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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인 칼럼](31)사오정 호프
[경제인 칼럼](31)사오정 호프
  • 현달환 편집장
  • 승인 2021.02.27 21: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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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이 만난 제주인, "아, 제주마씸?"
[김택남 자서전]제주 소년, 꿈을 투망하다
(주)천마그룹 김택남 회장의 인생 스토리

뉴스N제주가 창간기념에 맞춰 '제주경제인 칼럼'을 게재하는 가운데 그 첫 순서로 선보인 김택남의 자서전, '제주 소년, 꿈을 투망하다'라는 내용이 신축년 새해에도 계속 독자들에게 많은 울림을 주고 있다.

이번에 올린 내용은 '사오정 호프'라는 제목으로 김택남 회장이 평소 직원들과 혹은 홀로 술 한 잔이 생각날 때 가는 단골가게에 대한 일화 등을 그렸다.

지난 1주일 전 MBC뉴스에서 우리나라 가계 빚이 1700조 원, 사상 최고 기록을 돌파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이날 뉴스에서 빚이 늘어난 것도 문제지만, 돈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빚을 내는 이유도 양극화되고 있다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날 방송에서 어느 호프집 사장을 인터뷰 과정에서 전기료가 3개월치나 밀렸다고 전하며 공과금, 관리비도 밀리게 되고, 차도 중고차에다 넘기고 왔다는 멘트까지 전했다.
가족이 진 빚은 6000만 원이며 전세보증금도 빼서 두 아이와 가게에서 지내고 있다며 "그냥 장사하는 게 죄인마냥 느껴진다"며 비참함을 토로했다.

지난해 대한민국 4분기 가계빚은 1726조 원이라며 최고기록을 세웠다고 한다.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음을 우려했다.

지금 대한민국에는 '영끌'과 '빚투'라는 단어가 우리 사회에 깊숙하게 퍼져가고 있다. 사실 젊은 사람들이 부동산과 주식 같은 시장에 투자 목적으로 돈을 빌리고 투자한다는 말이다.

*영끌 :'영혼까지 끌어모으다'를 줄인 말로, 주로 급여를 계산할 때 각종 수당까지 모두 끌어모아 계산하였다는 말로 쓰인다. 아주 작고 사소한 것들을 하나로 모은 행위를 강조하는 말이다.
*빚투 :코로나19가 불러온 저금리 기조로 개인투자자들 사이에서 주식투자가 유행하면서 ‘빚내서 투자하자’라는 뜻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이러한 어려운 가운데 작은 가게를 해도 코로나19라는 악재에는 손을 쓸 수가 없다. 그러나 가게도 빚으로 허덕이면 끝이 없다.

'사오정' '오륙도' 라는 말이 한동안 유행이던 적이 있었다. 45세 정년, 56세까지 직장에 다니면 '도둑놈' 소리를 듣는다는 뜻이다. 경쟁이 치열해지고 정년도 갈수록 짧아지면서 나온 시대상에 대한 자조적인 표현이다.

지금은 굉장히 어려운 시대일 수 있다. 가정이 붕괴되고 서로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는 사례가 많아질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서로 응원해주는 것이다. 그것은 희망일 수 있다. 그 작은 불씨가 되는 희망마저 갖지 못한다면 결국, 포기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

부부가, 가족이, 사회가, 국가는 이러한 심리상태를 차단시켜야 한다. 그런 생각이 들지 않도록 응원해주는 것이다. 그 응원의 힘은 아무리 밑바닥에 있더라도 꿈틀거리며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것이다.

응원의 힘은 대한민국에 필요하고 제주도에 필요하고 우리 사회, 가정, 내 자신에게 필요하다.

시원한 호프 한 잔 하고 내뿜는 "캬-"하는 소리가 우렁찰 때 같이 술을 마시는 사람들은 분위기에 젖어 즐거운 마음이 되는 것처럼, 실의에 빠진 사람들에게 이러한 응원의 목소리가 반드시 필요하다.

