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명관 칼럼](8)후덕죽의 불도장
[현명관 칼럼](8)후덕죽의 불도장
  • 현달환 편집장
  • 승인 2021.05.22 11: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도전과 나눔 고문
제34대 한국마사회 회장
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부회장
2002년 삼성라이온즈 야구단 구단주
삼성물산 대표이사 회장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 비서실장
삼성건설 대표이사 사장

흔히 널리 사물 이치 도리 정통한 사람이나 특정 분야 통달하여 남달리 뛰어난 역량 가진 사람을 '달인(達人)'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달인은 그 분야의 최고로 감히 따라잡을 수 업는 경지에 오른 사람이다.

필자는 시간이 날때마다 SBS TV에서 매주 월요일 밤 9시에 방송되는 '생활의 달인'이란 프로그램을 즐겨본다. 그것은 수 십 년간 한 분야에 종사하여 열정과 노력으로 달인의 경지에 이르는 사람들의 인생 및 삶과 이야기를 다르고 있기에 공감이 되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사실, 달인의 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나오는 것이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표현이 뒤따라 온다.

달인을 달리 표현하면 '프로'다. 프로는 어떤 사람인가? 아마추어와 다르게 표현한다. 프로는 자신의 일에 책임을 지는 사람이다. 프로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불평을 하지 않는 사람이다.  아마추어는 불평이 많다. 자신의 직업보다 직급에 열을 올리려고 한다.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는 바로 돈이다. 인정받는 만큼 돈을 받는 것이다.

그러나 프로가 되기 위한 과정이 필요한데 우리는 그 과정을 생략하고 바로 결과만, 즉 임금만 많이 오르기를 요구한다. 자신을 프로로 만드는 과정이 10년이라면 그 기간동안은 욕심을 부려서는 안된다. 그게 프로다. 그래서 프로는 기다릴 줄 안다.

또 한가지 프로는 멋이 있어야 한다. 즉, 제시해야 한다. 리더로 가기 위해 어떤 과업이나 목표를 제시해야만 한다. 그게 프로다. 미래를 내다 보는 힘, 그 힘을 기르기 위해 많은 경험이 필요한 것이다.

그 경험이 녹아날 때 그 힘은 아무도 막지 못한다. 현명관 회장이 후덕죽의 불도장을 최고의 상품으로 만들었지만 벽을 만났다. 우리는 여기서 아무리 일류를 만들었지만 그들 입맛에 맞는 요리를 만들었지만 이상이나 직업과 관련된 다른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을 새겨두어야 한다는 것을 배운다. 

그래서 리더는 함정을 미리 끄집어 내야하는 통찰력이 있어야 한다. 사회가 복잡해지는 세상에 살고 있기에 더욱 그렇다. 프로이기 때문에 적들도 많고 아우성도 많은 것이다.

현명관 칼럼, '제1장 얇은 얼음을 밝다'라는 글은 이번호에서 마치고 다음 장은 '제2장 유서를 품고(삼성시계 이야기)가 전개된다.

현명관의 자서전 ‘위대한 거래’는 우리에게 살아가는 법에 대해서 앞으로 자신이 리더가 되었을 때 일어나는 사례들을 예견해 보는 지침서다.

말미에 현명관 회장이 말한 "성취했다고 생각하고 뿌듯해하는 순간, 기념 수건을 돌리지 마라. 수건은 언제나 걸레가 되어 최후를 맞는다. 기념 수건을 찍고 싶은 순간이 극도로 조심해야 하는 순간이다"라는 말을 가슴 깊이 새겨야 할 때이다. 뉴스N제주는 가슴 깊이 새길 그러한 주요 포인트를 알리는데 열정을 보일 것입니다. 많은 필독이 있기를 바랍니다.[현달환 편집장]

현명관 칼럼
현명관 칼럼

후덕죽, 그는 무림계의 고수처럼 칼로 세상을 평정한 사나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나 비법을 배우고 이 스승 저 스승을 넘나드는 사이, 그는 더 이상 배울 게 없는 절대강자가 되어 있었다.

무협지의고수들은 살상 후 시신에는 관심이 없지만 후덕죽은 그 반대였다. 다른 사람이 이미 죽여 놓은 생명체를 칼로 다듬어 요리라는 이름으로 부활시키는 셰프였다.

