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산 시인
평론가
■토요 시 창작 강좌(123)
□감정을 다스리는 시와 동화 되기
“시에서 시인의 감정이 드러나면 그것은 시가 아닌 자탄이나 감정의 배설물이 된다.”
처음 시 공부를 하면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지만 막상 시를 쓰다보면 내 감정이 드러난 글이 많다.
시를 잘 쓰는 사람의 작품을 보면 터져 나올 것 같은 감정도 부드럽게 쓰다듬고 어루만져서 여과되고 정화된 말글로 독자 앞에 내어놓는다. 독자가 그것을 읽으면서 문면 뒤에 숨겨진 기쁨이나 환희, 슬픔이나 절망감을 정서적으로 깊게 느끼도록 한다면 그 시는 좋은 작품이다.
초보자의 경우 자기가 글을 써놓고 감탄하거나 기뻐서 날뛰는 경우가 많다. 문장부호도 마찬가지다. 느낌표나 물음표, 따옴표 등도 자기감정을 드러내는 시적 언어로 보기 때문에 현대시에서는 잘 쓰지 않는다.
시에서 필요한 것은 담담하고도 감각화된 사유다. 감각적 사유란 정서적 느낌 같은 것을 말한다. 겉으로 나타난 현상을 시각적이거나 교훈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정서적인 진한 맛을 독자가 느끼게 할 수 있을 때, 돌려서 말하지만 훨씬 의미가 살아날 때 좋은 시가 탄생하는 것이다.
'시의 맛이 깊다'란 것은 내용의 깊이가 아니라 정서적 울림(느낌)의 깊이다. 시각적인 것은 서술과 묘사를 말하는 것이라면 정서적이란 보이지 않지만 보이는 것처럼 연관된 이미지를 진술한 것이다. 이 진술이란 B를 가져와서 A를 떠오르게 하는 방법, 즉 직접적인 것이 아니라 간접적인 것이다.
예가체프 커피*를 마시며
폐허에 버려졌던 아버지를 일으켜 에티오피아 청년들을 만나는데
그들이 낳은 아이는 검은 눈물을 흘리고
나를 낳았던 셀라시 황제*가
(하략)
세계 최대의 커피생산국 에티오피아를 대표하는 예가체프 커피*를 마시면서 문득 떠오른 그 나라와 우리나라를 생각한 필자의 졸시 '검은 눈물'의 첫 연 부분이다,
6.25가 터졌을 때 UN군을 한국에 파병하는데 결정적으로 이바지 했던 에티오피아의 셀라시 황제*는 자기나라가 이탈리아의 침략을 받았을 때, 약소국인 자기들을 도와 줄 나라가 없는 슬픔을 뼈저리게 느끼면서 침략국을 겨우 몰아내었다.
유엔이 설립되자 자기들이 당한 슬픔을 알기에 세계 평화를 위해 약소국가를 도와주자는 생각에서 ‘집단안보’를 주창하였다. 유엔회원국들이 동의를 하여 우리나라는 6.25때 그 첫 수혜국이 되었기에 16개국이 파병을 받아 전쟁을 치뤘던 것이다.
에티오피아 왕실 근위대였던 용사 6,037명은 이름도 몰랐던 대한민국 산하에 6백6십여 명의 사상자를 내었다. 그러나 그들은 2백5십 차례의 전투에서 모두 승리하는 큰 전과를 올렸는데 그것은 “이기든지 죽든지”라는 전투 신념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들은 전쟁의 참화에서 버려진 어린이들을 모아서 부대 안에 보육원을 만들고 돌봐주었다.
필자의 친구 아버지가 그 보육원 출신이었다. 그는 에티오피아 셀라시 황제가 있었기에 자신도 세상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오늘날 세계 최빈국인 에티오피아를 우리나라가 도와줘야할 이유를 말하곤 했었다.
위 시는 커피를 설명한 것이 아니라 그 이면의 사연들을 끌어와서 정서적인 맛을 우려내는 작법이다.
다른 이야기를 끌어오는 것은 상상력(사유)과 연관된다. 그것은 우리가 실제로 경험하지 못했으나 경험한 것 같은 상황이나 가상의 사건을 만들어서 간접으로 체험하는 것이다.
또한 시란 한낱 미물인 달팽이라도 시 속의 자신과 동일시하는 작업이다. 삼라만상의 모든 것과 조화를 이루려는 노력과 화해의 악수를 청하는 서정적 자아를 표현한 것이라면 일단 좋은 시일 가능성이 높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동화(同化/assimilation)와 투사(投射/projecion)가 제대로 된 시다.
동화란 외부세계를 자신의 내부로 끌어들여서 그것에게 인격을 부여하는 것이고 투사는 동화와 비슷한 개념이지만 자기를 사물에 비춰서 감정을 이입시키는 작업이다.
상상(사유)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하는 것일 때 더욱 생동감이 있다. 이 작법은 시적 대상을 우리 몸이 갖고 있는 몸성의 이미지로 연결시키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서 '바람에도 손발이 있다'거나 '바람이 태백산을 넘어오는 동안 등뼈가 휘어졌다'는 표현, '개의 욕설을 듣고 달의 얼굴이 샛노랗게 변했다'거나 '흙의 심장이 멎고 나서 흑빛으로 변해가고'라는 표현 등은 시적 대상을 우리의 몸성에 맞물리도록 배치하는 것이다.
■ 이주의 디카시 한 편 소개
다리
걸을 수 있는 다리
건널 수 있는 다리
모두 축복이다
꿈 너머 꿈을 꾸면서
다리를 건너간다
_ 권준영
"뉴스N제주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뉴스N제주 '이어산 칼럼'을 연재해주신 이어산 교수님께서 이번호 123호를 끝으로 칼럼을 마무리 합니다. 그동안 매주 토요일 쉬지않고 귀한 옥고를 연재해 주신 이어산 교수님께 뉴스N제주 전 직원은 독자들을 대표하여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시를 쓰고 있는 사람들, 시를 쓰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귀한 참고 서적처럼 많은 분들에게 지침서가 된 '이어산 칼럼'을 찾아 많은 분들이 발걸음을 해 주셨습니다.
그러기에 귀한 칼럼을 통해 시(詩)를 어느 정도 맛을 알게 됐고 최소한의 감정, 느낌, 형식, 내용 등을 인지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고향에서 다시 문학 활동을 더욱 왕성하게 임하시는 이어산 교수님께 응원을 보내오며 더욱 건강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그동안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감사합니다.[뉴스N제주 가족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