사오정 호프집 주인들처럼 언제나 웃는 마음으로, 여기가 최고로 좋은 곳이라는 긍정의 생각을 갖는다면 이러한 코로나19라는 위기도 우리에게 큰 교훈이 되고 끈끈한 정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위기를 반전시키는 능력, 그것은 응원이다. 서로 파이팅하면서 오늘도 좋은 시간이 되기를 빌면서 많은 필독이 있기를 바랍니다[편집자 주]

사단법인 제주특별자치도발전포럼(공동대표 김태환, 김택남)이 4일 제주KAL호텔 오후5시부터 열려 ‘제주특별자치도의 방향과 과제’를 모색하는 세미나를 개최했다.(사진제공 김택남 공동대표)
김택남 사단법인 제주특별자치도발전포럼 공동대표 (사진제공 김택남 공동대표)

처음 술자리를 가지면 서먹하고 어려운 자리가 되기 쉽다. 저녁을 먹으면서 술잔을 마주치고 술기운에 서로를 알아가며 자리를 옮겨서 계속 술을 마시게 된다. 자리를 옮겨 2차도 가고 3번 자리를 옮기는 사람도 있다. 그렇지만 나의 술자리 원칙은 1차만 하는 거다. 자리를 옮겨가며 술을 마시면 과음하게 되고 다음날 업무에 지장을 초래하는 것은 젊은 사람이나 나이 든 사람이나 마찬가지다.

과음은 건강에도 해롭고, 이기지 못한 술기운에 생각지 않았던 다툼에 휩쓸리기도 한다. 1차로 끝내는 술자리가 아쉬울 때도 있지만 과음하는 것보다는 저녁을 먹으며 나누는 소주잔으로 나는 만족해 하는 편이다. 그러나 가끔 딱 한 잔의 술이 모자를 때가 있다. 여럿이 함께 했던 자리에서 딱 한 잔의 술이 부족할 때, 혹은 홀로 사람들이 그리울 때 내가 찾는 곳이 있다. 바로 사오정 호프다.

“어디 시원한 생맥주 한잔할 때 없어?”

지금은 요산수치가 높아서 자제해야 하지만 내가 제일 좋아하는 술은 생맥주다. 하얗고 부드러운 거품 아래 거칠고 알싸한, 시원한 생맥주는 답답한 나의 속을 시원하게 만들어주는 좋은 친구다.

하지만 1차만 고집하다보면 생맥주를 마실 기회가 흔치 않다. 식사를 하며 마시기엔 부담스러운 술이 생맥주다. 막 제민일보를 인수하고 답답하던 나는 생맥주에 대한 갈등이 커졌다. 그때 찾아간 곳이 ‘사오정 호프’였다. 고소한 후라이드 치킨이 유명해서 천마 식구들 단골집 중 하나였다.

“여기 무슨 신문 봐요?”

나는 음식점이나 술집을 찾아가면 제일 먼저 하는 것이 신문검사다. 언론사 회장이 체통 없이 영업을 한다며 질색하는 직원들도 있지만 우리 신문사를 알리는데 상하고저(上下高低)가 따로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저희 신문 안보는 데요.”

신문 볼 시간이 없어 신문을 보지 않는다고 이야기 하는, 지금은 내가 형수님처럼 모시는 사오정 호프의 안주인 최영부 누님께 나는 반강제로 제민일보 구독을 권했다. 누님은 주문도 하지 않고 신문 구독부터 권하는 내가 당황스러울 법도 했건만 싫은 내색을 보이지않았다.

내가 제민일보의 회장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신문을 구독하겠다" 약속한 사오정호프의 안주인은 우리 누이를 닮았다. 언제나 미소를 잃지 않고 살갑게 손님을 대접했고 가끔 술기운에 손님들이 짓궂게 장난을 걸어도 언제나 웃음으로 대꾸했다.

