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CEO 송주온 칼럼](13)나는 99번 긍정한다 ... "송사장, 미스코리아출신이라며?"
[행복한 CEO 송주온 칼럼](13)나는 99번 긍정한다 ... "송사장, 미스코리아출신이라며?"
  • 현달환 기자
  • 승인 2023.09.02 19: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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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장이 만난 시대의 경제인
행복한 CEO송주온 성공 이야기
끊임없이 긍정하고,또 긍정하라
송주온 BT&I그룹 대표
송주온 BT&I그룹 대표

'테스'형 ​소크라테스는 말했다.

"음식에 가장 좋은 양념은 공복(허기)이고, 마실 것에 가장 좋은 음료는 갈증이다.“

인간이란 원래 만족을 시켜주면 시켜줄수록 더 큰 만족을 찾기 마련이다. 권력은 더 큰 권력을, 부자는 더 큰 부자를, 미인은 더 잘 예쁘게 보일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소크라테스의 말대로 불평불만을 잠재울 수 있는 것은 비움이다. 배고프면 반찬 타령이 있을 수 없다.

모든 일들의 시작은 비움에서 시작해야만 집중하고 열정을 갖고 성공하려고 최선을 다한다.

송주온 대표는 어떡하면 아버지의 시야에서 벗어날까 고민하면서 탈출할 수 있는 방안으로 미인대회까지 생각하는 것을 보고 지금 돌이켜보면 드라마를 쓴 작가처럼 다 계획이 있는 구성을 한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다.

물론 지금 결과로는 좋게 잘 되었지만 송대표의 말대로 미스코리아 진이 됐다면 지금 사업을 못했을 것이라 생각하니 참 다행이지 싶다.

이처럼 세상을 살다보면 전혀 뜻하지 않은 일들이 벌어진다. 이런 경험이 결국 자기 사업으로 연결될 수도 있고 그래서 인생, 살만하다고 하는 것이다.

최근 송대표의 행보를 보면 아프리카 등 외국에서 봉사활동도 즐겁게 하는 모습이 눈길을 끈다. 그냥 보여주기식의 봉사가 아닌 진정으로 자신도 즐기면서 봉사하는 모습에 저절로 전염이 되어 즐거움을 준다.

그래서, 필자는 송대표가 미스코리아 진이 됐더라도 또다른 봉사를 통해 사회에 많은 역할을 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것은 어느 한가지 일을 하는 것을 보면 다른 일도 더 잘 할 것이다라는 믿음 때문이다.

​"무엇이 가장 행복한 인생을 만드는가?"
그 답이 이 안에 있다.
비움과 갈증을 느껴라
중꺾마(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

행복한 성공을 위한 43개의 멘토링. 앞으로 계속 이어질 예정이다. 

앞으로 매주 만나게 될 '행복한 CEO' 송주온(경애) 대표이사의 스토리를 통해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비움과 갈증을 통해 새로게 하나씩 채워가는 사람들이 많이 나오기를 기원하면서 많은 필독과 응원바랍니다 [편집자 주]

송주온 대표(사진=송주온 대표)
송주온 대표(사진=송주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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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사장, 미스코리아출신이라며?"

아무도 자신의 인생을 대신 살아주지 않는다. '내 인생은 나의 것'이라는 노래도 있듯이 내 인생은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나를 돕는 것은 오직 나뿐이다.

이기적인 존재로서의 '나'가 아니라 독립적인 '나'로서 스스로부터 자신을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특히 여성으로서의 '나'는 스스로의 삶을 지켜야 한다.

과거만 해도 많은 여성이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이끌기보다 부모에 의해, 남편에 의해, 혹은 자식에 의해 수동적으로 살았다.

여전히 가부장적인 구습이 남아 있고, 남녀차별이 존재하는 사회이지만, 얼마든지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갈 수 있다.

내가 이민 갔던 미국에서 혈혈단신으로 한국으로 오게 된 것도 결국 나를 찾고, 나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20년이 넘게 한국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지 못했던 결정적인 사건이 있었다.

회사 직원들은 물론 기자들과 인터뷰 때도 말하지 않았던 이 사건은 가장 가까운 남편에게 조차 꺼낸 적이 없었다.

나의 아버지는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굉장히 보수적인 분이다. 내가 어릴 때부터 "여자는 몸에 흉터가 있으면 안 된다"고 놀이터에도 데려가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그네는 물론 어떤 놀이기구도 탄 적이 없다. 당연히 운동도 못하게 했으니 운동신경도 둔해져 수영이며 스키등의 운동조차 하는 게 없다. 사람들은 내가 무엇이든 잘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나는 어릴 때부터 내가 마음먹은 일은 반드시 해내고야 마는 성격이며, 옳다고 여기는 일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런 나를 아버지는 못마땅하게 여기셨던 모양이다.

그래서 온실의 화초처럼 잘 자라게 해서 결혼을 시키는 것이 아버지의 최대 목표였다. 어릴 때부터 집안끼리 교류가 있는 집과 정혼을 한 것이다.

