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주 칼럼](10) 재미있는 설화 – '그린밸리 선녀탕'
[장영주 칼럼](10) 재미있는 설화 – '그린밸리 선녀탕'
  • 뉴스N제주
  • 승인 2021.03.15 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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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주 교육학박사/명예문학박사
한국해양아동문화연구소장/한국사진작가협회회원
장영주 작가
장영주 작가

2008년 어느 여름날, 필자는 그린밸리라는 휴양림에 중학교 동창생들과 함께 야유회를 갔었다.

휴양림 들어가는 입구부터 범상치 않은 기운을 느끼며 걸어서 한 바퀴 돌아보니 이런 자연의 혜택을 누리는 곳이 어디 있을까를 생각해 보았다.

산속 초원 계곡에 물이 흐르며 한라산이며 아흔아홉골이며 시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가진 한마디로 ‘밸리’라는 이름에 걸맞은 곳이었다.

목동을 기다리는 선녀
선녀탕 가는 시설 공사 중

초원에는 수십 마리 말들이 평화롭게 뛰놀며 광장에는 말 조각상이 서 있고 아름다운 미모의 여인이 선녀 옷을 입은 듯 수줍음에 싸여 눈웃음치고 돌하르방이 지키는 집이 있는 모습에서 오래전 생각을 되새겨 보았다.

당시 소나무 숲길을 걷다가 계곡에 내려가면 폭포 소리가 고요한 발자국을 시샘이나 하는 듯 음악을 들려주고 점점 가까이 다가가면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은 그야말로 뭇 인간들의 눈으로 바라보기에도 황홀함 그 자체이었다.

폭포 아래 깨끗한 천연자연수가 한데 모인 물을 들이켜니 시원한 맛과 차가운 기운이 맴돌고 인간의 눈에 보이려 하지 않는 수줍음까지 한데 모인 물웅덩이를 발견하고는 어쩜 선녀가 목욕했을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주변을 살펴보니 아니나 다를까 ‘선녀탕’이란 안내판이 붙어 있었는데….

이제 선녀탕 가는 소나무 숲길은 아예 시멘트 도로로 탈바꿈 중이고 울창했던 숲은 앙상히 건물을 짓다 만 건물만이 빽빽이 자리 잡았고 폭포가 흐르던 계곡은 어디 있는지 찾을 길이 없었고 선녀탕이 있는지조차 알 길이 없어 관계자에게 물어도 알지 못했고, 공사장 현장 감독에게 물어도 잘 모르고 옛 기억을 찾아 그 길을 걸으려 해도 길은 끊겨 있고…. 그래도 기억을 살려 찾으러 가려 했지만, 공사장 자재를 지키는 개들이 낯선 방문객을 쫓아내려 울부짖고, 그러다 철수하여 다시 선녀탕 가는 길을 물으니 다행히 작업장 인부 7명 중에 제일 나이 많은 인부가 공사 길을 따라가면 예전에 있었는데 지금은 잘 모르겠다는 정보를 받아 진흙탕 길을 걷고 또 걸어갔으나 허사이었다.

변해도 너무 변한 밸리 모습에서 허전함도 있었지만, 예전의 기억과 지금의 광장에서 바라보는 광경은 예전과 똑같았기에 그 추억은 되살릴 수 있었으나 선녀탕이란 간판도 사라졌기에 지금 후회스러운 것은 2008년 당시 더 자세히 더 가까이 어쩜 선녀처럼 물에 풍덩 뛰어들어 목욕이나 하고 올 걸 하는 아쉬움에 옛일을 더듬어 오늘날의 현장 스케치를 덧붙여 이 글을 쓰고 있다.

목동을 기다리는 선녀
목동을 기다리는 선녀

선녀탕 설화를 잘 읽다 보면 공통분모가 나온다. 선녀가 목욕했다는 전설에는 선녀를 관리하는 옥황상제가 거의 등장한다는 것이다.

필자의 글에서도 이런 공식은 들어맞는다.

하늘나라의 옥황상제는 천리경을 통해 지상나라를 내려다본다. 그 후 천리경보다 더 효능이 좋은 만리경을 통해 사람의 마음마저 보고 읽는다.

