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영 시문학 칼럼](89) '그대 가슴에 흐르는 詩' ... 도축사 수첩
[김필영 시문학 칼럼](89) '그대 가슴에 흐르는 詩' ... 도축사 수첩
  • 현달환 기자
  • 승인 2024.03.30 10: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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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PEN International 회원
계간 시산맥 / 편집위원, 시회 회장
계간 스토리문학 / 편집위원

박형권 시집, 『도축사 수첩』<시산맥 시인선 020> 43쪽. 도축사 수첩

도축사 수첩

- 박형권

트럭에 실릴 때 한 번 우시고

도축장에 도착했을 때 한 번 우시고

보정틀에 섰을 때 마지막으로 우셨다

그는 모든 소와 다른 점이 없었다

그가 보정틀 안에서 모로 누웠을 때

나는 안면의 중앙을 전용 총으로 타격했다

나는 모든 인간과 다른 점이 없었다 다만

뻗어버린 그가 예기치 못한 눈물을 주르르 흘렸을 때

나는 그가 그분인 건 칼에 베인 듯 알았다

무논의 써레질이 있게 하시고

쇠죽 끓이는 가마솥이 있게 하시고

오뉴월 땡볕 아래서의 일을 있게 하신

그분인 걸 알았다

그분이 쏟아 놓으신 눈물을 어떤 그릇에 담아야 할지 망연하였다

아주 작은 우주 하나가 소멸하셨다

저 먼 곳 더 크신 우주의 누군가가 대신 흘리는 눈물이었다

인간 세상에 내려 전생을 반추할 줄 모르는

나의 식욕을 위해

우주 밖의 더 크신 공백이 안타깝게 부어주는 숭늉 한 그릇이었다

애초에 소처럼 반추위를 가지지 못한 나는

위장을 더부룩하게 채우면 그만이고

이웃과 우주와 우주의 심오한 계획을 위해

한 번도 되새김질하지 않았다

그 이해할 수 없는 눈물은

흘려도 흘려도 담을 줄 모르는 나에게

오래전부터 그분이 보낸 서신이었다

이렇게 늦게 오시다니, 아니었다

다만 좀처럼 확인하지 않는 내 우편함에 이미 도착해 있었을 뿐이었다

이 행성의 이름으로 뜨겁게 견뎌낸 그분의 여름을

나는 해체하기 시작했다

그분은 단지 고깃덩이셨지만

우물우물 여물 씹는 소리로 온 세상에 평화를 전파하셨다

 

김필영 시인
김필영 시인

 

『저항 없는 극단의 눈물로 뿌리는 생의 수첩』

가축 중 유난히 큰 눈을 가진 소는 이별을 감지했을 때 눈물을 흘린다. 맹자의 곡속장에는 맹자가 제나라 신하에게 들은 일화를 제나라 선왕(齊宣王)에게 ‘도축장으로 가는 소’ 이야기를 들려주는 내용이 나온다.

이른 바 ‘도축장으로 가는 소가 눈물을 흘리는 것’을 왕이 불쌍히 여겨 풀어주라 하자 ‘눈에 보이는 것만 불쌍히 여기지 말고 눈에 보이지 않는 눈물(백성의 눈물)을 보라’는 인仁과 의義를 바탕으로 백성을 다스리라는 왕도정치를 설명한 것이었다. 박형권 시인이 ‘도축사의 눈’을 통해 바라본 ‘소의 눈물’은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가?

구제역으로 살처분장으로 떠나기 전, 새끼소에게 마지막 젖을 물리던 ‘어미 소’의 눈물을 기억한다. 생물학적으로 어떤 반응이든 서두에 소가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트럭에 실릴 때 한 번 우시고 / 도축장에 도착했을 때 한 번 우시고 / 보정틀에 섰을 때 마지막으로 우셨다”라고 묘사 되어 있다. 도축사가 도축작업에서 수행해야 하는 업무적 행위는 일상적 노동행위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으며 늘 반복되는 일이었음을 고백하고 있다.

그러나 평소와 다른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소가 살아있을 때 눈물을 흘린 것이 아니라, 보정틀 안의 누운 소의 안면의 중앙을 도축사의 전용 총으로 타격 받은 소가 숨이 멎은 후 동일인이었을 화자가 발견한 “예기치 못한 눈물”때문이다.

이미 도축사에겐 숨이 멎은 소였으나 화자에겐 다른 존재로 다가온 것이다. 실로 그 느낌은 “칼에 베인 듯” 다가온 찰나적 깨달음이다. 물론 화자는 소를 우상화 하려는 의도도 아니며, 병든 소를 살리려는 수의사의 연민과도 전혀 다른 ‘그 분이라는 한 존재의 눈물을 통해 뿌려지는 깨달음’이라 하겠다.

이제 화자는 그분으로 인해 있게 된 존재를 열거한다. “무논의 써레질이 있게 하시고, 쇠죽 끓이는 가마솥이 있게 하시고, 오뉴월 땡볕 아래서의 일을 있게 하신” 분이 그분인 것을 깨닫게 된다.

화자는 “무논의 써레질”을 통해 농부의 경작이 시작됨을 생각되었을 것이며, “쇠죽 끓이는 가마솥”을 떠올리므로 농부와 소의 동료감이 떠올랐을 것이며, “오뉴월 땡볕 아래서의 일”을 떠올림으로 노동의 의미를 생각게 되었을 것이다.

이는 도축사 앞에 쓰러진 소는 ‘한 마리 소’였으나, 화자 앞에 쓰러진 그분은 ‘작은 우주’였다. “아주 작은 우주 하나가 소멸”하며 흘린 눈물은 “저 먼 곳 더 크신 우주의 누군가가 대신 흘리는 눈물”이었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도축사로 돌아간 화자는 그분 앞에 지난 시간의 회한을 쏟아 놓는다. 그분은 도축을 해오는 동안 쏟아진 그분의 눈물은 “흘려도 흘려도 담을 줄”몰랐던 자신에게 “오래전부터 그분이 보낸 서신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이제“이 행성의 이름으로 뜨겁게 견뎌낸 그분의 여름을”도축사이자 화자는 해체하기 시작한다. 도축사로서는“단지 고깃덩이”를 해체하고 있었지만, 몸을 해체하며, 적은 소유도 불평 없이‘우물우물 여물 씹는 소리“를 듣게 된다. 되새김이 반복되었을 반추위를 들어내며, ‘노동의 숭고함’과‘기꺼운 복종’을 생각했을 것이다.

거친 이랑을 디딘 우직한 다리를 분리하며 ‘이탈 없는 걸음’을 생각했을 것이다. 가죽과 뼈를 분리하며 온 영혼을 송두리 째 바치고 ‘원망 없는 눈물로 온 세상에 평화를 전파’하신 그분을 생각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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