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윤봉택 시인, 세 번째 시집 '끝나지 않은 이야기' 출간
[신간]윤봉택 시인, 세 번째 시집 '끝나지 않은 이야기' 출간
  • 현달환 기자
  • 승인 2021.06.05 12: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윤봉택 시인
윤봉택 시인

서귀포시 강정동에서 태어나 문학 석사 박사 과정까지 수료한 서귀포예총 회장인 윤봉택 시인(64·사진)이 세 번째 시집 '끝나지 않는 이야기'를 출간했다.

등단한지 서른 해를 넘기며 지금에야 세 번째 시집을 올린다는 윤봉택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이번에 실린 시들은 2000년 제2시집 이후 지금까지 발표한 작품 가운데 일부로서 강정해군기지' 관련 시를 포함시켰다'며 "사실은 2005년 제3시집을 상재하려 했으나, 그 기회를 넘겨 버렸고, 2006년 서귀포시가 자치시에서 행정시로 강등되면서, 김태환 도정은 기다렸다는 듯이 특별자치도지사 권한으로 2007년부터 강정마을 '중덕' 해안과 '구럼비 옥답에 '해군기지 건설'을 위해 총력을 다했다"고 토로했다.

윤 시인은 "유년 시절부터 어머님을 따라 '큰구럼비'에 있는 논에 나록·보리 농사 · 논골 물매기 등을 하러 숱하게 구럼비동산'을 넘어 다녔다."며 "제주도 내에서는 유일하게 쌀농사가 잘되어 제일 강정'이라는 애칭과 함께 대문없이 살아온 700여 가구 마을 주민들은, 이처럼 몰란결에 해군기지 건설이 추진되자 일대 혼란에 빠져들었다."고 설명했다.

특히 그는 "그때까지만 하여도 강정마을은 여느 마을과는 달리 그 흔한 다세대 주택 하나 없는, 개발보다는 마을의 자존을 지켜내고자 노력하는 인심 좋기로 소문난 농촌 해변 마을이었다. 나는 이 마을에서 8대의 삶을 지키왔다."며 "헌데 해군기지가 국책사업이라는 미명 아래 행정 관련 기관에서는 지역 주민의 외침을 외면하였고, 이러한환경으로 유발된 찬반 갈등은, 마을 전체를 4·3보다 더깊은 격랑의 수렁으로 빠져들게 했다."고 회고했다.

이어 "그 시기 공직말단에 있던 나로서는 무엇 하나 졸바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절차가 무시된 행위는 반드시 역사의 심판을 받는다. 이 또한 역사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며 "서귀포시정은 각종 업무를 집행하는 과정에서 법률에 근거하여 처리해야 하는데, 강정 해군기지 건설 과정에서, 주민에 대하여는 이러한 절차를 지키기보다 일방통행이 우선이었다."고 술회했다.

또한 "당시 해군기지 건설과 관련하여 홍보와 주민 회유가 급선무였던 시정에서는 나에게 팀장을 제안했지만, 이를 정중하게 거절한 결과, 나에 대한 후폭풍은 참담그 자체였다"며 "그나마 이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동료들의 따스한 배려가 있었기 때문이고, 석가세존의 가르침과 문학이 있었기에 암울했던 격랑을 넘을 수가 있었다. 이 '끝나지 않은 이야기' 연작은 찬반을 떠나강정 해군기지 건설을 힘없이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자화상"이라고 설명했다.

윤봉택 시인, 세 번째 시집 '끝나지 않은 이야기'  표지
윤봉택 시인, 세 번째 시집 '끝나지 않은 이야기' 표지

윤 시인은 "일찍이 청록파 시인 박두진 선생은 '시를 쓰는 사람 중에는 시가 무엇인지를 잘 모르고 쓰는 사람과 시가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쓰는 사람과, 시가 무엇이며 어떤 것인가를 초월하는 차원에서 쓰는 사람의 세 부류가 있다.'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또한 "김광협 선생께서는 1991년 한라일보 신춘문에 등단한 나를 처음으로 대하고 운봉택 시인이라 호칭하면서 '시인은 늘 깨어 있어야 한다.'고 했다"며 "특히, 시집을 엮을 때는 발표했던 작품만을 싣도록 하되 발표 지면을 밝히라고 주문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윤 시인은 "시인은 등단 후 5년마다 시집을 상재하라며, 첫 시집의 서문은 직접 쓰신다고 하셨는데, 93년 53세로 작고하시면서 약속은 다음생으로 미뤄지게 됐다"고 전하며 "시인에도 5년 단위라는 의무방어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고 토로했다.

윤봉택 시인은 두 번째 시집 상재 이후 지금까지 너무 간새했음을 실토했다.

총 4부로 나뉜 이번 시집 '끝나지 않은 이야기'에는 제1부 '그 섬에 기대어', 제2부 '무천', 제3부 '우리 촛불은', 제4부 '끝나지 않은 이야기'로 구성됐으며 총 49편의 작품이 수록됐다.

