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평론]문인화(文人畵)의 정서적 공간개념 ...문인화의 사전해석을 말한다
[미술평론]문인화(文人畵)의 정서적 공간개념 ...문인화의 사전해석을 말한다
  • 현달환 기자
  • 승인 2023.12.14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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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산 신승행 시인.문학평론가
구산 신승행 시인.문학평론가

◇들머리

`숨을 쉰다. 논제를 문인화의 정서적 공간개념으로 잡은 이유다.
그렇다면 우리가 말하는 문인화(文人畵)의 사전적 해석은 어떠한 것인가?

그것은 중국 회화사(繪畵史)의 2대 유파인 남종화(南宗畵)와 북종화(北宗畵)의 화풍에서 유래했다고 볼 수 있다. 즉 남종화는 당(唐)나라 때 왕유(王維)를 원조로 하는 화가들의 화풍에서 이어져 왔고, 북종화는 이사훈(李思訓)과 이소도(李昭道)의 화풍에서 이어져 송(宋)나라 전반에 걸쳐 전성기를 이르고 있었다.

그러나 이론적 배경은, 1610년 경에 주창한 명(明)나라 말기 동기창(董其昌)의 남종화 이론과 막시룡(莫是龍)의 북종화 화설(畵說)에서 비롯된 것이다.

즉 사대부 또는 문인들이 여가로 그린 그림을 남종문인화로 정의했다면, 북종화는 전문적인 화공들이 그린 그림을 지목한 것이다. 화가의 신분과 화가의 양식적 배경을 토대로 화풍을 구분하여 지칭한 것이다.

그렇다면 문인화에 대한 우리나라의 <국어사전> 사전적 해석은 어떠한가?

그 원문부터 살펴본다.

* 문인화〔文人畵〕(미술) : 직업적인 화가(畫家)가 아닌 문인이 여기(餘技)로 그리는 그림. 중국 송(宋)나라 때에 한창 행하여졌는데, 종래에 내려오던 전문적인 화가의 형식을 취하지 아니하고 자유로운 수법으로 수묵(水墨) 또는 담채(淡彩)로 속세를 떠난 운치(韻致)있는 화풍을 이루었음. 나중에는 남종화(南宗畵)와 합하였음

『국어대사전』(이희승 편저) 민중서림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결국, 중국의 2대 화설(畵說)인 남종화의 화설과 북종화 화설까지 병합시킨 흔적이 분명한 것이다. 즉 “직업적인 화가가 아닌 문인이 여기(餘技)로 그리는 그림” 이것이다. 말하자면 직업적 전문성을 가미시킨 이러한 정서가 문제라는 것이다. 문인(文人)이란 개념은 시가, 문장, 서화(書畫) 등에 뛰어난 사람들 또는 문학과 예술을 아울러 창작하는 사람들을 총칭한다.

영어사전도 “a painting in the literary artists style”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즉 “문인들이 나름대로 그리는 그림“ 이렇게 단순 정결하게 풀이하고 있다. 문인화는 분명 미술의 한 장르이기도 하지만 여러 장르들 중에서도 자연산수를 근간으로 형상화된 정서적 공간개념이 뚜렷한 예술이기 때문에 전문성 내지는 비전문성으로 구분하여 정의하는 것은 타당치 않다는 논리다.

◇문인화의 정서적 공간개념

저녁 노을을 지켜보고 있다. 天.地.人 삼재의 정서적 공간들이 대단한 것이다. 그 공간들은 훌륭한 그림이 될 수도 있고 나의 인생일 수도 있고 또한 철학이 될 수도 있다. 하늘이 아름다운 것은 별이 있기 때문이요, 땅이 소중한 것은 열매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세상이 아름다운 것은 사랑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들은 단순한 것 같지만 상당한 어휘력을 예시하는 정서적 공간이다. 훌륭한 예술로 발전할 수 있다는 공간개념인 것이다.

중국 시인 두보(杜甫)의 『태산가』나, 조선중기의 문신 양사연(梁思衍)의 『태산가』를 접하는 지금이 그렇다. 예술적 그림 이론을 잘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사철을 두루 갖춘 태산을 지켜보면서 함께 여유로울 수 있었다는 것은 정서적 공간을 함께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두보는, 태산 정상에 올라 먼 하늘을 지켜보며 회심의 노래를 부른다.

