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가양자의 '인동꽃 아이'
[신간]가양자의 '인동꽃 아이'
  • 현달환 기자
  • 승인 2022.10.28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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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그림 강양자 / 170*210 / 220쪽 / 15,000원 / 979-11-6867-049-5 (03810) / 한그루 / 2022. 10. 20.
인동꽃 아이 표지
인동꽃 아이 표지

4‧3을 등에 진 할머니의 생애

글과 그림으로 다시 세상과 만나다

제주4‧3의 와중에 떨어지는 돌무더기에 등을 다쳐 평생 굽은 등으로 살아가는 한 할머니의 생애를 담은 그림 에세이다. 4‧3은 할머니에게 몸의 장애를 남겼을 뿐 아니라 평화롭던 유년을 앗아갔으며, 평생 고통과 고립 속에 살게 했다. 인동꽃을 팔아 5환을 번 것이 유일한 경제생활이었던 할머니는 누구보다 독립적이고 당당하게 살고 싶었던 여성이었다.

하지만 세상은 냉정하고 가혹했다. 평생 아픈 이별을 차례로 겪고 후유장애인 불인정 판결로 상처받았으며 웅크린 몸처럼 마음을 다친 채 살아가야 했다. 그런 할머니의 간절한 소망은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내는 것이었다. 힘든 생애를 견디게 했던 유년의 풍경을 그림으로 그리고, 속에 담아두었던 이야기를 글로 쓰는 것이 할머니에게는 또 다른 ‘인동꽃’이었다.

여러 사람이 손을 보태 할머니를 도왔다. 평소 엄청난 양의 독서와 글쓰기를 하는 할머니의 기록을 다듬고, 직접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돕고, 후원과 펀딩으로 책을 완성했다.

책은 5부로 이루어졌다. 1부 ‘제주 산촌의 추억’에서는 4‧3 이전의 평화로운 유년을 추억한다. 2부 ‘4월의 아픔을 등에 지고’에서는 평생의 상처가 된 4‧3을 다시 아프게 반추한다. 3부 ‘그리운 사람’에서는 부모와 정인, 그리고 소중한 딸의 이야기를 담았다. 4부 ‘4월의 인사’에서는 할머니가 바라본 4‧3을 이야기한다. 마지막으로 4부 ‘세상을 만나고 나를 만나고’에서는 이런 모든 아픔에도 불구하고 한 발짝씩 다시 세상으로 다가서는 할머니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글의 중간중간에 할머니가 직접 쓴 시와 그림이 함께한다.

제주에서 4‧3의 시대를 살면서 4‧3의 광풍을 비껴간 이는 거의 없다. 제주4‧3은 제주의 아픔을 넘어 한국 현대사의 아픈 상처로 기억되고 있고, 진상규명사업과 더불어 유족과 후유장애인을 위한 사업이 활성화되고, 해원과 보상도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그늘 속에서 4‧3의 상처를 안은 채 살아가고 있는 분들이 많다.

이 책은 한 할머니의 생애를 통해, 제주4‧3이 남긴 수많은 상흔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하고, 여성으로서 한 인간으로서 존엄을 지키고자 했던 지난한 한 일생을 존경과 응원의 마음으로 돌아보게 한다. 무엇보다, 세상과 다시 한번 만나고 싶다는 할머니의 소망에 손을 내밀어 주게 한다.

<저자 소개>

강양자

1942년경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났다. 종전 직후 부모와 함께 제주로 귀향했지만 딸을 남겨두고 부모는 다시 일본으로 밀항했다. 그 후 외가에 맡겨져 7세 때 4·3을 겪었다. 그 과정에서 부모를 대신했던 외가 식구들은 모두 희생되고 강양자는 부상을 당해 굽은 등의 척추장애인이 되었다. 외가 가족 모두 4·3 희생자로 인정되었지만 강양자는 후유장애를 인정받지 못했다. 몸과 마음에 새겨진 4·3의 트라우마로 평생을 집 안에서 자폐적으로 살아오다 노년에 이르러서야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닫힌 문을 열고 세상 밖으로 조금씩 나오게 되었다. 현재 제주 탑동에서 혼자 살며, 이 책을 통해 세상과 다시 만나기를 소망하고 있다.

