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CEO 송주온 칼럼](25)노력은 닫힌 문도 열리게 만든다
[행복한 CEO 송주온 칼럼](25)노력은 닫힌 문도 열리게 만든다
  • 현달환 국장
  • 승인 2023.11.26 12: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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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장이 만난 시대의 경제인
행복한 CEO송주온 성공 이야기
끊임없이 긍정하고,또 긍정하라
송주온 BT&I그룹 대표
송주온 BT&I그룹 대표

1987년 스물다섯의 나이로 자본금 250만 원으로 시작한 비티앤아이(BT&I)를 2600억 원대의 항공권을 판매하는 코스닥 상장기업으로 성장시킨 송주온 대표.

35년간 국내 최고의 기업체 전문 여행사로 성장하기까지 여행업 한길로 매진하여 자연스럽게 한국 여행 전문가 그룹의 오피니언 리더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행복한 CEO.

제14회 여성경제인의 날 모범여성기업인상 대통령상 표창, 제12회 여성경제인의 날 국세청장상, '2011 한국 경제를 움직이는 인물 40인(<포춘코리아> 주최)'에 선정됐으며, 현재  W아너 소사이어티 총리더인 송주온 대표는 건전한 기부 문화 환경을 조성하는 데도 앞장서고 있다.

사회복지 공동모금회 시민참여 위원장으로도 활동하고 있으며 미국에서 발간되는 <포브스>에서 발표한 '아시아 기부 영웅 48인' 중 한 명에 선정되기도 했다.

또, 여성 CEO로는 처음으로 1억 원 이상 고액 기부자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이기도 한 그녀는 나눔과 봉사 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치면서 '행복한 CEO'란 별명에 걸맞게 주변에 행복 바이러스를 전파하고 있다.

뉴스N제주가 창간 5주년을 맞아 마련한 '행복한 CEO 송주온 칼럼'의 25번째 '나는 99번 긍정한다'의 핵심은 바로 '노력'이다.

제 아무리 똑똑한 사람이라도 성실, 노력하는 사람에게는 당할 재간이 없다. 노력은 천성적인 면도 있다. 물론 현대 사회는 노략만으로 이뤄지는 것도 아니지만 그러나 노력은 자신의 입증을 위해 상대방이나 자신에게 진가를 입증하는 것이다.

젊었을 때 외국에 많이 갔던 시절이 있었다. 외국인을 만나 대화하다가 제일 먼저 하는 말은 "Pardon(me)?"이란 말이었다. 상대방이 빠르게 얘기하니 알아먹지 못하니 학교에서 배웠던 "다시 한번 말해주세요"였다.

어찌어찌 바디랭귀지를 하면서 이해도 하고 그랬지만 한국인들이 영어에 대한 콤플렉스(complex)는 대단하다.

그러나, 역으로 본인은 세종대왕이 과학적으로 만든 훈민정음, 한글을 전 세계적으로 수출해 영어를 지구상에 없어지게 하면 어떨까 하는 상상도 해본다. 

수많은 단어를 외우는 것보다 자음모음만 알면 1년이면 거의 한국어는 다 할 수 있는데 영어는 태어나기 전부터 태아 교육을 한답시고 클래식 음악이나 팝송, 영어 노래 등을 듣고 20년 동안 대학교까지 공부를 하지만 영어로 제대로 의사표현을 못하는 대한민국의 현실. 그동안 영어를 위해 많은 돈을 투자했지만 결과는 만족하지 못한다.

각설하고, 송주온 대표의 언어습득은 바로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생각된다. 지지않으려고 하는 습성. 살아가면서 어려움이 닥치면 이러한 각오가 자신을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자신의 가장 큰 장점을 살릴 수 있는 것은 바로 언어습득이다.  

그러나, 현대 사회는 스마트폰이 언어 성장을 파괴하기도 한다. 물론 성장도 있지만. 

"단어 하나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 - 공자Confucius

우리는 대화를 할 때 습관적으로 줄임 문자를 쓰고 있다. 줄임 문자를 쓰는 이유는 편리하고 쉬운 언어를 사용하고 주위에서 많이 사용하기 때문이다.

문자를 쓰는 이유는 소통을 위함인데 자신의 생각과 사고 방식을 줄여서 표현하는데 'ㅇㅇ, ㅎㄷㄷ,ㅋㅋㅋ' 등의 자음은 이미 널리 쓰인다. 

언어에도 품격이 있다. 그래서 품격있는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자신의 가치를 더욱 업그레이드 시켜준다. 언어 습득은 자신의 가치와 성장을 한단계 올리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다.

​"무엇이 가장 행복한 인생을 만드는가?"
그 답이 이 안에 있다.
자신의 롤 모델을 만들어라.
한결같은 마음이 세상을 바꾼다
중꺾마(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

"자신이 한계가 있다면 그것은 자신이 정한 것이다."

