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덕환 시집 '섬에선 바람도 벗이다' 발간
강덕환 시집 '섬에선 바람도 벗이다' 발간
  • 현달환 기자
  • 승인 2021.12.29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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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덕환 시집 '섬에선 바람도 벗이다' 발간
강덕환 시집 '섬에선 바람도 벗이다' 발간

추천사 

“지만 몬여 가켄/ 놉드지 말곡”, “디 글라”.(「글라」 중에서) ‘자기만 먼저 가겠다고 나서지 말고 같이 가자’는 말이다. 그 부드러운 청유형이 시인과 오랜 시간을 함께할 수 있었던 힘이었다. 비겁한 타협이 아니라 단호하지만 부드러운 함께의 마음이었다. 힘들면 쉬면서, 혼자서 어려우면 여럿의 손을 빌려서라도 천천히 그러나 끝내 가닿자는 권유였다.

그러고 보니 시인은 대학 시절 ‘신세대’라는 문학동아리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빠르지는 않았지만 멈추지 않았다. 지금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몸매가 날렵해서 ‘날으는 생이꽝’, ‘날아다니는 새의 뼈’처럼 말랐던 때도 있었다고 한다. 그때부터 후덕해진 오늘까지 그는 매일 조금씩 나아가고 있는 중이다.

_김동현(문학평론가)

책 소개 •

제주의 영혼으로 쓴 시

강덕환 시인의 서정은 오롯이 제주섬의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이번 시집에 실린 어느 작품을 읽어봐도 제주 사람의 서정이 드러난다. 그 서정은 토속적인 동시에 역사적이며 근대적인 보편성과도 맥이 닿아 있다.

무엇보다도 강덕환 시인의 내면을 형성하고 있는 제주의 자연인데, 하지만 추상적인 자연이 아니라 낱낱의 사물들에 붙들린 시인의 영혼과 감성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시집의 제목에서부터 느낄 수 있듯 시인은 제주섬의 바람도 ‘벗’으로 삼기까지 한다. 시인은 제주를 상징하는 자연 및 생활의 사물들인 ‘돌하르방’ ‘동자석’ ‘흑룡만리’ ‘중덕바당’ ‘오름’ 등에 강력하게 귀속되어 있거니와 그런 존재들에게서 강인한 생명력을 수혈받기도 한다. 다음의 시편들을 보자.

바람에 맞서 어찌
맺힌 한 없었겠느냐만
그럴 때마다 길을 내어
이기지 않고 다스리려 했거니

_「돌담을 보면」 부분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후미진 구석
모로 누워 새우잠 지새우는
목 타는 들녘의 얼룩진 밤에도
가녀린 목줄에 핏대 세우며
흔들림도 꼿꼿이 서서 하리라

_「봄풀의 노래」 부분

그래서 제주섬의 자연과 사물 들에 붙들린 영혼이 토해내는 언어 또한 제주의 것이니 시집의 3부에서는 제주어(語)로 쓰여진 작품들이 집중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이는 시인의 의식적인 기획이 아닌 것이, 3부가 아니더라도 다른 작품들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제주어를 보면 알 수 있다.

이런 제주어로 시 쓰기는 제주 사람이 아니면 접근하기도 그리고 작품의 서정을 느끼기도 쉽지 않지만 그것 자체로 큰 의미를 지닌다. 오늘날처럼 언어 제국주의가 일반화된 현실에서는 특히 그렇다. 하지만 강덕환 시인의 제주어로 시 쓰기에 대해서는 별도의 비평이 필요할 것이다.

4•3이라는 심연

강덕환 시인의 서정이 역사적이며 근대적인 보편성과도 동떨어지지 않는다는 말은, 2부에 주로 실린 이른바 4•3시편들 때문에 가능하다. 제주 사람들에게 4•3이 갖는 의미는 아주 남다르며 이는 제주의 역사를 직접적으로 통과한 이가 아니라면 제대로 헤아리기도 쉽지 않은 영역이다. 그만큼 4•3은 제주 사람들에게 깊은 상처를 주었으며 동시에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세계적인 시야를 심어주기도 했다. 이에 대해 강덕환 시인은 시적인 형태를 잠시 물리면서까지 다음과 같이 단언한다.

해방정국 제주에서
탄압에 저항하고
통일 독립을 위해
봉기한 주민들을
가혹하게 학살한
미증유의 대참사

_「4·3이 머우꽈?」 부분

해방된 한반도에서 단일 민족국가를 세우는 일은 그야말로 근대성을 쟁취하는 가장 정치적이고 급박한 문제였다. 이것을 방해하는 정치권력을 향해 “봉기한 주민들”이 바로 1948년의 제주 사람들이었으며, “봉기한 주민들을/ 가혹하게 학살”하고 세워진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이를 명료히 함으로써 강덕환 시인은 제주가 갖는 ‘역사적이며 근대적인 보편성’을 내화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미증유의 대참사”를 넘어서야만 도달할 수 있으니 시인 개인에게는 고통 그 자체였을 것이다.

평론가 김동현이 쓴 ‘발문’에서도 드러나듯이 강덕환은 “1987년 6월항쟁 이후 제주에서 발행된 『월간 제주』 기자 시절 제주 4·3의 진실을 찾아 섬 곳곳을 돌아다녔던 그의 이력에서 알 수 있듯이 제주의 역사는 그에게 오랜 숙제였다. 섬은 언제나 그의 존재 근거였다.” 이런 시인의 내력이 시의 성패 여부를 곧바로 결정하지는 않지만, 시세계의 핵심을 만들어주기는 한다. 이런 시인의 관심은 ‘노근리 학살 사건’으로도 옮겨 붙고, 나치에 의해 벌어진 유대인 홀로코스트에게도 닿아 있다. 당연히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현재를 향해서도 뜨겁다.

