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영 시문학 칼럼](90) '그대 가슴에 흐르는 詩' ... 방울의 생태
[김필영 시문학 칼럼](90) '그대 가슴에 흐르는 詩' ... 방울의 생태
  • 뉴스N제주
  • 승인 2024.04.06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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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PEN International 회원
계간 시산맥 / 편집위원, 시회 회장
계간 스토리문학 / 편집위원

김세영 시집, 하늘 거미집 『시작시인선』0214, 68쪽, 방울의 생태

방울의 생태

김세영

모체에서 떨어져 나올 때는

모두 방울의 모습이다

수만의 구름새떼들이 산란한

빗방울과 우박이 쏟아져 내려

대나무의 질 속을 빠져나가며

우우, 울음소리를 낸다

우박세례에 콩깍지가 터져 나온

수많은 붉은 콩들이, 쿵쿵

몽돌처럼 계곡을 굴러가며

심장의 물레방아를 돌린다

신생의 방울들은 옹골차다

허공 속으로 낱낱으로 떨어진 것들이라

두렵고 무서워서

한껏 웅크린 탓이다

어둠 속을 부리나케 달려가는

저 별똥별은

누구의 빈 몸통 속을 굴러 내릴

빛 방울인가?

새벽안개 속을 걸어가는 온몸에

대상포진 수포처럼 이슬방울이 돋는다

물방울 탑이 되어 서 있으니,

아침햇살에 수포가 터지면서

자작나무처럼 빛난다

이 순간 이대로

아침 햇빛으로 몸을 불사르면

구슬방울 몇 개쯤은

떨어져 나올지도 몰라.

김필영 시인
김필영 시인

 

『방울의 생태로 분열하는 모체이탈존재들에 대한 발견』

사물들의 분열하는 모습은 신비롭다. 사물마다 모체에서 분열할 때 그 형태는 사물의 수효만큼 다양하다. 번식의 본능이든, 순환과 소멸의 과정이든 사물이 분열하는 모습을 관찰하는 일은 참으로 흥미로운 일이다. 어떤 분열의 모습이 가장 멋진 분열의 모습일까? 분열하는 사물의 모습 중에 원형으로 분열하는 것들은 어떤 것들이 있는가? 방울의 형태로 분열하는 사물의 모습을 김세영 시인의 시를 통해 탐색해본다.

시의 첫 연은, “모체에서 떨어져 나올 때는/ 모두 방울의 모습이다.”라고, 모체에서 이탈하는 존재들의 모습을 ‘방울의 모습’으로 통칭하여 구체(球體)임을 각인시키고 있다. 화자는 맨 먼저 “수만의 구름새떼들이 산란한/ 빗방울과 우박이 쏟아져”내리는 대기권의 구름이 움직이는 장관을 연출한다.

그리하여 구름에서 분열하는 ‘빗방울과 우박’이라는 ‘방울’을 찾아낸다. 이는 사람이 사는 지구의 기본형질인 ‘물’의 응결체가 ‘방울’ 즉 구체임을 묘사한 것이자 ‘물의 순환계’ 중 대기공간의 구름에서 수분이 분열하기 위해 비와 우박이라는 형질로 분열하는 자연의 질서를 ‘방울’이라는 시각적 시어로 함축 은유하고 있다.

이어지는 행간에 “대나무의 질 속을 빠져나가며/ 우우, 울음소리를 낸다.”는 표현에는 둥근 빗방울과 우박을 맞는 대나무의 둥근 몸에서 나는 대금의 울음소리도 청각적으로 둥근 울림으로 감지되는 ‘방울’이라는 것을 느끼게 하는 행간으로서 입체적 내재율의 백미를 즐기게 한다.

3행에 등장하는 또 다른 방울들은 어떤 것들인가? “우박세례에 콩깍지가 터져 나온/ 수많은 붉은 콩들이, 쿵쿵/ 몽돌처럼 계곡을 굴러가며/ 심장의 물레방아를 돌린다.”는 표현에서 둥근 사물들이 역동하는 방울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콩깍지에서 터져 나오는 붉은 콩은 콩이라는 한 식물의 지칭이라기보다 모든 둥근 씨앗들의 통칭으로 읽힌다. 계곡을 굴러가는 몽돌의 이미지 역시 물의 순환과정에서 이미지가 변해가는 둥근 사물들의 통칭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이 분열하려는 움직임의 연속성은 심장의 박동과 같은 생명력이 있으며 물레방아처럼 역동적 순환을 통해 ‘방울의 모습’으로 새 생명을 낳는 일로 이어진다고 할 것이다.

물리적으로, 시각적으로, 청각적으로 인식되는 ‘방울의 모습들’의 공통이미지를 4연에서는 “허공 속으로 낱낱으로 떨어진 것들이라/ 두렵고 무서워서/ 한껏 웅크린”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 둥근 ‘방울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존재행위의 원인을 ‘두려움과 무서움’이라고 일러준다. 한 경전에서는 ‘지혜의 근본을 두려움’이라 했으며, 바른 존재들의 영적행동양식의 모든 요소에는‘웅크림’으로 은유된‘겸손’이 내재되어있음을 알려준다.

광활한 은하에 빛나는 모든 별들은 둥근 방울들이다. 우리가 먼 별들을 쳐다보며 그리움을 태우는 것도 필시 방울의 동일한 모습인 어머니의 난자에서 수태되어 양수 속에서 공통 요소로 존재하였기 때문이 아닐까?

시의 종반부는 “새벽안개 속을 걸어가는 온몸에/ 대상포진 수포처럼 이슬방울이 돋”아 물방울 탑이 된 화자를 만나게 된다. 안개 속 같은 세상을 해쳐가고 있는 오늘날 우리의 모습인 듯하다.

우리가 ‘방울의 모습’으로 존재하는 대자연에 순응하며 동료 인간과 더불어 ‘방울의 모습’으로 살아간다면 언젠가 우리가 부득이 몸을 불사르게 되는 날, 우리의 몸에서 정녕 “구슬방울 몇 개쯤은/ 떨어져 나올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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