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주 칼럼[(4)'재미있는 설화' – 용머리 선녀탕
[장영주 칼럼[(4)'재미있는 설화' – 용머리 선녀탕
  • 뉴스N제주
  • 승인 2021.02.15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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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주 교육학박사(명예문학박사)
한국해양아동문화연구소장
한국사진작가협회회원
장영주 작가
장영주 작가

탐라에는 용과 관련된 이름이 꽤 많다. 마을지명으로 ‘용담동’이 대표적이며 기암으론 제1용 용두암, 제2용 용머리가 대표적이다.

그 외로 제3용 남당암수, 제4용 용문석, 제5용 와룡바위, 제6용 흑룡만리, 제7용 파파빌레 흑룡, 제8용 수월봉 황룡, 제9용 송악산 흑룡(출처 장영주 언론사 연재 2019) 등 9룡으로 분류하여 팸플릿을 만들어 놓은 장영주 설화전문박사의 자료가 있다.

이제 이 용과 관련된 기암에서 선녀탕이라 이름 붙일 만한 곳을 찾아 새로운 각도에서 새롭게 접근하여, 새로운 창작설화를 선보임으로써 다음 연구가들의 참고자료로 제공함을 그 목적으로 한다.

용머리 선녀탕

중국 진시황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지요.
“저게 큰 인물이 탄생할 징조란 말인고?”

남쪽 먼 바다 건너 조그만 탐라 섬에서 황궁을 향해 뻗은 빛줄기를 바라보던 진시황은 그야말로 질겁하고 만 게지요.

“안 된다. 이 세상은 내 것이야.”

황제는 세상을 거느리는, 호령하는 일은 자신만이 하여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있었을 거예요.

“당장 저 정기를 끊도록 하라.”

진시황의 명을 받은 고종달이 종달리라는 곳으로 배를 타고 푸른빛이 솟아오르는 섬으로 내려왔지요.

고종달의 수맥 끊기는 동쪽에서 시작하여 하나둘 정기를 끊으며 서쪽으로 향하는데 가슴에 품은 지도에 있는 ‘꼬부랑 나무 아래 행기물’만은 찾지 못했다네요.

사계리 해안 산방산 앞에 이르러 고종달은 그만 뭔가에 홀린 듯 옴짝달싹하지 못했어요.

산방산은 신비함을 더해 주려는 듯 안개에 가려 그 모습을 볼 수가 없었거든요.

안개낀 산방산

‘이상하다. 왜 이리 힘이 들까?’

고종달은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 내며 잠시 바닷가를 내려다보았어요.

‘아니?’

고종달은 깜짝 놀랐지요.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이상한 빛이 서려 있음을 보았기 때문이지요.

“허허, 과연 명산에 과연 명물이 나올 기세를 한 지세가 바로 저것인 게야.”

꿈틀거리는 용머리

고종달은 꿈틀거리며 포요 하는 호랑이처럼 태평양 저 멀리

꿈틀거리는 용머리

용궁을 향해 용트림하는 모습을 본 게지요.

‘아깝다. 아까워. 솔직히 황제보단 더 나은 훌륭한 인물이 나올 상인데….’

고종달은 잠시 머뭇거렸어요.

세상 으뜸인 인물이 나올 상을 끊는 게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지 지금껏 황제의 명을 받들며 잘 알고 있던 터라 세상 최고 상맥을 끊으려니 좀 으스스한 기분도 들었겠죠?

“에잇.”

고종달이 내리친 진검에 꿈틀거리며 용궁으로 돌아가던 용은 피를 토하며 죽고 말지요.

‘아깝다. 하지만 어찌 기분이 이상하구나. 빨리 돌아가야겠다.’

고종달은 얼른 장비를 챙기고 배를 타고 중국으로 가려는 데 아뿔싸 그 배는 한라산신의 노여움으로 그만 차귀도에서 부서져 고종달은 죽고 말지요.

‘가만!’

이 순간 남해 바닷속 바다나라 용궁에서는 난리가 났어요.

“어찌 산방산에 간 적(황)용이 돌아오지 않는고?”

용왕은 안절부절못하였어요.

그러지 않아도 꿈자리가 사나워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마음을 다잡고 있을 때, 산방산 산방굴사 여신의 울부짖으며 도움을 요청하기에 황룡을 사자로 보냈거든요.

