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바다 칼럼](1)청년 하멜의 도전정신과 리더십은 어디서 나오는가
[채바다 칼럼](1)청년 하멜의 도전정신과 리더십은 어디서 나오는가
  • 현달환 국장
  • 승인 2021.02.02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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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바다 시인
고대 해양 탐험가

보고 싶은 사람 있으면
나는 등대로 간다
등대로 가서 그 사람을 만난다
보고 싶은 사람 있으면
나는 등대로 간다
그 사람이 수평선에 있다

어제는 그 사람이 섬이었다가
오늘은 파도로 출렁인다
섬이 되었다가
파도로 밀려오는 사람
그 사람이 수평선에 있다
나는 매일 등대로 간다
등대로 가서 그 사람을 만난다
수평선으로 서 있는 사람​

수평선으로 서있는 사람이
오늘 별 하나로 떠 있다
그 별을 만나러 나는 등대로 간다

-. 채바다의 '등대로 간다'

"나의 뱃길은 표류해서 가지만 역사는 결코 표류해서는 안 된다."-채바다(한국 하멜기념사업회 회장 가운데)

채바다,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떨린다. 제주의 떼배(일명;테우)를 타고 현해탄을 건넌 사나이. 그는 제주의 검푸른 바다를 타고 일본으로 간 입지적인 인물이다.

그가 성산포에서 정착하며 제주에 끼친 영향은 대한민국은 물론 일본, 네덜란드까지 알려져 있다. 그의 일생은 모험과 탐험, 도전정신으로 일관되어 왔다.

우리 선조들은 범선시대에 줄기차게 고대 일본으로 건너가서 한반도의 선진화된 전통문화의 원형들을 가지고 건너가서 고대 일본문명의 꽃을 피웠다고 주장한다.

그러한 신념을 직접 입증하려는 시도로 채바다 작가는 오늘날 선박의 시원이 되고 있는 통나무 떼배를 타고 조류와 해류를 이용하여 일본으로 건너갔던 고대해양 탐험가로 알려 지고 있다.

그는 성산포에서 나고 자랐다. 그런 후 서울에서 한양대를 졸업한 그는 서울에서 사업을 하다 고향 제주에서의 미련으로 40대에 귀향한 것이다.

안정된 사업을 뒤로하고 제주도로 내려온 그는 개명을 통해 '채바다=고대해양탐험가'로 본격적인 고대 한,일 문화이동에 관한 연구와 탐험에 투혼을 던지고 있다.

1996년 4월 첫 탐험은 너비 3.5m, 길이 6.5m의 원시형 통나무 전통 떼배를 배를 복원하여 북서계절풍을 이용하여 성산포에서 6일 밤낮으로 도착한 곳이 일본 규슈 고토열도를 거쳐서 나가사키 항에 도착했다. 이어 1997년 4월 달에 다시 성산포에서 11일 만에 나가사키에 당도하는 탐험을 계속 이어 갔다.

2001년 4월 8일에 전남 영암군 대불 항에서 출발해서 진도 울돌목, 완도를 거쳐서 일본 사가 현 가라쓰항에 입항하여 일본 언론들과 방송들이 경쟁적으로 취재 열기로 큰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1600년 전 백제 왕인박사 도일 뱃길 탐험이다.

그는 말했다. "미쳐 있었다. 바다는 예측하지 못할 정도로 험해서 목숨을 걸어야 한다"고.

왜 그가 그런 탐험에 미쳤을까? 그는 마치 신들린 사람처럼 고대 한일 문화이동 뱃길 탐험에 미쳐서 나를 움직였다고 말한다. 당시, 그는 바다에 미쳤고 한일간 고대 문화이동에 대한 의문들을 하나하나씩 풀어가는 일에 반생을 미쳐 살았다.

그는 2005년 떼배와 제주 해녀들이 태왁을 비롯한 전통 어구 등을 모아 성산읍 시흥리에 바다박물관을 개관했다. 그의 탐험과 연구에 대하여 정부는 2007년에는 대통령 표창 수상, 2008년, 국토해양부장관상과 '장보고 대상'을 연이어 수상했다.

그는 다시 해양강국인 네덜란드 청년 '하멜표류기' 연구에 몰두하여 한국과 네덜란드 문화역사에 대한 연구와 네덜란드 청년 인문학의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여 국가 연구기관. 지자체 각급 대학교, 기업들이 초청하는 명강으로 조명 받고 있다.

채바다 작가는 "1653년 네덜란드인 하멜이 일본 나가사키로 가다가 제주도에 표착했을 때 나이가 당시 23세였고 선원 중에 10대 소년도 있었다"며 "네덜란드는 국토의 4분의 1은 해수면보다 낮은 나라로 유럽의 관문으로 이 나라의 성공신화와 일류국가로 정상에 오른 배경에 대하여 많은 것을 알게 됐다"고 말한다.