요리의 중원을 평정한 맛의 달인, 신라호텔 특급 셰프, 1977년신라호텔의 중식당 '팔선' 입사. 당대 최고의 호텔 중식당인 플라자호텔의 '도원'을 이끌던 유방녕 셰프와 경쟁하며 ‘팔선'을 중식당 무림계의 지존으로 만든 사람, 현명관은 늘 후덕죽에게 관심이 많았다.

별의별 재료를 가져다 국빈급 VIP를 위한 새로운 메뉴를 창조해 내는 그 모습이 맘에 들었다.

곰 발바닥 요리는 그중 하나였다.

국민들 사이에서 인기 높은 이 요리 때문에 신라호텔에 방을 잡는 사람들이 생길 정도였다.

아마 지금 이런 요리를 선보인다면, 동물보호 단체들에게 후덕죽은 발바닥이 불어 터져라 끌려가 몰매를 맞았을 테지만 1987년 당시에는 요리만 맛있으면 그만이었다. 곰 발바닥이든 사자 발바닥이든.

“아니 곰 발바닥으로 요리를 하다니…이 사람은 미쳤거나 도가 튼 사람이다.”

현명관은 감탄하며 오늘 점심은 '팔선'에서 짜장면을 먹기로 결심한다. 얼마 전 개발한 된장 짜장면의 인기를 입으로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다.

후덕죽이 반갑게 맞아 준다. 현명관은 그가 직접 가져다준 된장 짜장면을 먹어 본다. 역시 흡족한 미소가 짜장이 묻은 입술 주변에 아름답게 퍼진다.

“후 셰프! 역시 당신은 천재군요. 얼마 전 맛보게 해준 곰 발바닥보다 난 이게 더 맛나구려.”

후덕죽은 손님을 대하듯 온화한 표정으로 기뻐했다. 현명관은 접시 닦이부터 시작해서 주방장이 된 그의 집념이 늘 맘에 들었다.

“지난번 이야기한 요리는 어떻게 됐나요? 거 뭐더라 중국 고전에 나오는 정통 광동 요리라는....."

“불도장요?" 후덕죽이 되물었다.

"맞아요. 그거! 스님이 요리 냄새를 못 참고 월담해서 먹으러 갔다는….”

후덕죽은 매우 자신 있어 하며 주방으로 현명관을 안내했다.

“지금 직원들에게 교육 중이었습니다. 아직 표준화된 맛이 나오지 않아 고민이지만 개관 10주년까지는 완벽하게 뽑을 수 있습니다."

후덕죽은 아까의 온화한 표정을 싹 지우고 비장하면서도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주방 한쪽에 놓여 있는 불도장을 가리켰다.

중식당 '팔선'의 조리사들은 불도장을 둘러싸고 이것저것 수첩에 뭔가를 적는 중이다. 현명관이 다가가 냄새를 맡는다. 그리고 국물 한 숟가락을 맛본다.

"바로 이거야!”

현명관은 엄지를 치켜들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런 짧은 표현과 침묵은 그가 만족감을 보여주는 최고의 찬사였다.

그의 마음속에는 이 요리가 신라호텔 ‘팔선'의 대표 요리가 될 것이며 전 세계 국빈들이 이 맛을 못 잊어 월담이 아닌 월경(越境)이라도 할 것 같은 확신에 차올랐다.

그렇게 1분 정도가 지났을까. 평소 신중하고 꼼꼼한 현 사장답게 갑자기 고민이 생긴 듯, 화기애애한 대화는 처음부터 내 체질이아니라는 듯, 후덕죽을 바라보고 굳은 표정이 되어 한마디 한다.

“맛은 최고지만 이 요리 이름이 너무 어려운데 어떻게 생각해요? 왜 저런 이름이 붙었는지 이유를 설명하는 광고를 해 드릴까요?"

"오 그거 좋은 아이디어네요. 사실 중국인도 무슨 뜻인지 모르니까요.”

자신이 개발한 요리를 높게 평가하는 것도 모자라 광고까지 해주겠다는 사장의 말을 듣자 후덕죽은 매우 기뻤다.

두 사람은 다시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되었다. 불도장 조리법을 공부하던 다른 조리사들도 긴장을 풀었다. 그리고 이들의 대화가 엄청나고도 끔찍한 결과를 만들어 낼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그날 '팔선' 주방에 모인 8명 중 단 한 사람도 없었다.

