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산시인, "시의 꼴이란 무엇인가?"
이어산시인, "시의 꼴이란 무엇인가?"
  • 뉴스N제주
  • 승인 2020.02.21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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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산칼럼(74)토요 詩 창작 강좌
이어산 시인, 평론가

■ 토요 시 창작 강좌(74)

 □ 시의 꼴과 이미지

봄이 오는데 온 세상이 얼어가고...(사진=이상태리우스)
봄이 오는데 온 세상이 얼어가고...(사진=이상태리우스)

훌륭한 시인이 아무리 마음에 드는 시를 써 놓았더라도 시의 꼴을 갖추어야 비로소 제대로 된 시로 인정받을 수 있다. 시의 꼴이란 사람의 얼굴 같다.

미인을 판단 할 때 부분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한 눈에 미인임을 알아보는 것처럼 약간 난해한 시라도 한 번만 읽어봐도 좋은 시인지 허접한 시인지 대강은 짐작 된다.

속은 알 수 없지만 꼴이 되거나 안 된 시는 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눈에 들어온다. 시의 꼴이란 무엇인가?

제목과 첫 행이다.
제목과 첫 행이 시를 끌고 가는 머리라고 생각해야 한다. 제목이 너무 익숙하거나 진부하면 무조건 실패한다는 생각으로 시를 쓰기를 바란다. 그리고 첫 행에서 관심을 끌어야 한다. 대체적으로 시의 첫 행이 재미없으면 그 시의 반은 실패한 시다.

다음으로 중요한 꼴이 이미지(Image)다.
시를 읽었을 때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도록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미지가 시의 몸통이기에 그렇다.
시에서의 이미지를 가장 단순하게 말한다면 '말로 만들어진 그림'이다. 하나의 형용사든 은유나 직유, 또는 비유나 묘사적 어구로도 만들 수 있는데 이런 것들을 사용하여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여 어떤 영상을 떠올리게 하는 방법이다.

근대시의 핵심이 리듬에 있었다면 현대시의 핵심은 이미지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요즘은 이미지 중심에서 의미 중심의 시로 옮겨가고 있다지만 그렇다고 리듬이나 이미지의 중요성이 퇴색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시 자체가 안 되거나 시가 맛이 없어져 버리기 때문에 시를 쓰고자 하면 리듬과 이미지를 시에 넣는 연습을 반드시 해야 한다.

이렇게 제목과 이미지에서 첫 행, 이말 하는데 저 이미지가 떠오르도록 했다면 일단 성공한 시라고 볼 수 있다.

독자를 의식하지 않는 시인이 있다면 그 시는 발표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독자에게 읽혀지는 시를 쓰라고 강조하는 것이다. 사람이 외출 할 때 옷을 제대로 입고 헝클어진 머리를 단정하게 하고 밖으로 나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자기 혼자 즐기기 위해서 시를 쓴다면 일기장에 써놓고 혼자 보면 된다. 외출할 때 남을 의식하지 않고 속옷차림으로 나가거나 몇 날을 씻지 않았으면서도 자기 좋으면 그만이라고 우긴다면 정신이 온전치 못한 사람으로 취급 받을 것이다.

자기 관리를 잘하는 사람은 외출 할 때 화장을 정성들여 한다. 내가 나를 보기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보는 타인을 위해서다. 그러나 지나치게 화장을 하면 오히려 천박해 보이듯 시도 지나치게 꾸미면 천박해 진다. 요컨대 멋있게 제목을 붙이려고 하지 말라.

미리 시를 설명하지 않으면서 암시성을 갖도록 해야 한다. 제목에서는 약간만 시의 내용이 암시되도록 하거나 환기성(새로움), 몰입성(궁금증 유발), 대표성(시의 이미지)이 있어야 한다.

다음의 시를 한 편 감상하자.

   동백나무 화분 한 개를 집에 들였어요
   여물게 익은 꽃등에 불이 들어오면
   온 집안에 스며든 한기가 사라질 것 같아서
   그 즈음 너무 추었거든요 그런데 이상하지요
   동백을 볼 때마다 나쁜 피가 흐르는 첩년과
   함께 사는 기분이 들었어요 여시 같은 그것이
   그것이 내가 없을 때면 화분에서 걸어 나와
   궁뎅이를 살랑거리며 내 집 안방 문턱을
넘을 것 같은,
   속이 답답해졌어요 자꾸
   얼어버리라고 대문 옆에다 내다 놓았지요
   그녀가 운다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짐승처럼 우는 그녀
   우리 언니가 그랬어요
   동백이 얼어 죽어? 제일 추운 날 포르르 피어
   대문 앞에서 네 남편을 마중할 거야
   동백이 싫어요 나는
   남편 꼬여서 나간 첩년 같아서

      - 구수영, <동백꽃 외전> 전문

위 시도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 방법으로 썼다.
이런 작법을 비유적 이미지(Figurative Image)라고 한다. 직유나 은유, 제유, 환유 등 다양한 비유법이 있으며 시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서로 다른 사물을 병치, 비유함으로써 과학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진리를 통찰하게 하는 방법이다.

이들 이미지를 통합적으로 포괄하여 한 편의 시 속에 나타내기도 한다. 이렇게 표현된 두 가지 이상의 이미지군을 이미저(Imagery)라고 하는데, 이질적인 것, 모순되는 것들의 충돌을 통하여 긴장감과 참신한 이미지를 생산해 내는 방법이다.

   한려수도 지도에서 펼쳐지던
   고향 남해는 바다가 태반이란다
   해삼과 멍게와 성게는 소라 미역과
   하나의 강목이 아니라던 생물시간도
   물 빠진 바다 돌 밑으로 돌 위에 널리던
   남해에서 나고 크던 집이 있단다

   서로 보겠다 앞다투던 아이들도
   바닷가에서 야단법석이면
   그 요란함에 힘을 실어 멍게가 자라는지
   아이들 조막손에 잡힌 소라까지
   향도 요란스럽게 맛으로 배던 남해란다

   어리던 내가 소녀로 자라난 동네는
   해안선처럼 둥글던 뱃고동 소리로 나이를 드는지
   온 마을에 박자를 닻줄로 맺던 아버지들이
   마디마디 굵은 뼈로 맺힌 바다는
   남해가 거반인 그리움이란다

   지도에 없는 향수로 시를 쓰자고
   지도를 펼치기도 전에 덮쳐오는
   성게가시 투성이로 박힌 말은
   남해바다에서 저 혼자 밀릴 미역에서
   분이 피는

   곽인숙, <동심원 연가>전문

위 시는 어떤 이미지(Symbolic Image)가 떠오르도록 썼는데 동심을 이야기 하면서 남해에서 나고 자라는 동안의 이야기를 간접화법을 빌어서 표현했다. 이렇게 간접화법에서 떠오르는 이미지가 중요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넓은 의미로 볼 때 모든 언어는 상징이다. 해, 달, 별, 흙 등 정직성의 상징이 있고 '피'가 정열을 상징한다거나 '어머니'는 모성애, 자식사랑 등 복합 상징이 되기도 하지만 시인의 개성이나 취향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미국의 시인 프로스트(R. Frost)는 "표면적 이미지 외에 이면에 감춰진 이미지가 진실을 말하는 것"이라고 했다.

 - 이어산, <생명시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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