'행복한 CEO' 송주온(경애) 대표이사의 스토리를 통해 성실이란 두 글자를 가슴에 새기고 노력한다면 자신이 그토록 갈망하던 인생의 목표는 한단계 앞으로 다가올 것이다.

송주온 대표의 노력은 곧 우리들의 보이지 않았던 미래를 미리 보여주는 것이다. 그 길을 따라 함께 걸어간다면 자신에게도 행운이 툭툭 다가올 것이라 여기면서 많은 필독과 응원바랍니다 [편집자 주]

송주온 대표
송주온 대표

 

25

노력은 닫힌 문도 열리게 만든다

질풍노도의 시기인 사춘기에, 새로운 변화를 경험한다는 것은 그야 말로 이중의 고난과 맞선 것을 의미한다.
그 시기 몸과 마음의 변화와 싸워 완성된 자아를 정립하고, 새로운 변화에 대해 내 삶의 일부로 만 들어 내는 과정이니 15세의 나에게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내가 원해서 마주 한 현실은 아니었지만, 이민은 내가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었다. 당시 나로서는 버거운 일이긴 했지만 미국에 와서도 결코 지고 싶지 않았다.

15세, 감수성이 풍부한 소녀의 눈으로 바라본 미국은 그저 놀라움 그 자체였다. 당시 한국의 작은 도시였던 춘천에서 유년기를 보낸 나로서는 미국이라는 곳은 대단히 충격일 수밖에 없었다. 뭐든 하면 된다는 자신감으로 똘똘 뭉쳐 있었던 나였지만 그만 한순간에 기죽고 말았다.

할아버지 덕분에 5~6세 때부터 외국인을 봐왔던 터라 아무리 미국이라도 크게 낯설지 않을 거라 여겼는데, 막상 미국에 도착하고 보니 차원이 달랐다.

생소한 환경도 그렇지만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들로 가득찬 공간에서 한순간 바보가 된 느낌이었다. 사람도 언어도 그리고 공 기조차도 낯설기만 한 곳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어서 오럼!"
세상에! 이젠 숙녀가 다 되었구나!"

낯선 곳에 떨어진 나를 반갑게 받아주시는 엄마, 그리고 동생들이 있어서 마음이 놓였다. 미국에서 가족 모두가 모이게 되니 서로 반가움에 얼싸안고 폴짝폴짝 뛰었다.

어쩔 수 없는 사정에 의해 떨어져 살 수밖에 없었지만 가족이 하나 되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내가 살아야 하는 워싱턴 지역이 한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곳이라 주변에서 한국 음식을 언제나 구할 수 있었다.

미국에 가면 빵과 치즈, 버터만 먹고 살 것 같았는데 한국과 거의 똑같은 음식을 먹으며 자랐다. 낯선 곳에 와서 적응하지 못할까봐 노심초사 하시던 엄마의 배려가 초기 미국 생활을 적응하는 데 큰 힘이 되었다.

집안에서야 가족들과 지내면 되니 큰 문제는 없었지만 학교생활은 그렇지 않았다. 미국생활에서 가장 적응하기 힘들었던 곳이었다.

새 학기가 되어 학교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무엇보다 문제는 영어였다. 한국에서 영어를 배웠지만 미국 학교 수업을 따라가기는 벅찬 게 사실이었다. 친구들과 대화할 때도 더듬거릴 수밖에 없어 말을 한다는 자체가 싫었다.

동양에서 온 학생이라고 친구들이 관심을 보이며 질문을 해왔지만 더듬거리는 내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아 Please, dont ask me!" 라고 쓴 종이를 보여 주었다.

주변에 한인 친구들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그 친구들과 한국말로 대화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내가 영어를 못한다는 게 알려지는 것보다 차라리 말수가 없는 아이로 보이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Kay Song이라는 애, 너무 도도하고 새침한 거 아냐?"

내 이름 중 '경kyoung'은 미국 애들에게는 상당히 발음하기 힘든 거였는지 '가영, 컹' 등으로 불리다가 한 친구가 K를 Kay로 발음하면서 Kay Song'이란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김만덕 수상자인 송주온(경애) 대표
김만덕 수상자인 송주온(경애) 대표

영어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가 얼마나 컸던지 그저 침묵으로 일관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 사정을 알지 못하는 친구들은 그저 날 도도하고 새침한 아이로 여겼다.

괜찮아, 힘내!?

누군가와 대화를 할 수 없으니, 혼잣말을 하는 버릇이 생겼다. 스스로에게 부추기면서 힘든 시간을 이겨내려 했다. 미국이란 곳에 적응하려면 가장 먼저 언어소통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부단한 노력이 요구되었다. 결국 내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내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했고, 스스로 그것을 부여했다.

언어 문제는 미국으로 이민 온 사람들이 초기에 겪을 수 있는 일이었다. 눈치 빠르고 짓궂은 남자 아이들이 내가 입을 닫은 이유를 알고는 놀리기도 했다.

