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영 시문학 칼럼](3) '그대 가슴에 흐르는 詩' ... 유리창 1
[김필영 시문학 칼럼](3) '그대 가슴에 흐르는 詩' ... 유리창 1
  • 뉴스N제주
  • 승인 2022.07.10 0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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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PEN International 회원
계간 시산맥 / 편집위원, 시회 회장
계간 스토리문학 / 편집위원

정지용 시집, 『초판본 정지용시집』(주)미르북컴퍼니, 21쪽, 유리창 1.

유리창 1

정지용

유리에 차고 슬픈 것이 어른거린다.

열없이 붙어 서서 입김을 흐리우니

길들은 양 언 날개를 파닥거린다.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

새까만 밤이 밀려나가고 밀려와 부딪치고,

물 먹은 별이, 반짝, 보석처럼 박힌다.

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은

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

고운 폐혈관이 찢어진 채로

아아, 너는 산새처럼 날아갔구나!


김필영 시인
김필영 시인

『자식을 잃은 아버지의 절제된 그리움과 슬픔의 시학』

유리창은 창밖의 빛을 들어오게 하거나 창밖의 풍경을 내다볼 수 있게 하는 건축의 주요 공법이며 우리생활에 필수적인 건축구조물이다.

같은 장소에 있는 건물이라도 유리창 밖의 조망권의 가치에 따라 건물의 가격이 매겨진다. 유리창은 차단성과 투명성을 동시에 지닌 물질이나 유리창 앞에 서 있는 사람이 말이 없는 경우가 있다. 유리창을 통해 내면의 자신과 대화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지용 시인의 시를 통해 유리창에 다가서 본다.

첫 행의 “유리에 차고 슬픈 것이 어른거린다.”는 것은 화자가 유리창 밖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유리창’자체를 보고 있음을 알게 한다.

페어글라스(pair glass)라는 복층 이중 유리가 없던 시절, 유리창에 차가운 외기온도가 그대로 전달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화자가 유리창에 서있는 계절과 시각은‘겨울밤’으로 추정할 수 있으며, “슬픈 것이 어른거린다.”는 표현에서 화자는 눈물을 글썽이며 유리창 가에 서있는 것 같다.

2행의 “ 열없이 붙어 서서 입김을 흐리우니/ 길들은 양 언 날개를 파닥거린다.”는 표현에서 화자는 유리창을 통해 “날개를 파닥거”리는 한 마리 새를 발견한다. 그러자 얼른 유리창의 성애를 지운다. 언 날개를 퍼덕이는 새는 화자의 사랑하는 사람의 화신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화자는 유리창을 떠나지 않고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 새까만 밤이 밀려나가고 밀려와 부딪치”는 상황의 연속되는 것을 계속 목도하고 있다.

이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차가움과 어둠으로 상징된 유리창 밖의 닿을 수 없는 곳으로 떠난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며 슬픔을 절제하려 자식을 잃은 아버지의 모습이다. 

그러나 가눌 수 없는 상실의 슬픔 앞에“물 먹은 별이, 반짝, 보석처럼 박힌다.” 이‘물먹은 별’은 유리창 밖에 어둠 속에 반짝이는 밤하늘의 별이 아니라 속눈썹에 맺힌 눈물방울이 유리창에 반사되는 순간을 포착한 묘사로서 슬픔을 참아내려는 절제된 마음을 반짝이는 보석을 도입하여 화자의 슬픔을 감추려한다.

어린자식을 잃은 아버지가“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은”얼마나 청승맞은 행동인가. 유리창이라는 투명성이‘밤“이라는 차단성에 의해 단절이라는 의미를 만들어 내서 이승과 저승의 경계처럼 서 있다. 그러나 화자는 그 심정을 “외로운 황홀한 심사”라고 말한다.

아내 몰래 유리창 앞에 서서 자신의 슬픈 감정으로 어리는 입김을 지우면서 죽은 아들을 그리워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얼마나 외로운가? 그러나 그렇게 나마 유리창 앞에서 아이의 모습과 만나는 자신의 심정을‘외로운 황홀한 심사’라고 말하고 있다. 외롭지만 아이와 유리창을 통해 교감하는 정신적인 기쁨을 “황홀한 심사”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화자가 어둠속에서 유리창이라는 물체를 통해 어린 자식과 교우했으나“고운 폐혈관이 찢어진 채로 아아, 너는 산새처럼 날아갔구나!”라는 절망적 탄식에서 차가운 유리창의 투명성은 이 단절을 보다 비극적이고 절망적으로 느끼게 한다. 화자가 환영에서 깨어나 현실로 돌아왔을 때 어린 자식의 모습은 그 어디에도 없다.

마지막 행에 와서 어린 자식에 대한 솟구치는 그리움과 슬픔에 탄식으로 무너지는 모습이 더욱 인간적으로 느껴진다.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다 묻는다.’는 울지 못하는 아버지의 슬픔을 깜깜한 유리창에서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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