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주 칼럼](13) 재미있는 설화 – 두럭산 선녀탕(1)
[장영주 칼럼](13) 재미있는 설화 – 두럭산 선녀탕(1)
  • 뉴스N제주
  • 승인 2021.04.05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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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주 교육학박사/명예문학박사
한국해양아동문화연구소장/한국사진작가협회회원

선문대공주선녀는 하늘나라 궁전의 화단 흙을 치마에 담고 속옷도 미처 입지 못한 채 지상나라로 내려와 섬을 만들고 한라산을 만들며 아들 오백 명을 낳아 키우는데 오백 아들의 빨랫감을 빨래할 곳을 찾다가 물웅덩이에서 쉬며 목욕도 하고 세수도 하고 머리도 감고 물장구도 칠 수 있는 아담한 물웅덩이를 발견하게 된다.

세월이 흘러 선문대공주선녀는 어느새 설문대할망으로 늙었고 자식 오백 명이 게을러 양식이 다 떨어져도 일을 하려 하지 않았다. 설문대할망은 오백 아들이 취직시키려 면접시험에 깨끗한 옷을 입히려 빨래를 하려 한다.

때는 음력 삼월 보름이라, 휘영청 달이 떠올랐는데도 그날은 이상하게 해가 지지 않았다.

(2019년 4월 19일(음력 삼월 보름) 보름달)
(2019년 4월 19일(음력 삼월 보름) 보름달)


설문대할망은 오백 아들 빨랫감을 바다에 던져 물에 담그고는 빨랫감을 건져내 돌 무리에 걸쳐 빨래하였는데 그때는 달이 밝고 중천에 뜨므로 이를 이상하며 신성한 바위라 하여 ‘두럭산’이라 이름 붙였다.

설문대할망은 비록 늙은이 얼굴이지만 그래도 어엿한 하늘나라 옥황상제 가문의 셋째 딸이니 선녀는 선녀이기에 아이러니하고 다이내믹하게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 장영주 설화전문박사가 만든 두럭산 선녀탕

하늘나라에서 지상나라로 내려온 선문대공주선녀는 옥황상제의 셋째 딸인데요.

“휴, 이 정도면 가운데쯤 되나?”
선문대공주선녀는 하늘나라에서 가지고 온 흙을 바다 한가운데 부어 넣었어요.

“가만, 아바마마가 천리경으로 내려다보고 있을 텐데…. 나도 아바마마가 계시는 천궁 가까이에 가 볼 수 있게 높은 산을 만들자.”
선문대공주선녀는 바다 한가운데 모아 두었던 흙을 다시 치마에 담고는 뚜벅뚜벅 걷는데 아뿔싸 한 발짝씩 걸음을 옮길 때마다 치마 구멍에서 흙이 떨어져 오름이 생기는 게 아니겠어요?

“그래, 기왕 떨어진 흙이야 어쩔 수 없는 게고, 이 정도면 하늘나라 천궁과 가장 가깝겠지?”
선문대공주선녀는 섬 가운데 큰 산을 만들고 이름을 지어야 할지를 고민하기 시작했지요.

‘음, 하늘나라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산이라? 은하수가 맞닿은 산이라? 옳거니.’
선문대공주선녀는 무릎을 ‘탁’치며 높은 산 이름을 ‘한라산’이라 지었어요.

(2019년 4월 19일(음력 삼월 보름) 보름달)
(한라산 고수목마 장영주 촬영)

“그데, 요놈들은 뭐라 할까?”
선문대공주선녀는 치마 구멍에서 떨어져 생긴 오름마다 이름을 지어 주었는데요. 그게 400개쯤 된답니다.

“오늘은 물고기나 잡으러 가 볼까?”
선문대공주선녀는 땀을 식히며 섭지코지로 걸어갔지요.

(2019년 4월 19일(음력 삼월 보름) 보름달)
(섭지코지)

“어? 누구세요?”
선문대공주선녀는 덩치가 큰 설문대하르방을 만났지요.

“우리 서로 힘을 합쳐 물고기를 잡읍시다.”
설문대하르방은 선문대공주선녀에게 물고기를 잡아 평생 물고기를 먹여 주겠다는 말로 청혼을 하지요.

“그리하시지요.”
선문대공주선녀는 설문대하르방의 청혼을 못 이기는 척 받아들이고 신풍목장에 있는 사장굴에서 신혼 차림을 차렸어요.

(2019년 4월 19일(음력 삼월 보름) 보름달)
(신풍목장)

“아들이 오백 명이다 보니 이곳은 너무 좁아 큰 곳으로 이사 갑시다.”
선문대공주선녀는, 아니 이젠 오백 아들을 낳다 보니 얼굴이 쭈글쭈글 할머니가 다 돼 설문대할망이라 불리는데요.
설문대하르방에게 이사 가기를 권했으나 이곳이 좋다며 가려면 설문대할망만 아이들을 데리고 가라네요.

참 기가 막혀, 벌써 권태기가 왔나?
하기야 그러니 설문대하르방, 할망이 된 것이지.

할 수 없이 설문대할망은 오백 아들을 데리고 큰 평수로 이사를 간 게 ‘영실’이지요.

