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회 4.3평화문학상 당선작, 시부문 유수진의 '폭포' 선정
제10회 4.3평화문학상 당선작, 시부문 유수진의 '폭포' 선정
  • 현달환 기자
  • 승인 2022.03.14 18: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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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및 논픽션 수상작 못내...시상식 3월 25일 오후 3시
제주4.3평화재단
제주4.3평화재단

제10회 4.3평화문학상 당선작이 결정됐다.

제주4.3평화문학상 운영위원회는 14일 유수진(대전)의 '폭포'를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장편소설과 논픽션 부문에는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했다.

지난해 5월 10일부터 12월 10일까지 공모 결과 시 830편(83명), 장편소설 73편(65명), 논픽션 4편(4명) 등 총 907편이 접수됐다.

심사위원은 시 부문에 김사인, 안도현, 이문재 시인이 장편소설에는 공선옥, 방현석, 정홍수 위원이 논픽션 부문에서는 강덕환, 이상락 씨가 심사를 맡았다.

한편, 시상식은 오는 25일 오후 3시에 개최될 예정이며 장소는 추후 공지된다.

◇시부문 당선작 감상

폭포

폭포는 순간이 없다.
멈춤이 없다.
멈춤이 없으니 지구의 부속품 중 하나

폭포 아래에는 지구의 명치가 있어서 지구와 같은 시간을 흐르고 지구와 같은 기억을 간직하고 지구와 같은 길이를 짊어지고 지구와 같은 두통을 앓는다. 지구의 이마를 짚는 폭포. 쏟아지는 이유를 들어보자. 움푹하게 패인 곳을 더 움푹하게 파는 낙하가 그곳에 있으니, 움푹하게 패인 곳을 치는 주 먹들이 있으니.

그곳에 소란이 있으니.

폭포 위에서 사람이 죽었다. 그건 떨어지는 물보다 더 빠른 죽음이었겠지. 그건 쏟아지는 하늘보다 더 파란 죽음이었겠지. 순간이 있었다면 치솟는 일 같은 건 생각도 않고 아래로 아래로 순응하며 살 수 있었을 텐데. 차라리 바닥을 천명으로 여기고 손안의 주먹밥이 식은 걸 팔자 탓으로 돌릴 수 있었을 텐데. 문득 올려다 본 곳엔 두 손에 묶인 채 위로 위로 끌려 올라가는 폭포가, 파랗게 질려서 밑동까지 덜덜 떠는 폭포의 귀청들이,

폭포를 보고 있으면 계속 흐르는 중인지
계속 치솟는 중인지 모를 때가 있다.
함께 흐르는 듯 함께 치솟는 듯 해 폭포에게
무엇을 봤냐고 물어본다.

귀가 어두워서
모른다고 못 들었다고
못 봤다고 하고
바닥에서 다시 튀어 오르는 물은 마치 무명천이 펄럭이는 것 같다.

흘러간 물을 되돌리려 안간힘을 쓰는 폭포. 이미 흘러간 물줄기는 천 리를 지나고 만 리를 지나고 지금쯤 어느 별에 닿았을 것인데.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낮마다 밤마다
아무도 모르게 폭포는
그 옛날의 물줄기를 계속 끌어올리고 있다네.

유수진 작가
유수진 작가

◇심사평

제10회 제주4·3평화문학상 시 부문 심사평 폭포와 죽음의 역동적인 대비에 성공해 제주4·3평화문학상은 공모주제를 미리 제시하고 작품을 모집하는 문학상이다.

‘4·3의 진실,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평화와 인권’이 그것이다. 이에 따라 창작자들은 제주4·3의 역사성에 기반을 둔 미래지향적인 가치를 언어로 형상화하려고 궁리를 하게 된다.

사실 창작자의 입장 에서 보면 소재를 선택하고 작품의 밑그림을 그리는 일에서부터 사전에 미리 제시된 주제로부 터 자유롭지 못한 게 사실이다.

주제에 매달리면 문학성을 의심받고 주제로부터 멀어지면 진 정성을 의심받게 되므로. 시는 어떤 정답을 그대로 드러내는 양식이 아니라 정답을 숨기면서 정답에 근접하는 양식이다. 그것이 설사 옳다 할지라도 4·3이라는 사건을 도식적으로 표현하는 작품은 읽기가 거북했다.

민간인 희생의 현장을 배경으로 하고 제주 방언을 몇 차용한다고 해서 4·3이 문학적으로 완성되는 건 아니다, 시는 그 매너리즘을 넘어서서 인식의 새 지평을 제시해야 할 의무가 있다.

올해 10회째를 맞은 이 문학상이 더욱 권위 있는 문학상으로 자리 잡으려면 줄곧 희생자 의 입장에서 현실을 드러내던 방식을 이제는 좀 수정을 해야 하지 않을까? 희생자의 상처와 고통을 직정적으로 토로하는 방식은 수없이 봐왔다.

