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명관 칼럼](10)이건희 회장의 도박-'27년 만에 돌아온 탕자'
[현명관 칼럼](10)이건희 회장의 도박-'27년 만에 돌아온 탕자'
  • 현달환 기자
  • 승인 2021.06.05 11:2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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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전과 나눔 고문
제34대 한국마사회 회장
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부회장
2002년 삼성라이온즈 야구단 구단주
삼성물산 대표이사 회장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 비서실장
삼성건설 대표이사 사장
현명관 전 삼성물산 회장
현명관 전 삼성물산 회장

현명관 칼럼, '제2장 유서를 품고(삼성시계 이야기)'라는 지난 번 칼럼이 엄청난 조회가 이뤄졌다. 현명관 회장이 마지막 품에 넣고 다닌 유서에 대한 비화가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이룬 모양이다.

사람이 밑바닥까지 내려 앉으면 물불 가리지 않고 달려든다. 이렇게 나오면 세상 거침이 없는 것이다.

이번 주는 '제3장 이건희 회장의 도박'이라는 주제로 장면 여덟 번째 이야기인 '27년 만에 돌아온 탕자'편을 게재한다. 이 장에는 이건희 회장에 대한 성격을 여실히 드러난다. 이건희 회장의 의향은 선대에서 주문하는 그룹을 찾아오는데 목표를 뒀기에 금액에 대한 제안이 없었다. 그러나, 그것을 수행하는 팀들은 찾아오는 것보다, 금액에 대한 걱정을 한 것이다.

물론 이러한 경제적인 측면에서 따지고 조사하고 비교해야 하지만 그룹 총수인 이건희 회장은 "우리가 시장에서 사고 싶은 물건을 사는데, 비싸게 주고 사는 것이 당연한 거 아닌가? 신경 쓰지 마세요. 고생했어요."라는 부분을 읽으면서 소름이 돋았다.

그러한 결과로 현명관 회장은 두 개의 선물을 갖고 왔다고 토로했지만 리더는 모든 프로젝트에서 결과에 만족하고 작은 실수에 대해 질타하는 것은 좋은 모습이 아니다. 성공에 대해 함께 축하하며 박수치며 전진해야 하는 것이다. 다시 부정적인 이야기로 결과에 대해 언급한다면 프로젝트를 수행한 사람들이 서로가 맥이 빠져 두려워해서 일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리더는 책임지는 사람이다. 모든 직원들의 공과(功過)에 대해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여야만 직원들이 마음껏 무대에서, 현장에서 춤을 춘다.  책임을 회피하는 순간, 그 기업은 오래가지 못하고 사람들이 하나둘 떠나갈 것이다.

현명관 회장은 이건희 회장이 전화를 통해 300억이라는 금액을 높게 책정했다고 하니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모습을 보면서 '무서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한 처세술이 삼성을 한국속의 그룹이 아닌 세계속의 그룹으로 키웠는지도 모른다.

현명관의 자서전 ‘위대한 거래’는 삼성이라는 그룹에서 겪었던 경험과 생각, 채근담과 함께 인간 처세술을 보여주고 있다. 점점 더워져 가는 날씨에 현명관 칼럼을 읽으면서 어떤 때는 뜨겁게, 가끔은 통쾌하게, 때로는 시원하게 코로나19로 인해 막막했던 우리의 마음을 녹이고 있다.

신록의 계절, 6월을 맞아 현명관 칼럼은 '이건희 회장의 도박'이라는 제목처럼 점점 스토리가 궁금해지고 있다. 다음 편에는 삼성 1등이라는 '삼성 제일주의'에 대한 환상을 깨는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다. 많은 필독이 있기를 바랍니다.[현달환 편집장]


기흥구 소재 모 카페에서 대화중인 현명관 회장(우)
기흥구 소재 모 카페에서 대화중인 현명관 회장(우)

파란만장한 부침과 성공을 뒤로하고 숨을 거두려는 노인이 있었다. 그는 대한민국 최고 부자라는 영광도 뒤로 한 채, 이제는 쓸쓸히 원래 왔던 곳으로 돌아가려는 순간을 맞았다.