한두 번은 무시하다가 놀리지 말라고 쏘아붙였다. 학교에서는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않아 당당하게 맞섰지만 집에 와서는 자존심이 상해 울기도 수없이 울었다.

'좋아, 너희들, 두고 보자!'

마음 같아서는 그 아이들이 못 알아듣는 한국말로 화풀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애써 참았다.

한국에서도 '바른생활 소녀였는데 미국이라고 다를까. 오히려 한번 하겠다고 마음먹으면 꼭 이루고 마는 내 근성이 살아났다.

내가 한국에서 남부럽지 않게 공부도 잘했지만 언어가 다른 미국에서 처음엔 서투를 수밖에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그것을 약점 잡아 놀리는 것은 정말 치사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증명하는 일은 어쨌든 내 몫이었다.

1등이 아니면 스스로를 용납하지 못했던 내게 미국 초기 생활은 정말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제대로 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혼자서 부단히 노력했다.

혹여 수업 시간에 이해하지 못한 문장이나 단어가 있으면 같은 반 친구를 붙들고 물었다. 친절하게 대답해 주는 친구들 덕 분에 영어가 빨리 늘었다.

짖궂은 아이들도 있었지만 그래도 대부분 착한 아이들이라 내 질문을 거절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얼마 정도 시간이 흐른 뒤, 갑자기 영어로 말하고 듣는 게 편해졌다. 영어가 자연스러워졌던 것도 오기와 열정으로 만들어낸 결과였다.

나에게 질문하지 말라는 종이가 필요 없어지기까지 6개월 정도 걸렸다. 언어에 대한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니 학교생활에 적응하기 시작했고 자신감을 갖고 학교 친구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게 되었다.

미국에서의 적응도 그만큼 빨리 할 수 있었다. 어느 순간 실수조차 부끄러워 하지 않았고, 친구들과도 잘 어울렸기에 그만큼 시간이 단축되었다.

이세상 모든 것은 노력 없이 그냥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런 노력 덕분에 적응하는 시간이 빠르게 줄었다.
지금도 가끔 영어공부에 대해 물어오는 사람이 있으면 내 경험에 비추어 대답한다.

"궁금하면 무조건 질문을 많이 하자"
"창피해 하지 말고 오늘부터 시작하자"
"혼자 책보면서 공부하면 절대 해결이 안 된다. 입을 열고 이야기 하자."
"틀린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갖지 말자."


모든 일에 적극적이지 않으면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

언어도 마찬가지라서 입에 익숙해질 때까지 반복적인 학습이 필요하다.

미국인들은 한국인을 포함한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을 수줍고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사람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말할 때 적극적이고 자신감이 있는 태도는 수줍어하거나 자신 없는 태도보다 훨씬 좋다.

가장 좋은 것은 완벽하게 외국어를 구사하는 것이지만 실제로 그렇게 되기는 어렵다. 내가 외국인이기에 문법이나 발음을 틀리게 말해도 이들은 그 점을 감안하고 듣는다. 또한 틀린 부분이 있어도 고쳐주거나 다시 물어 정확한 뜻을 알려고 배려한다.

송주온 대표(제주 송악산 둘레길에서)
송주온 대표(제주 송악산 둘레길에서)

틀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감 있게 말하면, 영어 공부에 도움이 필요함을 적극적으로 알릴 수 있어 오히려 공부에 플러스가 되는 요인이 된다.

수학은 손으로 풀고 언어는 입으로 말한다고 한다.

입에 붙 어야 언어 습득이 가능하다. 요즘 젊은 대학생들을 보면 정말 언어 능력이 뛰어난 인재가 많다. 외국어를 잘하는 사람들을 보면 다들 적극적인 자세를 갖고 있다. 능동적이지 않으면 배울 수 없는 것이 언어이기 때문이다.

나는 가능하면 기본적으로 영어와 더불어 한두 가지 언어를 더 하라고 권하고 싶다.

중국어나 일본어, 아니면 독일어나 프랑스어 등 한두 개 배워두면 쓸 수 있는 기회가 정말 많다.

나는 영어 이외에 스페인어와 프랑스어는 인사말과 안부를 묻는 정도의 실력이지만 비즈니스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실제로 외국 거래처를 만날 때 해당 언어로 인사를 하면서 친근함을 표시하게 되면 효과 만점이다. 자기나라의 언어를 안 다는 것은 상대방에게 친근감을 주어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지게 된다.

더불어 그 나라에 여행 다녀온 경험이 있다면 효과만점이다. 그 나라의 유명 관광지와 그 나라에서의 추억들을 이야기하면 더욱 좋다.

아무튼 미국 생활에서 얻은 깨달음은 노력하는 자에게만 성공의 문이 열린다는 것이었다. 또한 나를 이해시키기 위해서는 상황을 탓하지 말고, 스스로 보여 주어야 한다는 걸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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