가해자의 입장, 가해자의 반성과 자기 극 복의 관점을 보여주는 시는 어찌해서 단 한 편도 만날 수 없는가? 역사적 사실과 시적 심미 성은 별개가 아니다.

4·3은 상처를 추념하는 예술이 돌파하기 어려운 굴레이기도 하다. 그렇 기에 4·3이 인류의 보편적인 공감을 획득하는 차원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시적 상상력의 전 복이 더욱 필요한 때이다. 우리는 31의 「폭포」를 올해의 당선작으로 선정하는 데 합의했다.

이 작품은 폭포라는 소재 를 죽음과 대비하면서 역동적인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후반부로 가면서 힘찬 긴장감이 더해지는 이 시는 폭포가 “그 옛날의 물줄기를 계속 끌어올리고 있다”는 인식으로 발전한다.

시인의 인식이 독자에게 충분히 전이되어 설득력을 얻는 지점이다.

이분은 제주에 경사가 많다는 점에 착안해 “삼십 도는/ 후회하기 좋은 경사인가”(「경사」) 묻기도 하고, 망자 가 누운 관속의 빈 공간을 “허방을 짚는 일”(「발끝의 사례」)로 파악하면서 유보를 통해 고통 을 드러내는 방식에 능하다.

구문의 적절한 반복으로 시의 가독성을 높이고 있는 점도 좋게 보았다. 수상작과 함께 오래 검토한 73은 구어체적인 진술이 능숙했으나 4·3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개괄하는 듯한 목소리가 아쉬웠다.

시에 각주를 지나치게 나열하고 있는 점도 거슬렸다. 29는 시적 정황에 대한 실감 어린 묘사가 볼 만했으나 ‘작시(作詩)’의 의도가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다. 본인의 유려한 목소리를 본인만의 방식으로 표현하는 길을 모색해보기 바란다. 2월 말의 제주는 ‘먹쿠슬낭’으로 부르는 멀구슬나무 열매가 가지마다 조롱조롱 매달려 있었 다. 소리가 날 것 같았다.
- 심사위원 (시인 김사인, 시인 이문재, 시인 안도현)

제10회 제주4·3평화문학상 장편소설 부문 심사평 제10회 제주4‧3평화문학상 장편소설 부문에 응모한 작품은 모두 일흔세 편이었다.

다섯 분 예심 위원의 꼼꼼한 검토를 거쳐 본심에 올라온 작품은 <칼끝> <위대한 불신자> <열두 번째 거짓말> <자오선> <클럽 하이킨> 등 모두 모두 다섯 편이었다.

이야기를 엮고 만들어내는 기 술적인 측면에서는 다들 얼마만큼의 수준에 도달해 있었다.

그러나 왜 이런 이야기를 소설로 썼을까 하는 질문 앞에서는 마땅한 대답을 돌려받기 어려웠고, 심사는 힘겹게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엽기 만화를 연상시키는 과장되고 극단적인 인간 행동의 분출을 아무런 문제의식 없 이 밀어붙인 작품, 설명적 보고의 언어가 앞서고 대안적 믿음을 둘러싼 인물들의 이야기가 밋 밋한 알레고리적 제스처에 그친 작품이 가장 먼저 제외되었다.

<열두번째 거짓말>은 그런대로 문장과 구성은 안정적이었으나, 전체적으로 너무 모호했다. ‘거짓말’이라는 소설의 테마가 겨 냥하는 지점이 무엇인지, 끝내 설득력 있는 답을 얻지 못했다. 혼자만의 웅얼거림에 그친 것 같다는 지적도 있었다.

마지막으로 <자오선>과 <클럽 하이킨>을 놓고 긴 검토가 이어졌다. <자오선>은 어쩌면 무난한 작품일 수 있겠다. 이 작품은 제주 ‘4‧3’의 상처에 눈뜨는 젊은 세 대의 이야기를 ‘수목장’이라는 특별한 공간 안에 녹여내려고 한다.

그러나 수목장은 일종의 가 설무대처럼 보일 뿐, 살아 움직이는 생활 세계로서의 소설적 디테일을 얻지 못하고 있다. 이 야기를 거들고 있는 ‘영화’라는 보조적 플롯도 그러했지만, ‘4‧3’ 역시 서사의 도구에 그친 느 낌을 지울 수 없었다.

<클럽 하이킨>은 다양한 정보들을 장편 규모의 서사로 엮는 솜씨에서는 능력을 인정할 만했다. 한 세기 한국 근현대사를 ‘낭만과 혁명’이라는 상상의 집단을 중심으로 소설화하려는 아이디어도 참신했다. 그러나 후반부로 갈수록 이야기의 작위성이 너무 두드러 졌고, 사건들은 남발되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자신의 소설 속 인물들을 너무 쉽게 죽이고 제거한다. 개연성도 그렇지만, 그런 식의 소설적 처리는 작품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와도 모순되고 배치되는 것이다.