천리를 내다보며 휘파람 새 보냈더니

만리에서 메아리 되어 돌아 오더라 ...

마음의 숨소리 그 자체인 것이다. 이 숨소리가 얼마나 절묘한가! 정서적 공간인 것이다. 그림으로도 욕심내는 순수 그 자체일 것이다.

조선중기의 문인이요 서예가인 양사연은, 인간의 존재와 자연의 깊은 속성을 셈하면서 작품 한 수를 남긴다.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이 작품 역시 널리 회자되고 있지만 정서적 공간개념이 부담없이 큰 것이다. 우리 인간은 이러한 정서속에서 숙명적인 삶을 이어가고 있다. 순수 인생인 것이다. 인간은 버리고 싶지 않은 안타까움들을 늘 낙서로 시작해서 한가한 이미지의 정서를 남기고자 하는 충동을 만든다. 그림인 것이다.

미술은 이러한 공간 및 서정적인 미의 세계를 추구한다. 아름다움을 시각적 조형적으로 표현하는 예술이 된 것이다. 문인화 역시 그림이란 장르와 함께 수묵이나 선과 색상의 조화미속에 정서적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직업적인 화가가 아닌 문인들이나 사대부들의 여기(餘技)

즉 남는 재주로 그리는 그림 ?”

그래서 문인화에 대한 사전해석은 이렇게 석연치 않다는 논리에 접근된다.

위에서 말하는 “직업적인 화가가 아닌” 이런 논리가 예술로서의 그림정의를 오독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문인화는 문학이나 그 어떤 장르 못지않게 예술적 상상력이나 정서적 공간개념이 뚜렷하기 때문에 문제로 돋보이는 것이다.

통일신라시대 솔거의 『노송도』가 그러하듯이, 김정희의 『세한도』까지도 이런 기초논리 속에 당당한 우리 문화유산으로 미화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문학가나 사대부들이 여흥삼아 그린 그림이기 때문에 사인지화(士人之畵) 사대부화(士大夫畵) 문인지화(文人之畵)로 불리다가 문인화(文人畵)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우리나라 문인화의 최고 정수를 보여주는 작품은, 솔거(率居)의 『노송도』와 추사 김정희(金正喜)의 『세한도』까지를 주목하는 것이다.

이 작품들은, 미술사에서 최고의 이론과 시와 그림을 고루 겸비한 최상의 경지를 이룬 공간이 된다. 그래서 『세한도』는 1974년 문화재 국보로 지정되어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음이 이를 증명하는 것이다.

문인화의 기본적인 소재는, 불의에 굴하지 않는 인고의 정신을 표상으로 삼고 있었다. 그래서 문인들이나 선비들이 주를 이루웠고 기본 소재도 매화나

난초, 국화나 대나무 이렇게 사군자(四君子)를 기본 정신으로 삼았던 것이다. 매화는 설한(雪寒) 속에서도 고고하게 꽃을 피운다해서 선비정신을 표상으로 삼았고, 심산유곡(深山幽谷)에 꽃을 피우면서도 향기를 자랑하지 않는다는 해석으로 난초를 그렸다. 또한 늦가을 첫 추위와 서리를 타는 자태를 두어 국화를 선택했다면 가난했어도 곧은 절개를 상징한다 하여 대나무를 접했다. 우리들만의 전통적인 정서와 묘사기법들이 상존한다는 증거가 될 것이다.

◇인간과 자연이 품는 정서적 공간

문인화는 결국 인간과 자연이 만든 정서적 공간이다. 즉 진경산수(眞景山水)의 정서 흐름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天.地.人 삼재 공간을 소재로 존재하기 때문에 숨길이 흐르고 눈길이 와닫는 감성이 펼쳐지고 있다.

흘러가는 구름을 보고 인생무상을 노래한다. 덧없이 스쳐가는 바람을 놓고 세월이라 가슴을 친다. 높은 하늘을 보며 자신의 존재를 논하기도 한다.