그런데 그 사자로부터 아무런 연락이 없는 거예요.

예전 소나무로 가려진 신비의 산방굴사

“뭐라고? 고종달에게 당해?”

용왕은 노발대발 황룡의 안전을 생각하며 산방산 산방굴사 천장에 매달려 있는 여신을 생각해 본 거지요.

용왕은 그 여신이 옥황상제의 공주란 걸 눈치 채고 있었기에 그를 도와주고 싶었던 게지요.

산방굴사 모습

잠깐,

산방굴사는 영주십경 중 하나인데요. 여기엔 천상나라에서 내려온 공주가 인간세상 ‘고성목’이란 사람을 만나 사랑을 나누다가 보름달이 뜨는 날 그와 혼인하여 아들딸 낳고 행복하게 잘 살았는데, 어느 사또가 부임해 와 그의 미모를 탐내 자신에게 시중들기를 간청했으나 이를 거절하자 남편을 옥에 가두니 그는 신의 몸으로 인간이 된 걸 후회하며 몸을 날려 산방굴사에 들어가 천장에 매달려 눈물을 흘린다는 애절한 이야기에 나오는 주인공이 바로 옥황상제의 공주 산방덕이랍니다(출처 장영주 소원의 열쇠 익산 1997).

산방덕이(선녀)가 나오는 소원의 열쇠

예전엔 500년 소나무로 가려 아주 신비한 곳이었거든요. 지금은 그 소나무는 재선충으로 고사하고 산방굴사 속은 상술로 조금은 옛 고상함을 잃고 세태 따라 흘러가는 상황이 좀 안쓰럽죠.

천정의 눈물

“비록 몸은 죽었지만, 황룡 혼은 들어라. 산방굴사 여신을 위해 너의 심장부를 그에게 주어 인간세상에서 사또에게 더럽힌 몸과 마음을 맑게 물웅덩이를 만들어 그의 몸과 마음을 깨끗이 씻게 하여라.”

용왕은 황룡에게 사후 명령을 내렸어요.

산방덕이 약수

황룡은 마지막 소원으로 죽은 혼이 일어나 자신의 몸통 심장부위를 도려내 물웅덩이를 만들고 나서 절벽을 뚫고 영혼은 승천하였답니다.

황룡이 승천한 자리

“절대 권력을 가진 자는 얼씬거리지 못하게 하라.”

용왕은 옥황상제의 공주 산방덕이만을 위한 물웅덩이를 만들며 지난날 사또의 권력 남용에 대한 경계를 한층 단단히 하라 황룡에게 일러 주었다지요.

“마음 편하게 평화롭고 아늑하고 인정 많고 안락함이 흐르게 사람들의 쉼터가 되게 늘 지켜 보거라.”

용왕은 황룡더러 몸은 죽었어도 마음만은 용머리에 남아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 돌봄이 역할을 하라 단단히 일러 놓았답니다.

선녀탕 모습

그 후 산방덕이는 몸과 마음이 아플 땐 황룡이 만든 물웅덩이에 가서 몸을 추스른다고 하지요.

선녀탕 모습

또 잠깐,

지금도 산방굴사 천정에서는 산방덕이(옥황상제 공주)가 흘리는 눈물이 보이고 그 눈물은 모여 약수가 되고 산방덕이가 일 년에 하루 몸과 마음을 추스르려 물웅덩이에게 가는 팔월 보름날에는 천정에 물방울이 맺히지 않는 다네요. 잠시 자리를 비워둔 탓이겠죠?

이에 황룡은 태평양을 향해, 용궁을 향해 돌아가려다 멈춘 상태를 ‘용머리’ 라 부르고 황룡의 심장부에 물웅덩이를 만들어 옥황상제 공주(선녀)의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 깨끗한 물이라 하여 ‘선녀탕’이라 불리게 되었는데요.

선녀탕 모습

지금도 용머리 선녀탕을 보려면 마음이 아름다워야 하고 권력을 남용하는 사람에겐 그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답니다.

참 신기하죠?

사실 용머리 선녀탕이 있는 곳은 늘 바람이 불고 파도가 크게 쳐서 밀물일 때는 출입하는 데 상당한 위험이 따르기에 통제하기 때문이랍니다.