그는 "자원도 없는 척박한 간척지를 옥토로 일구어서 세계 해양제국의 정상을 정복한 배경에는 하멜과 같은 청년들의 '불굴의 도전정신'때문"이라며 "도전하는 젊은이가 많을수록 나라는 성공시대를 만들어 가는 초석이 되고 있다"라고 진단한다.

채바다 작가는 △제주 성산포 출생△한양대학교에서 화학공학 전공△중앙대학교 사회개발 대학원 사회복지학 공부△고대항해탐험연구소장△시인△1996년, 1997년, 2001년 통나무 떼배(테우)타고 일본 나가사키항 2차례, 사가현 가라스항 1차례 탐험△2003년10월, 남북통일 기원 제주도 해안 일주△2006년 6월 제주-강진 마량항, 탐라국 신화,벽랑국 뱃길 탐험 △2011년 10월 제주-진도 고려 삼별초 뱃길 탐험 항해했다.

또한 시집으로 '파도가 바람인들 어쩌겠느냐', '저 바위에 부서지는 파도소리 어머니 눈물은 아니시겠지요. '일본은 우리다' 등 작품들과 수필집 ‘일출봉에 해 뜨거든’, 논문 ‘한국해양문화의 시원과 떼배의 역사적 고찰’, ‘해양역사의 뿌리와 해양한국의 미래’, ‘하멜표류기의 역사적 재조명과 표착지에 관한 연구’ 등 다수.

"나의 뱃길은 표류해서 가지만 역사는 결코 표류해서는 안 된다."-채바다

그의 시 '표류'의 한마디가 채바다 칼럼의 의미를 포함한다. 그는 지금 하멜의 도전정신을 일깨워주는데 열정을 쏟고 있다. 역사는 도전하는 자에게 성공의 면류관이 돌아가는 정신으로 성공 인문학에 대한 열강에 주목하게 된다.

바쁘신 와중에도 뉴스N제주에 칼럼을 흔쾌히 게재해주신 채바다 작가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채바다 작가의 칼럼을 독자여러분의 많은 성원과 필독이 있기를 기원합니다.[편집자 주]

"나의 뱃길은 표류해서 가지만 역사는 결코 표류해서는 안 된다."-채바다(한국하멜기념사업회 회장 사진 오른쪽)

하멜은 1653년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소속 서기직으로 승선하여 인도네시아와 대만을 거쳐 서 일본으로 항해 중에 태풍을 만나서 서귀포시 대정읍 신도2리 앞 바다에서 난파되었다.

이 무역선에는 64명 가운데 28명이 숨지고 36명이 살아남았다. 이들은 13년 동안 한국에서 억류와 유배생활로 살았다. 당시 선원들의 나이는 하멜을 비롯해서 10대 청소년들도 함께 타고 있었다. 이들은 낯선 조선 땅에서 13년 동안 억류와 유배생활로 온갖 시련과 고통들을 겪으면서 급기야 일본으로 탈출하여 고향으로 돌아갔다.

이들은 강인한 인내심과 협동심으로 어려운 역경들을 극복하고 있다. 17세기는 네덜란드의 황금시대(Gold Age)로 세계 무역시장을 제패하여 정상을 정복하여 성공신화의 중심에는 하멜과 같은 청년들의 인간승리를 발견하게 되었다. 청년 하멜은 성실한 기록정신과 투철한 책임감에서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의 리더십을 만나게 된다.

하멜은 난파당시 숨진 선장 에그베르츠의 빈자리를 앞장서서 리더의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경륜과 서열을 중요시 하는 선상생활에서 자신보다 높은 직급인 항해사와 갑판장을 대신하여 살아남은 동료들과 함께 리더의 역량을 자연스럽게 수행하고 있다.

하멜은 서기직의 영역에 머물지 않는 멀티플레이어 정신으로 종횡무진 뛰어 다니며 동료들의 안전한 귀향길에 마지막 순간 까지 크게 기여하는 모습들에 감동하게 된다.

불굴의 도전 정신들이다. 하멜은 낮선 이국 땅 한국에서 언어가 소통되지 않는 환경 속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자신들의 끼와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효종임금 앞에서 뿐만 아니라 장안에 사대부 여인들은 이 낮선 동료들을 보려고 장사진을 칠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필자는 현대그룹 정주영 명예 회장의 말을 떠 올리게 된다.”해봤어?” 이들은 험난한 바다 한 가운데서 살아남는 절대 절명의 매 순간마다 소위 지옥과 천당을 수없이 오고 간다.

“도전하는 사람만이 살아남는다."는 말에 공감하게 된다.

