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산 "시의 제목은 눈으로 찾지 말고 마음으로 그려지는 형상에서 뽑는 것"
이어산 "시의 제목은 눈으로 찾지 말고 마음으로 그려지는 형상에서 뽑는 것"
  • 뉴스N제주
  • 승인 2021.04.24 00:07
  •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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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산 칼럼](121)토요 시 창작 강의
이어산 시인, 평론가
이어산시인, 평론가
이어산시인, 평론가

■ 토요 시 창작 강좌(121)

□시 쓰기와 빵 굽기, 그리고 풍자시

빵을 제대로 구우려면 좋은 밀가루로 반죽부터 제대로 해야 한다. 시를 완성하기 위해서도 적확(的確)한 언어를 선택하여 반죽을 잘 해야 한다.

우선 연과 행의 구분을 무시하고 이야기 형태로 길게 써놓는 것이 반죽을 하는 일이다. 반죽이 제대로 되면 언어의 빵을 맛있게 구울 수 있다. 단 다음의 내용에 유의해야 된다.

▲단순한 회상이나 추억, 사랑이야기, 또는 ~하노라, ~하노니 같은 고어체 등은 현대시에서는 퇴행적 옛날 소재로 취급되므로 과감하게 버려야 한다.

▲어떤 형태의 빵을 만들지 확실하게 정해야 한다. 구조화 되지 못한 것은 짓다가 그만둔 집처럼 된다. 등장하는 단어는 반드시 의미의 연결에 필요하도록 하라.

마치 집을 지을 때 필요 없는 목재를 끼워 넣지 않는 것처럼 시를 쓸 때 그 구절이나 연만 따로 노는 경우가 없는지 살펴야한다. 직접적일 필요는 없으나 의미적으로 수미상관(首尾相關)이 되지 않은 단어나 행, 연이 있으면 시의 집이 제대로 완성된 것이 아니다.

▲빵의 모양도 먹음직스럽도록 해야 되지만 맛도 있어야 한다. 세상을 달관한 듯한 교훈적이거나 지시적인 것은 늙은 시의 표본이다. 자기만의 새로운 심상(이미지)이 파릇파릇한 젊은 시다.

“A는 이래서 A다”라는 설명조의 시는 “꽃은 꽃이다”라는 말과 같으므로 시가 되지 않는다. 대표적인 예가 제목을 설명 한 듯한 시다. 제목을 정해놓고 시를 쓰다보면 그것이 시의 확장성을 막을 수 있다. “제목은 A이지만 내용은 B 또는 C를 말하는 것이고 그래서 A라고 했구나”로 확장되는 것이 좋다.

▲제목은 눈으로 찾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그려지는 형상에서 뽑는 것이 시적 의미를 더한다. 필자는 시를 써놓고 제목정하기를 해 볼 것을 권한다. 그 내용에 맞는 이미지를 생각하여 제목을 달아보는 연습을 하라는 것이다.

▲시에서 감동이 없으면 재미라도 있어야 하고, 그것도 없다면 풍자가 있거나 자기색깔이라도 있는 것이 좋다.

해마처럼 남자가 임신을 한다면
이 세상에
죄는 적어지리라

해마처럼 남자가 아이를 낳는다면
자궁이 아니고
뱃속의 새끼주머니에서
캥거루마냥 나오리라

해마처럼 남자가 아이를 양육한다면
이 세상은 더욱 평화롭고
전쟁은 적어지리라.

이 세상에 여자는 멸종하고
남자들만 있다면 어랭이처럼 10여분내로
그 수의 반은 여자로 변할지도 몰라

해마처럼 남자가 임신하는 별이 있다면
그 별의 여자들의 자궁엔 푸른 이끼 같은
곰팡이들이 살지도 몰라

해마처럼 남자가 임신하는 별에는
초록색 인간들이 살지도 몰라
슬플 땐 파란눈물 흘릴지도 몰라.

현용식,「남자가 임신을 한다면」 전문


위 시엔 시의 또 다른 재미인 풍자(諷刺satire)가 있다. 풍자시는 사회, 인물의 결합, 죄악, 모순 등을 정면에서가 아니라 비유 등의 표현을 통해서 비평하는 시다.

주로 자유롭게 말할 수 없는 암담하고 억압된 시대에 많이 성행하지만, 풍자시는 현상의 그늘에 숨겨진 본질을 꼬집어 내는 뚜렷한 비평정신이 있어야 한다. 그러면서도 감정보다는 이성에 의한 풍자, 시의 아름다움을 잃지 않고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는데 까지 진행해야만 풍자시의 묘미가 살아난다.

위 예시가 말하고자하는 풍자의 모양과 뜻을 댓글로 달아주시기 바란다. 몇 분께 시집을 보내드리려 한다.

■ 이주의 디카시 한 편

빠진 앞니

로또명당 앞을 지날 때마다 생각난다

노름과 여자를 좋아하다 노숙자가 된 오씨

곱게 접은 로또용지를 몰래몰래 꺼내 보던 오씨

미리 기뻐서 정말 기뻐서 더 크게 벌어지던

오씨의 빠진 앞니가 눈에 선하다

                 _ 이충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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