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산, "시는 손으로 쓰는 것이 아닌 눈으로 쓰는 것"
이어산, "시는 손으로 쓰는 것이 아닌 눈으로 쓰는 것"
  • 뉴스N제주
  • 승인 2020.04.24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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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산 칼럼]토요 시 창작 강좌(83)
이어산 시인, 평론가

■토요 시 창작 강좌(83)

 □ 관물론(觀物論)과 시 쓰기

이어산 시인, 평론가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에는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구절이 나온다.

책의 앞뒤 문맥을 보면 가장 중요한 것은 어딘가에 숨어 있다는 것이고 그것은 마음의 눈으로 보아야 한다는 말이다.

동양의 시학에 나오는 ‘관물론(觀物論)’과 비슷한 개념인데 껍질보다는 본질을 꿰뚫어 보라는 말이다.

좀 더 설명을 붙이자면 “사물을 어떻게 볼 것이며, 무엇을 읽을 것인가?”가 그 핵심이다. 주자학에서도 관물론을 다루는데 “낱낱의 사물에 대한 도리를 철저히 규명하는 일”이라고 했다.

“관물론자는 반란자”라는 말이 있다. 사물이나 세상을 나타난 대로 읽지 않고, 의미로 읽고, 감춰진 것을 찾아내어 읽는 사람이기에 그렇게 불린다.

필자의 강의를 통해서 누누이 설명한 “시인의 자세”와 일맥상통 한다.

“시인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것에서도 보물 같은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뜻이므로 시인은 관물론에서 한 발자국도 물러서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

연암 박지원 선생이 말한 “잣나무를 그리려거든 잣나무의 형상에 얽매지지 말라”는 말도 그것에서 의미를 읽고 그 의미를 표현하라는 말일 것이다.

청나라 시인 심덕잠(沈德潛)선생도 비슷한 말을 했는데 “대나무를 그리려는 사람은 반드시 완성된 대나무의 모습을 생각하고 그려라”고 했다.

이 말도 그리는 이의 사상(思想)을 담으라는 말이다.
시를 쓸 때에도 반드시 참고할 내용이다.

관물론적 현대시 창작법에는 ⓵“감정을 직접 노출시키면 상상력을 마비시킨다” ⓶“역동성을 키워야 은유와 상징이 되살아난다”는 말로 확장된다.

이것을 문법적으로 말하자면 형용사를 멀리하고 동사를 가까이 하라는 말이다. 형용사(形容詞)란 ‘뒤에 오는 말을 치장하는 말’이고 동사(動詞)는 사람이나 사물의 움직임을 표현하는 역동적 어휘다.

다시 설명하자면 형용사는 사물의 성질, 감각, 색깔, 시간, 수량 등을 정지 상태로 표현하는 것이다.

반면 동사는 우리가 사는 얘기, 경험과 실질의 세계, 자고, 먹고, 누고, 낳고, 좋아하고, 미워하는 사람살이다. 그래서 시인은 형용사를 미워하고 동사를 사랑해야 한다.

"시는 손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쓰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사물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남들과는 다르게 보거나 정확하게 보는 '눈'을 가져야 한다는 말인데 더 중요한 사실은 나의 눈으로 사물을 보는 것이 아니라 시에 등장하는 화자나 사물의 눈(입장)으로 볼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직접 하는 사람이 아니라 시에 등장하는 화자나 사물을 데려와서 대신 말하게 하는 사람"이라는 점을 특별히 기억해야 한다.

이것은 '시적인 것'을 발견해 내는 눈을 갖는다는 의미와 같은 말이다.

또한 시는 '말하기(telling)'가 아니다. '보여주기(showing)'다.

'말하기'는 현상을 설명하거나 푸념, 넋두리, 또는 추상적인 것이라면 '보여주기'는 언어로 집을 지어서 '이런 형태의 집'이라고 명징하게 독자 앞에 내어놓는 일이다.

또한 현대시에서 무시하면 안 되는 것이 문장을 맺는 종결의미다. 종결의미는 시의 리듬에 큰 영향을 미친다.

“~~다”로 끝나는 것은 의미를 단정하는 것이 되므로 피해야할 작법이다. 또한 ~해라, ~하게, ~하오, ~노라, ~도다, ~지어다 등도 시에서 쓰면 안 된다.

시의 연이나 마지막 부분에는 될 수 있으면 종결의미를 쓰지 말자는 말이다. 시는 여운을 남기는 것이 독자의 상상 공간을 두는 것이기에 그렇다.

~는데, ~지만, ~처럼, ~같이, ~로, ~는 등등을 연과 시의 마지막에 넣으면 시의 여백이 생긴다.

박준희 시인의 디카시 '굳은 의지'


사지가 잘려도
죽을힘 다해 뻗어가리

박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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