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작가
시인
모두가 함께 공감하고 기억해야 할 이야기, 슬프고도 가슴 아픈 이야기를 시작하려 합니다.
척박한 삶을 살아가며 평생 4.3의 기억을 가슴에 새긴채 살아온 사람들, 그 아픔의 세월을 견디며 몸에 난 상처보다 말 못하는 가슴의 한을 안고 제주의 민초들은 그 땅에 묵묵히 지키고 있는 폭낭(팽나무)과 함께 오늘도 동백꽃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피고 진다.
한국 현대사의 질곡으로 얼룩진 제주 4.3 역사의 현장으로 달려가 그 아픔을 함께하며 통곡하며 울어본다. 이유도 모른채 죽어간 순박한 제주민초들의 애환과 원혼들의 극락왕생을 빌며 해원상생하기를 기원한다.
소개령으로 불타버린 제주의 중산간 잃어버린 마을은 평화롭고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주는 곳이다. 이토록 처참한 역사를 알아야 하며 더 이상 이러한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라며 아픔의 역사 현장이 사라기기 전에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카메라 들고 122개의 마을 평화의 마음을 담아 기행을 한다.
잃어버린 마을 길을 지나는 길손과 나그네들이여! 마을 사방팔방으로 눈을 돌려 보라. 그 어디를 가나 한라산이 보이고 오름들이 보이고 바다가 보이고, 조금씩 남아 있는 올레길, 집터, 소나무, 팽나무, 동백나무, 대나무, 물통들과 옛 우물터를 찾아 시원한 물 한 모금 마시며 폭낭 그늘에 앉아 평화롭게 이야기하고 어린아이 뛰어놀던 역사의 현장에서 불타버린 주민들의 아팠던 삶을 다시 한번 되새겨 제주 4.3의 역사가 잊혀지지 않고 화해와 상생의 가치 그리고 평화와 인권의 소중함을 느껴본다.
대나무들의 서걱대는 소리에 그 당시 제주민초들의 통곡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 아파온다.구멍 숭숭난 돌담 밑에 떨어진 동백꽃 한 송이, 통곡의 세월을 간직한 제주에서 좌도 모르고 우도 모르는 이념이란 것을 알지 못하는 죄 없는 양민들이 영문도 모른 채 학살을 당해야 했는가?
1948년 11월 17일 제주도에 계엄령이 선포되고, 중산간 마을을 중심으로 ‘초토화 작전’이 전개되어 가족 중 한 사람이라도 없으면 ‘도피자 가족’이라는 이유로 죽임을 당하고, 제주의 가장 아름다운 중산간 마을의 95% 이상이 불타 없어졌고, 마을 주민 전체가 학살당한 곳도 있다. 지금도 활활 타오르는 마을을 생각하면 울다가 울다가 가슴이 저미어 온다.
이제 제주 4.3의 역사적 진실을 기억하고 밝히는 일이 민주주의와 평화, 인권의 길을 열어가는 과정이요, 제주 4.3의 역사적 진실은 어떤 세력도 부정할 수 없는 분명한 역사의 사실로 자리를 잡았다는 것과 특별법이 통과되었다는 것이 다행스러우면서 희망을 가져본다.
제주는 그 모든 아픔을 딛고 평화와 생명의 땅으로 부활하기를 희망하며 처참하게 죽어간 제주 4.3 영령들이 해원상생과 평화는 이념을 넘어 오직 진실 위에서만 바로 설 수 있다는 것이다.
낡은 이념의 틀에 생각을 가두는 것에서 벗어나 언제나 제주민초들과 함께 해온 제주의 아름다운 오름들과 노거수 팽나무들이 묵묵히 그 자리에서 우리에게 전하는 이야기는 제주 4.3의 화해와 상생, 평화와 인권으로 치유되기를 바랄 것이다.
제주는 질곡의 역사 속에서 애환과 고통을 감내하며 지난 70년간 평화와 인권의 가치를 외쳐왔다. 이제 제주 4.3의 역사적 진실은 한반도의 평화와 공존으로 이어지고, 인류 전체를 향한 평화의 종소리가 올려 퍼지길 염원한다.
오공재(悟空齋)에서 임관표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