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일 2024-03-29 17:02 (금)
>
이어산, "지역말을 가꾸고 보존하는 것... 시인의 의무"
이어산, "지역말을 가꾸고 보존하는 것... 시인의 의무"
  • 뉴스N제주
  • 승인 2020.04.10 22:34
  • 댓글 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어산 칼럼]토요 시 창작 강좌(81)
이어산 시인, 평론가

■토요 시 창작강좌 (81)

□ 시인은 지역말의 전사(戰士)

이어산 시인
이어산 시인

'사투리'나 '방언' 혹은 '지방 말'이라는 말은 '표준어와는 다른, 어떤 지역이나 지방에서만 쓰이는 특유한 언어'라는 뜻이다.

이 말을 시를 쓰는 사람들도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써왔다. 그런데 그게 무슨 문제란 말인가? 문제가 있다.

'지방'이란 수도(首都) 이외의 지역이라는 말이지만 원래의 의미는 '변방(邊方)'을 가리킨다. 즉, 중앙에서 멀리 떨어진 나라의 경계가 되는 변두리지역이란 말이다.

이 말에는 중앙에 사는 사람들 보다는 격이 떨어진 사람이 사는 곳이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으므로 지역을 낮춰 부르는 말이다.

그러므로 글을 다루는 시인은 '지방(地方)'이나 사투리란 말 대신 '지역말'이라 한다.

신라나 백제가 지금까지 나라의 전통성을 유지해 왔다면 그 지역말인 경상도 말이나 전라도 말, 혹은 충청도 말이 표준어가 되었을 것이다.

결국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표준어란 시대와 정치상황에서 결정된 가변성이 있는 '서울 지역말'이다.

강원도에서는 강원도 말이 표준말이고 전라도에선 전라도 말이 표준말이다.

자기 지역 말이 그 지역의 표준말이라는 생각을 우리가 갖는다면 우리의 지역 말은 크게 발전할 것이다.

다시 말하거니와 시를 쓰는 사람은 자기가 사는 지역말이 "세상의 중심말"이라는 생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래야 그 지역말의 특징을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 있고 이를 계승 발전시키는 일이 자기 지역을 사랑하는 일과도 연결 되므로 지역말을 문제의식 없이 스스로 낮춘말의 관습에 따를 필요가 없다.

"우리의 모국어를 시인들이 가꾸어야 한다"는 말에는 "우리의 지역말을 시인이 갈고 닦아야 한다"는 뜻으로도 확장된다.

말글이 시의 중심이므로 지역말을 시인들이 가꾸고 보존하는 일은 시인들의 의무라고 생각하자.

시인들이 외면하는 지역말은 언젠가는 없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시를 쓸 때 '표준말'만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 그 표준말이라는 것도 결국 '서울 지역말'이다.

요즘 전국의 어느 식당엘 가나 반찬이 비슷하게 나온다. 1980년대부터 음식문화의 특색을 무시한 관 주도의 '표준식단제'가 지역음식문화의 특색을 없애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요즘은 전라도의 식당엘 가도, 경상도 식당에서도 나오는 반찬이 비슷해졌다. 예부터 내려오던 그 지역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음식문화의 특색이 없어져 간다.

지역 음식의 다양함을 유지하고 그 전통을 발굴 장려해야만 지역마다의 음식문화가 꽃필 수 있다.

시인도 지역말을 지키고 가꾸는 일에 관심을 쏟아야 한다.

지역말을 사용하면 사투리를 쓴다고 웃을 것이 아니라 그 중요성에 주목하고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는 자세는 지역차별을 없애는 일이고 다양하고 특색 있는 말과 문화를 꽃피우는 일이다.

우리 고장에서는
오빠를
'오라베'라 했다.
그 무뚝뚝하고 왁살스러운 악센트로
오라베 부르면
나는
앞이 칵 막히도록 좋았다.

나는 머루처럼 투명(透明)한
밤하늘을 사랑했다.
그리고 오디가 샛까만
뽕나무를 사랑했다.
혹은 울타리 섶에 피는
이슬마꽃 같은 것을…...
그런 것은
나무나 하늘이나 꽃이기보다
내 고장의 그 사투리라 싶었다.
참말로
경상도 사투리에는
약간 풀냄새가 난다.
약간 이슬냄새가 난다.
그리고 입안이 마르는
황토(黃土)흙 타는 냄새가 난다.

- 박목월, <경상도 사투리>전문

위 시는 경상도 경주의 입말인 "오라베"를 모티프로 한 목월의 시다. '오라베' 한 마디에 그 지역의 흙냄새와 바람 냄새, 사람냄새가 섞여있다.

우리가 대부분 그랬듯이 목월 선생도 자신의 고향 경상도 지역말을 '사투리'라고 표현한 것은 좀 아쉽지만 지역의 특색 있는 말 한 단어로도 이렇듯 좋은 시를 쓸 수 있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

소개하는 김에 제주어 시도 한 편 보자.

야자잎이 흩날리는
용두암 물결 위에
용이 되고 싶은 백마 한 마리
굴곡의 삶을 거느리고
탐라바당 와랑와랑 달려왔수다게

보말은 바위틈에 쉬엉 갑서
깅이들도 거품밥을 지어설랑
구젱기닥살에 고봉으로 올려
경해도 지꺼지게 먹읍서양

석벽에 동백꽃 구름 지고
앞바당 별이 떠오르면
젖내음 진동하는 바위둥지
순응의 하룻밤 하게 마씸

한두기 붉은 수평선에 파음 띄우고
광치기 해변으로 도음을 튕겨 봅서

울림 있는 혈자리마다
요망지게 채워지쿠다

- 장한라, <용두탐라바당>전문

위 시는 제주어로 시를 썼는데 제주말의 뜻을 서울말과 대조하면서 읽어보기 바란다.

*와랑와랑 : 힘차게 달리는 모양
*깅이 : 게
*구쟁기닥살 : 소라껍데기
*경해도 지꺼지게 먹읍서양 : 그래도 기분 좋게 드세요.
*앞바당 : 앞바다
*요망지게 : 야무지게

위 시에 나오는 제주의 '용두암'은 원래 '백마바위'로 불렀었다. 이 내용을 바탕으로 쓴 시다.

현재 제주어는 2011년 유네스코로부터 ‘소멸위기 언어’ 5단계 중 없어지기 직전의 4단계에 해당하는 ‘아주 심각한 위기에 처한 언어’로 지정됐다.

어렵다고 외면한다면 저 특색 있고 아름다운 말은 우리에게서 영영 잊힐 것이다.

마찬가지로 시인이라면 자기 지역의 특색 있는 말로 시를 써보는 것이 자기 지역을 사랑하는 일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자신이 태어난 곳의 지역말이 그 지역의 표준어다.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