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CEO 송주온 칼럼](24)내 인생이 나의 롤 모델이 되게 하라
[행복한 CEO 송주온 칼럼](24)내 인생이 나의 롤 모델이 되게 하라
  • 현달환 국장
  • 승인 2023.11.19 01: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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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장이 만난 시대의 경제인
행복한 CEO송주온 성공 이야기
끊임없이 긍정하고,또 긍정하라
행복한 CEO 송주온 대표
행복한 CEO 송주온 대표

1987년 스물다섯의 나이로 자본금 250만 원으로 시작한 비티앤아이(BT&I)를 2600억 원대의 항공권을 판매하는 코스닥 상장기업으로 성장시킨 송주온 대표.

35년간 국내 최고의 기업체 전문 여행사로 성장하기까지 여행업 한길로 매진하여 자연스럽게 한국 여행 전문가 그룹의 오피니언 리더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행복한 CEO.

제14회 여성경제인의 날 모범여성기업인상 대통령상 표창, 제12회 여성경제인의 날 국세청장상, '2011 한국 경제를 움직이는 인물 40인(<포춘코리아> 주최)'에 선정됐으며, 현재  W아너 소사이어티 총리더인 송주온 대표는 건전한 기부 문화 환경을 조성하는 데도 앞장서고 있다.

사회복지 공동모금회 시민참여 위원장으로도 활동하고 있으며 미국에서 발간되는 <포브스>에서 발표한 '아시아 기부 영웅 48인' 중 한 명에 선정되기도 했다.

또, 여성 CEO로는 처음으로 1억 원 이상 고액 기부자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이기도 한 그녀는 나눔과 봉사 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치면서 '행복한 CEO'란 별명에 걸맞게 주변에 행복 바이러스를 전파하고 있다.

뉴스N제주가 창간 5주년을 맞아 마련한 '행복한 CEO 송주온 칼럼'의 24번째 '나는 99번 긍정한다'의 핵심은 바로 '롤 모델'이다.

어릴 적 누군가의 모습을 보면서 꿈을 키운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지금은 멘토가 있어 나의 길을 인도하면서 지켜주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과거에는 학교 선생님, 담임 선생님이 나의 롤모델(롤모델은 자기가 해야 할 일이나 임무 따위에서 본받을 만하거나 모범이 되는 대상.)이 되어 상담이나 그의 철학 등 영향을 받게 된다.

엊그제 차를 타고 가는데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다. 인생 최고의 발명품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던지기에 나는 '뭘까?'하면서 물품을 생각했는데 진행자가 이런 말을 했다.

'자신의 가치를 알고 그 가치를 발견한 사람'이 최고의 위대한 발명가라고. 

우리는 자신이 이 사회에 얼마나 필요한 존재인지 그 가치를 알지 못하고 그냥 모른 채 사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그러나, 사람을 보는 눈을 가진 사람들은 그 사람의 가치를 읽어내고 인정해 준다.

그런 관계로 성공하는 사례는 많다. 스승, 멘트 등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행복한 CEO 송주온 대표의 현재 모습은 과거 부모님과 떨어져 혼자 스스로 공부했던 학생 때 이미 그려져 있었다고 본다. 송 대표의 부모님께 잘 보이려고 노력한 흔적들, 결과를 보여주려는 모습들이 부모입장에서는 얼마나 대견스러운가.

공부든, 사업이든, 인간관계 등, 그 무엇도 준비하는 자에게 운이 오고 기회도 오는 것이다. 준비하는 자에게는 두려움이 없다. 움직이는 사람에게는 꺾임이 없다. 결국 상황판단을 잘 해야 한다.

​"무엇이 가장 행복한 인생을 만드는가?"
그 답이 이 안에 있다.
자신의 롤 모델을 만들어라.
한결같은 마음이 세상을 바꾼다
중꺾마(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

"자신이 한계가 있다면 그것은 자신이 정한 것이다."

'행복한 CEO' 송주온(경애) 대표이사의 스토리를 통해 배려와 감사가 있는 삶을 사는 것에 방점을 두고 살아간다면 인생의 길에서 많은 사람들이 친구가 될 것이다.

