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영 시문학 칼럼](2) '그대 가슴에 흐르는 詩' ... 알 수 없어요
[김필영 시문학 칼럼](2) '그대 가슴에 흐르는 詩' ... 알 수 없어요
  • 뉴스N제주
  • 승인 2022.07.03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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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PEN International 회원
계간 시산맥 / 편집위원, 시회 회장
계간 스토리문학 / 편집위원

한용운 시집, 님의 침묵『한성도서』, 미르북컴퍼니 재발행. 10쪽, 알 수 없어요

알 수 없어요

한용운

바람도 없는 공중에 수직(垂直)의 파문을 내며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은 누구의 발자취입니까.

지리한 장마 끝에 서풍에 몰려가는 무서운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굴입니까.

꽃도 없는 깊은 나무에 푸른 이끼를 거쳐서 옛 탑(搭) 위에 고요한 하늘을 스치는 알 수 없는 향기는 누구의 입김입니까.

근원은 알지도 못할 곳에서 나서 돌부리를 울리고 가늘게 흐르는 작은 시내는 굽이굽이 누구의 노래입니까.

연꽃 같은 발꿈치로 가이 없는 바다를 밟고, 옥 같은 손으로 끝없는 하늘을 만지면서, 떨어지는 해를 곱게 단장하는 저녁놀은 누구의 시(詩)입니까.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그칠 줄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은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


김필영 시인
김필영 시인

『대자연의 질서와 법칙의 근원을 통찰한 겸허의 시학』

대자연의 질서와 법칙 내에서 우리 인류는 과학이라는 학문을 통해 문명의 발달을 이끌어 왔다. 우리의 상상이 가능한 분야에도 과학이 밝혀낸 사실보다 밝혀내지 못한 분야는 방대하다. 한용운 시인의 시를 통해 알 수 없는 것들의 근원에 대해 사유해본다.

시는 자연계의 사물과 현상들을 열거하며 그 소유격과 근원을 묻고 있다. 첫 행은 “바람도 없는 공중에 수직(垂直)의 파문을 내며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은 누구의 발자취입니까.”라는 설의적(設疑的) 질문으로 시작된다.

낙하하는 오동잎에서‘파문’을 발견하는 초능력은 심안(心眼)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것이다. 이는 만류인력을 발견한 뉴턴의 사과가 오동잎으로 대체되었음을 연상되게 한다. 한낱 낙엽을 통해‘인력의 법칙’이라는 우주의 질서를 존재하게 한 근원을 묻고 있다.

두 번째 질문으로 “장마 끝에 서풍에 몰려가는 무서운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굴입니까.”고 묻는다.

이 장면은‘무서운 검은 구름’이라는 장마철 기상현상을 등장시켜‘암울하고 예측할 수 없는 번뇌의 세상 상태’를 은유하고 있다. “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이라는 기상의 이동상황을 통해 암울한 세상에서 밝혀지는 진리와 깨달음 또는 희망의 근원을 묻고 있다.

세 번째는“꽃도 없는 깊은 나무에 푸른 이끼를 거쳐서 옛 탑(搭) 위에 고요한 하늘을 스치는 알 수 없는 향기는 누구의 입김입니까.”라는 질문이다. “깊은 나무에 푸른 이끼”와 “옛 탑(搭)”의 시간적 흐름과 공간적 존재를 “하늘을 스치는 향기”로 연결시키고 있음을 본다.

습지식물인 이끼와 빛바랜 옛 탑을 미와 향기의 상징인‘꽃의 향기’보다 우위에 두고 그 보다 상위개념의‘누구의 입김’인지 질문했는가? 시각적, 후각적 분별력으로 느낄 수 있는 향기보다 더 우월한 진리의 가치와 깨달음의 향기가 시공에 존재함과 그 근원의 존재가 누구인지 묻고 있는 것이다.

네 번째 질문은 “돌부리를 울리고 가늘게 흐르는 작은 시내는 굽이굽이 누구의 노래입니까.”이다. 이는 바다에서 증발하여 구름으로 흐르다 눈비가 되어 산야를 적시고 계곡에서 시냇물로 흘러 다시 바다로 가는 웅대한‘물의 순환계’중 한 토막 장면을 차입해온 것이다.

우리 가까이 시냇물소리를 통해 순환계를 설계하고 가동하게 한 존재가 누구인지 묻고 있는 것이다. 시는 다섯 번째 질문을 통해 지구의 자연풍광 중 절정으로 꼽히는‘저녁놀’의 존재를 등장 시켜 그 근원의 묻는다. 이 저녁놀이야 말로 인간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한 지구의 자전을 설계하고 가동시킨 절대자가 빚은 최상의 시(詩)임을 강조하고 있다.

시는 종반에 이르러 사물과 현상들을 향하던 질문의 대상을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그칠 줄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은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라는 마지막 질문으로 화자 자신에게 돌린다.

“타고 남은 재가 기름”으로 어떻게 변할 수 있는가? 재와 같은 소멸과 상실의 상황에서도 기름처럼 다시 탈 수 있는 생명력으로 자신을 태우고자 함이다.

그러나 밤을 지키는“약한 등불”임을 고백하므로 대자연의 질서와 법칙의 수여자 앞에 겸허히 머리 숙여야 함을 인정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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