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제2회 서귀포칠십리문학상에 김효선 시인 ‘하논의 시간’ 당선
[문학]제2회 서귀포칠십리문학상에 김효선 시인 ‘하논의 시간’ 당선
  • 현달환 기자
  • 승인 2023.08.05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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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금 5백만원, 오는 10월 사계예술제 석상에서 시상

한국문인협회 서귀포지부(지부장 정영자)와 서귀포칠십리문학상추진위원회(위원장 강영은)는 제2회 서귀포칠십리문학상으로 김효선 시인의 ‘하논의 시간’이 당선되었다고 밝혔다.

서귀포칠십리문학상은 ‘예향 서귀포의 위상을 확고히 하는 한편, 한국문학의 뿌리로서 자부심을 드높이고자 지난해 제정된 서귀포의 대표적인 문학상이다.

작품 모집대상은 최근 5년 이내(2019.1.1.~2023.5.31.) 전국에서 발행하는 문예지나 동인지 등을 통해 서귀포시를 노래한 시와 시조 작품이 응모대상이었다.

한국문인협회 서귀포지부는 지난 4월부터 6월까지 전국 문인협회는 물론 전국 150여 개소의 문학동인지, 각종 언론 매체를 통해 작품을 모집했으며, 그 결과 172편이 접수되었다.

이에 따라 접수된 작품을 대상으로 두 차례의 예심과 지난 15일 본심을 거쳐 김효선 시인의 ‘하논의 시간’을 최종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이번 심사위원장을 맡은 문태준 시인은 “창작된 시편의 시적 안목, 감각의 새로움 등과 아울러 시적 화자가 서귀포라는 공간을 얼마나 경험적으로 표현했는지에 주안점을 두었다.”라면서 “당선작은 시적 인식을 견고하게 보여주는 수일(秀逸)한 작품으로 손색이 없어 심사위원들의 만장일치로 결정하게 되었다.”라고 밝혔다.

김효선 시인은 당선 소감을 통해 “고향을 쓴다는 것은 아픈 손가락을 건드리는 일처럼 어렵지만, 구멍 숭숭한 현무암 돌담 사이로 빠져나가는 바람처럼 쓰려고 했다.”라면서 “앞으로도 구석구석 걸으며 느끼고 또 성찰하며 서귀포를 향한 애정을 놓지 않겠다.”라고 말했다.

한편, 당선작에 대한 시상식은 오는 10월3일 서귀포천지연 상설공연장에서 개최되는 서귀포문학제에서 개최될 예정이며, 상금은 500만 원이 수여될 예정이다.

《당선작》

하논*의 시간

김효선

넓은 이마를 가진 사람을 만났다
이마가 좁은 사람은 미끄러지기 좋은
기억은 통조림 같은 것
가라앉은 입술을 꺼내기 전에는
은밀한 둘레를 껴안는 의식을 치를 것
수많은 날들을 만나고 헤어졌지만
쉽게 물러지는 복숭아처럼
여전히 사랑은 경전에서 멀어진
이단
재미라는 환상을 버려야 한다고
누군가는 말했지만
거울은 재미없는 사람을 먼저 데려간다
웃는 나를 본다 울고 싶은데
사라졌던 계절이 이마 한가운데
자운영으로 그렇게 서로에게 몰려 있다
나는 좀 모자라서 발목을 빠뜨린다
입술을 꺼내어 기어이 덫을 놓는
죽어야 끝나는 관계는 어떤 목숨의 종교일까
물기를 훔친 꽃들은
마음이 없는 곳으로만 고개를 꺾는다
깻잎장아찌를 떼어 주거나 머리카락을 떼어 주는
사소함이 이마의 전부를 가릴 만큼
웅덩이에 고인 사랑, 하늘의 낯빛이 맑다
그래, 용서할게

*제주도 서귀포시 호근동에 위치한 한반도 최대의 마르형 분화구.

김효선 시인

《당선자 수상소감》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보고 있었다.

인쇄된 이미지만 보다가 미술관에서 직접 그림을 대할 때면 그림 안으로 한 발짝 걸어간 기분이 든다. 그때 마침 진동으로 해 둔 전화가 울렸다. 미술관을 나와서 전화를 걸어야지 생각하고 받지 않았다.

그런데 몇 번이나 계속 진동이 울렸다. 급한 일인가 싶어 밖으로 나와 전화를 걸었다. 생각지도 못한 소식이었다. 물론 작품을 내긴 했지만 별 기대를 하지 않았다. 전국 공모이고 좋은 시들이 쏟아질 텐데 내가 되겠어? 하는 심정이었다.

갑작스러운 소식과 호퍼의 그림 중 바닷가를 배경으로 한 그림이 묘하게 겹쳐 보였다. 서귀포 바다 물빛이 호퍼의 그림에서 출렁거렸다.

