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산 시인, 평론가
■토요 시 창작 강좌(113)
□ 산책하듯 시 쓰기
시를 쓰는 일은 뜨거운 커피를 음미하며 천천히 마시는 일과도 같다.
한 모금씩 마시며 혀를 통하여 느껴지는 커피의 진미를 알아가는 일이 소믈리에, 즉 커피를 제대로 알아가는 전문가의 과정이다. 배를 채우려는 듯 들이킨다면 커피를 아는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시 쓰기도 마찬가지다. 물을 들이키듯 양으로 승부하는 장르가 아니다. 천천히 음미하며 제대로 쓰는 것이 제일 빨리 쓰는 방법이다. 그래야만 시의 전문가가 된다. 음미한다는 것은 아래와 위, 좌와 우가 간접적으로나 의미적으로도 서로 조응이 되는지, 미아처럼 따로 놀고 있는 단어는 없는지 둘러봐야 한다. 질 높은 시 한 편은 시시한 시 백 편보다 낫다.
필자도 처음에는 아름다운 단어를 잘 나열하면 좋은 시가 되는 줄 알았다. 이것은 마치 화장품을 이것저것 잔뜩 바른 얼굴처럼 오히려 천박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 전에 써놨던 시들을 살펴보니 다른 사람이 쓰고 있던 화장품을 훔쳐 와서 쓴 것 같은, 또는 책에서 베낀 것, 상투적인 미사여구 등 지워야할 천박한 것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또한 말하지 말아야할 부분까지 까발린 시도 많았다.
시는 최소한의 언어로 말한 부분보다 말하지 않은 부분이 더 많이 느껴질 때 좋은 시라는 사실도 한참 후에 알았다.
아무리 시 짓기 이론을 많이 알아도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들려는 간절함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많이 알고 있어도 헛공부를 한 셈이다.
필자의 시 창작교실에 나오는 사람 중에는 시 공부를 10년도 더 했고 문학회도 여러 곳에 가입해서 엄청 열심히 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도무지 시가 늘지 않았다. 그는 시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문학 활동을 자기의 장식품처럼 달고 다니는 듯 느껴졌고 건성 건성 공부를 하는 것 같았다.
시 공부는 문학 활동과는 구분되어야 한다. 많이 배우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 하나를 듣고서라도 내 것으로 만들려는 노력이 없으면 백날 듣거나 공부해도 허사다.
필자가 두서없이 적어놨던 시 짓기 노트를 꺼내보면서 사실 얼굴이 화끈거릴 때도 많다. 시 짓기의 중요한 내용들을 빽빽하게 적어놓았지만 그것을 제대로 실천하지 않고 있는 내용들이 상당히 많았기 때문이다.
부끄럽지만 여러분께 약속한 내용이기에 오늘도 몇 가지를 적어 본다.
1. 시는 나의 고백을 다른 사람에게 하는 일과도 같다. 입장을 바꿨을 때 나의 그 고백은 들어줄만 한 내용인가? 다른 사람이 내게 그와 같은 고백을 한다면 나는 들어줄만한 즐거움이나 의미가 있는 내용인가를 끊임 없이 자문하라.
2. 나의 시는 과도한 외침은 없는가? 시에서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이해되는 표현은 비명이나 욕같은 언어다. 내용을 독자에게 정확하게 까발리는 것은 비명을 지르거나 욕을 하는 일과도 같다. 감정의 절제는 상대를 위한 배려다.
3. 이해시키려고 하지 말라. 시는 이해가 아니라 느낌이다. 내용이 좀 어렵고 쉽게 이해되진 아니해도 좋은 시는 느낌이 온다.
4. 시적 대상 A를 설명하려는 시는 “나는 나다”라는 말과 같다. 즉 그것을 설명하는 순간 그것에 대해 아무것도 말하지 않은 것과 같다. A와 유사한 B를 가지고 설명하는 것이 메타언어metalanguage적 시다. 즉 꽃이 어떻게 아름다운지 설명했다면 그것은 말하지 않은 것과 같다. 꽃은 원래 아름다운 것이다. 전혀 다르지만 유사한 이미지를 끌어와서 비유하는 시를 연습하자.
5. 유사성이 없어도 다른 사물과의 통합을 잘하면 시가 된다. 통합과 결합의 중요성을 항상 염두에 두자.
6. 크든 작든 독자의 기억에 남을만한 줄거리가 있도록 시를 쓰자.
7. 채워진 부분과 비워진 부분의 조화를 이루도록 시를 쓰자. 채우면서 비워진 부분에 반을 숨기자.
8. 끝난 것처럼 시를 쓰지 말자. 뭔가 있을 것 같은 여백을 남기는 시를 쓰자. (이어산)
■ 이주의 디카시 한 편
가시와 망치
가시를 품은 사람은 찌를 대상만 생각해요
망치를 가진 사람이
박을 상대만 찾아 헤매듯
우리, 가시도 품지 말고 망치도 버려요
_ 전영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