영부 누님을 보면 아무리 곤란하고 힘들어도 속으로만 삭히는 우리 누이가 생각나 남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사오정 호프를 찾는 내 발걸음이 잦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사오정 호프의 주인 부부와 형, 동생 하는 사이가 됐다.

나는 제주에서 새로운 친구를 사귈 때 언제나 사오정 호프에서 생맥주 딱 한 잔을 나누는 2차를 권한다. 주인을 닮아 소박하고 따뜻한 분위기의 사오정 호프라면, 점잖고 어려운 자리에서 털어놓기 힘든 진심을 나눌 수 있어 쉽게 친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함께 할 사람이 없다면 홀로 사오정 호프에 가도 외롭지 않다. 그곳에서 생각지도 못하는 인연을 만나기도 한다.

누구에게나 친절한 사오정 호프에 다양한 사람들이 찾아온다. 그래서 일자리를 찾아 멀리 외국에서 온 노동자들도 고향 사람들과 사오정 호프에서 모임을 갖기도 한다. 우연히 인도네시아 노동자들이 모인 자리에 끼어 이야기를 나눈 적도 있다.

타지에서 고생하는 노동자들을 보면 나는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어린 시절 물 설고 말설었던 육지에 적응하려 고생했던 지난날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바다 건너 타국까지 왔으니 나보다 더 큰 외로움을 견디며 생활해야 했을 것이다.

그들의 곁에서 힘든 점이 있는지, 곤란한 일은 없는지 묻고 싶은 것은 많았지만 그들의 서툰 한국말 때문에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다. 내 명함을 건네며 어려운 일이 있으면 연락하라는 인사말과 그날의 계산을 대신 하는 것으로 내 서운함을 전했다.

사업실패 후 사오정 호프에서 재기에 성공하신 이종오 최영부 형님 내외 16년 동안 한자리를 지키며 이곳을 찾는 사람들 누구나 따뜻하게 환영해주신다.
사업실패 후 사오정 호프에서 재기에 성공하신 이종오 최영부 형님 내외 16년 동안 한자리를 지키며 이곳을 찾는 사람들 누구나 따뜻하게 환영해주신다.
사업실패 후 사오정 호프에서 재기에 성공하신 이종오 최영부 형님 내외 16년 동안 한자리를 지키며 이곳을 찾는 사람들 누구나 따뜻하게 환영해주신다.
사업실패 후 사오정 호프에서 재기에 성공하신 이종오 최영부 형님 내외 16년 동안 한자리를 지키며 이곳을 찾는 사람들 누구나 따뜻하게 환영해주신다.

제주에서 나고 자랐지만 나는 사오정 호프의 형님 부부처럼 제주를 사랑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30여 년 전 형님 부부가 결혼하며 정착한 제주를, 제주 토박이보다 더 사랑한다. 젊은 시절 형님부부는 큰 사업을 경영하기도 했고, 그 사업이 어려워져 곤란을 겪기도 했지만 한번도 제주를 떠날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고 한다.

‘제주보다 살기 좋은 곳이 어디 있다고 그래, 동생?’

힘들고 어려울 때 모든 것을 포기하고 육지로 올라갈 생각도 했지만 금방 마음을 다잡았고 제주에 머물렀다고 한다. 사업 실패로 인해 밀려오는 경제적 압박을 부부의 신뢰로 극복하고 재기의 터를 잡은 곳이 바로 사오정 호프다.

외지에서 터를 잡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고, 실패를 털고 재기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그 지난한 과정을 서로 믿고 의지하며 함께 헤쳐 온 형님 내외의 금실은 보는 사람들을 따뜻하게 해준다. 이제 모든 짐을 덜어낸 형님 내외는 손을 잡고 제주 전역 어디든 함께 간다. 가게 문을 열기 전에는 내외가 함께 골프를 치기도 하고 주말이면 제주 오름으로 등산을 간다.

