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문무병 에세이 태손땅
[신간]문무병 에세이 태손땅
  • 현달환 기자
  • 승인 2022.11.29 11: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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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문무병 / 135*210 / 212쪽 / 15,000원 / 979-11-6867-056-3 (03810) / 한그루 / 2022. 11. 30.
태를 살라 묻은 섬땅을 위하여 제주 신화, 역사, 문학을 넘나드는 삶의 기록
[신간]문무병 에세이 태손땅
[신간]문무병 에세이 태손땅

제주의 뿌리와 그에서 뻗어난 제주 사람들의 삶을 신화로 문학으로 기록해온 문무병 작가의 신작 산문집이다. 책의 제목인 ‘태손땅’은 자신의 태를 태워 묻은 땅, 본향을 말한다. 태어난 곳이라는 고향의 의미를 넘어 정신의 뿌리를 뜻한다.

책은 총 3부로 나누어 54편의 글을 실었다. 1부 ‘미여지벵뒤의 나비’에서는 제주 신화와 무속신앙에 대한 글이 담겨 있다. 저자가 평생 천착해온 제주무속의 장면들이 저자의 간절한 기원과 함께한다. 2부 ‘마지막 문서연락병’은 제주 역사의 당당한 줄기를 따라간다. 그 속에는 상처받고 피 흘리는 민중의 얼굴이 자리하고 있다. 3부 ‘남양여인숙으로부터’에서는 섬사람들의 신명이 담긴 축제를 살핀다. 그리고 저자를 지금에 이르게 한 소라다방의 ‘골빈당선언’과 미완의 글 ‘남양여인숙’을 추억한다.

책은 ‘중문동 도람지궤당의 동굴제’로 시작한다. 수십 년 전 이 동굴제의에 대한 저자의 글이 기내 잡지에 실려 세계를 날아다녔다. 긴 세월 뒤에 저자는 ‘태를 사른 땅’, 정신의 본향에서 다시 이 글로부터 타전을 시작하고 있다. 십수 년 전의 글에서부터 근래의 글에 이르기까지 시간의 간극은 있으나, 그 메시지는 한결같이 한곳을 향하고 있다.

■ 저자 소개

문무병

1993년 제주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국어 교사와 제주교육박물관 연구사 등으로 재직했다. 부산대학교 예술대학에서 15년간 민속학 강의를 했다. 제주4·3연구소 이사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신화연구소 소장, 제주전통문화연구소 이사장, 민족미학연구소 이사 등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제주의 무속신화』(1999), 『제주도 큰굿 자료집』(2001), 『제주 민속극 (2003)』, 『바람의 축제, 칠머리당 영등굿』(2005), 『제주도의 굿춤』(2005), 『제주도 본향당 신앙과 본풀이』(2008), 『설문대할망 손가락』(2017), 『두 하늘 이야기』(2017), 『미여지벵뒤에 서서』(2018), 『제주큰굿 연구』(2018), 『제주큰굿 자료집 1』(2019), 『제주의 성숲 당올레 111』(2020) 등이 있다.



■ 목차

1부 미여지벵뒤의 나비

13 중문동 ‘도람지궤당’의 동굴제

19 한류의 배꼽, 제주 신화

23 제주의 뱀신앙

27 삼시왕에 든 큰심방

30 큰굿에 담긴 천지창조의 역사

33 미여지벵뒤에서 당신을 보내며

37 새철 드는 날의 하늘굿

40 제주 사람들의 수(數) 철학

43 [弔詞] 제주 심방 정공철, 민족 광대 정공철

48 다시 부는 영등바람

51 대별왕의 나라를 꿈꾸며

54 오등동 설세밋당의 파괴

57 바이칼에서 만난 제주

60 제주 신화의 ‘돌트멍(돌틈)’을 열며

63 비새의 울음 같은 한(恨)의 미학

66 미친 여자를 치료하던 그날의 도체비굿

70 귀덕 복덕개의 영등맞이 바람축제

73 다라쿳당을 태운 불

76 설문대할망이 놓다 만 다리

79 죽음을 완성하는 공간

82 바람길을 여는 우주목

85 운주당 성숲[聖林]

2부 마지막 문서연락병

91 역사맞이 해원상생굿

94 봉이 조선달

98 4월의 바람

102 분노의 감귤나무

106 지역문화의 시대

110 다랑쉬굴의 슬픈 노래

115 큰 별은 지고, 백호는 끝내 울음을 멈추리라

118 미신공화국의 도의원

121 그들은 모두 바다에서 왔다

124 어느 비 오는 날의 마당극

127 트라우마의 예술치료, 〈지슬〉

130 탐라 장두 양제해

133 갑오년의 바람까마귀 어디로 날아가나

137 성탄 전야, 이 땅을 찾아온 하느님에게

140 다시 다랑쉬굴에서

147 돔박새 운다

150 마지막 문서연락병

3부 남양여인숙으로부터

157 섬문화 축제의 토대

161 신 없는 거리

164 우리의 축제

168 붉은 악마의 명암

171 복원된 외대문이 너무 작다

175 두 개의 비석

179 심토맥이 어신 사람

184 불을 피우고 연기를 내는 진짜 축제

187 우리 바당 끝의 작은 섬

190 호모 딴따라스

193 귀신을 부르는 마지막 소리꾼

197 불칸 땅의 들불 축제

200 제주의 별 축제를 꿈꾸는 사람들

203 두르외가 되고 싶은 사람들

207 골빈당 선언

■ 작가의 말

나의 ‘태손땅’, 어머니가 내 탯줄 태워 작은 항아리에 담고,

동새벽에 어머니만 아는 삼도전거리(세거리) 비밀스러운 곳에 묻어둔 땅.

