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주 칼럼](92) 고구려 왕 이야기(7)
[장영주 칼럼](92) 고구려 왕 이야기(7)
  • 뉴스N제주
  • 승인 2023.07.03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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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주 한국해양아동문화연구소장
공무원대한민국최고기록(기네스북·400여권·종이전자오디오책 중복있음)
통일교육위원·남북교육교류위원회위원·민통제주협의회부회장·평통자문위원 지냄
교육학박사·명예문학박사·아동문학가·문학평론가·사진작가
장영주 시인
장영주 시인

며칠 후 중천왕이 심복들과 함께 기구로 사냥을 떠났다.

관나부인은 시녀 초화를 불렀다.

“사람 하나는 족히 들어갈 가죽 부대를 구해 오너라.”

시녀가 가죽 부대를 가져와 바치자 관나부인은 주위를 살피며 소곤거렸다.

“폐하께서 사냥에서 돌아오실 때쯤 내가 이 부대 안에 들어갈 테니 너는 주둥이를 끈으로 묶은 후에 궁인들을 시켜 중문으로 운반토록 해라.”

며칠이 지나 왕이 사냥을 마치고 돌아왔다. 신하들의 인사를 받고 내궁으로 들어가려는데 궁인들이 가죽 부대를 들고 중문으로 나오고 있었다.

“그 안에 든 것이 무엇이냐?”

“왕후 폐하의 명을 받고 가죽 부대를 바다에 버리러 가는 길입니다. 안에 든 게 뭔지는 소인들도 모릅니다.”

궁인들은 초화가 일러준 대로 대답했다.

왕의 목소리가 들리자 부대 안에 있던 관나부인은 신음을 냈다. 이를 듣고 왕은 가죽 부대 안을 확인하게 했다.

궁인들이 묶은 끈을 풀자 입에 재갈이 물린 관나부인의 모습이 드러났다. 재갈을 풀어 주자 관나부인은 숨을 헐떡이며 왕에게 말했다.

“왕후가 신첩을 가죽 부대에 집어넣더니 바다에 버리라고 했습니다. 곧 죽을 목숨이 천행으로 폐하께 구원을 받았습니다. 신첩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이곳에는 무서워서 하루도 머물 수 없습니다.”

관나부인의 말을 잠자코 듣고 있던 왕이 시녀 초화를 불러 물었다.

“소후의 말이 모두 사실이냐?”

“폐하, 사실이 아닙니다. 이 모든 것은 소후가 꾸민 일입니다. 왕후 폐하를 무고해서 쫓아내려는 수작입니다.”

이에 중천왕은 크게 노하여 관나부인을 꾸짖었다.

“감히 왕후를 무고하고도 살기를 바랐단 말이냐? 그렇게 바다로 들어가는 게 소원이라면 내 당장 들어주마!”

중천왕은 호위병에게 관나부인을 다시 부대에 집어넣어 서해에 던지라고 명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초화의 얼굴에 웃음이 돌았다. 초화는 같이 궁에 들어온 언니 ‘소화’가 관나부인의 질투로 누명을 쓰고 죽임을 당했던 지난날을 왕에게 고했다.

초화의 얘기를 들은 왕은 소화의 아름다운 모습을 떠올리며 제사를 지내 혼령을 위로하게 했다.

다시 선보이는 관나부인 이야기

관나부 부장 척발이 딸을 국왕에게 바쳤다. 딸의 얼굴은 백옥이오, 눈은 옹달샘이며, 머리는 아홉 자나 길게 늘어져 있어 그 머리를 보는 순간 모든 이는 가슴이 설레고 콩콩거리는 맘을 지체할 수 없는 매력을 지닌 여인이었다.

중천왕은 이런 척발의 딸을 총애하매, 사람들은 관나부인이라 불렀다. 관나에서 온 여인이란 말이 들어 있는 이름이었다.

왕은 관나를 소후로 삼으려 왕후의 뜻을 살짝 떠보았다. “위나라 위군이 머리카락이 긴 여인을 구한다고 하며 상금 천 냥을 걸었다 합니다. 혹여 우리나라에 머리가 긴 여인이 있으면 위군에게 보내 상금도 타고 위나라와 화친도 하고 그러면 좋지 않겠사옵니까?” 왕은 왕후의 심정을 눈치챘지만, 말을 하지 않았다.

이런 일련의 기우를 눈치챈 관나부인이 자기에게 해가 가해질까 두려워 왕이 사냥을 떠나고 돌아오는 길을 호시탐탐 노린다.

왕이 돌아오는 걸 눈치챈 관나는 가죽 주머니를 가지고 왕을 맞이하며 울면서 “왕후가 소첩을 이곳에 담아 바다에 던지려고 합니다. 대왕께서 은혜를 베풀어 소첩의 미천한 목숨을 살려주시어 집으로 돌아가게 해주신다면 어찌 감히 다시 측근에서 대왕을 모시기를 바랍니까?” 이 말이 거짓이었다는 것을 왕이 눈치채니 관나부인은 죽어라 도망치다가 잡혀 가죽 부대에 담겨 바다에 수장하게 된다. 한마디로 제 꾀에 제가 넘어간 셈이다(팔려가는 당나귀와 같은 이치이다).

관나부인의 이름은 전해지지 않으며, 출신 부의 이름을 앞에 붙여 편의적으로 부르고 있다. 고구려 5부의 하나인 관나부 출신이며, 부모나 형제 관계는 알 수 없다. 고구려 제12대 중천왕의 총애를 받아 소후의 물망에 올랐으나 거짓말을 했다고 하여 가죽 부대에 넣어져 바다에 수장되었다.

태어난 시기는 알 수 없고 251년(중천왕 4년)에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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