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산 "시란, 응시(凝視)를 잘 해야 기초가 결정...깊이와 넓이와 맛이 달라져"
이어산 "시란, 응시(凝視)를 잘 해야 기초가 결정...깊이와 넓이와 맛이 달라져"
  • 뉴스N제주
  • 승인 2021.05.07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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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산 칼럼](122)토요 시 창작 강의
이어산 시인, 평론가

  ■토요 시 창작 강좌(122)

  □좋은 시, 그 담백한 아름다움

이어산 시인. 평론가
이어산 시인. 평론가

시를 쓰는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다음 두 종류의 시를 가장 많이 다루고 있다고 한다.

첫 번째는 우리의 삶에서 엎어지고 미끄러지고 절망하면서 느끼는 아픔과 깨달음, 또는 자연이나 삶의 현장, 그 뒤에 숨어있는 새로운 면을 찾아내어서 그것을 경구적(警句的)이고 고백적(告白的) 형태의 시로 풀어내는 사람이다.

이때 "시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시인마다 제각각의 시론을 말하지만 그것을 크게 간추려 보면 "시란 응시(凝視)다"라는 유(類)의 대답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응시란 말 그대로 대상을 바라본다는 것인데, 바라본다는 것은 관심을 가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즉 대상에 관심을 갖는 일은 시를 쓰려는 사람의 기본이고 첫 걸음이란 말이 된다. 결국 시란, 응시를 얼마나 잘 하느냐에 따라서 그 기초가 결정되고 깊이와 넓이와 맛이 달라지게 된다.

그런데 시를 처음 쓰려는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이 있는데 시를 아름답게 써야 한다거나 잘 써야 된다는 강박관념으로 대상을 응시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이 시를 부자연스럽게 하는 주범이다.

물론 시의 궁극적인 목표는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에 귀결되지만 억지스럽지 않은 담백함이 더욱 품위있는 아름다움이다.

마치 순백의 조선 달항아리가 담백하지만 보면 볼수록 아름다움을 머금고 있는 것처럼 이야기를 화려하게 꾸미지 않은 담담함 속에 내포된 아름다움을 찾아낼 수 있는 응시, 그것이 시 쓰기 중요한 한 축이요 열쇠다.

두 번째는 주제가 분명해야만 시 전체의 흐름이 명확해 진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실 순서를 매길 필요가 없는 모든 시에 해당되기도 한 것인데 시의 주제는 시의 중심 사상이라고 할 수 있어서 시인의 인생관과 깊은 관계가 있다.

또한 주제와 소재를 혼돈하는 현상이 습작을 하는 초보 시인에게서 많이 나타난다는 점에 유의하기 바란다.

예를 들어서 '된장국'을 맛있게 요리 하려면 소재인 양념을 잘 해야 하지만 '된장'이라는 상징을 통하여 나타나는 중심 사상, 즉 주제가 선명하지 않고 소재만 잔뜩 나열하는 경우다.

소재는 시를 시답게 하는 재료이지만 주제는 시의 전체를 아우르는 뼈대 같은 것이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것인지 그 내용의 맥이 잡히고 그것을 맛있게 하는 양념인 소재를 잘 활용해야 전체 시의 구성이 단단해진다는 말이다.

오늘은 아내가 없이 밥을 먹네
아이들과 둘러앉아 삼겹살을 굽네
집나간 아내를 욕하면서 걱정하면서

결혼은 삼겹살을 굽는 것이네
타지 않게 골고루 잘 익혀야 하는 것이네
너무 높지도 낮지도 않게 불꽃을 조절하고
알맞게 익도록 방심하지 않는 것이네

결혼은 된장국을 끓이는 것이네
알맞은 양을 물에 풀고
양념을 넣고 자꾸자꾸 간을 보는 것이네
된장과 양념의 조화를 맞추는 것이네
그걸 몰라서 아내가 없이 밥을 먹네
된장을 끓이고 오래된 반찬을 내놓고
아이들과 둘러앉아 삼겹살을 굽네
집나간 아내를 욕하면서 걱정하면서.

_ 공광규 시 <부부론>전문

아내 존재에 대한 깊은 응시의 시를 이렇게 재미있게 썼다. 그러면서 부부란 무엇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삽겹살 굽는 일과 견주어서 적절하고 적확한 표현으로 우리에게 고백한 시다.

평소에는 그 존재의 소중함을 잊고 살다가 부부싸움 후 아내가 집을 나갔다. 시인은 때가 되어도 돌아오지 않는 아내를 욕하면서 걱정하면서 아이들과  된장국을 끓이고 삽겹살을 굽는다는 이야기다.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내면서 부부의 관계도 된장국을 끓이는 일이며 삽겹살을 굽는 일처럼 조화롭지 않으면  안 된다는 깨달음을 시다.

아주 쉬우면서도 울림이 있도록 썼다. 울림이 있다는 것은 시에 공감한다는 뜻이고 아름답다는 말과도 같다. 시가 살아 남을 수 있는 중요 조건은 삶의 다채로움을 담백하지만 새로운 말로 하면서도 공감을 불러내는 데 있다.

다음의 시 한 편을 더 보는 것으로 오늘 글을 맺는다.

옛날 밥상머리에는
할아버지 할머니 얼굴이 있었고
어머니 아버지 얼굴과 형과
동생과 누나의 얼굴이 맛있게 놓여있었습니다
가끔 이웃집 아저씨와 아주머니
먼 친척들이 와서 밥상머리에 간식처럼 않아있었습니다
어떤 때는 외지에 나가 사는
고모와 삼촌이 외식처럼 앉아있기도 했습니다
이런 얼굴들이 풀잎 반찬과 잘 어울렸습니다

그러나 지금 내 새벽 밥상머리에는
고기반찬 가득한 늦은 저녁 밥상머리에는
아들도 딸도 아내도 없습니다
모두 밥을 사료처럼 퍼 넣고
직장으로 학교로 동창회로 나간 것입니다

밥상머리에 얼굴반찬이 없으니
인생의 재미라는 영양가가 없습니다.

_ 공광규, <얼굴반찬>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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