<목차>

머리글-다시 한번 세상과 만나고 싶다
추천사-4‧3의 진실이 진실에 닿기를(제주4‧3연구소장 허영선)

제1부 제주 산촌의 추억
광령 집의 아이 · 16
무지개 세던 들판 · 23
부모와의 생이별 · 28
외할아버지의 사랑 · 32
유수암 샘물 · 35

제2부 4월의 아픔을 등에 지고
낯선 사람들 · 44
등에 떨어지던 돌무더기들 · 48
콩알만큼씩 튀어나오는 뼈 · 53

성안 생활 · 59
말없는 아이 · 63
열 살 때 시작한 학교생활 · 66
꽝 들어가게 얹엉 글라 · 70
밀항 시도 · 75
인동꽃 팔아 처음 번 돈 5환 · 81
손 놀면 입도 놀라 · 87

제3부 그리운 사람
부모를 만나게 되었지만 · 96
누나,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 99
꽃다운 시절, 단 한 사람 ·102
겨울 방학 일본 여행 · 108
범섬 나들이 · 111
내 삶의 뿌리, 르네 · 113
백록담의 가난한 점심 · 115
마음 다치지 마세요 · 118

제4부 4월의 인사
4월이 오면 · 127
새로 태어난 4·3의 아이 · 129
후유장애인 불인정 판결 · 131
또 한번의 상처 · 135
약자들의 세상 · 139
국가의 책임 · 144
4·3과 오늘 · 150
벗은 등 · 154
내 몸과 함께 살기 · 156
나의 치유법 · 160
외로움과 두려움의 행군 · 164

제5부 세상을 만나고 나를 만나고
달력 뒷면에 쓰기 시작한 글 · 168
처음 받은 심리상담 · 173
산행과 탐방 · 177
요가, 그리고 요가 선생님 · 180
처음 밟아보는 검은 모래 · 185
산지천, 산책의 기쁨 · 188
딱 열 개만 그렸으면 · 190
딸과 함께 미국 여행 · 195
깨달음이라는 처방 · 200
후기-이제윤(요가 지도자)
후기-황신비(화가)
강양자 연보
도움 주신 분들

<머리글> 다시 한번 세상과 만나고 싶다

2007, 8년경 구술작업에 대한 제안을 받았다. 제주4·3위원회 후유장애인 불인정에 대한 재심을 신청하고 행정소송을 하는 과정을 도와주던 선생님의 제안이었다.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이런 구차한 이야기를 알리고 싶지 않다고 한사코 반대했다. 그러자 그분이, 증언하기는 부정적인 기억으로부터 스스로를 해방하는 ‘자기 치료의 기능’이 있다는 말로 나를 설득해서 결국 구술을 하게 되었다. 당시 나는 행정소송까지 패소하면서 충격을 받아 집에 칩거해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행정소송과 구술작업 과정에서 만난 제주4·3연구소의 고성만, 김명주 연구원이 글을 많이 쓰라고 격려해 주었다. 행복했던 어린 시절을 보내다 4·3으로 인해 평생을 고통받으며 살아온 사람도 있다는 것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는 교육 자료가 된다고 했다.

그래서 달력 뒷장에 낙서하듯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몸이 자주 아프니까 나 스스로 좀 치유가 되려나 하는 마음이 컸다. 그러면서 4·3 이전 아름다운 산촌의 유년 이야기를 글로 쓰고 그림을 곁들이면 좋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 세월의 풍파를 그래도 지금만큼 견뎌온 것은 그 시절의 아름다웠던 기억의 조각들 덕분이었다는 것을 새삼 깨닫기도 했다. 10여 년 전 김명주 연구원이 달력에 쓴 낙서 글을 컴 퓨터에 입력해주었다. 두 분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이후 4·3재단의 문학상 공모에 응모했다가 떨어지고 낙심해서 한 동안 글쓰기를 중단하기도 했다. 2009년 4·3연구소가 발간한 구술 자료집 『그늘 속의 4·3』에 나의 구술 기록이 실리게 되었고, 허영선 소장님께서도 글을 계속 써보라며 격려해주기도 했다.

2019년 5월부터 이제윤 요가 선생님이 일주일에 한 번씩 집으로 오셔서 요가를 가르쳐주게 되었다. 선생님에게 내가 쓴 글을 보여드 리고 그간의 이야기를 하니 써온 글들을 책으로 내면 좋겠다며 어린 시절의 추억을 그림으로 그려 책에 함께 넣자고 했다.