서귀포를 쓴다는 건 아픈 손가락을 건드리는 일이다.

지독하게 나를 따라다니는 고향이라는 이미지. 그래서 선뜻 시로 쓰기 어려운 곳이기도 하다.

너무 가까워서 눈이 멀면 천둥 번개도 아름다움으로 포장된다. 그렇게 오랫동안 서귀포는 내 시 속에 없었다. 그러다 몇 년 전부터 내가 사는 제주라는 공간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고, 조금씩 시로 옮기기 시작했다.

최대한 멀지 않은 눈으로 쓰려고, 구멍 숭숭한 현무암 돌담 사이로 빠져나가는 바람처럼 쓰려고 했다. 말처럼 쉽지 않았다. 원형적인 사물과 풍경에서 삶의 궤적을 돌아보는 일은. 시는 날것에 의미를 부여해 새로운 이미지로 재탄생시키는 일이기도 하니까.

그렇게 시를 쓰려고 했고 앞으로도 계속 고민하는 지점이다. 단순히 제주가 서귀포가 아름다움으로 포장되는 것이 아니라 그 아름다움이 어디서 흘러나왔고 어떻게 삶과 연결되어 우리 앞에 서 있는지를.

기쁘고 좋은 일에 어떤 설명이 필요할까마는 시인으로 지금까지 흘러온 길을 돌아보았다.

내가 이런 상을 받아도 될까 하는 마음도 한구석에 남아 있었다. 내가 서귀포에 대한 애정을 그만큼 가지고 있는지도 곰곰 되짚었다.

어쨌든 한 가지 확실한 건 계속 시를 통해 서귀포를 노래할 것이라는 점이다. 구석구석 걸으며 느끼고 또 성찰하며 서귀포를 향한 애정을 놓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좋게 읽어 주신 심사위원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시를 향해 걸어가는 길에 함초롬히 피어 있는 꽃 한 송이 바라본다.

《김효선 시인 약력》

2004년 계간《리토피아》등단, 시집 ·서른다섯 개의 삐걱거림(문화체육관광부우수도서선정), ·오늘의 연애 내일의 날씨, ·어느 악기의 고백(2020년세종나눔도서선정), ·시골시인J(합동시집), <시와경계>문학상, <서귀포문학작품상> 외. 제주대학교 출강

《심사평》

문태준 심사위원장, 시인
문태준 심사위원장, 시인

-문태준 심사위원장, 시인

제2회 서귀포칠십리문학상 공모의 본심 심사는 시, 시조 작품 25편을 대상으로 본격적인 논의를 했다. 본심 심사위원들은 시와 시조의 장르적 특징을 감안해서 충분히 의견을 교환했고, 또한 이 상의 제정 취지를 심사의 중요한 준거로 삼았다.

창작된 시편의 시적 안목, 감각의 새로움 등과 아울러 시적 화자가 서귀포라는 공간을 얼마나 경험적으로 이해했는지를 함께 살폈다. 오랜 시간 숙의 끝에 김효선 시인의 시 「하논의 시간」을 수상작으로 결정했다.

잘 알려진 대로, 서귀포시 하논 분화구는 제주의 대답(大畓) 지역이다. 그만큼 자연 생태학적 가치가 높다. 그러나 이 지역은 4.3의 피해로 사람들이 주거하던 마을의 가옥들이 불탄 곳이기도 하다. 그만큼 역사의 아픈 상흔이 남아 있는 곳이다.

시 「하논의 시간」은 이곳이 지닌 고통과 상처의 퇴적된 역사를 다룬 작품으로 이해된다. 물론 이 역사는 한 개인이 살아온 과정이나 겪어 온 일로 해석할 수도 있고, 공동체의 집단적 역사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 다만, 이 시는 이곳이 지닌 통증의 기억을 무거운 침묵으로부터 끄집어내는 강력한 인력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넓은 이마”로 표현된 하논의 장소로부터 발화되지 않은 채 있는 "가라앉은 입술”을 꺼내려는, 호명함으로써 바깥으로 솟구치게 하려는 의욕을 보여준다.

동시에 진통의 과거를 위무함으로써 새로운 빛의 시간을 열어가려는 의지 또한 보여준다. 하논에 핀 자운영을 통해서, 혹은 "웅덩이에 고인 사랑, 하늘의 낯빛이 맑다"와 같은 시구를 통해서 시적 화자의 이러한 의중은 잘 드러나 있다고 하겠다.

이 작품은 과거와의 화해와 용서를 통해 충만한 미래를 만들어가려는 시적 인식을 견고하게 보여주는 수일(秀逸)한 작품인 것이다. 제2회 서귀포칠십리문학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심사위원: 문태준(심사위원장), 변종태, 김연기, 유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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