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길을 잃다 작은 숨을 쉬다'
[전시]'길을 잃다 작은 숨을 쉬다'
  • 현달환 기자
  • 승인 2022.06.15 21: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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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6월 1일 (수) _ 2022년 6월 30일 (목) 공간 물결 SPACE_WAVES (산지등대 복합문화공간)
제주시 사라봉 산지등대가 문화공간으로 변화하면서 물결카페 옆 건물 전시공간에서 여러 전시를 이어 온 가운데, 지난 1일부터 30일간 '길을 잃다'를 주제로 작가들이 느끼고 경험한 제주의 이야기를 이미지로 표현한 전시를 하고 있다.
제주시 사라봉 산지등대가 문화공간으로 변화하면서 물결카페 옆 건물 전시공간에서 여러 전시를 이어 온 가운데, 지난 1일부터 30일간 '길을 잃다'를 주제로 작가들이 느끼고 경험한 제주의 이야기를 이미지로 표현한 전시를 하고 있다.

제주시 사라봉 산지등대가 문화공간으로 변화하면서 물결카페 옆 건물 전시공간에서 여러 전시를 이어 온 가운데, 지난 1일부터 30일간 '길을 잃다'를 주제로 작가들이 느끼고 경험한 제주의 이야기를 이미지로 표현한 전시를 하고 있다.

4인의 작가는 학업의 기간(홍익대학교 대학원) 우정을 쌓은 친밀한 관계 가운데 1년간의 전시 기획과 준비에 집중한 결과물들이다.

전시제목 '길을 잃다 작은 숨을 쉬다'
전시기간 2022년 6월 1일 (수) _ 2022년 6월 30일 (목)
참여작가 정소진, 백승주, 남영인, KL&Julie
기획 프로젝트팀 ‘은꿩의다리’ (요니니, 미인형, 정소녀, 바짠)
관람가능시간 및 휴관일
관람시간 9:00am – 7:30pm 무휴, 관람료 없음
전시장소 공간 물결 SPACE_WAVES (산지등대 복합문화공간)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사라봉동길 108-1 (건입동 340-2)
064 725 7799
www.instagram.com/cafe_waves

제주시 사라봉 산지등대가 문화공간으로 변화하면서 물결카페 옆 건물 전시공간에서 여러 전시를 이어 온 가운데, 지난 1일부터 30일간 '길을 잃다'를 주제로 작가들이 느끼고 경험한 제주의 이야기를 이미지로 표현한 전시를 하고 있다.
제주시 사라봉 산지등대가 문화공간으로 변화하면서 물결카페 옆 건물 전시공간에서 여러 전시를 이어 온 가운데, 지난 1일부터 30일간 '길을 잃다'를 주제로 작가들이 느끼고 경험한 제주의 이야기를 이미지로 표현한 전시를 하고 있다.

전시글

길을 잃다 작은 숨을 쉬다

이번 전시는 제주에서 태어났지만 살지 않는, 없는 사람. 고향은 아니지만 그곳에 사는 사람. 순례자처럼 여행하는 사람. 그리고 한라산 깊은 숲 한가운데서 길을 잃어버리고 싶은 사람. 이들에게 펼쳐지는 제주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모두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길이거나 더 이상 이어지지 않을 것만 같은 길 위에 서 있으며 걷는다는 행위 조차도 의식하지 못한 채 순간, 어느 지점, 어떤 사건에서 길을 잃을 때가 있습니다. 

길을 잃다, 이 전시는 길을 잃어버린 그 시점에 귀 기울입니다. 그 때 찾아오는 불안이나 당혹감, 길을 찾지 못해 해메이는 등의 혼돈만을 얘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문장 자체 의미인 ‘길을 잃다’ 의 부정적인 감정과 상황에 천착하는 것이 아니라 길을 잃은 그 순간, 그 공간에서의 감정과 사건에서 전환점이 되는 무언가를 찾으려는 시도입니다. 