산수의 무거운 침묵을 지켜보면서 깊은 바다가 품고있는 미래를 헤아린다. 흥분도 경험한다. 산새들의 알 수 없는 대화들, 한 그르의 나무가 우리 인간들의 초췌한 모습을 빗대기도 한다. 이 모든 것들이 우리 인간들에게 던지는 붓끝의 무거운 정서적 공간이 된 것이다.

그래서 문인화는 예술로서의 크나큰 가치를 지니는 것이다.

달아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

작가와 연대까지 알 수 없는 민요조의 노래지만 하나같이 오래 회자되고 있어 문학일 수도 있고 그냥 그림일 수도 있다. 마치 한 폭의 그림을 연상케하는 마음의 정서가 존재한다. 언어심리가 이렇게 큰 끈을 만들고 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오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이 노래 역시 오래도록 구전되어 회자되고 있지만 우리들 마음속에는 언제나 남아도는 우리네 삶의 고갯길을 연민하고 있다. 산길따라 물길따라 이어지는

인생의 작은 능선들을 시각적으로 느끼도록 한다. 능선처럼 이어지는 아리랑

고갯길 버릴 수 없는 정서적 공간들이다. 한 폭의 그림을 연상케 한다.

아리랑에 대한 연구는 다양한 시각으로 수없이 연구되고 있다. 사전에는 “아리랑 타령의 준말”로만 풀이되고 있지만 그러나 후렴으로 쓰일 때는 감탄사로 나타난다. 우리네 인생길을 무겁게 넘나드는 삶의 능선일 수도 있다.

기독교 용어인 “아멘(A-men)” 역시 기도나 찬송뒤에 ‘진실로’ 또는 ‘진실로 그러하다’라는 동의의 뜻으로 쓰이고 있지만 ‘아 ~’라는 의성어가 선행되면서 감탄사로 이어진다. 이것 역시 삶의 고갯길을 넘는 인생의 고행길같은 공간으로 그림이 될 수도 있다. 이러한 정서적 공간개념을 다음과 같은 도표로 도해해 보았다.

* <도표>

          공간개념 삼각도(三角圖)

                Nature Human

                자연 情 緖 인간

                      emotion

              Psychology of language

                      언어심리

문인들이 시도하는 기초적 원고는 낙서로 시작할 수도 있지만 그림의 일반적인 기초수단도 될 수 있다. 여기서 형상화 된 天.地.人 삼재 정서가 바로 문인화의 공간개념이 되고 있다. 즉 인간과 자연이란 공간속에서 언어심리가 정서로 발전되다면 이것이 바로 문학이나 그림의 소재로 응용된다는 것이다. 그림은 자연을 기초정서로 포용하는 것이어서 여기에는 전문성 비전문성이란 논리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 인간은 자연을 숙명적인 삶의 공간으로 삼고 있다. 손으로는 비록 낙서가 될지언정 마침내는 문학이 되었던지 아니면 그림으로 형상화 되었던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이 선과 색상 또는 지필연묵(紙筆硯墨)을 통해서 가시화되어 나타날 때 天.地.人 삼재는 정서적 공간을 만드는 중심 소제가 된다.

어렵게는 언어심리에 바탕을 둔 접근법으로 작품의 완성도 바로 문인화 화풍의 도를 짐작케 할 수 있다. 문학이나 그림의 개념 그 기초 시점이 바로 문인화의 정서적 공간인 것이다.

◇우리 문인화의 역사적 배경

선사시대(先史時代)의 유물로서 바위그림 즉 암각화(巖刻畵)란 유적도 그 가치를 지닌다. 그러나 필요한 것은, 문인화에 대한 흐름과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는 것이다.

조선초기의 그림은, 왕실이나 선비들의 초상과 의식(儀式)을 그리는 기록화(記錄畵)와, 대나무와 산수 . 새와 짐승들을 소재로 하는 감상화(感想畵) 화풍인 이 두 측면이 근간을 이룬다. 조선초기의 문인화가 강희안(姜希顔)은 화가로서의 이름을 남기는 것을 꺼려 자신의 그림을 모두 없애버리도록 하였다.