주) 염라대왕과 요술 거울, 2013. 03. 18. 유페이퍼 책 소개

설화를 동화에 접목한 환경 스토리텔링이다. 2000년에 자료를 조사하여 2004년에 종이책으로 발간한 사회상을 고발하는 참여환경 동화로 하늘나라 선녀가 지상나라 선녀탕에서 목욕하다 옷을 잃어버려 지상나라 인간세상 사람과 혼인하여 살다 하늘나라 천상세계에 올라가게 되었는데 옥황상제가 선녀를 보고 깜짝 놀란다.

그렇게 예쁘던 선녀의 얼굴이 주름이 팬 노파로 변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건 지상나라 인간세상에 환경이 오염되어 선녀탕에도 오염된 물이 고이다 보니 거기서 목욕하던 선녀가 폭삭 늙었음을 옥황상제는 단 한 눈에 알아 차려 하늘나라도 환경오염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 일으켜야 겠다는 내용이다.

만리경의 위력, 한국해양아동문화연구소, 2017. 12. 11.
이 외로 도구리 선녀탕, 아흔아홉골 선녀탕에서 꼭 옥황상제가 선녀와 함께 등장한다.

중국 태산의 옥황상제는 아흔아홉골 선녀탕 편에서 소개하기로 한다.

□ 장영주 설화전문박사가 꾸민 밸리 선녀탕

오랜 옛날,

하늘나라 옥황상제는 지상나라 골짜기로부터 칠색 찬란한 빛이 올라오는 걸 보았어요.

“저 빛이 무언고?”

옥황상제는 선녀를 불러 그 연유를 물었어요.

“황공하오나 잘 모르겠사옵니다.”

옥황상제는 선녀들이 지상나라에 가서 목욕하고 돌아온다 는걸 눈치채고 있기에 혹여 칠색 빛이 어디서 나는 것인지 알 것 같아 물었지만, 선녀들은 모르겠다니 옥황상제의 궁금증은 높아만 갔지요.

‘그래, 내가 직접 가 보리라.’

옥황상제는 아무도 몰래 불빛이 새는 지상나라에 내려와 보니 100골짜기가 용트림하는 모습에 소나무가 우거지고 산새들이 지저귀는 곳을 발견한 게지요.

“옳거니, 저 폭포수가 떨어지며 내는 빛인 게로구나.”

옥황상제는 100골짜기에 폭포가 있고 그 아래 웅덩이에는 깨끗하고 시원한 천연수가 고여 있음을 알고는 몰래 숨겨 두기로 했지요.

‘선녀들이 알면 안 되느니라.’

옥황상제는 선녀들을 잘 감시해야겠다고 생각하였어요. 혹여 몰래 숨겨 둔 100골짜기 폭포를 알기나 하면 안 되니까요.

(목동을 기다리는 선녀)
목동을 기다리는 선녀)

어느 날이었어요.

이 눈치 저 눈치를 살피던 하늘나라 어느 선녀가 아무도 몰래 100골짜기 폭포로 내려왔어요.

‘호호, 누가 모를 줄 알고? 옥황상제가 찾던 폭포가 바로 이거였구나.’

선녀는 만면에 웃음을 지었지요.

‘어디 어디 보자. 내가 먼저 시식해 보련다.’

선녀는 옷을 벗고는 폭포 아래 물웅덩이에 ‘첨벙’ 들어갔어요.

‘어? 남자의 체취가 나네?’

선녀는 코를 ‘쿵쿵’ 거리더니 주위를 살폈어요.

선녀가 목욕하는 걸 누가 훔쳐보기라도 하는 날에는 하늘나라 법도에 따라 그곳에 남아 있어야 하거든요.

‘가만? 천왕사 스님의 여기서 목욕을? 아니면 도를 닦았나?’

선녀는 흠칫 놀라며 어른 옷을 입고는 웅덩이 물을 다시 살폈어요.

‘어? 이 냄샌 옥황상제 체취네’

선녀의 코는 천리향을 다 맡을 정도이었다니까요.

‘이 물웅덩이에서 목욕한 첫 남자가 옥황상제?’

어느새 이 물웅덩이에서 나는 남자 냄새의 주인공이 옥황상제란 걸 선녀는 눈치챈 거고요.

몇백 년을 옥황상제 곁에서 심부름하며 알게 모르게 옥황상제 몸 채취를 선녀는 이미 알고 있었거든요.