나의 정당함이 때론 누군가를 아프게 하고

1989년 4월 17일 매일경제 1면 ‘불도장’ 광고
1989년 4월 17일 매일경제 1면 ‘불도장’ 광고

나는 최선을 다했다. 당시엔 이런 생각으로만 가득 차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정당했고 내가 하는 모든 일에 오류는 없다고 보았다. 이런 생각으로 돌진했던 신라호텔 부임 9년째 큰 깨달음을 준 사건이 터졌다.

신라호텔은 요리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최고의 맛과 서비스를 제공했다. 그런 요리를 만들어 낸 사람 중에 전설의 후덕죽 셰프가 있었다. 나중에 전무까지 승진한 인물이었다.

후 셰프가 만들어낸 요리 중 불도장이라는 것이 있었다. 전복, 바닷가재, 돼지발굽의 힘줄 등 스무 가지 재료를 넣고 세 시간 동안 찐 중국요리인데, 불도장(佛跳牆)은 글자 그대로 스님이 요리의 냄새를 못 이겨 수도를 포기하고 이 요리를 맛보기 위해 담을 넘었다는 데서 지어진 이름이다.

후덕죽 셰프는 이 고대의 요리 불도장을 새롭게 창조하였고 신라호텔에 선보였다. 나는 불도장'이라는 이 난데없는 요리에 의아해 할 사람들을 생각하며 그 유래를 신문에 광고했다. 여기까지는 나의 정의고 내가 틀린 것을 찾아낼 수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다음에 터졌다. 불교계가 상처를 입은 것이다. 불법승 삼보 중 스님은 대단히 귀한 존재인데 이분들이 고기 맛을 못 잊어 담을 넘었다고 하는 것 자체가 불교계를 욕되게 한다는 것을 나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불교계의 어마어마한 항의 앞에 나는 무릎 꿇고 사과를 했다. 당시에는 조금 억울한 마음도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생각해 보니 나의 정의로움이 항상 절대 선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남의 마음을 살피지 않는 정의는 때론 추악한 폭력이며 그로 인해 씻을 수 없는 아픔을 상대에게 줄 수도 있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우리는 정의를 부르짖지만 정의가 관용을 잃는다면 그것은 잔인하고 독선적인 폭력 일뿐이다. 나는 불도장 사건을 통해 그것을 깨닫고 오래도록 나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로 삼았다. 그것은 채근담에도 나와 있는 중요한 지혜이다.

낮은 데서 있어본 뒤에야 높은 데 오르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어두운 데 있어본 뒤에야 밝은 데로 향하는 것이 너무 드러나는 것을 알며,
고요함을 지켜본 뒤에야 움직임을 좋아하는 것이 너무 수고로움을 알고,
침묵을 기른 뒤에야 말 많은 것이 시끄러운 줄을 알게 된다.

거비이후 지등고지위위 처회이후 지향명지태로
居卑而後 知登高之為危 處晦而後 知向明之太露
수정이후 지호동지과로 양북이후 지다언지위조
守靜而後 知好動之過勞 養默而後 知多言之為躁
                              -. 채근담 / 前集 제32장

자신이 정의롭다고 느낄 때 나는 항상 불도장 사건을 생각한다.

완벽하게 멋지게 살았다 자부하는 시기에도 우리는 누군가를 짓밟는 일을 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겸손이라는 것이 중요한 미덕이 되나 보다. 나의 오만이 누군가를 죽음으로 몰수도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성공을 꿈꾸고 도전하는 모든 이에게 신라호텔에서 배우고 느낀 나의 채근담을 정리하며 신라호텔 이야기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우리는 모두 고전 채근담을 알든 모르던 조금씩은 실천하고 있다. 나물 뿌리처럼 쓴 현실을 잘근 잘근 씹어 소화시켜야 하는 숙명을 타고났기 때문이다. 오래 씹으면 뭐든 달콤해지듯 우리 모두는 자신의 채근담 한두 줄을 갖고 인생을 달콤하게 만들면 된다.

◇현명관의 21세기 채근담
성취했다고 생각하고 뿌듯해하는 순간, 기념 수건을 돌리지 마라. 수건은 언제나 걸레가 되어 최후를 맞는다. 기념 수건을 찍고 싶은 순간이 극도로 조심해야 하는 순간이다.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