특히 생명과 평화의 정신을 심화하고 확장하기를 바라는 ‘제주4‧3평 화문학상’의 이름에는 걸맞지 않은 작품이라는 데 심사위원들의 생각이 일치했다. 오랜 숙의 끝에 올해 ‘제주4‧3평화문학상’은 수상작을 내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 결정이 ‘제주4‧3평화문 학상’의 권위와 전통을 더욱 견고히 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응모자들의 분발을 바라는 마음으로, 심사위원 중 한 분이 심사를 마치며 남긴 소회를 덧붙이기로 한다. “문학이란 무엇인가.

욕망을 걷어낸 자리에서 시작되는, 속화되지 않는 자리에서 세속의 속살 을 드러내 보이는 것이 문학이다. 치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내보이면 읽는 사람은 수치를 느끼게 된다.

인간을, 세상을, 내 마음의 자리를 깊이 들여다보고 바로 그 자리에서 글쓰기가 시작 되기를 바란다. 문학은 세상을 변명해주지는 않지만 옹호하고, 옹호해주는 데서 끝나지 않고 더 깊은 데로 나아가야만 한다.” ― 심사위원(소설가 방현석, 소설가 공선옥, 문학평론가 정홍수)

제10회 제주4·3평화문학상 논픽션 부문 심사평 제10회 제주4·3평화문학상 논픽션 부문의 응모작품은 총 4편에 불과했다.

더욱이 공모기준에 적합하지 않은 경우가 3편이나 되어서 부득이 심사대상에서 제외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단심으로 심사가 진행되었는데 심사대상이 된 작품은 「동백꽃, 그 너머」 1편이었다.

이 작품은 1부와 2부로 나누어서 모두 16곳의 4·3 유적지를 찾아다니는 기행문 형식으로 기술되 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필자가 차용하고 있는 서술방식은 여느 수기나 기행문이나 전기문에서는 그 사례를 찾아보기가 힘든 독특한 방식이다.

필자는 ‘4·3을 직접 경험한 한 피해자 할머니’를 가상으로 설정해놓고 그를 대상으로 인터뷰를 하거나, 혹은 그 가상의 할머니가 사건의 현장이나 유적지마다 동행하면서 당시의 상황을 필자에게 들려주는 형식으로 작품을 전개하고 있다.

다루는 내용 역시 새로울 것이 없는, 이미 TV영상으로 방영되었거나 혹은 조사기관에서 이미 발굴하여 공표한 문헌사료들에서 인용하여 취하고 있다.

소설이나 시와는 달리 논픽션은 기본적으로 상상력의 여지를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그 동안 사건의 전모가 대부분 밝혀진 오늘의 시점에서, ‘감춰진 4·3의 진실’을 새롭게 드러내는 작품 을 써내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이미 발굴된 자료들을 질료로 삼되, 그것을 가상 인물 과의 인터뷰 방식으로 독자에게 들려줌으로써 형식상의 새로움을 추구하고자 고심한 필자의 노고는, 일단 평가할 만하다는 데에 심사위원들은 의견을 같이 하였다.

하지만 아무리 사실을 바탕으로 했다손 치더라도, 작품의 주요부분을 구성하고 있는 그 대화 체의 글들은, 결국은 필자 자신의 자문자답((自問自答)일 수밖에 없는 바에, 이러한 형식으로 는 논픽션의 생명인 객관성과 사실성을 확보하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데에도 견해가 같았다.

또한 무등이왓을 ‘4·3 최초의 피해지역’이라고 하거나, ‘구좌면에서는 제일 위에 있는 다랑쉬 마을’이라고 하는 등 사실관계와 일부 배치된 대목도 눈에 띄었고, 필자와 할머니가 대화를 이어가는 장면에서 할머니의 말을 두 번에 나누어서 연달아 인용부호로 묶는 대목이 간간이 등장하는 등 작은 실수들도 눈에 거슬렸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상의 ‘할머니’를 내세워 전지적 시각으로 풀어내는 방법으로는 논픽션으 로서의 신뢰를 획득하기가 쉽지 않을 뿐 아니라, 4·3문학상 공모에서 논픽션 부문을 신설한 취지와도 배치된다 판단하여, 유감스럽게도 당선작으로 뽑아들지 못 했음을 밝힌다. - 심사위원 (작가 이상락, 작가 강덕환)

◆유 수 진 작가 프로필
1971년 대전 출생 현재 경기도 고양시 거주 중 2021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시 부문, 당선작: 「저녁의 집」) 2015년 <시문학> 신인우수작품상(시 부문) 제 6회 <경북일보> 문학대전 동상 수상(소설 부문) 이화여자대학교 독어독문과 졸업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졸업(어학 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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