영역을 넓히며 명실상부 제주 1등 기업을 키워냈다.

10년 전만 해도 ‘천마’에서 근무하는 남자직원은 1등 신랑감 소리를 들을 정도로 은행권보다 임금이 높았던 직장이 바로 천마였다.

그런데 김봉학 회장이 세상을 떠날 무렵, 천마에 위기가 닥쳤다.

천마의 근간이었던 LPG 유통사업이 천마 독점체제에서 경쟁체제로 전환되면서 시장에 변화가 생겼다.

주인은 일본인이었고 전문경영인은 바뀐 시장질서에 발 빠른 대응을 하지 못했다.

천마를 상속 받은 사람들은 이익을 내지 못하는 천마를 매각하고 싶어 했고, 천마에 근무하던 직원들은 생존을 위해 노조를 결성했다. 천마는 한마디로 진퇴양란의 시기를 겪고 있었다.

몇 번의 매각시도가 있었지만 매각협상이 진전되지 못했다. 외지인에게 배타적인 제주도의 정서상, 제주출신의 대표가 아니면 인수 후 경영이 어려울 수도 있다는 것이 사촌동생 영호의 분석이었다.

영호는 포항에서 사업을 운영하며 얻은 경험이라면 제주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고 나를 설득하는 한편, 천마에 투자를 결정한 금융회사에 나를 대표로 적극적으로 추천했다. 나는 영호의 적극적인 제안에 천마 인수에 참여하기로 결심했다.

가족들은 나의 천마 인수결정에 걱정이 더 많았다. 포항에서의 사업도 안정적인데, LPG유통이라는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것이 납득이 되지 않는 눈치였다.

그러나 언젠가 고향으로 내려가는 것이 꿈이었고 제주 토종기업을 인수할 수 있는 기회가 흔한 것도 아니었다.

더구나 나에게 천마는 선장이 없어 표류하는 배처럼 보였다. 선장이 목표를 정해주고 직원들과 소통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발전할 가능성이 있었다.

그 배의 선장이 되고 싶었지만 내 바람만으로 이뤄질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천마물산 본사 전경내게 귀향의 꿈을 이루게 해준 ‘천마’하늘을 나는 말의 날개는 내 꿈에 새로운 날개를 달아주었다.
천마물산 본사 전경
내게 귀향의 꿈을 이루게 해준 ‘천마’하늘을 나는 말의 날개는 내 꿈에 새로운 날개를 달아주었다.

천마에 투자를 하는 금융권이 대표를 맡을 나에게 힘을 실어줘야 했고 매각협상도 매끄럽게 진행되어야 했다.

사업을 하면서 운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적이 많지 않지만 그때만큼은 운이 나를 도와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두어 달, 천마에 대한 실사와 매각협상으로 바쁘고 조바심나는 날들이 이어졌다.

“천마를 인수했으면 좋겠는데, 나한테 그런 기회가 올까?”

조바심에 나는 아내에게 내 속내를 털어놨다. 아내는 언제나 그렇듯이 나에게 힘을 주었다.

“당신은 늘 말하는 대로 되잖아요. 그러니 이번에도 당신 뜻대로 되겠죠.”

늘 내 뜻을 나보다 더 밝혀주는 아내의 덕분인지 아내의 생일, 운명처럼 나는 천마의 주인이 되었다.

인수를 한 후, 처음 천마로 출근하는 날이었다. 워낙 갖춰 입는 것에 관심이 없던 나는 그날도 가죽점퍼에 청바지 차림이었다.

회사 대표와 처음 만나는 자리, 나의 옷차림은 천마직원의 오해를 사기 충분했다. 내가 인수하기 전부터 천마의 매각시도가 몇 번 있었다.

내 이전 사람들은 천마의 경영정상화를 통해 천마의 안정을 계획하기보다는 적절한 절차를 거쳐서 다시 천마를 매각하려는 계획이었다.

그런 의심 속에서 내가 격의 없는 옷차림으로 나타나자, 나 또한 그런 사람들 중 하나라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했다.

이전과는 다른 회장님의 옷차림이 자신들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직원대표들은 처음부터 적대감을 드러냈다.

오랜 객지생활을 끝내고 뿌리를 내리려 다시 찾은 고향인데 직원들의 박대가 못내 아쉬웠다. 그렇지만 하루아침에 그들에게 신뢰를 얻는 것이 무리라는 것을 내가 더 잘 알고 있었다.

오랜 세월 주인 없는 회사에서 언제 매각되어 직장을 잃을지 모를 불안 속에 산다는 것은 모든 가장에게는 큰 두려움이었다. 나는 주인이 바뀌어 허둥대는 직원들에게 약속을 했다.

“나도 제주 사람입니다. 한 다리만 건너면 다 친인척인데 여기서 인심을 잃고 어디로 가겠습니까? 원래 새로운 경영자가 오면 모든 임원과 관리자에게 사표를 받아야 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저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여기 있는 여러분과 함께 가겠습니다.”

짧은 인사말로 나에 대한 의심을 걷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지만 최소한 천마식구들을 안심시키고 싶었다. 의심과 반목 속에서는 발전이 이뤄질 수 없다.

직원들과 함께 새로운 천마를 만들고 싶다는 나의 바람은 천마에서 첫 결제 서류를 받아들며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나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천마의 어음을 결제하는 일이었다. 천마가 발행한 3억 원의 어음을 결제할 현금이 없었다.

나는 인수하자 마자, 내가 발행하지도 않은 어음을 위해서 3억 원의 현금을 유통해야 했다. 나를 의심하는 직원들, 안정되지 않은 자금 흐름, 제주에서의 새로운 도전은 시작부터 험난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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