일흔여덟의 노인은 마지막 순간에도 대 기업인 다운 강한 의지를 불태우며 자식들에게 무언가 말하려 하는 듯 했으나 입 밖으로 소리가 나지는 않았다. 대신 수 천 마디 말보다 강한 눈빛을 주고받으며 자식들에게 무언의 다짐을 받고 있었다.

"TBC 꼭 찾아라!"

기업인에게 자신이 만든 기업은 자식과 다름없는 존재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도, 마지막 순간까지 1980년 언론 통폐합 조치로 잃어버린 방송국에 대한 강한 애착을 드러냈다.

"한국비료 꼭 찾아라!"

아버지의 손을 쥐고 마흔여섯 젊은 이건희는 삼성가에서 불문율처럼 내려오는 아버지의 염원을 마음에 새겼다.

"네 알겠습니다. 아버지. 꼭 찾겠습니다."

이병철 회장은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자식처럼 아낀 기업 두 개를 찾아오라며 세상을 떠났다.

한때 TBC는 시청률과 프로그램 품질로 대한민국 공중파를 완전히 장악한 방송국이었지만 1980년 전두환이 집권하면서, 국가에 강제로 바쳐야만 했다. 이 회사는 Jtbc로 부활했다. 한국비료는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비료 자급을 위해 만든 회사였으나, 이 역시 사카린 밀수 사건이 터지면서 국가에 반강제로 헌납했다. 그때가 1964년, 5.16으로 박정희 소장이 권력을 장악하고 4년이 흐른 후였다.

자신의 피와 땀으로 세운 공장, 우리나라의 비료 자급을 위해 만든 공장, 권력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던 시절에 벌어진 위법한 일로, 삼성은 국민들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심지어 김두환 의원은 사카린 사건의 대정부 질문에서 국회 의사당에 똥물을 끼얹기도 했었다. 그똥물은 이병철 회장과 삼성이 뒤집어쓴 똥물이었다.

이병철 회장이 세상을 뜬지 7년째 접어드는 1994년 초여름.

당시 이건희 회장의 비서실장이었던 현명관은 한국비료의 매각공고 소식을 접한다. 이것이 오너 일가의 숙원 사업임을 알아차린 그는 즉시 이건희 회장에게 직보했다.

"회장님, 한국비료 매각 공고가 떴습니다. 민영화한다고 합니다.”

"그래? 언제 한답니까?"

"7월 15일 낙찰입니다."

잠시 생각에 잠긴 이건희 회장은 아버지 이병철 회장의 임종을 떠올리며 되찾아 오겠다는 굳은 의지를 눈빛으로 드러냈다.

"27년 만이군, 현실장! 반드시 찾아오도록 하시오."

삼성은 이미 3월에 35%의 주식을 매입한 상태였는데 이제 한국산업은행이 갖고 있는 34.6%의 주식을 인수하게 되면 한국비료는 삼성 것이 된다. 현명관 비서실장은 입찰 희망 기업들의 첩보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이 일은 그룹 비서실의 가장 중요한 업무가 되었으며 부임한 지 1년도 되지 않아 맡게 된, 현명관 비서실장의 가장 큰 프로젝트가 되었다.

"얼마를 써 내야 할까?"

너무 적게 써서 절호의 찬스를 놓치면 한국비료는 영원히 삼성손을 떠나게 될지도 모른다. 현명관은 속이 탔다.

"김부장 어디 어디가 비료를 노리고 있나요?"

"현대그룹 계열 금강화학 하고 대림그룹이 반드시 참여한다고 합니다. 특히 금강이 아주 적극적입니다."

“금강화학? 쓰레트 만드는 곳?"

쓰레트는 지금은 보기도 힘든 시멘트 85%, 석면 15% 등을 반죽해서 찍어낸 지붕을 말한다. 입찰 마감 당일까지 현실장과 직원들은 최종 입찰가를 정하지 못해 애를 태우고 있었다. 때마침 이건희 회장은 미국 출장 중이었다. 이런 사안에 대해 일임을 했으면 최종 입찰가를 적어 내는 것은 오로지 현명관의 몫이었다.

"1900억 원은 어떨까요? 현실장님? 현실장님?"