제주시 사라봉 산지등대가 문화공간으로 변화하면서 물결카페 옆 건물 전시공간에서 여러 전시를 이어 온 가운데, 지난 1일부터 30일간 '길을 잃다'를 주제로 작가들이 느끼고 경험한 제주의 이야기를 이미지로 표현한 전시를 하고 있다.
제주시 사라봉 산지등대가 문화공간으로 변화하면서 물결카페 옆 건물 전시공간에서 여러 전시를 이어 온 가운데, 지난 1일부터 30일간 '길을 잃다'를 주제로 작가들이 느끼고 경험한 제주의 이야기를 이미지로 표현한 전시를 하고 있다.

길을 잃은 지금, 그 지점에서 잠시 멈춰 서서 내가 살아 온, 살아 있는, 살아 가고 있는 위치를 다시금 확인하고 새로운 방향과 방식, 속도를 찾는 능동자가 되려 합니다. 길을 잃어 버린 때에야 그렇게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럴 때 보이지 않던 것들이 나타나리라 희망합니다. 길을 잃은 순간 다가오는 결핍과 상실의 부정을 넘어서 길을 잃어야만 찾을 수 있는 행복의 지점에 대해 얘기나누려 합니다.

『지금도 곰곰이 생각하게 되는데 소진씨가 한라산 숲속에서 길을 잃고 싶다고 했을 때 처음에 난 농담하는 줄 알았어.

제주시 사라봉 산지등대가 문화공간으로 변화하면서 물결카페 옆 건물 전시공간에서 여러 전시를 이어 온 가운데, 지난 1일부터 30일간 '길을 잃다'를 주제로 작가들이 느끼고 경험한 제주의 이야기를 이미지로 표현한 전시를 하고 있다.
제주시 사라봉 산지등대가 문화공간으로 변화하면서 물결카페 옆 건물 전시공간에서 여러 전시를 이어 온 가운데, 지난 1일부터 30일간 '길을 잃다'를 주제로 작가들이 느끼고 경험한 제주의 이야기를 이미지로 표현한 전시를 하고 있다.

근데 다시 한번 깊은 숲 한가운데서 완전히 길을 잃어버리고 싶다고 했을 때 깜작 놀람.

아~! 길을 잃었을 때의 자유가 있을 수도 있겠구나.

우리가 길을 잃고 찾는단 의미에서의 공감도 있었지만 길을 잃은, 혼돈의 의미와는 다른, 길을 잃었을 때의 평안과 자유, 일탈 뭐 이렇게 너무... 잘은 모르겠지만 감정적으로 아주 진하게 느껴져서 계속 생각하게 됨.

그래서 보통 말하는 ‘길을 잃다’의 의미도 있겠지만(불안과 혼란 두려움 등등),

제주시 사라봉 산지등대가 문화공간으로 변화하면서 물결카페 옆 건물 전시공간에서 여러 전시를 이어 온 가운데, 지난 1일부터 30일간 '길을 잃다'를 주제로 작가들이 느끼고 경험한 제주의 이야기를 이미지로 표현한 전시를 하고 있다.
제주시 사라봉 산지등대가 문화공간으로 변화하면서 물결카페 옆 건물 전시공간에서 여러 전시를 이어 온 가운데, 지난 1일부터 30일간 '길을 잃다'를 주제로 작가들이 느끼고 경험한 제주의 이야기를 이미지로 표현한 전시를 하고 있다.

잃어버리고 ‘싶다’는 능동과 긍정의 의미로

다른 방향에서 아주 재미난 생각들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여러 방식의 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그것과 이어져서 승주의 그곳에 있었던 사람. 그곳에 있는 사람. 순례자로서 머물다 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영인의 전환점.

길을 ‘잃다’와 ‘잃고 싶다’의,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에서의 균형자.