"나의 뱃길은 표류해서 가지만 역사는 결코 표류해서는 안 된다."-채바다(하멜기념사업회 진행)

변화무쌍한 바다에서 청년들의 도전과 개척정신들은 동인도 회사의 성공신화와 청년들의 인간승리를 만나게 된다. 이 나라 청년들이 대서양을 넘고 인도양을 거쳐 아시아를 향하는 신세계는 마치 무한경쟁에서 오로지 살아남는 길이다. 즉 이 나라 청년들은 세계의 바다를 향해서 온 몸을 던지고 있다.

청년들이 세상을 바꾸었다.

하멜은 억류 생활에서 보고 듣고 느낀 한국의 風習과 制度와 한국의 실상들을 들을 상세하게 “난파 표류기”에 담고 있다. 그가 쓴 표류기는 이웃 나라 프랑스, 독일 ,영국에서 출판되어 선풍적인 인기를 얻어서 세계적인 해양 古典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한국을 서양에 최초로 소개한 우정이 넘치는 한류의 주인공이다. 이 나라는 일찍부터 유럽의 홍이포를 중국과 일본에 선보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천문,조선,항해,무역,의료,총포,화약분야에서 앞 서 있다

조선의 왕실은 이런 청년들을 억류에만 급급하여 국가 산업에 활용할 기회마저 놓치고 있다.

이 나라는 일본과 통상을 펼치면서 세계 정상에 올랐다. 이런 세계의 흐름은 뒤 늦게 알게 된 것이 당시 조선의 현실이다.

하멜 일행 보다 26년 전에 억류되어 귀화한 벨테브레(귀화명: 박연)도 빼 놓을 수 없는 중요한 사건이다. 이 때 박연과 함께 귀화한 남북산과 남이산(귀화명) 이 있다. 이 두 사람은 청나라 전쟁에 나가서 목숨을 잃었다.

이런 것을 두고 어떻게 설명해야 할 것인가? 이 뿐만이 아니다. 네덜란드는 6,25참전국으로 많은 청년들이 한국전쟁에 희생되었다. 또한 히딩크는 2002년 월드컵 축구경기에서 한국대표선수들을 세계 4강 신화를 이루어 냈다. 참으로 멀고도 가까운 우정의 나라이다.

"나의 뱃길은 표류해서 가지만 역사는 결코 표류해서는 안 된다."-채바다(하멜 기념사업회 국내행사 모습)

“신은 세상을 창조하였으나 네덜란드는 네덜란드인이 만들었다.” 이 나라의 긍지와 자부심을 떠올리게 된다. 경상남북도 만한 작은 국토, 바다 보다 낮은 땅. 매년 홍수와 해일을 막기 위해 댐과 풍차의 나라로 알려진 친숙한 나라이다.

바다를 매립한 간척지를 조성하여 꽃을 재배하여 세계 꽃 시장 80% 점유하는 꽃 수출 1위 나라이다.

또 한 사람 보다 자전거가 더 많은 자전거 나라(1인당 1.5대)로 전국을 자전거로 여행하는 나라이다. 이 나라의 스포츠 정신과 근검 절약정신은 큰 경쟁력을 앞세워 가는 선진국이다.

영국과 수많은 해전, 스페인과 80년 전쟁 ,2차 대전 때 독일에게 5년 동안 점령당하는 위기에서도 도전과 발전의 기회로 삼았다.

부모들은 일찍부터 아이들에게 자립심을 일깨워주고자 벼룩시장을 열어주고 있다. 상인정신을 일깨워 주는 체험과 현장 교육에 주목하게 된다.

‘강대국의 흥망’저자 예일대 폴 케네디 교수는 한국의 미래에 대해서 “한국은 17세기 네덜란드와 같은 위상을 차지할 수 있는 나라이다.”라고 전망 하고 있다.

필자는 하멜의 발자취를 따라서 십 수 년 전부터 제주에서 서울, 강진, 여수, 순천, 남원, 또한 남한산성 등을 여러 차례 찾아 나섰다. 이들의 시련과 고통을 이겨낸 길과 현장들을 함께 공부하고자 했다. 현재 많은 청년들은 심각한 취업난에 시달리고 있다. 이 나라 청년들의 긍정적인 사고와 공격적인 도전 정신에 감동받게 된다.

험난한 폭풍의 바다에서 좌절하지 않는 이 나라 청년들의 불퇴전의 용기는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

이 나라 청년들의 성공신화는 도전과 모험심에서 출발하고 있다.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정들을 거울로 삼는 길잡이가 되기를 바란다.

미국의 경제학자 제프리 삭스 교수는 “한국은 대단한 역동성과 강력한 기술과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고 있다. 한국에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 말하고 있다. 최근 코로나 19로 인하여 세계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러한 기회를 他山之石으로 삼을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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