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명관 칼럼](6)집 한 채의 팁
[현명관 칼럼](6)집 한 채의 팁
  • 현달환 편집장
  • 승인 2021.05.08 11: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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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전과 나눔 고문
제34대 한국마사회 회장
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부회장
2002년 삼성라이온즈 야구단 구단주
삼성물산 대표이사 회장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 비서실장
삼성건설 대표이사 사장

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
겨울밤 거리에서 귤 몇 개 놓고
살아온 추위와 떨고 있는 할머니에게
귤값을 깍으면서 기뻐하던 너를 위하여
나는 슬픔의 평등한 얼굴을 보여주겠다.
내가 어둠 속에세 너를 부를 때
단 한 번도 평등하게 웃어주질 않은
가마니에 덮힌 동사자가 다시 얼어죽을 때
가마니 한 장 조차 덮어주지 않은
무관심한 너의 사랑을 위해
흘릴 줄 모르는 너의 눈물을 위해
나는 이제 너에게도 기다림을 주겠다.
이 세상에 내리던 함박눈을 멈추겠다.
보리밭에 내리던 봄눈들을 데리고
추워떠는 사람들의 슬픔에게 다녀와서
눈 그친 눈길을 너와 함께 걷겠다.
슬픔의 힘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기다림의 슬픔까지 걸어가겠다.
-. 정호승의 '슬픔이 기쁨이에게'

현명관 전 삼성물산 회장
현명관 전 삼성물산 회장

우리나라 사람들이 호텔이나 레스토랑 등 식당을 갔을 때 걱정하고 불안하는 것이 바로 팁 때문이다.

팁은 얼마를 주면 좋을까? 현재 미국에선 호텔메이드, 식당웨이터, 이발사, 미용사, 택시기사 등 대부분 업종이 팁의 대상인데 서비스에 대한 대가로 15%를 보통 책정해서 준다고 한다.

한국은 주로 퍼센트가 없이 주머니에서 돈이 보이면 주는 경향도 있지만 대개 10%를 준다고 하는데 기분이 나쁠 때는 팀을 안줘도 상관이 없다.

팀의 문화는 서구에서 상당히 오래 시작된 것이다.

중세기 유럽에서 귀족들이 거리를 행보할 때 길을 막는 거지들에게 안전하게 지나가게 해달라는 부탁과 함께 동전을 몇 개 던져준 것이 팁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혹자는 16세기 영국의 커피점과 술집에서 빠른 서비스를 위해 요구하기 위해 T.I.P. (To Insure Promptitude:신속함을 확보하기위해)라고 씌어진 놋쇠항아리에 돈을 넣은 것이 시작이라는 설도 있다.)

우리나라는 과거 주로 주점의 기생들이나 심부름하는 하인들에게 주어졌지만 많은 곡식을 수확하고 나서 소작료만으로는 생계가 막막한 사람들을 위해 '뒤주'를 두고 누구나 퍼갈 수 있게 한 것도 팁 문화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팀은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자신의 직업에 대한 자존심을 상하게 한다거나 동정을 받는 것 같다는 생각을 들게 하여 거부감이 생기기도 한다.

그래서 주는 것도 처신을 잘해야 한다. 여하간, 팁은 소외계층사람들에 대한 배려이다.

이러한 팀이 집한 채 값의 팁을 준다면 우리는 어떻게 할까?

호텔에서 서비스를 주고 팀을 받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자리잡았다.

그런데 그 금액이 무려 2억이나 되는 돈이라면 받는 사람이 어디둥절 할 것이다.

치매가 왔거나, 돈을 잘못 꺼냈거나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그런 현장이 있었다. 신라호텔에서 벌어진 것이다.

현명관 회장이 줄기차게 함부로 팁을 받지 않는 문화를 만든 그 호텔이었는데 직원들이 친절도가 높아 고객이 감동한 것이다.

우리 속담에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말이 있지만 고객에게 '친절'만큼 더 좋은 선물은  없다.

이러한 사건(?)은 현명관 회장이 신라호텔에서 자신의 업무 수행과 능력이 돋보이는 결과물일 수 있다.

즉, 시스템을 만들어 놓으니, 최고 일류의 기업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리더는 늘 고민하고 최고 정상일 때 불안한 마음으로 늘 깨어 있다. 잠을 자지 않는 이유들이 따로 있는 것이다.

최고 경영자와 말단 직원과의 생각은 하늘과 땅, 그 차이인 것이다.