그리고 나의 UFO』

- ‘길을 잃다’ 전시기획 모바일 메신저 대화중 -

작가들은 길을 잃은 순간을 상정하고 제주를 네 개의 공간 속에 위치시킵니다. 교차 시키면서 독립된 시선으로 바라봅니다. 일탈의 자유를 꿈꾸는 공간. 치유의 공간으로 순례자의 길. 전환점으로서의 균형이 되는 지점. 길이 사라진 사람들의 미확인된 비행길로 대유해 얘기를 풀어나갑니다.

‘소진은 한라산 깊은 숲 한가운데서 길을 잃어버리고 싶다.’

제주시 사라봉 산지등대가 문화공간으로 변화하면서 물결카페 옆 건물 전시공간에서 여러 전시를 이어 온 가운데, 지난 1일부터 30일간 '길을 잃다'를 주제로 작가들이 느끼고 경험한 제주의 이야기를 이미지로 표현한 전시를 하고 있다.
제주시 사라봉 산지등대가 문화공간으로 변화하면서 물결카페 옆 건물 전시공간에서 여러 전시를 이어 온 가운데, 지난 1일부터 30일간 '길을 잃다'를 주제로 작가들이 느끼고 경험한 제주의 이야기를 이미지로 표현한 전시를 하고 있다.

소진의 제주는 일탈의 자유란 상상 위에 있습니다. 길을 잃은 것이 아니라 ‘잃어버리고 싶은’ 능동의 지점으로 상상합니다. 길을 잃은 순간 모든 것에서 벗어날 수 있는 상황을 꿈꿉니다. 제주는 온전히 나만을 위한 공간. 나만을 위한 숲. 오로지 나만 존재하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작가는 자신만의 식물도감을 일기처럼 그려내고 써 내려갑니다. 내가 느껴지지 않는, 내가 없는 반복되는 삶 속에서 오히려 반복하는 작업으로 성경을, 불경을 필사하듯 마음을 다스립니다. 

소진의 작업은 수행의 한 가지입니다. 혼란한 마음을 헤아리고 정지시키기 위한, 자신을 억압하는 삶의 구조에서 일탈하기 위한 장치. 반복은 억압을 낳지만 수 없는 ‘능동반복’은 차이를 만들어내고 자율성을 획득합니다.

1) 수행하듯 필사하는 작업 안에서 유일한 내 상황을, 내 시간을 갖고 숨을 들이쉽니다. 또 파편화된 식물 도형 조각을 재구성하며 겹겹이 쌓아 자그마한 숲을 만듭니다. …숨을 내뱉습니다. 제주의 깊은 숲 한가운데 있는 평안한 안식을 꿈꿉니다. 그 안에서 소진은 작은 행복을 위해 숨을 쉽니다.

제주시 사라봉 산지등대가 문화공간으로 변화하면서 물결카페 옆 건물 전시공간에서 여러 전시를 이어 온 가운데, 지난 1일부터 30일간 '길을 잃다'를 주제로 작가들이 느끼고 경험한 제주의 이야기를 이미지로 표현한 전시를 하고 있다.
제주시 사라봉 산지등대가 문화공간으로 변화하면서 물결카페 옆 건물 전시공간에서 여러 전시를 이어 온 가운데, 지난 1일부터 30일간 '길을 잃다'를 주제로 작가들이 느끼고 경험한 제주의 이야기를 이미지로 표현한 전시를 하고 있다.

『…드로잉은 산책 같다.

…삶이 흐려지지 않기 위해

아이들의 눈빛에 늘 다정한 웃음 지어주기 위해...

다시 숲을 본다.

…내가 가진 작은 조각들…

숲이 커질수록 나도 선명해졌다. 작가노트 중

승주의 제주는 순례자의 길입니다.

승주는 그곳에 있었던 사람, 그곳에 있는 사람, 머물다 가는 사람들을 생각합니다.