깊은 생각에 빠진 현실장은 박상무가 두 번이나 이름을 부르고 나서야 다시 회의에 집중할 수 있었다.

"2천억은 넘지 않겠습니까?" 최전무의 반박이다.

"그럼 주당 28만 8천 원이 넘어가는데 너무 과하지 않나요?"

자금통 이전무는 너무 과도한 금액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전무, 그럼 2천억 정도를 써 내면 낙찰이 가능하다는 말입니까?" 현명관이 물었다.

"솔직히 금강 화학이 건설 쪽이라 베팅을 좀 겁 없이 하는 면이 있어서… 가늠이 안 됩니다. 동양화학이 현재 주당 28만 원, 고려화학 80만 원, 유한양행이 37만 원, 럭키는 20만 원 선인데….”

이전무도 점점 자신이 없어지는지 말꼬리를 흐렸다. 마감 시각은 이제 30분 앞으로 다가왔다.

"만약 낙찰가가 주당 30만 원을 넘어버리면 우리는 한국비료를 놓치게 된다." 현명관은 속이 타들어갔다.

“주당 30만 원은 넘어야 낙찰 안심입니다. 절대로 한국비료를 놓치면 안 됩니다. 빨리 다시 계산해 봅시다.” 현명관이 말했다.

"실장님 그럼 안전하게 33만 2천 원을 넣어 볼까요?"

2천 300억이 넘는 거액이다. 현명관은 침이 말랐다.

적어도 이 금액을 금강화학이 쓰지는 못할 것 같았다. 5분의 침묵이 방안에 있던 모두에게 불안과 희망이 뒤섞인 감정을 나눠주고 있었다.

"33만1950원.” 현명관 실장은 눈을 뜨며 결단했다.

총 2300억에 맞춰서 입찰가가 정해졌고 즉시, 입찰 현장의 마상무에게 전화를 넣었다.

사진 출처"중앙일보 Our History
사진 출처"중앙일보 Our History

응찰 1시간 후.

그룹 비서실에서 입찰가를 계산한 사람들은 빙 둘러앉아 테이블위 전화가 울리길 간절히 기다렸다. 정적을 깨며 전화벨이 울리자 현명관 실장이 직접 수화기를 들었다.

"어떻게 됐어요. 뭐? 됐어?"

와! 하는 함성이 비서실이 떠나갈 듯 터져 나왔다. 서로 얼싸안았고 미스 김도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기뻐했다. 그러나 잠시 후 현명관의 얼굴은 비통한 표정으로 변하며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잠시 말을 하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본 비서실 직원들에게도 불안이 밀려왔다. 금강화학은 삼성보다 무려 300억이나 적은 2천억 원에 응찰을 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그룹 비서실은 완전히 맥이 풀리고 말았다. 1994년에 중형차 쏘나타의 가격은 1200만 원 정도였다. 2020년 형 쏘나타 신형은 3천만 원이 넘는다. 당시 300억 원의 가치는 2020년 가치로 환산하면 700억 원이 넘는 돈이다.

"너무 과했다."
현명관은 아차 싶었다. 비서실 임직원들도 낙찰의 기쁨에서 문책의 공포로 표정이 바뀌었다.

"아, 이걸 어떻게 회장님께 보고하지..."

현명관은 어떻게 말해야 할지 도무지 묘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솔직하게 말하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이르자 현명관은 매 맞는 심정으로 수화기를 들었다.

"이건희 회장님 좀 바꿔 주세요. 서울입니다. 한국비료 건 긴급보고 사안입니다.”

잠시 후 이건희 회장이 전화를 받자마자 물었다.

“어떻게 됐습니까?"

“낙찰받았습니다.”

"그래? 잘 했어요. 속이 아주 시원하구먼.”

"그런데 말입니다. 회장님, 2등하고 금액 차이가 너무 컸습니다.”

"네? 얼마나요?"

"저희가 실수를 했습니다. 무려 300억 원이나 많게 적어서 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고개를 떨구며 초조함에 떠는 현명관의 수화기 저편에선 뜻밖의 답변이 흘러나왔다.