최고 경영자는 아무것도 안하는 것 같지만 그만큼 보는 시각이 다르다.

오늘 어버이날,
생각지 않았던 작은 팁들이 내게도 굴러 왔으면 좋겠다.

아이가 내게 귤하나 껍질 벗겨주며 입에 넣어주는 달달한 기쁨이 오월, 우리들 가정에 뿌려졌으면 좋겠다.

코로나19라는 적군(?)과의 싸움에서 이겨내고 있는 우리들 부모님과 아이들을 위해 ‘위대한 거래’라는 이 책은 우리에게 '친절'을 알려주고 있다.

친절은 반대로 '절친'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누구에게나 친절이 중요하다.

현명관의 자서전 ‘위대한 거래’는 우리에게 하면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앞서 탑재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정호승 시인의 '슬픔이 기쁨이에게' 보내는 시를 읽으면서 외로운 사람들에게 메시지라도 하나 보내는 자랑스러운 내가 되자.

많은 필독이 있기를 바랍니다.[현달환 편집장]

현명관 회장
현명관 회장

호텔 지배인이 급하게 전화를 걸어 현명관을 찾았다.

“상무님 큰일 났습니다. 이걸 어찌해야 할지……..

아랍 에미리트에서 오신 손님 때문인데 급히 와 주세요."아랍의 특급 VIP 손님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닌가 하여 현상무는 식사도 중단하고 1층 프론트로 달려갔다.

지난번 서비스 문제로 경고를 했는데 또 프런트 쪽에서 사고를친 것이 아닌가 하여 다소 화가 난 상태로 현상무는 프런트에 왔다.

역시나 신라호텔 프런트에서는 아랍 전통 의상을 입은 VIP와 호텔 직원, 지배인이 실랑이를 하고 있었다.

“이러시면 안 됩니다."

"이것도 다 알라의 뜻이오. 넣어 두시오."

현상무는 프런트를 사이에 두고 손님과 직원이 봉투 하나를 두고 옥신각신하는 모습을 보고 팁 문제라는 것을 알아챘다. 다행이었다.

"지배인, 이번만은 손님의 성의도 있고 이렇게까지 강하게 받기를 원하니 받읍시다. 그리고 그 돈은 우리 신라호텔 장학 기금 있잖아요. 거기에 보내면 되잖소."

“상무님, 저도 그러려고 했는데 봉투 안을 보십시오."

현명관은 아랍인이 건넸다는 봉투를 열고 그 속의 종이 한 장을 꺼냈다. 그리고 충격을 받은 듯 얼어붙은 채로 아랍 VIP를 바라보았다. 종이는 미화 2만 달러라고 선명하게 적힌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여행자 수표였다.

아랍 VIP와 수행비서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무심히 현상무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지금까지 내가 여러 나라의 호텔을 다녀 봤지만 당신들처럼 이렇게 정성을 다해 서비스해 주는 곳은 내 기억에 없구려.

이건 내 감사의 표시고 알라의 뜻입니다."

미화 2만 달러면 2019년 기준 한국 원화로 거의 2억이 넘는 돈이었다.

"알겠습니다. 손님의 뜻을 감사히 받겠습니다."

현상무는 직접 아랍 VIP를 리무진까지 안내하며 배웅했다. 현명관은 VIP를 태운 벤츠 리무진이 사라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보이지 않는 서비스 하나가 집 한 채 값이라니…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은 쉽고도 어렵구나!‘

신라 호텔은 아랍 국빈을 모시는 서비스 노하우가 있었다. 1983년 9월 아랍의 국가 원수로서는 최초로 요르단의 후세인 국왕 내외가 처음 한국을 찾았다.

그분들은 우리 호텔에 3박 4일 동안 머물렀는데 그때 우리는 사막 기후에 사는 분들임으로 고려해 실내 온도를 24~25도로 조금 높게 맞춰 두었다. 이슬람 국가이므로 코란도 배치했다. 그뿐만 아니라 특별한 이슬람 의식을 거쳐 도축된 고기 등 할랄 음식도 제공했었다.

이런 서비스를 아랍의 VIP가 오면 제공했는데 앞서 소개한 아랍 에미리트의 특급 VIP는 여기에 큰 감동을 하여 감사의 표시로 집한 채를 주고 갔다. 사람의 마음을 알아주는 서비스는 깊은 감사를 느끼게 하는 힘이 있다는 것을 그때 알게 되었다.