제주시 사라봉 산지등대가 문화공간으로 변화하면서 물결카페 옆 건물 전시공간에서 여러 전시를 이어 온 가운데, 지난 1일부터 30일간 '길을 잃다'를 주제로 작가들이 느끼고 경험한 제주의 이야기를 이미지로 표현한 전시를 하고 있다.
제주시 사라봉 산지등대가 문화공간으로 변화하면서 물결카페 옆 건물 전시공간에서 여러 전시를 이어 온 가운데, 지난 1일부터 30일간 '길을 잃다'를 주제로 작가들이 느끼고 경험한 제주의 이야기를 이미지로 표현한 전시를 하고 있다.

제주를 여행자로 스쳐 지나는 사람들, 원래부터 살고 있는 사람들, 살지만 고향이 아닌 사람들이 느끼는 인식과 감정은 개별적입니다. 아주 다릅니다.

제주는 늘 그곳에 있었던 사람들에겐 새로운 공간이 아닙니다. 너무 익숙해져서 바래진 공간이며 여행자가 떠나온 삶의 공간과 같습니다. 그저 어디에나 누구에게나 있는 권태로울 수도 있는 일상의 공간입니다. 제주를 여행하며 스쳐 지나는 사람들은 제한된 시간과 경험 속에서 부분을 전체화 합니다. 

자기 생활 공간과 비교해 미화하며 아름답기만 한 고정된 풍경으로 박제합니다. 이주해 온 사람들에겐 두 공간이 아직은 살짝 겹쳐 있습니다. 하지만 모두에게 제주는 아름다운 곳이며 향수하는 대상이며 위로 받는 공간으로 공통됩니다. 때론 있는 그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편안해지는 이세계처럼 느껴집니다.

아름다운 기억은 힘을 갖습니다. 편집되고 보정되었을 지라도 그런 기억은 나를 위로합니다. 성지를 순례하는 사람들이 그 고행 속에서도 평안과 축복의 힘을 얻는 것처럼 말입니다. ‘삶이란 길’을 걷는 행위는 진정하고 완전한 성지를 상정하고 순례하는 의식으로 볼 수도 있으니까요.

제주는 일상의 공간과 치유의 공간으로, 괴리를 갖고 넘나드는 경계에 있지만 아우르는 힘도 있습니다. 일상을 생활하며 치유할 수 있는 겹친 공간이기도 합니다. 모두에게 일상日常일 수도, 일상一相일 수도 있는 곳입니다. 

어디에나 있는 일상日常의 생활이 있는 곳이기도, 일상一相으로서 모든 현상의 있는 그대로의 평등한 모습, 차별도 대립도 없는 절대평등의 무차별한 모양으로도 있습니다.2) 누구에게나 열려 있고 누구에게나 따뜻합니다.

이곳에서 승주는 늘 곁에 있어 부존재를 생각해 본 적도 없는 것들에 대해 새롭게 인식합니다. 제주에서의 여행으로, 순례하며 얻어지는 충만함은 그 존재들과 함께 하는 즐거움과 같습니다. 고착화된 일상에서 벗어나 소홀해진 그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일상이지만 동시에 치유의 존재로서 힘이 되어 주는 대상을 그리고 성형합니다. 

마주보는 작업을 합니다. 결핍으로만 알아챌 수 있는 일상의 소중한 존재들. 거센바람에도 날아가지 않는 기억을 움켜쥡니다. 그런 바람 속에 있는 존재들을 그립니다.

『따뜻하고 비릿한 냄새… 모든 걸 요동치게 하는 바람… 모든걸 휩쓸고 갈 것같은 그 순간에… 나는 다시 고요해졌다…’ 작가노트 중』

영인의 제주는 전환점으로서의 균형을 찾는 곳입니다.