또또 잠깐,

용머리 해안가를 탐방 하는 장소는 두 군데 있는 데요. 용머리 선녀탕(장영주 설화전문박사가 붙인 이름이어서 당장은 선녀탕이라면 잘 모릅니다)을 가려면 산방산과 가까운(하멜 기념탑 옆) 관리사무소로 입장해야 합니다.

하멜 상선이 있는 쪽은 절벽을 관람 할 수 있는 지질층이고요.

보통 제주도는 날씨가 좋은 날이 50∽60일 정도인데 그중 용머리 선녀탕을 볼 수 있는 날은 별로 많지 않거든요.

그나마 밀물 때는 출입이 안 되니 그야말로 여러 차례 도전해 봐도 잘 안 되는 경우가 많은 건 그 만큼 산방덕이가 인간을 대하는 원한이, 특히 권력을 남용하는 사람을 대하는 심정이 그대로 투영된 것인지 모르죠.

사실 필자가 올린 선녀탕 사진은 최근(2021년 1월 말에서 2월 초)에 5차례 도전해 봤는데 실패해서 오래전 사진으로 대신 했어요.

요즘(겨울철) 날씨는 용머리 해안에선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나 봐요.

해서 7년 전 촬영한 용머리 선녀탕 쪽 사진과 10년 전 지질층 사진 1컷, 인터넷 사진 1컷을 사용했음을 밝혀 둡니다. 혹 지금은 위 사진보단 약간 변화 생겼는지는 모르겠어요.

산방산 용머리 선녀탕을 보려면 당일 아침 사무소에 전화로 알아봐야 해요. 보통 9시 정도에는 출입 가능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데 겨울철과 장마철에는 상당히 참관하기가 어렵답니다.

참관 시간도 썰물 때 1시간 30분 정도이고요(계절, 날씨에 따라 달라짐), 밀물일 때는 나와야 해요. 위험하니까. 사무실에서 안내를 해 줍니다.

파도에 휩싸인 용머리, 멀리 바다에서 바라본 용의 머리, 고종달의 휘두른 칼에 용의 등이 갈라진 모습, 하멜 표류 배와 형제섬과 송악산과 한라산, 해안가와 절경, 용머리의 웅장한 모습은 정말 대단하지요.

말로 다 표현 못해요. 특히 바다에서 바라본 풍경은….

한라산과 산방산과 용머리

그만큼 신비한 산방산과 용머리와 선녀탕이랍니다.

참고, 유튜브(장영주설화전문박사 방) 용머리 선녀탕

설화와 낭만과 불심의 산방산 선인탑에 올라 바다를 보면 에메랄드빛처럼 빛나고 용머리 끝을 벗어난 형제섬과 송악산 너머로 가파도, 마라도가 그림처럼 다가온다.

멀리서 보기에는 그저 우뚝 솟은 바위산이지만 올라보면 상록수와 활엽수로 뒤덮여 다양한 식물상을 볼 수 있고, 퇴적층의 기암괴석이 보인다.

돌고래와 용머리

때론 돌고래가 나타나 춤을 추는 곳, 이곳이 산방산 앞 해안가에 자리한 용머리이다.

오랜 옛날,

원래 제주 땅은 세계를 지배할 왕이 태어날 지세를 갖추었다고 한다.

천하를 통일한 진시황은 그런 기미를 알아차리고 고종 달이란 풍수사를 파견하여 그러한 장군이 날 만한 땅의 혈을 끊어 버리도록 한다.

바다로 뻗어 나간 지맥의 혈이 끊기자 용이 꿈틀거리고 파도가 포효하며 울었다.

이렇게 행패를 부리고 돌아가는 고종달을 섬의 신이 무사히 보낼 리가 없었다.

한라산신은 바람을 보내 배를 뒤집어 그를 죽여 버렸다.

그래서 그가 돌아가는 것을 막았다는 뜻을 담은 차귀도란 지명이 생겨났다고 한다.

여기 심오한 산방산 용머리 가운데 심장의 멈춰서며 물웅덩이가 생겨나 사람마다 탄성을 자아내니 형제섬도 멀리서 눈여겨 보는 곳, 그래서 설화전문박사 장영주는 이를 ‘용머리 선녀탕’이라 이름 붙였다.

형제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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