이렇듯 세심한 서비스로 국빈들을 만족시키자 굵직한 대한민국의 국제회의나 최상급 의전이 필요한 대형 컨퍼런스에 제일 먼저 신라호텔이 외교부의

추천 목록에 오르기 시작했다. 이렇게 서비스의 기초가 다져졌을 즈음, 우리는 엄청난 국가적 이벤트를 맞이하게 되었다. 바로 88 서울 올림픽이었다.

큰 성취도 떨리는 한 걸음에서

우리나라의 문화는 1986년 그리고 1988년을 기점으로 크게 촌티를 벗어났다. 이 두 해에 86아시안 게임과 88서울 올림픽이 있었고 한국은 글로벌 문화의 일원으로 도약했다.

그 선봉에 신라호텔이 있었다. 88년 서울 여름 올림픽 열기보다 뜨거웠던 신라호텔의 지하 세탁실과 조리실에서, 직원들은 한국을 찾은 선수와 IOC 위원들에게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했다.

대한민국을 후진국으로만 여겼을 각국의 IOC 위원들과 임원단들은 IOC 메인 호텔로 선정된 신라호텔의 서비스를 보고 대한민국을 다르게 보았을 것이다.

올림픽을 마친 후 노태우 대통령은 각종 공로가 있는 사람들에게 표창했다. 그중에 신라호텔이 있었다.

나는 1989년 9월 27일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각고의 노력 끝에 주어진 한 장의 종잇조각은 그동안의 모든 고난과 고통, 외로움을 보상하고도 남는 거대한 몇 톤짜리 금덩이처럼 내 인생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며 지금도 빛나고 있다. 임직원 모두가 똘똘 뭉쳐 한국의 자존심을 살려낸 일은 지금도 자랑스럽다.

당시 우리 신라호텔의 종업원들은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외교관이었다. 지금도 깊은 감사의 마음을 그들에게 전하고 싶다. 수교훈장(국권의 신장 및 우방과의 친선에 공헌이 뚜렷한 자에게 주는 훈장)을 그분들 오른쪽 가슴에 하나하나 달아 주며 당신들이 최고였노라 말해 주고 싶다.

호텔은 비록 큰 이익을 남기는 사업은 아니지만 그 나라의 국격과 모 그룹의 품위를 크게 올려 주는 콘텐츠 산업이다. 삼성의 위상과 대한민국의 국격을 올리는 일에 신라호텔이 일조했다고 생각하니 그동안의 고생과 외로움이 한순간에 녹는 듯하였다.

1989년 1월 8일, 나는 전무이사에서 대표이사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당시 48살이었다. 입사 7년 만이었으며 대단히 빠른 성취였다.

돌이켜 보니 이런 성취의 근본은 '모든 것은 살얼음을 걷는 마음으로 한발 한발 내딛는 데서 시작했던 것 같다. 채근담이 왜 거대한 성취를 이루기 위한 조건으로 조심스러운 한 걸음을 제시했는지 이해한다.

말마다 귀를 기쁘게 하고 일마다 마음을 즐겁게 한다면, 이는 곧 인생을 무서운 독극물 속에 파묻는 것과 같다.
若言言悦耳事事快心便把此生埋在鴆毒中矣(약언언열이사사쾌심변파차생매재짐독중의) 채근담 / 前集제5장

살다 보면 아무리 노력해도 결코 열매를 따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 사람들을 내 주변에서 너무 많이 봤다. 그런데 나는 나의 노력의 결과를 몇 년 만에 열매로 맺을 수 있어서 성취의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는 시간이 찾아온 것이다.

그런 시기가 오면 스스로 경계하고 조심해야 하는데 당시에는 그것을 알지 못했다. 채근담은 이런 시기를 독극물에 비유하며 우리에게 경고장을 날린다.

삼성그룹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자산은 건물도 기계도 아니다. 오직 인재다. 고 이병철 회장 때부터 인재 제일을 외치며 초일류기업을 꿈꿨다.

이건희 회장도 부친의 경영 철학을 이어받아 더욱더 인재를 중요시하는 경영을 펼쳤다. 그룹의 전통이 이러한데 그만 최악의 사태가 벌어지고 만다.

세계 굴지의 초일류 호텔 그룹인 힐튼이 신라호텔을 견제하기 위하여 무려 스무 명이나 한꺼번에 사람을 빼내 가는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그만큼 신라호텔의 위상이 높아졌다는 반증이지만 당시 나는 그동안의 모든 공로가 한 번에 무너져 내릴 수도 있는 위기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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