문학박사인 유승우 시인은 해설에서 "윤봉택 시인이 섬 출신이라 바다 위에 떠 있는 섬이 곧 시인의 존재의 원형이며, 이 섬과의 대화가 곧 그의 신화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바다에는 끊임없는 물살이 일어나고, 그 물살이 그의 영혼을 새롭게 하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윤봉택 시인은 언제나 바람과 동행하며 대화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 바람이야말로 보이진 않으나 분명히 있는 인간의 영혼을 상징하는 이미지"라며 "결국 그의 시 세계는 눈에 보이지는 않으나 분명히 있는 인간존재에 대한 향수의 형상화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술회했다.

유 박사는 "우주 구성의 3요소를 '천지인天地人'이라고 한다. 여기서 천지는 자연이고 인은 '인간'이다. 실존철학에서 천지 곧 자연은 존재이고, 인간은 '없음'이라고 한다. 인간존재는 왜 없음'인가. 인간人間의 우리말은 사람 사이"라며 "혼자서는 사이가 될 수 없으므로 인人자 하나만으로는 사람이란 개체는 있지만, 인간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사람은 인간이 되기 위한 개체일 뿐이다. 아무리 힘이 센 사람도 저 혼자로는 인간이 될 수 없다. "고 설명했다.

특히 "인간이 되는 다섯 가지 윤리를 오륜五倫이라고 한다. 오륜이란 부모와 자녀 사이의 친親, 임금과 신하 사이의 의義, 남자와 여자 사이의 별 別, 어른과 어린이 사이의 서序, 벗과 벗 사이의 신信을 이름이다. 이 오륜 중 임금과 신하 사이가 나라와 백성 사이로 바뀌었을 뿐 나머지는 다 그대로이다. 이 오륜은 인위의 사이가 아니라 하늘이 엮어준 반연絆緣이다. 이를 가리켜 종적紀的 관계라고 한다. 오직 벗과 벗 사이만이 인위의 사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벗과 벗 사이는 믿음(信-人+言), 즉 사람의 말을 윤리로 내세운 것"이라며 "이 말의 시각적 표현이 글(文)이며 인간이 되는 필수 조건"이라고 강조했다.

유 박사는 "사람은(人) 곧 글(文)이다. 곧 인문은 한 몸이다. 이 인문의 주가 곧 시인이다. 신화시대에는 시인을 임금이라 했고, 선지자 혹은 예언자라 했다. 우리 민족의 시조 단군 임금도 하늘의 신 환웅과 땅의 신 웅녀가 만나서 낳은 임금 곧 시인이었다. 하늘과 땅의 만남이 자연이며, 이 자연의 숨소리를 꽃으로 피워내는 것이 시인"이라며 "이제 제주도의 숨소리를 꽃으로 피워내고 있는 상민相民 윤봉택 시인의 호가 상민인 것은 인문의 주인 민초들이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태초에는 하늘밖에 없었는데,그 하늘은 형상이 없는 빈 공간이었고, 이 빈 사이에 땅이 있으면서 천지라는 세계가 존재하게 되었다."며 "이 천지가 존재의 원형인 무위자연이며, 사람의 말씀이 인위 문화를 이루어 인생이 성립됐다. 여기서 윤봉택 시인의 생령이 자연과 '끝나지 않은 이야기'를 계속하는 내용이 윤봉택 시인의 시의 세계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토로했다.

◆윤봉택 시인 프로필
1956년 서귀포시 강정마을 출생. 강정초등등학교, 중문중학교, 해인중학교, 경남 거창고등학교, 방송고·한국방송통신대학교, 전남대학교 대학원 문학 석사·박사과정(전공문화재학) 수료, 1991년 한라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동년 문예사조> 신인상 수상.

시집 『농부에게도 그리움이 있다』, 『이름없는 풀꽃이 어디 있으랴』, 『끝나지 않은이야기』 출간. 2012년 대한민국문화유산상대통령상 수상. 문섬 · 한민족방언시학회 ·제주불교문학회 · 솔동산문학회 동인. 서귀포문인협회 · 제주문인협회 · 한국문인협회 ·국제PEN클럽 한국본부 회원, 서귀포문인협회 회장 역임, 서귀포예총 회장, 사)탐라문화유산보존회 이사장, 서귀포시 문화도시사업추진협의체 위원장, 사)서귀포불교문화원원장, 서귀포문학관 건립추진위원회 위원장, ‘서귀포의 미래를 생각하는 시민 모임(서미모)' 공동대표
E-mail: seogwipo@hanmail.net

값 10000원, 다층 펴냄.

◆작품 감상

끝나지 않은 이야기 · 2

-. 윤봉택

바람이 길을 묻는다.
바다가 그리운 날,
그러나
그는
오지 않았다.

『태백문학』 17호, 2009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