한국으로 대학가는 것도 반대했는데, 불쑥 교환학생으로 가지 않나. 미국으로 돌아와서는 피자. 샌드위치 가게를 하지 않나, 내가 하는 일마다 아버지의 심기를 건드리게 된 것이다.

피자가게를 차렸다고 하면 다른 집에서는 대단한 일 했다고 칭찬과 격려가 쏟아졌을 테지만 우리집은 달랐다. 집안 망신시켰다고 가게 와서 난리를 치기도 했다.

내가 그럴수록 아버지는 결혼을 서둘렀던 것이다. 상대방의 집 역시 굉장히 보수적인 집안이었는데, 요즘 말로 로열패밀리 정도 되었다.

그러나 당사자인 내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내 인생을 내가 원치 않는 결혼으로 저당 잡히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결혼하지 않을 수 있을까 며칠간을 고민했다. 파혼을 당하기 위해 상대방 남자를 만나 소위 말해 날라리 같은 행동을 해보기도 했지만 까딱도 하지 않았다.

그때 내 눈에 들어온 해결 방법 하나가 바로 미스워싱턴 선발대회였다. 미스코리아 지역 예선인 미스워싱턴 선발로 만일 '진'이 되면 한국행 티켓을 약속받는 거였다.

내 의도는 만일 진이 되면 뉴스거리가 되니 집안 망신이라며 파혼하게 되는 것이었다. 더군다나 당시에는 수영복 심사가 있었으니 아버지는 팬티 바람으로 집안 망신시켰다고 하실 게 예상되었다.

아버지는 평상시 미인대회를 보고 "저런! 망신이 뭐람! 저걸 집안에서 가만 두나?"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어 더욱 밀어붙이기로 결심한 것이었다.

사실 나조차도 미인대회를 그다지 탐탁지 않게 여겨왔다. 사람의 아름다움이 외형으로만 판단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참가를 결정하게 되었고, 아무도 모르게 신청서를 냈다.

참 순진했던 것인지, 아니면 지나치게 자신만만했던지 아무런 준비조차 하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냥 무작정 참가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는데, 그 당시엔 아무 생각이 없었다.

오로지 결혼을 깨야 한다는 생각만 가득했던 터라 뭘 준비해야 하는지 몰랐다. 사실 자신감도 넘쳤던 때라 집에서 혼자 화장을 하고 헐렁한 긴 드레스를 입고 나갔다. 다른 참가자들과 달리 응원군도 없이 혼자서 덩그러니 참가했던 것이다.

한번 마음먹으면 늘 자신만만해지는 성격 탓에 미스워싱턴 진이 될 것이라 기대를 했다. 그런데 결과는 '미스워싱턴 선'이었다. 당시만 해도 '진'에게만 한국행 티켓이 나왔다.

그 다음해부턴가 진과 선이 함께 갈수 있었던 것이다. 진이 아닌 선이 되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기껏 참가한 대회에서 목적을 이룰 수 없게 되어서도 그랬고, 자존심도 상했다. 그래서 눈물범벅이 되었다.

우리 집에서는 내가 눈물을 펑펑 흘리며 찍은 사진이 게재된 신문을 며칠 후에 보고 알게 되었다. 그래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결혼을 더 빨리 서둘러 청첩장까지 찍게 이르렀던 것이다. 집안이 발칵 뒤집히긴 했지만 결혼은 취소되지 않았다.

미스워싱턴 진에 실패한 나는 한국으로 도망치듯 집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너무 민망하기도 해서 지금껏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송 사장 미스코리아 출신이라며?"

여행사를 차리고 한참 일을 하고 있을 때 고객이 물었다. 나는 설마 그 일을 알고 있나 깜짝 놀랐다. 당시 미스코리아들이 미인대회 출전을 위해 해외에 나가려면 본인과 행사를 도와주기 위한 스태프들이 같이 가야 했다.

스태프들도 워낙 미모의 여성들이 많이 있었는데, 대회 출전의 이유로 항공권 발권을 위해 우리 사무실을 방문했었다. 미스코리아와 친구들인 어여쁜 아가씨들까지 우리 사무실에 앉아 있었으니 사무실은 빛이 났을 것이다. 그게 소문이 나서 나도 미스코리아 출신이 아니냐는 얘기도 들었다.

그때 고객에게 전후사정을 말해주었는데, 속으로는 엄청 뜨끔했다. 워싱턴에서 온 교포라고만 해도 혹시 그때 날 본 건 아닐까 걱정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도 나오고 민망하기도 하다. 아무튼 미국 탈출기를 펼쳤던 계기가 된 사건, 이제야 밝히는 해프닝이다. 어쩌면 그때 진이 되지 않고 선이 된 덕분에 지금 여행사를 경영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비록 아버지 뜻을 거역했지만 그랬기에 지금의 내 인생이 있는 게 아닐까. 부모에 의해 원치 않는 결혼생활로 겉으로는 화려하고 부유하게 살았을지언정 행복을 느끼며 살지는 못했을 것이다.

또한 내게 끊임없이 긍정의 힘을 주는 남편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나를 소중히 여기고 존중한 덕분에 행복한 여성으로서 내 삶을 주도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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