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3주년 제주4·3 희생자 추념식]고가형양 외할머니 사연 토로..."경해도 살암시난 살아져라"
[제73주년 제주4·3 희생자 추념식]고가형양 외할머니 사연 토로..."경해도 살암시난 살아져라"
  • 강정림 기자
  • 승인 2021.04.03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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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평화공원에서 3일 고가형 외할머니 손민규 여사 사연 밝혀
"입밖으로 '엄마' 부르면 견딜 수 없어 차마 불러볼 수도 없었다"
제73주년 제주4·3 희생자 추념식이 열린 제주 평화공원에서 3일 고가형양(17·대정여고)이 유족대표로 나와 4·3 당시 부모님과 오빠를 잃은 외할머니 손민규 여사(87)의 사연을 소개했다.
제73주년 제주4·3 희생자 추념식이 열린 제주 평화공원에서 3일 고가형양(17·대정여고)이 유족대표로 나와 4·3 당시 부모님과 오빠를 잃은 외할머니 손민규 여사(87)의 사연을 소개했다. (고가형 학생)

"우리 오빠 명예회복만 해줍써~"

제73주년 제주4·3 희생자 추념식이 열린 제주 평화공원에서 3일 고가형양(17·대정여고)이 유족대표로 나와 4·3 당시 부모님과 오빠를 잃은 외할머니 손민규 여사(87)의 사연을 소개했다.

손 여사의 오빠인 손돈규씨는 지난달 16일 무죄 판결을 받은 행방불명인으로, 4·3사건 당시 19살의 나이로 체포돼 군사재판을 받았다. 아버지는 집을 지키다 총살 당했고, 어머니도 함덕초등학교에 잡혀간 뒤 희생됐다.

고가형 학생은 "할머니께서 열다섯살이던 시절, 할머니의 오빠는 대구형무소로 끌려가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셨다"며 "행방불명되신 후 지금까지 시신도 찾지 못했다. 억울하게 돌아가신채 누명까지 쓴 오빠를 생각하며 슬퍼하시던 할머니를 볼때면 저도 마음이 많이 아팠다"며 지난 3월 할머니의 큰 꿈이 이뤄졌다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고 양은 "오랫동안 기다려온 4.3행방불명수형인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으신 것"이라며 할머니는 이번 재심에서 이 한마디만 전했다고 말했다.

제73주년 제주4·3 희생자 추념식이 열린 제주 평화공원에서 3일 고가형양(17·대정여고)이 유족대표로 나와 4·3 당시 부모님과 오빠를 잃은 외할머니 손민규 여사(87)의 사연을 소개했다.
제73주년 제주4·3 희생자 추념식이 열린 제주 평화공원에서 3일 고가형양(17·대정여고)이 유족대표로 나와 4·3 당시 부모님과 오빠를 잃은 외할머니 손민규 여사(87)의 사연을 소개했다.(눈물을 훔치는 손민규 여사)

이어 고 양은 "할머니는 4.3에 대해 말조차 꺼낼 수 없었던 지난 날에 비하면 지금은 너무 다행이라 말한다"며 "이런 날이 올거라 생각도 못했다며, '이제 반가슴은 풀어졌다'고 말했다. 재판이야기를 어렴풋이 들었을 땐 저는 어떤 의미인지 잘 몰랐다"며 "늘 인자하면서도 강하게 보였던 할머니에게 이렇게 큰 아픔이 있는줄 몰랐다"고 토로했다.

또한 고 양은 "4.3당시 할머니는 지금의 저보다 어린 소녀였다. 그때 할머니의 꿈은 선생님이었다"며 "동네에 소문이 자자할정도로 공부를 잘하셨다. 할머니의 부모님도 우리 딸은 꼭 대학공부까지 시켜 선생님이 되게 해주신다 약속하셨다"고 설명했다.

고 양은 "하지만 할머니의 어릴적 꿈은 한순가에 무너져버렸다"며 "'무슨 죄가 있어 도망가냐'셨던 아버지와 함께 불타버린 집, 함께 피난중에 총살당한 어머니, 억울한 누명으로 옥살이 후 행방불명된 오빠. 할머니는 그렇게 홀로 남아 끼니 걱정에 공부는 엄두도 낼 수 없었다"고 전했다.

고 양은 "할머니는 친구들이 '엄마~'하고 부르는 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철렁했다. 눈물이 쏟아지는 걸 많이도 참으셨다고 했다"며 "입밖으로 '엄마'하고 부르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아 차마 불러볼 수도 없었다고 했다"고 눈물을 삼켰다.

그러면서 "'엄마'라고 얼마나 불러보고 싶으셨을까"라며 "저는 하루에도 수십번은 엄마를 부르는데, 저보다 어린 나이에 엄마를 잃은 할머니를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 진다"고 울먹였다.

제73주년 제주4·3 희생자 추념식이 열린 제주 평화공원에서 3일 고가형양(17·대정여고)이 유족대표로 나와 4·3 당시 부모님과 오빠를 잃은 외할머니 손민규 여사(87)의 사연을 소개했다.
제73주년 제주4·3 희생자 추념식이 열린 제주 평화공원에서 3일 고가형양(17·대정여고)이 유족대표로 나와 4·3 당시 부모님과 오빠를 잃은 외할머니 손민규 여사(87)의 사연을 소개했다. (고가형 학생을 위로하는 문재인 대통령 내외)

고 양은 "그때 4.3만 아니었다면 훌륭한 선생님이됐을텐데 억울하지 않냐"고 가끔 할머니께 물어본다고 말했다. 고 양은 "그럴때 마다 할머니께서는 '경해도 살암시난 살아져라' 하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고 양은 할머니에게 "이제 가슴 속 응어리 절반이 풀리셨다고 하셨죠? 앞으로는 제가 할머니의 상처를 낫게 해드리겠다"며 "나중에 어른이 되면 심리치료사의 꿈을 이뤄 할머니처럼 마음의 상처를 안고 계신 분들에게 위로와 도움을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고 양은 "알고보면 할머니처럼 4.3으로 평생 힘들어하셨던 분들이 참 많더라"며 "저 할머니를 생각하며 열심히 할게요! 그래서 꼭 할머니의 가슴속 응어리를 다 풀수 있게 해드리겠다. 할머니. 그때까지 건강하셔야 해요. 사랑해요 할머니."라고 덧붙였다.

제73주년 제주4·3 희생자 추념식이 열린 제주 평화공원에서 3일 고가형양(17·대정여고)이 유족대표로 나와 4·3 당시 부모님과 오빠를 잃은 외할머니 손민규 여사(87)의 사연을 소개했다.
제73주년 제주4·3 희생자 추념식이 열린 제주 평화공원에서 3일 고가형양(17·대정여고)이 유족대표로 나와 4·3 당시 부모님과 오빠를 잃은 외할머니 손민규 여사(87)의 사연을 소개했다.(손민규 여사를 위로하는 문재인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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