“호호호, 옥황상제와 같은 물웅덩이에서 처음 목욕을 한 선녀가 되었다니?”

선녀는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하늘나라로 올라가는 거예요.

‘아무리 천리경이 있으면 뭐해? 이젠 옥황상제는 내 말에는 꼼짝 못 할걸.’

선녀는 옥황상제의 눈을 피해 여기 온 걸 옥황상제가 알아차린다고 하더라도 그걸 이길 비방의 무기를 발견한 셈이 지죠.

옥황상제나 선녀가 생각하는 것이 ‘장군’ ‘멍군’이잖아요.

(행복한 선녀 가족)
(행복한 선녀 가족)

하늘나라 옥황상제는 심심해졌어요.

천리경을 벗 삼아 선녀들이 목욕하는 것도 보고 신하들이 뭘 하나 들여다보곤 했었는데 요즘 그것도 영 맘에 안 들더라니까요.

천리경이란 게 종종 고장이나 옥황상제 애를 먹이곤 했거든요.

‘에구, 천리경도 이젠 낡았구먼.’

옥황상제는 고물 천리경으로 지상나라를 내려다보는데,

‘어? 폭포는 하나가 줄었고 골짜기도 하나 사라졌네?’

옥황상제 천리경에는 폭포 물도 줄어들었고 칠색 황홀한 빛도 예전 같지 않았고 100골짜기도 허전한 게 보였어요.

‘안 되겠다. 내가 직접 내려가 보리라.’

옥황상제는 목동으로 감쪽같이 변신하여 천리마를 타고 지상나라로 내려왔어요.

(아흔아홉 골짜기)
(아흔아홉 골짜기)

옥황상제가 지상나라에 내려와 보니 칠색 폭포는 6색 폭포가 되었고 100골짜기는 99골짜기로 변해 있었어요.

‘기인한 일이로다!’

옥황상제는 천리경으로 뭔가를 들여다보았어요.

‘에구 이런 고물하고는, 옳거니, 아직 실험 단계이지만 이걸로 한번 들여다볼거나?’

옥황상제는 천리경을 내팽개치고 주머니에서 천리경보다 작은 망원경을 꺼내는 것이 아니겠어요?

‘히히, 이게 만리경이란 말이지?’

옥황상제는 만면에 웃음을 지었거든요.

‘내가 이럴 때를 대비하여 새로는 기계를 만들어 놓았으니 누가 이 일을 알기라도 하겠나?’

옥황상제는 입맛을 ‘쩍’ 다시며 만리경으로 선녀의 행동거지를 살펴보았어요.

여기선 잠깐, 만리경이라니요?

하늘나라에 과학이 발달하고 인공지능을 가진 기계들이 발명되는데 특별히 옥황상제는 천 리를 내다 볼 수 있는 천리경을 업그레이드하여 선녀의 마음마저 꽤 뚫어 볼 수 있는 만리경을 만들었거든요.

“허어, 바로 이것 때문이야.”

옥황상제 만리경에는 지상나라에 선녀의 행동거지가 그림 그리듯 나타나는 거예요.

그 선녀는 몰래 100골짜기 중 한 골짜기를 떼어내 다른 곳에 옮겨 놓는 게 아니겠어요?

“어딜 갖다 놓았나?”

“어? 저긴 어딘가?”

옥황상제는 선녀가 골짜기 하나를 떼어다 놓은 곳을 바라보다 무릎을 딱 쳤어요.

“세상에 저런 곳도 다 있더냐? 지상나라란게 참 아름답구먼.

옥황상제가 만리경으로 바라보니 아름다운 들녘에 말들이 한가롭게 뛰놀며 넓은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는 곳에 칠색 폭포에서 한 폭포 하나를 떼어다 밸리라는 골짜기에 숨겨 놓은 게 아니겠어요?

(밸리 폭포 선녀탕)
(밸리 폭포 선녀탕)

“저런 저런, 아무 때나 홀랑 옷을 벗으면 안 되는데.”

옥황상제는 선녀가 자기만이 아는 비밀 같은 곳에 골짜기 하나와 폭포 하나를 떼어다 붙여 놓고는 폭포 아래 물웅덩이에서 유유히 목욕을 즐기는 걸 보니 부럽기도 하고 왠지 명을 어긴 선녀가 밉기도 하고 그랬지요.