송주온 대표의 미래는 곧 우리들의 미래와 같이 걸어가는 것이다. 그 길에 앞으로 정진만 있기를 기원하면서 많은 필독과 응원바랍니다 [편집자 주]

송주온 BT&amp;I그룹 대표
송주온 BT&I그룹 대표

 

24

내 인생이 나의 롤 모델이 되게 하라

꿈이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꿈을 펼칠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있기에 현재의 삶이 더 즐겁고 소중해진다. 특히 유년기의 꿈은 많아서 나쁠 게 없다. 나 역시 그 시절 참 많은 꿈을 꾸었다.

꿈이 있었기에 외로운 그 시절을 잘 견딜 수 있었고, 지금도 그때 꿈꾸었던 것들이 내 삶의 한 조각들을 이루고 있다.

"너는 장래희망이 뭐니?
"수녀님이요!"

내 어릴 적만 해도 또래 아이들의 장래희망에 대한 답은 한정되어 있었다. 남자애라면 으레 대통령에서 판검사로 이어졌고, 여자애들은 현모양처로 시작해서 간호사로 이어졌다.

장래희망이 수녀라는 것은 당시로서는 좀 엉뚱한 답이었는지도 모른다.

장래희망이란 게 주변에서 권하여 갖게 되기도 하지만, 자신이 선망하는 대상이 있을 때 그 사람처럼 되고 싶어 꿈꾸기도 한다. 요즘 말로 하자면 일종의 '롤 모델'인 셈이다. 어린 시절 나의 롤 모델이 되었던 수녀님, 그분의 모습은 어린 나에게 굉장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나는 유년기를 호반의 도시인 춘천에서 보냈다.

당시 할아버지께서 춘천에 있는 미군기지의 통역관으로 일하셔서 우리 가족은 작은 집과 함께 대가족을 이루며 살고 있었다.

우리 집 근처에 고아원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아이들을 돌보던 수녀님의 모습이 어린 내 눈에는 천사처럼 느껴졌다. 아이들을 따뜻하게 돌보는 단아하고 아름다운 수녀님의 모습이 가슴 깊이 파고들었다.

그래서 나도 어른이 되면 수녀가 되어 어려운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어야 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렇게 성장하면서 내 마음속에 또 다른 꿈이 자라나고 있었다.

조금 슬픈 기억이 바탕이 되기는 했지만 내게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는 증거였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아버지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고, 어머니는 내가 4학년 때 미국으로 가셨다.

할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유학의 길을 나섰지만 1남 4녀나 되는 자식을 모두 데리고 미국에 간다는 것은 쉽지 않는 일이었다. 그래서 장녀인 나와 셋째 동생은 한국에 남게 되었다.

부모 형제와 떨어져 지내야 한다는 사실이 어린 마음에 상처가 되었던 것 같다. 사정이 여의치 않아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남게 되는 입장에서는 서운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물론 할아버지를 비롯한 한국에 있는 가족들이 따뜻하게 보살펴 주었지만 부모님의 품과 같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때때로 엄마가 보고 싶고 외로워서 많이 울었다. 그렇게 생긴 눈물이 쉴 새 없이 많아졌다.

책을 보면서도 슬픈 이야기가 나오거나 슬픈 영화를 보면 울고, 어버이날 연극할 때 부모님 생각이 나거나 불쌍한 사람을 보면 울고, 울보공주가 따로 없을 정도였다. 눈물로 보낸 내 유년기 덕분에 감성적인 소녀로 성장했다. 눈물이 많은 것은 나이 먹은 지금도 다를 바 없다.

행복한 CEO 송주온 대표
행복한 CEO 송주온 대표

한동안 밤마다 부모님을 만나는 꿈을 꾸었다. 나는 어느새 비행기를 타고 미국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아침에 깨고 나면 외로움이 배가 되었지만 밤마다 새로운 세계로 여행을 떠났다.