왜 그랬을까? 그리고 시와 그림과 글씨에 능한 예술가 신사임당(申師任堂)의 『산수도(山水圖)』와 『노안도(蘆雁圖)』는 어떠한가? 이것 역시 한국적인 정서로서의 변화하는 좋은 예가 될 것이다. 또 추앙받는 주된 인물인 세종 때의 안견(安堅)의 화풍도 조선중기까지 승계되었다. 포도와 매화에 능한 이계호(李繼祜)와 황집중(黃執中) 등 다양한 흐름들 역시 여기서 감지된다.

조선후기의 그림은, 건축이나 글씨 등 모든 예술분야에서 새롭게 변화하는 시대였다. 즉 남종화(南宗畵)가 전래되면서 많은 영향을 받았고, 우리의 진경산수 화풍이 일어난 시점도 된다.

이때부터 조선시대 미술은 관념산수(觀念山水)와 진경산수(眞景山水)의 두 정서를 지향하고 있었지만 그러나 지금은 중국풍의 관념산수에서 벗어나 우리들 정서적 공간만을 추구하는 진경산수화가 한국 회화사의 새로운 예술로 바르게 정착된 것이다.

명실상부한 문인화의 뿌리가 된 것이다. 특히 문인화로 유명한 강희안(姜希顔)의 『산수인물도』와 강세황(姜世晃)의 『난죽도』 심사정(沈師正)의 『산수화』 등은 깊이 있는 흐름으로 등장된다. 그리고 조선후기의 추사 김정희(金正喜)의 『세한도』 또한

긍정적인 화풍으로 문인화는 절정을 맞게 된 것이다.

조선시대 3대작가 안견(安堅)의 『산수도』 김홍도(金弘道)의 『금강산도』

장승업(張承業)의 『매화도』 등은 한국적 문인화의 미래로 발돋음하는 벅찬 화풍으로 존재하고 있다. 특히 김홍도의 『씨름』과 『금강산도』는 한국적 문인화의 풍속화로도 그 특성을 지닌다. 우리나라 문인화의 자존심이기도 하다.

때문에 중국의 화풍인 남종화(南宗畵)와 북종화(北宗畵)의 실체는 역사적 흐름에서만 잠시 존재한 것 뿐이다. 사전해석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이유다.

추사 김정희는, 이하응(李昰應)과 민영익(閔泳翊)의 『묵란도』는 구한말 격동기를 살았던 우리 문인화의 최고 작품이라 극찬했다. 특히 1703년 제주목사 이형상(李衡祥)의 기록화첩인 『탐라순력도』와 1844년 제주 유배문학의 산실인 『세한도』는 바로 한국적 문인화의 정통성을 그대로 예시했던 폭넓은 한국적 화설(畵說)이 된 것이다.

그렇다면 20세기의 한국적 문인화에 대한 정도를 살펴봐야 할 때다.

우리나라는 1945년 해방과 더불어 조선미술협회가 창설되었으나 1948년

에 정부수립이 되면서 대한미술협회로 새로 변신하여 태어난 게 전부다.

그리고 대한민국 미술연혁은, 1949년 이승만 정권에 의해 창설된 대한민국미술전람회를 모태로 1982년까지 명실공히 크게 발전되었다는 사실이다.

부연하면, 1949년 관주도의 국전(國展)에서 1982년 민간 주도인 민전(民展)으로 변신되는 예술속성이 바로 그것이다. 더 큰 역사적 시원은, 1945년에는 이화여자대학교, 1946년에는 서울대학교, 1949년에는 홍익대학교가 각각 미술학부를 개설했다는 사실이다. 교육에도 긍정적인 학풍으로 그 가치를 지니게 됐다. 1953년에는 새로 발족된 대한민국 미술대전에 문인화 부문도 드디어 발을 내딛게 된다. 그래서 국민적인 관심을 불러 이르키는 역사적 시점도 마련된 것이다.

어쨌든 1948년은, 우리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대한민국 미술전람회가 경복궁 미술관에서 개최되었고 또한 『조형예술』과 『예술부락』이라는 예술지까지 등장되면서 학술활동 및 신인 발굴활동에도 큰 토대를 마련하게 되었다.

