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민숙 칼럼](2)고성기 시인과 자전거 타고 가는 목장 길
[양민숙 칼럼](2)고성기 시인과 자전거 타고 가는 목장 길
  • 뉴스N제주
  • 승인 2019.01.10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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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길-위로하는 문학2
양민숙 시인

■제주의 길-위로하는 문학(2)

어렸을 때 자주 불렀던 노래 중에 ‘목장 길 따라’가 있다. 그때는 가사의 뜻도 모르고 흥겨운 멜로디에 맞춰 자주 불렀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목장’이라는 단어가 자꾸만 거슬렸다.

대부분의 시간을 바닷가에서 보냈던 나는 그때까지도 ‘목장’을 한 번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머릿속에서 상상했던 ‘목장’은 색깔만 달랐지 그대로 바다였다.

바람이 스칠 때마다 일렁이는 파도가 초록색으로 뒤덮여 있는, 그 속으로 들어가면 하반신이 가려져 뭔가 부끄러움도 가려질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그 후로도 오랫동안 ‘목장’은 내가 겪지 못한 한 움큼의 부러움으로 남아 있었다. 성인이 되어 눈으로 직접 ‘목장’을 보았고 노랫말에 등장했던 ‘목장 길’도 걸어 보았다. 상상 속 목장이 그대로 펼쳐진 거대함 앞에서 한참을 넋 놓고 바라보았던 기억이 선명하다.

목초가 파릇파릇 갓 올라온 목초지를 끼고, 따뜻할 때면 말들이 뛰어놀았던 목장을 끼고, 오랜만에 목장 길을 걸었다. 앞서 이 길을 누가 지났을까? 흙덩이들이 듬성듬성 떨어져 있었다.

시멘트 길임에도 중간쯤 쌓인 흙덩이로 옆 목초지의 목초씨앗들이 날아왔는지, 파릇한 중앙선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쓸쓸한 삼나무 사이로 보이는 목장은 양떼구름 아래 파릇파릇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어, 길과는 대조적이었다.

겨울인데 이리 파릇할 수 있는 것일까? 겨울인데 이리 파릇해도 되는 것일까? 한 해를 시작하는 1월과 어울리는 길 같아서 기분이 좋아졌다.

조금 더 들어가니 자전거를 타면 딱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봄이 오려면 아직은 더 많이 기다려야 하지만, 철커덕 페달 밟는 소리와 스윽 바퀴 굴러가는 소리가 적막을 가르며 봄을 일찍 불러올 것만 같았다.

지고 있는 짐이 무거워 바퀴가 가라앉을 것만 같아도 넓은 평야의 넘실거림과 함께라면 조금씩 가벼워질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렇게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고성기 시인의 세 번째 시집 『시인의 얼굴』 - (2016년 발간, 북하우스)에 보면 「자전거 타기」란 詩가 있다.

멈추면 쓰러지기에
앞으로만 가는 길이 있다
버겁구나!
아들 딸
등에 지고 페달을 밟는
아버지
휘어진 허리
활시위를 당기고 있다

흔들리기에 제자릴 돌며
채찍으로 중심을 잡는
팽이 같은 삶이어도
가야 하는 길이 있다
돌아서
돌게 만드는
바퀴 위에 앉은 세상

누구에게나 버거운 짐이 있다. 너무도 버거워 휘청거리면서도 다닥다닥 가닥이 이어져 있는 내일을 위해 오늘을 달려간다. 그렇다고 멈출 수도 없다.

오늘까지 이어온 어제가 오늘을 힘겹게 지탱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다행인 것은 그 무거운 짐을 나 혼자 지고 가는 것이 아니라는 거다.

언젠가 내 등과 내 어깨에 얹혔던 짐이 내 손을 잡고 나를 이끌어줄 것이다. 그것뿐일까?  가끔은 앞으로만 가는 길이 아니라, 돌아서 나오는 길이 손도 내밀어 줄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오늘도 길 위에 서 있다. 

▶ 찾아가는 길 : 한림읍 금악리 마을회관에서 평화로 방면 올라가다 보면 두 갈래의 길이 나온다. 왼쪽 길을 타고 계속 가면 젊음의 집 맞은편으로 금악동길을 만나게 된다.

그 길을 따라 가면 아일랜드 건축 양식인 테쉬폰을 테쉬폰이 보이고, 조금 더 가면 이시돌목장을 끼고 왼쪽으로  약 500미터의 삼나무 목장 길이 나온다. 한 시간이면 충분히 걸어서 다녀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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