‘태손약’은 태를 태운 재다.

피부병에 걸린 아이에게 발라주면 직통으로 낫는다는 ‘태손약’

태를 태운 재를 묻은 땅이라는 나의 ‘태손땅’을

나의 뿌리를 내린 땅이라는 ‘본향(本鄕)’이라 한다.

육지 사람들이 말하는 고향, 내가 뿌리를 내린 땅 본향은

제주시 동문 밖 건들개(건입동健立洞)이다.

제주의 토종 원주민 문(文) 아무개는

문학과 낭만, 제주 신화를 통해 여러분을 만났고,

앞으로 남은 시간을 함께 사랑하며 같이 살아가야 할 친구로

여러분과 나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띄워본다.

어둠을 뚫어야 빛이 들고, 물꼬를 찾아야 우물을 파듯이

신화는 하늘과 땅, 신과 인간 세상을 가르는 이야기이므로

제주가 우리에게 일깨워 주는 신화의 의미

그 크고 작은 틈을 구분하고 정리해 나가는 일이

‘태손땅’을 지켜나갈 우리의 일이라 생각하며

너무 펼치진 말고 필요한 만큼만 열어 나가며

설문대할망의 자손 우리, 원주민과 이주민이 모두 하나 되어,

탐라 제주에 광명의 새 세상을 만들어봅시다.

■ 책 속에서

자기가 태어난 고향을 제주 사람은 본향(本鄕)이라 한다. 내가 태어난 고향이 본향(本鄕)인 것은 자기의 ‘탯줄을 태워 묻어둔 땅’, 태 사른 땅(태손땅)이란 의미다. 탯줄은 어머니와 아이의 인연의 줄이자 생명의 ‘삼줄’이며 어머니의 태반에서 아이에게 영양을 공급해주던 ‘새끼줄’이다. 예로부터 제주의 어머니들은 아기가 태어나면 ‘아기의 탯줄[胎]을 태운 검정’을 항아리에 담아두고 약으로 썼다. 이 항아리는 탯줄처럼 세 줄로 감겨있는 ‘삼도전거리’, 세 갈랫길이 만나는 길에, 어머니만 기억하는 비밀한 곳에 새벽녘에 묻어두었다. 아이가 피부병에 걸리면, 태를 태웠던 검정을 가져와 아픈 부위에 발라 주었다. 그것은 태(胎)의 원초적인 생명력과 생명의 뿌리를 저장하고 있는 땅이 지닌 생명의 복원력으로 병든 아이의 피부를 소생시킨다는 영적인 주술이며 치료였다.

그러므로 제주 사람들은 이 땅에 근거를 두고 사는 아이들에게 자기가 태어난 땅, 고향은 바로 탯줄을 태워 묻어둔 땅, ‘태 사른 땅(태손땅)’, 뿌리를 내린 땅, 본향(本鄕)이라 가르쳤던 것이다. 본향은 대지의 배꼽이다. 어머니와 아이를 이어주는 새끼줄, 하늘과 땅과 어머니와 아이를 이어주는 대지의 탯줄이며, 속화된 인간의 땅에 마련된 하나님과 영적인 교류가 가능한 거룩한 장소[聖所]인 것이다. (20-21쪽)

제주의 굿에는 제주 사람들의 생활 속에서 얻은 아름다움에 대한 경험과 지혜가 녹아 있다. 그래서 제주 굿은 눈물이 많다. 인정이 많다. 인정은 마음이 젖어 있는 것이고 촉촉이 적시는 것이다. 젖어 있는 마음을 몰라줄 때 칭원하고 원통한 것이다. 제주 사람들은 ‘젖어 있는 것은 아름답다.’라는 미의식을 지니고 있다. 굿을 하면 사람이 젖는다. 많이 운다. 인정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63쪽)

나는 굿을 통해 비새가 어떤 새인지 알게 되었다. 영게[靈魂]와의 대화에서 슬픔에 겨워 흐느끼는 ‘심방의 말명’ 같은 말을 두고 할머니들은 “비새같이 울엄저.”라 했다. ‘슬피 우는 새의 울음’을 ‘비새가 운다’로 표현하는 것이었다. 최근에 나는 그 상상 속의 ‘비새’가 바로 돔박새란 확신이 생겼다.

4·3 70주년, 누구나 동백꽃을 이야기한다. 제주 사람들에 게 동백꽃은 곶자왈에 자생하는 짙고 붉은 꽃, 오랫동안 마을을 지키던 커다란 나무의 검붉은 꽃, 그렇게 생명의 윤기를 발산하는 생명꽃, 환생꽃, 번성꽃이다. 동백꽃을 보며 생명을 이야기할 때 진정 제주 4·3이 꽃이 된다. 그때 동백 가지에 앉아 있는 돔박새(白眼雀 흰눈참새), 상상의 새 ‘비새’가 보일 것이다. (148쪽)

이제 나는 ‘낭그늘’에서 쉬고 싶다. 낭그늘은 시원한 나무 그늘이고, 낭만의 그늘이다. 미학의 명제인 ‘흰그늘’이며, 한라산과 바다, 제주의 빛깔, ‘파란 그늘’이다. 그곳에서 늑장을 부리며 천천히 세상을 바라보고 싶다. 잃어버린 사랑과 낭만을 찾아 긴 항해를 다시 시작하고 싶다. 새로운 깨어있음을 위하여, 낭만을 위하여 다시 한번 골을 비우고 싶다. 달변도 광기도 슬픔도 다 접고, 비울 것 다 비웠으니 이제 비로소 취할 수 있겠구나. (211-2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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