시간이 빨리 지나 부모님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며 손을 꼽았다. 그리고 부모님과 떨어진 헛헛함을 달래기 위해 책을 읽었다.

책을 읽는 동안에 나는 세상 어디로든 다 갈 수 있었다. 덕분에 각종 위인전, 세계 명작, 어린이 잡지 등 주변에서 읽을 수 있는 것들은 모조리 읽었다. 책을 읽으면서 외로움을 잊을 수 있었고, 마음 한켠에 여행가의 꿈을 키우기도 했다.

미국에서 공부를 마친 아버지는 그곳에서 직장을 구하셨고, 한국 관련 외교 업무를 담당하셨다. 막연하게나마 아버지처럼 외교관이 되어야겠다는 장래희망을 가져보기도 했다.

처음에는 부모님이 옆에 계시지 않아 행동을 잘못한다는 소리를 듣기 싫어 누구보다도 반듯하고 모범적으로 생활하려고 했다. 마음 한편에는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과 외로움으로 가득했지만 남들 앞에서는 내색하지 않았다.

대신 활달하고 씩씩하게 뭐든지 잘하는 모습을 보이려 했다. 그래서 공부도 열심히 했고, 다른 활동들도 최선을 다했다.

학교 대표로 각종 대회에 가서 상을 휩쓸었다. 동화구연대회, 웅변대회, 주산대회 등등 할 수 있는 모든 대회에 나갔다. 한번 시작하면 끝을 볼 때까지 몰입했다.

그 끝이 1둥이라는 인정을 받는 것이었지만 무엇보다 부모님이 옆에 계시지 않는데도 잘한다는 인정을 받고 싶었던 것이다.

엄마, 아빠! 저 상 탔어요. 웅변대회 나가서도 상을 탔고요. 주산대회에 서도 장려상을 받았어요. 그리고 얼마 전에는 춘천문화방송 어린이 프로 그램에서 시를 낭독하기도 했어요. 제 목소리가 좋대요. 엄마, 아빠! 저 한국에서 잘하고 있으니까 걱정 마세요. 전 부모님의 착한 딸이잖아요.

상을 받거나 좋은 일이 생길 때마다 자랑하는 편지를 썼다. 보고 싶은 마음이 앞섰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내가 잘하고 있으면 부모님 마음도 든든하실 거라고 생각했다.

내 기대대로 부모님은 기뻐하시면서 몇 년만 있으면 한국으로 돌아갈 거라는 답장을 보내왔다.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도 하고, 활발하게 지냈지만 새롭게 생긴 내 꿈을 위해 지금부터 열심히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도 갖고 있었다.

꿈은 꾸는 사람의 것이고, 꿈을 위해 노력하는 자만이 그 꿈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막연하게나마 생각하고 있었다.

만일 내가 부모님과 떨어진 외로움에 눈물만 흘리며 시간을 보냈다면 내 삶이 지금과 달랐을지도 모른다. 다른 가족들의 따뜻한 보살핌에 삐뚤어지지 않았지만, 꿈이 없었다면 유년기의 기억이 공허하고 슬프게만 남아 있었을 것이다.

물론 현재 어린 시절의 꿈대로 수녀도 외교관도 되지 않았지만 그 꿈은 고스란히 내 삶에 녹아 있다.

"꿈이 바뀌어가고 있다는 건 제대로 인생을 걷고 있다는 증거다."라고 일본의 유명 개그맨 출신 사회자인 시마다 신스케의 말처럼 내 꿈도 여러 번 바뀌었지만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꿈이 있었기에 나는 행복했다. 그리고 여전히 꿈을 꾼다. 이젠 나 한 사람의 행복을 위한 꿈이 아닌 주변의 많은 사람이 행복해질 수 있는 꿈을. 그리고 내 자신에 늘 투자하고, 내 영혼에 물을 준다.

나는 나를 롤 모델로 여기니까, 그리고 누군가의 롤 모델이 될 수 있으니 말이다.
내 어린 시절의 수녀님처럼.

행복한 CEO 송주온 대표
행복한 CEO 송주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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