맨몸으로 사는 씨앗으로서의 시

이런 모든 시적 실천과 사유들도 결국은 다음과 같은 시의 고갱이에서 시작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개별적인 작품은 이렇게 본원적인 ‘시’가 역사와 현실을 만나 펼쳐진다. 하지만 시는 역사보다도 그리고 현실보다도 깊은 데에서 자라고 그것들보다 먼 데까지 나아간다. 시는 곧 “맨몸으로” 사는 “씨앗”이기 때문이다.

그슬린 겨울만이 마지막 여운으로 남아
햇빛 앉은 돌담 위로
발돋움하고 보는 아침이 열린다

먼발치로 다가서는 일상의 되풀이가
흙 묻은 껍질을 깨트리며 일어서고
맨몸으로 살아온 씨앗에게도
눈부셔 비비는 시간이 머문다

_「돌아눕는 계절」 부분

저자 소개

강덕환

제주 출생. 시집 『생말타기』(1992)로 등단. 4·3시집 『그해 겨울은 춥기도 하였네』와 공저 『4·3문학지도Ⅰ.Ⅱ』 등이 있다.

시인의 말 

어쩌나

섬과 바람

이념과 생존

표준말과 제줏말

분단과 통일

이 불편한 동거 앞에

나의 언어는

여전히 어쭙잖다.

모자란 탓이다.

책 속으로 

꾸불꾸불 이어진

돌담, 너를 보면

참 모나지 않아서 좋다

울담이건, 밭담

잣성이건 환해장성

흑룡만리 너, 돌담을 보면

거대한 흐름이어서 좋다

바람에 맞서 어찌

맺힌 한 없었겠느냐만

그럴 때마다 길을 내어

이기지 않고 다스리려 했거니

참고 참았다가 마지막 순간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빛깔

시뻘건 불로 치솟았다가

화산회토와 벗하여

역사의 긴 강

이어가고 있거니

_「돌담을 보면」 전문

짓밟혀 억눌린 서러움쯤

힘줄 돋운 발버둥으로 일어서리라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후미진 구석

모로 누워 새우잠 지새우는

목 타는 들녘의 얼룩진 밤에도

가녀린 목줄에 핏대 세우며

흔들림도 꼿꼿이 서서 하리라

없는 듯 낮게 낮게 엎디어

봄을 예감해온 눈빛끼리

밑동에서 길어 올린 자양분

은밀하게 서로 나누면

인동의 단맛 스미고 스며

마침내 열리는 눈부신 봄날

_「봄풀의 노래」 전문

그슬린 겨울만이 마지막 여운으로 남아

햇빛 앉은 돌담 위로

발돋움하고 보는 아침이 열린다

먼발치로 다가서는 일상의 되풀이가

흙 묻은 껍질을 깨트리며 일어서고

맨몸으로 살아온 씨앗에게도

눈부셔 비비는 시간이 머문다

태곳적에도 요동(搖動)의 역사는

아침에서부터였을까

뿌리에서부터였을까

기다림에 살이 터져 새싹을 추스르는 대지는

본래는 한 덩이였던 육체를 둘로, 셋으로

수만 개로 가르는 아픔을 견디라 한다

하늘에 다다르려는 가지에도

아직 가리지 못한 한 뼘의 공간으로 남기를 빌며

계절은 이제 돌아누울 자리를 다독인다

-「돌아눕는 계절」 전문

필요한 것 있거들랑

모두 가지고 가라

마지막 헌신으로

먹구슬나무

홍자색 꽃잎 풀풀 날리는 어느 날

문득 와도 좋고

기별하여 와도 좋다

눈부셨던 날들은

성냥봉만큼의 알싸한 추억은

가지 끝마다 매달려 있기에

다시 시작하여도

늦지 않으리, 오히려 안성맞춤이리

병아리 깃털만 한 잎사귀들

한껏 부풀었으니 다들 불러 모아

한 뼘 한 뼘 더위 피할 그늘

만들어줘야겠네

_「초여름을 맞으며」 전문

차례

시인의 말•5

1부 이 섬에 내가 있었네

돌하르방·12

동자석·14

돌담을 보면·16

산담이 있는 풍경·18

흑룡만리·20

새철 드는 날·22

봄풀의 노래·23

서천꽃밭·24

떠도는 섬·26

이 섬에 그가 있었네·27

중덕바당·30

육성회비·31

풀무치·32

달그리안·34

샛알오름·36

2부 뼈와 살 맞춰 피와 숨 불어넣고

4·3이 머우꽈?·40

저항·42

게미융헌 상·43

공소기각·45

다시, 도령마루에서·46

가메기 모른 식게·47

백비·49

살처분·50

노근리·52

관탈섬을 보며·53

톱니바퀴는 구속되지 않는다·55

산란이 들판·57

4·3특별법 개정을 아룁니다·59

어떤 여론조사·61

그릅서, 가게마씀·64

4·3, 유엔에 가다·68

3부 아무 쌍 어시

여름날·72

잔해불게·74

틈·75

비념·77

그게 그거·78

엿, 먹다·79

오몽·80

나대·81

아무 쌍 어시·82

쉰다리·83

태풍 부는 날·84

쌉지 말라·85

고짜 사불라·86

글라·87

4부 꽃은 섬에서도 핀다

촛불 2016·90

탄핵소추의 겨울·91

말, 말 육성 목장·92

봄날·93

푸닥거리·94

돌아눕는 계절·95

초여름을 맞으며·96

여아대(如我待)·97

어쩌다, 환갑·98

소원성취·100

날 정다십서·101

분꽃, 하얀·103

발문

마농지 해방구의 돌하르방 시인(김동현)·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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