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기순 작가의 窓](1)화가의 꿈을 키웠던 아름다운 수정골
[안기순 작가의 窓](1)화가의 꿈을 키웠던 아름다운 수정골
  • 뉴스N제주
  • 승인 2023.09.10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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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랑 큐레이터
세계수퍼모델 심사위원
현)윤우디앤씨 대표
사랑의교회 아트디렉터

가을처럼 설레는 계절이 없다.

뜨거운 여름을 통해 이미 힘이 빠진 체력을 가을이란 계절을 통해 기력을 회복하기도 한다. 그러한 가을의 얼굴은 만나는 사람마다 희망을 갖게 한다.

뉴스N제주에도 반가운 사람이 찾아왔다. 가을처럼 가슴 설레이게 만드는 사람, 안기순 작가의 만남이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졸업 후 작가로 활동 중인 안기순 작가의 스토리를 뉴스N제주를 통해 만나게 된다. 매주 '안기순 작가의 창'이라는 제목으로 독자들과 만나게 될 스토리가 기대된다.

한국미술 작가로서의 이야기, 삶의 진한 향기가 배어 나오는 아름다운 이야기, 살아오면서 보고 느끼고 말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이번 뉴스N제주가 마련한 '안기순 작가의 창'을 통해 독자들은 접할 수 있다.

세상은 그림과 음악의 세계로 어우어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보는 것과 듣는 것이 아름답지 못하다면 매일 병원에 갈만큼 정신적으로 피곤하다.

이제 안기순 작가가 느끼는 예술가의 눈으로 펼쳐지는 작가의 창은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투영되어 감동을 줄지 벌써부터 마음이 설렌다.

안기순 작가는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졸업▲예화랑 큐레이터▲대림수산 홍보실장▲한국미술작가 대상▲경기여고 영매상▲세계수퍼모델 심사위원▲현)윤우디앤씨 대표▲사랑의교회 아트디렉터로 활동 중이다.

앞으로 많은 응원과 성원을 바랍니다. 고맙고 감사드립니다.[편집자 주]

안기순 작가
안기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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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의 꿈을 키웠던 아름다운 수정골

지금은 흔적도 없는 충남 유성의 수정골은 어린 시절 화가의 꿈을 키웠던 아름다운 마을이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부모님이 유성으로 잠시 내려가 살게 되면서 우리 자매들은 서울에 그대로 남아 학교를 다녔다. 기다리던 방학 날이면 우리는 바로 그날 유성으로 떠났다. 몇 개월 만이지만 너무도 보고 싶은 부모님, 특히 엄마를 만난다는 그 벅찬 기대와 설레임으로 가득찬 길이었다.

온천으로 유명한 유성 읍내에서 유성초등학교를 지나 조금 더 들어가야 나오는 수정골은 물이 맑고 깨끗해서 수정(水淨)골이라고 불렸고 실제 마을 우물 옆에는 오래된 석비(石碑)까지 있었다.

물이 맑아 수정골이라는 이 마을에선 길에 채이는게 수정석(水晶石)이기도 해서 마당 꽃밭의 경계석으로 삼는 집이 많았다. 자수정이 아닌 유리 같은 백수정이지만 맑고 빛나는 육각형의 보석결정체가 가득한 수정석들이 집집마다 마당에 흔하게 있었던 모습은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신기한 비현실적인 풍경이었다. 이래저래 수정골일 수밖에 없는 마을이었다.

주변에 논, 밭, 과수원, 목장들이 있었는데 얼룩 젖소가 한가로이 풀을 뜯는 목장에는 ‘싸이로(silo)’까지 있어 당시에는 보기 드문 마치 유럽의 농촌 같은 목가적이고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었다.

여름방학에 우리가 내려가면 과수원 집에서 복숭아 자두 포도 등의 과일을 한 통 가득 씩 들고 와 반겨주었다. 목장 옆 오솔길을 걸을 때 보이는 싸이로에는 무엇이 들어있을까 궁금해하면서 빨간 색깔의 원추형 지붕에 매혹되어 그림으로 그려보기도 했었다.

예쁜 풀꽃은 또 얼마나 많았었는지. 마을 뒷동산 양지바른 무덤가에 핀 패랭이꽃, 텃밭의 도라지, 부추, 가지꽃도 참 예뻐서 그대로 그려보려고 애를 쓰기도 했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저절로 그림공부가 되었던 것 같다.

겨울에 눈 쌓인 마을의 풍경은 가히 압권이었다. 하얀 눈이 쌓인 논은 그 자체로 도화지였다. 그 논을 도화지 삼아 나뭇가지로 나지막한 앞산과 초가집, 까치를 그리며 나름대로 풍경화를 그려보기도 했었다. 그 시절 그런 풍경을 바라볼 수 있었고 논이라는 그 큰 도화지에 그려 볼수 있었던 것은 분명 내게 행운이었다.

유성 읍내에서 5일 장이 열리는 날, 방앗간은 굴뚝으로 동그란 반지같은 하얀 연기를 퐁퐁 뿜어내며 바쁘고 신나게 마을 사람들이 가져온 고추, 쌀 등을 빻았다. 나중에 어느 곳에서도 방앗간의 그런 연기를 본 일이 없기에 요즘같이 휴대폰이 일상화되었었다면 사진으로 남겨두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크다.

싸이로가 건초 저장고임을 알게 된 후 잠시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가 되어 다락방 건초 매트에서 풀향기를 맡으며 행복하게 잠드는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기도 했던 곳. 마을풍경의 아름다움에 감동하여 그림으로 그리며 화가의 꿈을 키웠던, 그 수정골은 태어난 곳은 아니지만 그립고 가보고 싶은 마음의 고향으로 남아있다

세월이 한참 지난 후 유성에 갔을 때 유성초등학교는 그대로 있지만 다른 곳은 공설운동장과 대학교, 쭉쭉 뻗은 넓은 도로와 함께 아파트 등 큰 건물들이 가득 들어차 있어 수정골의 어떤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지명(地名)마저 사라지고 빛 바랜 사진조차 남아 있지 않음이 안타깝지만 내 마음속에서는 아직도 선명한 추억 한 켠으로 살아있음이 참으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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