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허브티앤푸드연구소
사)국제건강차문화원
한의학박사
The story of Jang Mi-kyung's One Hundred Flower
제35장
으름꽃
제주의 4월은 그야말로 꽃들의 각축전을 벌이는 곳이다. 누가 먼저 예쁜 얼굴을 뽐낼 것도 없이 동시 다발적으로 피어 모든 이들에게 추운 겨울의 얼었던 마음을 녹아 내리게 한다. 필자의 연구소 앞 작은 정원도 작약 꽃봉오리와 오스카 카네이션, 노랑꽃창포, 접시꽃, 장미꽃 등 각종 허브 종류의 꽃들이 나름의 질서를 가지고 피어나고 있다.
날씨가 좋은 봄날 아침 동네 마실을 가기도 전 커다란 나무에 으름덩굴이 눈에 띄었다. 자세히 보니 고귀한 보랏빛의 꽃들이 어두운 나무 그늘 아래 있지 않은가?
한라산 자락의 관음사 위쪽에서 보았던 덩굴을 바로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다는 사실에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작은 잎들이 다섯에서 일곱장 정도 달려 있고 작은 꽃망울들이 여럿 있는 것으로 보아 수꽃이었다.
향기로운 이 꽃을 몇 송이 따서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다시 한 바퀴 동네 산책을 갔다가 와서는 잎과 꽃을 꽃차용 팬에다 얹었다. 꽃은 늘 필자를 설레게 한다. 꽃을 보면서 ‘이래서 봄이로구나, 이래서 꽃피는 봄이로구나’ 생각했다.
으름의 학명은 Akebia quinata(Thunb.) Decne으로 으름덩굴과의 낙엽성 덩굴나무이다. 중국에서는 삼엽목통과 백목통을 약용하며 우리나라에서는 으름덩굴 및 여덟잎으름(Akebia quinata for. polyphylla (Nakai) Hiyama)이 자생하며 목통(木通)이라 하여 모두 약용한다.
식품공전에는 현재 잎과 열매를 식용할 수 있다. 한국의 바나나로 알려져 있는 열매는 예지자(預知子), 팔월찰(八月札) 등의 이름으로 불린다. 실제로 작고 통통한 것이 바나나를 닮았다.
열매는 주로 요통, 늑막염, 혈뇨를 치료하는 데 사용한다.
<김현욱, 2006. 으름덩굴 잎의 성분>의 논문에 따르면 열매는 서간이기(舒肝理氣), 소염, 이뇨약, 통경작용, 활혈지통(活血止痛)에 쓰이지만 장기간 복용하면 신장 기능 이상이 올 수도 있으므로 신중해야 한다고 보고한 바 있다.
옛날 조선의 야생 과일 중 머루와 다래, 그리고 으름 열매가 그야말로 귀중한 후식이자 식량 자원이었으리라.
한방에서 목통의 성미는 맵고 달며 성질은 평하거나 약간 차다. 심포경(心包經) · 소장경(小腸經) · 방광경(膀胱經)에 귀경하며 효능으로는 청열이뇨(淸熱利尿), 통경활락(通經活絡), 통유(通乳)하는 작용으로 한약의 귀중한 약재로 사용되어 왔다.
약리적 실험에서 이뇨 작용 · 강심(强心) 작용 · 혈압 상승 작용 · 소염 작용 · 위액분비 억제 작용 등이 밝혀진 바 있다.
주 성분으로는 hederagenin, oleanolic 등이 있다. 동의보감에는 우리 몸의 12 경락을 모두 통하게 하며 소장의 기를 잘 통하게 하여 소변을 원활하게 배출한다고 한다. 또 으름의 줄기로 바구니를 만들어 실용적인 기능도 보탬이 되기도 하였다.
갑자기 필자도 바구니를 만들어 자연스러운 멋을 연출하는 상상을 해 본다. 하지만 줄기는 피터팬이 아닌 이상 필자는 갈 수 없는 곳에 있다.
꽃은 자중동주인 단성화로 꽃잎은 3장이고 수술은 6개이며 수술대가 거의 없다. 암꽃은 수꽃보다 크고 짙은 갈색을 띤 보라색이다. 한복이나 다복에 색도 저리 곱게 옷감을 해도 좋을 듯하다.
처음 이 꽃을 따서 말려 보면 향기가 나지 않치만 사계절이 지나 꽃의 향기를 맡으면 본연의 꽃향이 다시 살아난 듯 귀하고 그윽한 향기가 난다. 가만히 계속 그 향기에 취하고 싶다.
조선시대에는 향낭 주머니를 만들어 그 안에 으름꽃을 넣고 다녔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꽃차를 만들면 색이 진하게 변해서 본 모습이 나오질 않치만 향기로운 차 한잔으로 달래면 금새 안타까운 마음도 사라진다.
작고 귀여운 잎들도 함께 차를 만들어 마시면 더욱 운치를 더하지 않을까? 어린잎은 식용 할 수 있으니 다양하게 독자여러분들도 활용해 보길 바란다. 차 맛은 약간 쓰지만 단맛도 느껴진다.
5월 초가 되니 꽃들은 벌써 낮은 지대에는 자취가 없고 높은 곳에나 가야 피어있는 꽃을 만나고 올 듯 하다. 꽃말은 ‘재능’이라고 한다. 으름의 다양한 효능과 향기로움의 재능이 숨어있기라도 하듯 꽃말그럴 듯 하다.
예지자(預知子)는 검은씨가 많아서 열매를 먹으면 머리를 맑게 하고 앞일을 미리 알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그런 초인적인 열매를 안 먹을 수 있겠는가? 한 두 번 열매를 먹어보고는 그리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이리도 후회스러울 수가 없다. 독자 여러분들도 으름의 열매를 꼭 한번 드셔보시라. 그리고 향긋한 꽃은 덤으로 가져가시라.
필자는 향긋한 꽃을 자동차 안에 향주머니로 활용해 볼까 한다.
또 다시 향긋한 꽃과의 인연을 찾아 다음 호에서 만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