이주해 살고 있는 제주. 숨차게 달려온 길에서 벗어나 지금 새로운 상황 앞에서 균형을 찾고 전환점으로 삼으려 합니다. 영인은 길을 찾고 뛰는 대신, 내려놓고 숨을 고르며 지금 작은 행복들을 느끼고 사랑합니다. 그 동안 숨이 넘어가게 나를 채찍질한 길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넘쳐나는 수많은 정보는 실체 없는 상황을 수없이 재생산하며 나를 교란하고 길을 잃게 해 주저앉게 합니다. 또한 그런 사회구조 안에선 우리는 수많은 가면을 쓰고 있어야 합니다. 나는 가면을 벗고 싶지만 가면이 내 본래 얼굴이란 걸 알게 되고선 또 혼란에 침식됩니다. 수없이 반복되는 일상과 수많은 상황 속에서, 비교되고 비교하는 구조 안에서 나는 파편이 되고, 일체로서 주체로서 존재하기 벅찹니다. 충동과 욕망이 난무합니다. 온전한 나를 오롯이 느낄 수가 없습니다.

그 혼란 속에서 다시 나를 찾을 수 있는 방법으로 균형을 조율하려 합니다. 균형의 중용은 단순히 수량적 중간을 찾는 게 아니라 최선성最善性을 찾는 것.3) 근데 그 균형을 찾아 모든 혼란에서 나를 온전히 인지하고 조정한다 한들 ‘내가 행복한가’의 질문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내가 ‘나’로서 있을 수 있는 근원은 내가 ‘나’의 온기를 느낄 수 있느냐는 것.

 이제 영인은 길을 ‘잃고 찾고’를 떠나 자기만의 행복을 위한 중도에 집중합니다. 비움으로써 변화하고 멈춰섬으로써 오히려 능동자4)가 되려 합니다.

영인의 작업은 유쾌합니다. 쾌활하고 즐겁습니다. 작금의 세태와는 다르게 역설적으로 찌들어버린 일상을 무찔러버리는 어른들을 위한 즐겁고 상쾌한 동화 속 주인공들을 만들어냅니다. 그들만의 신세계를 그려냅니다. 지성과 상상력의 자유로운 유희로서 ‘쾌’를 보여주며 촉발되는 대로 자기 자신을 느끼려 합니다.5)

『아무리 개워내도 다 떨쳐낼수 없는… 불안, 외로움… 두려움의 크기… 때론 더 용기 있게 마주할 수 있도록…작가노트 중』

KL&Julie 의 제주는 UFO입니다. 미확인비행물체에 빗댄 작가의 길은 ‘미확인된 비행길’입니다.

너무 많은 시간 고향을 떠난 작가에게 제주는 묘한 이질감으로 다가옵니다. 이제는 제주 사람도 아니고 서울 사람도 아닌 것처럼 느껴집니다. 제주 사람 반, 서울 사람 반 이렇게도 아닌 아무것도 아닌 사람처럼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쉴 곳이 없습니다. 이 곳에서도, 저 곳에서도 편한 잠을 자지 못합니다.

주체적 공간이며 타자적 공간에서 그 무엇도 아닌 감정 없는 객체로 존재하는 사람들.

미확인비행물체처럼 내 존재는 확인되지 않는, 확인할 수 없는, 하지만 있기는 한 것처럼 뿌옇습니다. 실체가 드러나지 않는 혹은 드러낼 수 없는 ‘실재’에 강박된 사람들은 ‘실제’에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전시 제목 그대로 길을 잃어버린 겁니다. ‘고소공포증의 비행’.

길을 잃어버린 사람들. 이제 찾을 수 없는 사람들. 새로운 길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은 지나온 길을 맹인처럼 거꾸로 더듬어 갈 뿐입니다. 그 길들은 이제 사라지고 조작되고 남아 있지 않은걸.