요가 선생님 소개로 서른 살의 젊은 황신비 선생님을 만나 80의 나이에 난생처음으로 어린 시절의 풍경을 그림으로 그렸다. 아무 기초도 없이 그리는 수채화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고 원하던 것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황신비 선생님과 7개월 동안 그림 작업을 하면서 나도 힘들었지만, 선생님도 80이 된 할머니에게 그림을 지도하느라 무척 애를 먹었을 것이다. 두 분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서툰 글이 문장이 되도록 도와주신 고혜경 선생님, 책이 나오기까지 손을 보태주신 권유연 선생님, 한그루 출판사, 제주4·3연구소 허영선 소장님… 그 밖에 도움을 주신 많은 분들께도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장차 나의 이야기가 한 권의 책이 된다고 하니 한편으로 두렵고 한편으로는 무척 기쁘다. 이 책을 통해 다시 한번 세상과 만나고 싶다.

<추천사> 4‧3의 진실이 진실에 닿기를_그날의 ‘인동꽃 아이’에게

그만의 섬에서 그를 만났습니다. 여기, 이 책은 그의 일생입니다. 온몸을 4·3에 데인 4·3희생자 강양자 님의 고백과 그림들은 마침내 우리에게 건네는 말할 수 없던 말들입니다. 그를 만나던 날, 4·3 천 둥 번개 치고 커다란 구덩이에 굴러떨어지는 악몽에 시달린다는 그 에게 내가 할 수 있는 말이란 없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감성 예민했던 일곱 살 인동꽃 아이가 이제 여든의 인동꽃 할머니 가 되었습니다. 인동꽃 따고 말려서 만수당 약국에 달려가 5환 받고 연필 사던 날이 세상 기뻤다는 그 아이가 이 책에 있습니다. 아마도 그는 삶을 위해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고, 꿈을 잊지 않았는지 모를 일입니다.

그가 유독 반짝이던 순간은 그의 유년의 풍경을 구성하는 요소들 인 꽃과 생명체들을 떠올리던 때였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 대목에선 붓꽃 인동꽃 산딸기 물방개 솔개 소 닭 등이 뛰쳐나와 내면 속 아이 를 꿈틀거리게 하고 있었습니다. 허나, 그러한 복사꽃 광령리 외가 그 아름다운 연못의 풍경은 그날의 기억 이전의 일이었고, 곧 저 다채로운 기억의 구름 저편에서 돌아눕는 것조차 힘들던 한 사람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 시대의 재일제주인들처럼 해방이 되자마자 일본에서 부모와 귀향할 때까지만 해도 행복했던 오사카 태생의 소녀 요시코였습니다. 4·3의 위험을 직감하고 밀항으로 재도일한 부모와의 생이별, 그 이후의 삶은 그에게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4·3 와중에 외할아버지를 찾으러 외할머니와 나갔던 손녀는 언덕에서 미끄러지면서 돌무더기에 깔려 등을 다쳤고, 그건 생을 덮치는 일이 되었습니다. 아이의 다친 등으로는 자라면서 콩알만 한 등뼈가 조금씩 튀어나오더니 모든 꿈을 앗아갔습니다.

토벌대에 끌려간 외할아버지의 희생, 소개령으로 외도리에 잠시 이주했던 외삼촌과 외할머니마저 1949년 1월 외도지서에 차례로 연행되어 희생됩니다.

4·3이 그늘 밖으로 나왔으나 그는 여전히 그늘 속입니다. 4·3의 진전에 힘입어 4·3시기 후유장애를 입은 이들에 대해 국가는 심사를 통해 생존희생자로 인정했으나 그는 후유장애인으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2007년 불인정 받은 날, 그는 국가가 날 의심하는구나 생각했다고 했습니다.

“눈으로 직접 본 것이 아니기에 믿지 못하는 것이 정상이겠다. 그런데도 너무 분하고 억울한데 무슨 말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많은 어두운 요소들이 그의 등을 훑고 지나갔습니다. 올해 초 보내온 그의 편지를 보니, 그는 간간이 흩어지는 마음을 다시 잡으려는 의지 로 초연했습니다. 어느 날 산산조각 나버린 삶의 한복판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스스로 마음의 정원을 가꿔가는 일이었을 것이기에.

어쩌면 그의 이 책은 인정받지 못한 한 4·3생존희생자의 일생 저 작물인 셈입니다. 세상에 전하고 싶은 말들을, 그 덩어리들을, 타인 의 시선, 따뜻했던 기억, 멈춰버린 4·3 이전의 고운 기억들, 슬픔과 상처를 평생 지탱하게 해준 운명적인 사랑까지 토해놓고 있습니다. 그 리곤 자신의 등뼈를 마주 보라고 말합니다. 믿어주지 않지만 우리가 믿어야 할 진실인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4·3입니다. 안타깝지 만 언젠가 믿어야만 할 곳에 그 진실이 닿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직 도 4·3희생자이면서 희생자라 못 하는 이들이 우리들 곁에 있기에.