"아니, 이 사람아! 우리가 시장에서 사고 싶은 물건을 사는데, 비싸게 주고 사는 것이 당연한 거 아닌가? 신경 쓰지 마세요. 고생했어요."

비서실 직원 모두가 현명관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수화기를 맥빠진 듯 천천히 내려놓으며 현명관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보통 사람은 아니야."


무슨 일에 있어서는 다소의 여지를 남겨 두는 마음이 있으면
신도 시기하지 못할 것이오, 귀신도 해치지 못하리라.
러나 만일 일마다 반드시 꽉 채우려 하고
공功마다 가득함을 구한다면 안으로부터 변란이 생기거나,
밖으로부터 환란을 불러들이게 된다.

사사류개유여부진적의사
事事留個有除不盡的意思

편조물  불등기아  귀신 불능손아
便造物  不能忌我  鬼神 不能損我 

약업필구만  공필구영자  불생내변  필소외우
    若業必求滿  功必求盈者  不生內變  必召外憂     
                     -. 채근담 / 前集 第20章


300억 더 쓰면 어때?

이건희 회장은 분명히 이병철 선대 회장과 크게 다른 사람이었다. 두 사람 모두 거인이지만 그 성향은 완전히 달랐다. 돌다리도 두드려 건너는, 철저한 일본식 관리의 삼성을 만든 사람이 이병철 회장이라면, 직감에 의지하여 신속하게 치고 나가는 스타일이 이건희 회장이었다. 자신과 너무도 다른, 셋째 아들 이건희를 이병철 선대회장은 좋게만 보지 않았다.

우리는 삼성전자 반도체 신화를 이병철 회장이 만들었다고 알고 있지만, 사실은 이건희 회장이 만들어 낸 일이었다. 부회장 때부터 이건희 회장이 건의하고 무모하다 싶을 정도로 투자를 추진했다. 이병철 회장은 아들의 판단이 옳다고 보고 밀어줬지만 그것 때문에 그룹이 위기를 맞을 정도로 휘청거리는 상황을 맞자, 그룹 총수감으로서 삼남 건희를 좋게만 본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장남이 그만 세상을 일찍 떠나고, 삼남 이건희 부회장이 서서히 그룹 후계자의 후보에 오르내리게 되었을 때조차도 선대 회장은, 이건희는 역시 치밀한 경영 능력과 꼼꼼한 관리력이 부족하다고 보았던 것 같다.

반면 이건희 회장은 치밀하기만 한 삼성의 관료주의와 보신주의에 넌더리를 냈다. 삼성이 계속 이런 식이면 죽는다고 보았고 돌다리는 말할 것도 없고, 건널 수 있으면 아무거나 밟고 빨리 건너야 한다고 보는 개혁주의자였다.

만약 이병철 회장이었다면 한국비료 인수에 300억 더 쓴 사건을 그냥 넘기기 어려웠을 것 같다. 관련자들의 계산과 입찰 과정을 꼼꼼히 복기했을 것이 틀림 없다. 그러나 이건희 회장은 아주 간단하게 넘어갔다. 갖고 싶은 물건을 갖는 데 좀 비싸게 사면 어떠냐하는 배포를 보였다. 같이 일하는 사람으로서 이런 경영 스타일의 경우 크게 두 가지 선물을 부하들에게 준다.

첫 번째는 나의 판단에 내가 책임질 수 있게 된다. 두 번째는 오너의 명령을 받고 나서, 피해 나갈 구멍을 먼저 찾지 않아도 된다.

나는 비서실에 있으면서 더욱 더 책임지는 자세와 내가 오너라는 생각으로 조직에 이익이 되는 일을 하고자 애썼다.

이것이 잘못되었을 때 회장이 어떻게 생각할까를 헤아리지 않고 회사를 위한 최선을 고민했다. 어찌 보면 이병철 회장보다는 구멍이 많아 보이는 스타일이지만 허술해 보이는 그 구멍이 오히려 엄청난 강점으로 작용한 것이다.

채근담은 바로 이 부분을 이야기하고 있다. 1993년 6월 7일, 삼성의 신경영 선언은 이병철 회장과 다른, 크게 잃을 수도 있는 도박을 이건희 회장이 실행함으로써 오늘날 삼성을 만든 기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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