가끔 형님이 스쿠버 다이빙으로 잡은 생선을 선물해 주기도 한다.

“육지에서는 우리 형편에 어림도 없는 취미지. 욕심 부리지 않고 열심히 일하면 대한민국에서 제일 살기 좋은 데가 제주야. 공기 좋고 물 좋고 사람 좋으니, 이보다 좋은 곳이 어디 있어?”

이제는 자신의 고향보다 제주를 더 사랑하는 사오정 호프 형님은 제주 토박이인 내게도 제주를 자랑하는데 여념이 없다.

나도 형님처럼 제주가 세상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이라고 생각한다. 한반도에서 가장 온화한 기후에 제주 한가운데 우뚝 솟은 한라산과 한라산 주변을 감싸 흐르는 360여 개의 오름은 보기만 해도 마음이 차분해 진다. 제주의 깨끗한 생수는 전국에서도 이름 높고, 삼천리 금수강산 중 가장 맑은 공기를 지닌 곳도 이곳 제주다. 한적하고 여유로운 제주에서는 형님 말씀대로 관심만 있다면 큰돈을 들이지 않고 원하는 레포츠를 즐길 수 있다.

2012년 본사를 서울에서 제주로 이전한 다음(Daum)이 실시한 제주 생활만족도조사에서 79.6%가 제주생활에 높은 점수를 줬고, 특히 5년 이상 장기근무자의 경우 85.3%가 가장 높은 점수를 주었다고 한다. 비단 다음의 제주 생활만족도조사가 아니라도 정착하고 살면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은 삶의 질을 누리는 곳이 내 고향 제주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제주에 정착해 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제주산업의 70% 이상을 관광산업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젊은이들이 역동적으로 도전할 수 있는 일자리가 많지 않다. 젊은이들은 학교를 마치면 취업을 위해서 육지로 올라간다. 젊은 인재들을 육지로 올려 보낸 제주는 점점 노령화되고 젊은 인력이 빠져나간 도시는 발전이 더디다. 천혜의 자연환경으로 삶의 질이 가장 높은 제주의 소득이 16개 시·도의 끝자락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 모두 반성해야 할 점이다.

3차 산업에 편중되어 있는 제주 산업구조를 2차 산업, 제조업을 근간으로 하는 산업구조로 개편해야 한다. 미국 금융위기에서도 알 수 있듯이 모든 산업의 근간은 ‘제조업’이다. 서비스업에 치중했던 미국은 부동산 경기침체로 인해 위기를 겪은 한편, 탄탄한 제조업에 기반을 두었던 독일은 세계적인 불황에도 불구하고 유럽의 성장 엔진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

의료기기 없는 의료서비스가 불가능하고 레미콘 없이는 건설도 불가능하다. 제조업의 고용효과는 서비스업에 비해 1/3에 불과하지만 그 파급 효과는 4배에 이른다고 한다.

강력한 제조업 기반의 산업구조는 어떤 경기불황에도 흔들리지 않는 경제의 버팀목이 될 수 있다. 제주의 향토자원을 활용하고 지역에 적합한 전략산업을 육성해 안정적인 일자리를 창출해야 하는 것은 우리 제주에 남겨진 숙제다.

하지만 내가 제조업 발전을 강조하는 것은 단순히 제주발전을 위한 경제효과 때문만은 아니다. 내가 제조업에 40년 가까이 종사하면서 배운 가장 큰 삶의 지혜는 일하며 흘리는 땀은 절대로 배신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금 당장 어렵고 힘들지만 꾸준하게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노력하면 언젠가 그 대가를 얻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흘리는 땀의 가치를 아는 사람만이 다른 사람의 노동에 감사할 줄 아는 배려를 가질 수 있다. 젊은이들에게 땀 흘려 일할 기회를 제공하고 그 땀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우리 사회가 나갈 방향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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