이 외에도 법인체 및 예하단체 수만도 상당하여 우리나라 문인화가 우리들 일상속으로 폭넓게 발전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문인화의 미래인 것이다.

미래는 오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만들어가는 것이다.

◇결론

우리 문인화의 명칭은, 중국 명나라 때 서화가인 동기창((董其昌)에 의해 창안된 남종문인화의 화설(畵說)에서 비롯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문인화는 조선시대의 진경산수(眞景山水)의 순수한 정서공간에 뿌리를 두고 있었기 때문에 남종문인화와는 그 결 자체가 분명히 다른 것이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성철스님의 법어지만 조금도 착오없이 바로 비치는 것을 의미한다. 중국 고대의 전설적 왕조는 하(夏)나라다. BC 2070년 대에 존재했었지만 우리나라의 최초 왕조는 BC 2333년에 고조선 왕조가 건립된다. 중국의 왕조보다 우리나라 단군 왕조가 당당히 앞서 존재했다.

문인화 역시 당나라 때 실존 인물인 왕유(王維)가 618년 대라면, 솔거(率居)의 『노송도(老松圖)』 무대는 통일 신라시대 즉 676년 대이기 때문에 동일한 시대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 문인들의 가장 좋아했던 주된 소재도 사군자 내지는 십군자 등 수묵산수인 것이다. 때문에 우리 문인화에 대한 사전적 해석도 중국 화설에 준한 “직업화가가 아닌 문인이 그린 그림” 이런 해석논리는 우리들의 서정적 공간이 아닌 것이다.

“중국 송(宋)나라 때에 한창 행하여졌는데, 종래에 내려오던 전문적인 화가의 형식을 취하지 아니하고 자유로운 수법으로 수묵(水墨) 또는 담채(淡彩)로 속세를 떠난 운치(韻致)있는 화풍을 이루었음. 나중에는 남종화(南宗畵)와 합하였음”

이러한 기록까지도 우리 문인화에 대한 정의를 오독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사전적 해석도 이제는 바꿔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더 이상 잘못된 기록이나 개념 오류는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명실공히 한국미술의 한 장르로서 당당한 “바른 해석”을 찾고자 하는 것이다.

그 대안으로,

* 문인화(미술) : 문학인이나 식자층들이 글과 함께 여가(餘暇)로 그리는 그림.
* 문인화(미술) : 문인들이나 사대부들이 시와 함께 여기(餘技)로 그리는 그림.

이러한 개념 흐름을 전제로 한국적인 고유성을 지닌 화풍으로 그 정의를 정착시키자는 것이다. 대한민국 국어사전은 이를 천명해야 할 것이다. 한국의 문인화 또는 수묵산수화의 고유한 뿌리가 되어야 한다는 논리도 포함된다.

문인화는 결국 한국적인 전통예술이다. 이런 전통 예술에서 정서적 가치를 지녀야 한다. 한국의 수려한 자연산수와 정서적 공간개념에서 비롯된 화풍으로 형상화된 우리 미술의 한 장르로서 감히 정착돼야 한다. 때문에 문인화의 사전적 해석도 바른 개념으로 바르게 정리되어야 할 것이다.

겸손한 마음으로 기대해 본다.

# 참고문헌

『한국미술50년사』 (2016) 한국미술협회.

『조선시대후기의남종문인화』 (1996) 이성미 고려대학교.

◆신승행(慎勝行) 시인 프로필

△1941년 1월 1일
△제주시 출생
△시인 . 문학평론가 . 문인화초대작가 . 서예초대작가
△아호 : 구산(龜山)
△전직 : 대학교수
△시집 : 『섬바다 숨비소리』 『문풍지』 『억새에 이는 바람소리』 외
△저서 : 『언어와 문학의 만남』 『시가문학의 정체성』 『문학과 사랑』 『문학과 비평이론』 시론집 『바람따라 구름따라』 등
△수상 : 대통령 표창 (1994.5.15.) . 황조근정훈장 (2006.2.20.)
△주소 : 제주시 우정로6길
△메일 : shinsh254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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