‘에구, 관두자. 하늘나라라곤 선녀들이 바깥세상 구경을 못 하란 법이 있는가?

옥황상제는 타고 온 천리마를 선녀에게 보내 무서움과 외로움을 달래게 해 주었답니다.

옥황상제는 구름을 불러 타고 하늘나라로 올라갔고요.

“어? 누구세요?”

선녀는 깜짝 놀랐어요.

어디선가 말을 타고 오는 목동을 본 게지요.

“하아, 나는 이 곳 목장의 말을 지키는 목동이오.”

“에구머니나. 그럼 제가 목욕하는 걸 보셨단 말에요?”

“하하, 보다마다요.”

목동의 능청스러운 대답에 선녀는 몸들 바를 몰랐어요.

하늘나라 법도에 선녀가 목욕하는 걸 본 이는 곧 선녀의 낭군이 되어야 한다는 법칙이 있거든요.

“잠시만요. 비록 제 몸을 보신 건 어쩔 수 없다지만 저는 하늘나라에 올라가 옥황상제의 부름을 받지 못한 연유를 말씀드려야 해요.”

선녀는 얼른 옷을 입었어요.

“보름달이 뜨는 날 다시 오겠으니 기다리사아요.”

선녀는 황급히 약속하고는 하늘나라로 올라가며 못내 아쉬웠어요.

세상에 태어나 처음 본 늠름한 낭군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려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니까요.

선녀는 산 좋고 물이 맑은 데다 보는 것마다 절경이오. 발길 닿는 곳마다 넓은 초원이 하늘나라에 비할 바 없는 곳을 찾았기에 여기서 살고 싶었던 게지요.

그래서 폭포와 골짜기를 한 개 떼어다 자신만의 천국을 만들 양이었는데 아뿔싸, 목동에게 들켰으니 이를 어쩐담?

보름달이 뜨는 날이 되었어요.

선녀는 옥황상제의 허락을 받고 지상나라로 내려왔어요.

“오늘부터 지아비로 잘 모실까 합니다.”

선녀는 이만하면 든든한 반려자를 만났다고 생각하고 있던 참이라 쉽게 마음이 통하였지요.

목동은 한라산과 아흔아홉골을 바람막이 삼아 넓은 초원 마당에 집을 지어 주고 우물을 파 주었어요.

말도 한 필 벗 삼아 주었고요.

목동을 기다리는 선녀
(돌하르방 집)

무사안녕 액을 막아 주고 태평성대 지킴이 돌하르방 한 쌍으로 하여금 선녀가 사는 집을 지키게 했어요.

선녀는 아침저녁으로 말 떼를 몰고 집 앞을 지나다니는 목동을 볼 때마다 미소를 지었어요.

목동을 기다리는 선녀
목동을 기다리는 선녀)

선녀는 목동이 가져다주는 쌀로 밥을 지었고 뜨락에 감자를 심고 텃밭에 양파를 심어 반찬을 만들어 먹곤 하였지요.

해가 바뀌는 동안 선녀는 목동에게서 조랑말을 키우는 법을 배웠고 차츰 일에 재미를 붙였어요.

이제는 목동의 손을 빌리지 않고도 제법 조랑말을 거느리게 되었거든요.

선녀는 이 땅에서 비로소 생활의 기쁨을 맛보았어요.

달이 가고 해가 몇 번 바뀌는 동안에 목동과 선녀는 서로 사랑하는 마음이 더욱 깊어졌지요.

“그래, 잘들 살 거라.”

하늘나라에서 옥황상제의 근엄한 목소리가 들렸어요.

선녀가 지상나라에 와서 행복하게 사는 것이 매우 흐뭇했던가 보죠?

목동을 기다리는 선녀
(행복한 선녀 가족)

그 후 목동과 선녀는 행복한 가정을 꾸렸고요, 딸도 낳았어요.

행복한 가정 소식을 스마트폰으로 옥황상제에게 전하기도 했고요.

그 후 넓은 초원에 말들이 뛰놀며 아흔아홉 골짜기를 굽어보는 아름답고 편한 의자처럼 밸리 휴양지가 되었답니다.

그곳에는 선녀만을 위한 선녀탕이 숨겨져 있었고요.

목동을 기다리는 선녀
밸리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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