길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기억을 잃어갑니다. 자기를 잃어갑니다. 그런 너무나 느린 죽음이 주는 환상 안에선 사실이든 아니든 걸어온 길조차 온갖 화려한 망상으로 치장할 뿐 실체가 남아 있질 않습니다. 뿌연 안개 속에 있습니다. 빛이 있지만 없습니다. 칠흑 속에서는 아무것도 찾을 수 없고 너무 밝은 빛 속에서는 아무것도 보이질 않아 넘나들며 그림자 속에서 세상을 바라봅니다. 그럼에도 남아 있는 따뜻한 기억 한 켠은 부여잡고 있습니다. 유일하게 남아 쥐어짜고 있는... 사랑에 대한 단편입니다.

작가는 결핍과 비정상을 얘기하는 게 아닙니다. 남은 희망을 가지고 새로운 걸음을 딛는 존재들에 얘기하려 합니다. 혼란한 정체성이 아닌 교잡종의 새로운 힘있는 생명체를 만들어 내기도 그동안 무심히 흘려 보내버린 제주를 새롭게 바라보기도 합니다. 푸른베개를 그리며 제주 사람 모두가 길을 잃어버린 그 날을 기억합니다.

『…나는 누군가에게 정말 좋은 사람이지만… 누군가에겐 죽일 듯이 나쁜 사람일 수도… 작가노트 중』

길을 잃을 때에야 찾을 수 있는 것들. 그제서야 보이는 것들. 닿을 수 있는 특이한 지점이 있습니다.

우리가 걷는 길은 돌아갈 수가 없습니다. ‘삶이란 길’은 지금껏 내가 살아온 시간과 방향, 속도를 갖고 있습니다. 걸어온 길과는 다를 거라 희망하고 같을 거라 절망해도 여전히 걷고 있습니다. 하지만 걷는다는 행위 자체가 내가 숨을 쉬고 있는 기쁨일 때가 있습니다. 그걸 인식한 순간 보이는 것들이 변화합니다.

일탈의 공간으로서 자유를 상상하는 사람들. 순례자처럼 치유의 공간으로 여행하는 사람들. 여태껏 살아온 곳을 떠나 낯선 환경에서 균형을 조율하며 전환점을 마련하는 사람들. 치유와 일상의 공간, 그 경계에서 향수하며 사는 사람들. 각자의 길은 지향성이 다르고 속도도 다릅니다. 하지만 한라산 깊은 숲 한가운데서 길을 잃고 멈춰선 순간, 바로 ’지금’, 그 지점에서부터 온기를 느끼고 외로움을 덜어냅니다.

쳇바퀴 삶과 외로움의 강박에서 벗어나 일탈과 자유, 따뜻한 무언가를 느끼고 싶고 제주에서 그게 발현되었습니다. 그것에서 희열이 생긴다면 나누려는 전시입니다.

각자의 길 위에서, 아니면 존재하지 않는 공간에서일지라도, 그저 서 있기만 하더라도 길을 잃은 그 순간, 그 위치에서 ‘내 안의 나를 따뜻하게 눈여겨 보세요’… 후에 새롭게 걸음을 뗄 때에... 설정한 방향성은 자기만의 독특한 속도를 내포하고 자기만의 특별한 에너지를 갖게 되기를...

외롭지 않고 따뜻하기를. 행복하기를. 행복의 반대말은 불행이 아닙니다. 힘들지만 불행한 것이 아니길. 견디어 내는 과정이길. 외롭지만 혼자 걷고 있지 않다는 것을. 지금 너무 차갑지만 서서히 온기가 퍼져나가는 걸… 평안해지길. 한 걸음...

길 윤동주

잃어버렸습니다.
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
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길에 나아갑니다.
돌과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
길은 돌담을 끼고 갑니다.
담은 쇠문을 굳게 닫아
길 위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습니다.
돌담을 더듬어 눈물짓다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담 저 쪽에 내가 남아 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1)들뢰즈 ‘차이와 반복’, 2)네이버 지식백과 ‘일상(一相)’, 3) 네이버 칸트사전 ‘쾌’, 4)아리스토텔레스, 5) 네이버 지식백과 ‘중용’

글 KL&Jul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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