이 책은 인동꽃 아이가 보내는 잃어버린 한 시대, 인간의 존엄이 무너졌던 4·3의 진실을 향한 작지만 따가운 메시지입니다. 그럼에도 아름다움과 사랑의 힘이 고통의 언덕을 건너 그를 살아내게 했음을 느낍니다. 그의 이야기가 그를 의심했던 것들에 닿기를 바랍니다.

바라건대, 이제 그만 등에 진 돌덩이의 그 무거움에서 조금 가벼워지길 빕니다.

-허영선(제주4‧3연구소장)

<책 속에서>

밭일 가셨던 할아버지가 땅거미가 내려앉고 저녁노을이 지고 나서야 동구 밖부터 워낭소리를 철그렁거리며 오시면, 소 등에는 등짐이 잔뜩 얹혀 있고 우렁이가 먹을 꼴도 한 짐이었다. 할아버지와 소달구지를 타고 자갈돌 길을 갈 때면, 달구지 바퀴는 덜그럭 덜그럭, 워낭은 딸그랑 딸그랑거리며 박자를 맞추곤 하던 소리가 아직도 기억난다. (33쪽)

광령리 외가는 토벌대가 마을 전체에 불을 질러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고 한다. 남은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외할머니만 살아계셨어도 지금 내 모습은 달라져 있지 않을까? 외가 식구들이 몰살되며 불타버린 광령 집과 더불어 나의 행복했던 유년 시절도 허무하게 사라져버렸다. (50-51쪽)

꽃이 돈이 되다니!
꽃을 딴 나의 수고가 돈이 되다니!
너무 기뻐서 가슴이 뛴다
돈이 있으면 필요한 것을 할 수 있으니
이제 나도 어엿한 한 사람이 되는 건가

바다 건너 부모도 만날 수 있겠지
일 환은 노란 연필 한 자루 사고
일 환은 공책 사고
삼 환은 저금하려고 국어 책에 끼워 둔다

내게 인동꽃 꽃말은 희망, 독립, 자유 (85쪽, 시 ‘인동꽃’ 중에서)

이 세상에 하나뿐인 딸 르네, 아낌없는 사랑이 내린 선물. 르네는 내 삶의 원천이자 버팀목, 아니 내 삶의 전부다. 사랑은 흐르는 물에서도 뿌리를 내린다는데 르네야말로 흐르는 물 같은 내 삶에 내린 든든한 뿌리이다. (114쪽)

4월이 돌아오면 외할아버지 생각이 더 난다. 그리고 외할머니, 외삼촌, 불타버린 광령 집.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하기 어려운 그 시간들. 무시무시한 죽창을 들고 다니던 사람들, 총소리…. 그러나 이렇게 순박한 사람들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나고 그것이 누구의 잘못인지 속 시원히 말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127쪽)

난 내가 싫다. 내 모습이 싫다. 척추가 돌출된 뒷모습 때문에 얼마나 많은 고통과 아픔에 한평생을 허우적댔는지. 4·3의 그날 밤, 폭우에 바윗돌이 내 등을 가차없이 내리쳐 곤두박질쳐진 이후 평생을 장애라는 육신의 감옥 속에 살아왔다. 내 모습을 나조차 보기 싫고 세상 사람들의 날카로운 시선이 나를 무시하고 경멸하며 조롱하듯 보는 것 같아 두렵다. 그래서 바깥세상은 상대하기도 힘들거니와 상대해야 하는 것 자체가 고통이다. 아무런 힘도 방어할 능력도 없다. (132-133쪽)

내 생이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 없지만, 나는 4·3의 아픔을 지닌 아이가 있었다는 것을 삽화로 그려보고 싶다. 유년 시절, 천진스레 뛰놀았던 그 풍경이 그립고 보고 싶다. 달구지 타고 풀꽃 들고 서 있던 아이는 이제 없지만, 추억들은 지금도 내 삶의 원천이 되어 나를 지탱하게 해준다. (151쪽)

산책이 이렇게 기쁜 이유는, 산책이 나에게는 그만큼 특별한 것이기 때문이다. 남들에게 내 모습을 보이기 싫었고 더욱이 혼자 산책을 한다는 것은 꿈도 못 꾸었다. 일흔 넘도록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가 왜 그렇게 어려웠는지…. 자의든 타의든 스스로에게 입혔던 상처들이 희미해지고 마음이 굳건해지면 마음 안의 무언가가 세상과 맞닿아 연결되는 것 같다. (1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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