“에구 이놈들, 맨날 놀기만 하면 어쩌란 말이냐? 일들 해라. 어디든지 가서 일하란 말이야.”
설문대할망은 오백 아들을 먹여 살리기가 힘에 부쳤어요.

“애들아, 2020년 최저임금이 1시간에 8,590원인데 8시간 일을 하면 68,720원이란다. 거기다가 500명이니 우리 집안 식구 하루 일당이 34,360,000원으로 엄청난 돈이 아니더냐?”
설문대할망은 이젠 살림꾼이 다 됐는지 아니면 설문대하르방이 아들 교육은 알아서 시키라는 투로 휭하니 어디론가 떠나서 서운한 건지 오백 아들이 놀고먹는 걸 보니 괜히 심술부리듯 하네요.

아하! 그래서 이때부터 자식 교육은 어머니가 보통 맡아서 하는 거구나!

“알았어요. 우리 일 나갈게요.”
오백 아들이 일하러 떠나니 설문대할망은 사람들과 약속한 다리를 놓으러 갔지요.

“뭐라? 한 동이 부족하여 구멍 뚫린 속옷이라고?”
하늘나라에서 내려올 때 속옷을 입지 못하고 내려왔기 너무 속상하고 거기다가 시집도 갔는데 속옷을 안 입고 다니기가 아들들 보기도 그렇고 남편 보기도 그렇고 해서 사람들과 약속한 게 육지까지 다리를 놓아주면 속옷을 만들어 주겠다더니 명주 한 동이 부족하여 구멍 뚫린 속옷을 만들었다니 화가 난 게지요.

“난들 어쩔거나. 나도 그만둠세.”
설문대할망은 ‘조천’과 ‘완도’ 가는 다리를 놓다 말았지요.
그게 ‘엉장메 코지’랍니다.

예전에 선거철만 되면 제주도에서 완도까지 수중 터널을 놓겠다는 공약을 했던 시절이 있었는데, 사실 몇 해 전에는 제주도지사와 전남도지사가 협약을 맺어 아닌 게 아니라 완도까지 다리를 놓겠다는 발표를 한 적이 있는 데요. 최근엔 뭐 일본과 한국 사이에도 다리를 놓겠다나요? 이건 다 오래전 설문대할망이 사람들과 약속한 일로 세상 살다 보니 약속(공약)도 돌고 돌고 도는가 봐.


“에구 더워. 좀 쉬었다 가자.”
설문대할망은 더위를 먹어 족두리는 교지교에 놔둔 채 영실 집에 간 거지요.

참, 그러고 보니 핸드폰을 왼손에 잡고 ‘내 핸드폰 어디 있나?’ 하며 찾는 거랑 똑같이 설문대할망도 이제 기억력이 상실하여 늙었나 보죠?

매일 쓰고 다니던 족두리를 벗었는지 썼는지 느낌이 없는 건지 건망증인지 우울증인지 그러니 어디서 어떻게 죽었는지도 모르잖아요.

그래서 ‘죽 쑤다 죽어다’라느니 ‘물장올에 빠져 죽었다’ 느니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은 게지요.

“이런, 이 많은 빨래를 혼자 어떻게 하나?”
오백 아들이 오백 벌의 옷을 벗어 놓고 저녁잠을 자는 자라 설문대할망은 홧김에 옷 오백 벌을 ‘휭’하니 바다로 날려 버렸지요.

근데 이상한 일이 벌어 졌지 뭡니까?
그 옷이 김녕리 앞바다에 떨어졌는데 이상하게도 바닷속에 가라앉지 낳고 ‘붕붕’ 떠 있지 뭐예요?

뭐라고요?
원래 옷은 바닷물에 가라앉지 않는다고요?
아니지요.
오백 아들의 옷은 산짐승 가죽으로 만든 옷이니 무거워서 바닷물에 가라앉거든요.

“어라? 무슨 조환가?”
설문대할망은 영실에게서 나와 김녕 바닷가로 헐레벌떡 달려갔지요.

“왜 이리 덥나?”
날씨가 더웠어요.

급히 서두르다 보니 더 더웠어요.

“어? 물웅덩이가 있군”
설문대할망은 김녕 바다 앞에 있는 물웅덩이를 발견하여 옷을 벗어 굴 입구에 걸쳐 놓고 ‘풍덩’ 뛰어들었어요.

옷이랴야 위 속옷은 생각조차 안 했고 아래 속옷은 아예 없는지라 그냥 헐렁한 원피스니 홀짝 위로 벗겨내면 그만이었지요.

(2019년 4월 19일(음력 삼월 보름) 보름달)
(김녕 바닷가 물웅덩이)

“어이구, 시원해.”
설문대할망 모처럼 고향에 온 듯 물장구치며 아늑한 물웅덩이에 몸을 담그고 편하게 쉬고 있네요.

어느 책에서 봤는데 코끼리가 죽게 되면 자기가 태어난 곳에 가서 상아 뼈를 남긴다나요?
가시고기는 민물에서 태어나 바다에서 자라 다시 민물로 돌아와 알을 낳고 죽는 다나요?

모두 고향으로 돌아와 죽는다는 말인데, 인간도 그래요.
잘살게 되면 도시로 나갔다가 힘들 땐 꼭 자신이 필요 한때만 돌아오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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