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인 칼럼](27)의리(義理)-사람이 지켜야할 도리
[경제인 칼럼](27)의리(義理)-사람이 지켜야할 도리
  • 현달환 편집장
  • 승인 2021.01.30 14: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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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이 만난 제주인, "아, 제주마씸?"
[김택남 자서전]제주 소년, 꿈을 투망하다
(주)천마그룹 김택남 회장의 인생 스토리
인간의 도리는 신의에 있고 신문의 도리는 정론에 있다.제민일보의 좋은 기사는 누군가를 빛낼 기사가 아니라 도민통합의 시선으로 제주의 발전방향을 담은 기사다.
인간의 도리는 신의에 있고 신문의 도리는 정론에 있다.제민일보의 좋은 기사는 누군가를 빛낼 기사가 아니라 도민통합의 시선으로 제주의 발전방향을 담은 기사다.

뉴스N제주가 창간기념에 맞춰 '제주경제인 칼럼'을 게재하는 가운데 그 첫 순서로 선보인 김택남의 자서전, '제주 소년, 꿈을 투망하다'라는 내용이 신축년 새해에도 계속 독자들에게 많은 울림을 주고 있다.

이번에 올린 내용은 '의리(義理)-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라는 제목으로 김택남 회장이 평소 직원을 대하는 행동이나 모습, 자신의 철학과 경험등을 그렸다.

우리는 살면서 무수한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지고를 반복한다.

그러고 보면 지금 약 78억('21년 기준) 세계 인구들 중 자신과의 만남을 가졌다는 것은 확률상 엄청난 숫자가 되는 셈이다. 즉, 그 사람과 인연이 있기에 나와의 만남을 가지고 헤어지고 하는 것이다.

대개 사람을 구분하는 것은 피부색과 얼굴 생김이다. 그것도 눈코입귀 머리 등으로 그많은 인구를 전혀 갖지 않게 만든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다. 그중에 우리가 제일 호감이 가는 것은 바로 사람의 얼굴이다.

그 사람의 얼굴을 보면 이제는 감정이라는 것이 생겨난다. 국어 사전에 나오는 온갖 형용사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다. 아름답다. 예쁘다, 곱다 등 듣기 좋은 말도 있지만 기분나쁘다, 더럽다, 비겁하다 등 아닌 말도 얼굴을 통해 감정을 토로한다.

그만큼 얼굴이라는 모습은 앞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그 얼굴에 속아서 우리는 친해지고 결혼도 하고 오랫동안 친구로도 남는 것이다.

그러나 얼굴이라는 것도 안보였을 때 진면목이 나오는 것이다. 즉, 뒷모습이다. 뒷모습은 거짓말을 못한다. 뒷모습에 진실이 있는 것이다. 앞모습과 뒷모습이 일치된 사람을 좋아하는 것이다.

김택남 회장이 생각하고 있는 것은 사람을 만나지 않아도 그사람의 행동과 어투에서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의리義理'-사람이 지켜야할  도리라는 제목처럼 옳은 것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자신이 하고 있는 처한 상황에 집중하라는 것이다. 집중하지 않고 자신의 이익을 쫓아가는 사람을 믿지말라는 것이다. 물론 이익을 찾는 것은 인간이면 누구나 그러한 마음을 갖는다. 중요한 것은 '상황'이라는 것이다. 그 상황에 맞게 집중하라는 의미이다.

제민일보의 진짜 주인은 오랜 세월 ‘기자’라는 자신의 자리에서 언론의 사명을 다해 도민들과 소통하고 조직 안에서 후배들을 아끼고 사랑했던 사람들이라는 것을 말하는 김택남 회장의 평소 생각이 제주도민은 어쩌면 행복인지도 모른다.

말미에 김택남 회장이 언급한 내용 "인간의 도리는 신의에 있고 신문의 도리는 정론에 있다."라는 말이 다이아몬드처럼 빛난다.

‘불편부당 정론직필(不偏不黨 正論直筆)’ 즉, 어느 한 쪽으로 기울어짐이나 중정 없이 공평하고, 올바른 주장을 펴고 무엇에 구애함이 없이 사실을 그대로 전한다는 의미다.

이처럼 언론이 신의가 있을 때 사회는 아름다운 것이다. 그러한 신의가 오래갈 수 있도록 도민과 독자들은 응원을 해야할 것이다. 그것이 지금도 힘든 여건속에서 한 줄의 기사를 쓰려고 밖으로 돌아다니며 애를 쓰고 있는 신문사의 진짜 주인인 기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일지도 모른다.

오늘도 좋은 시간이 되기를 빌면서 많은 필독이 있기를 바랍니다[편집자 주]

인간의 도리는 신의에 있고 신문의 도리는 정론에 있다. 제민일보의 좋은 기사는 누군가를 빛낼 기사가 아니라 도민통합의 시선으로 제주의 발전방향을 담은 기사다.

대학을 다니던 시절에 교수들은 나에게 특강을 요청하곤 했다.

경영학의 현장 활용에 관한 실무중심 강의를 부탁했지만 거창한 주제의 특강을 하기보다 나이 어린 학생들과 인생의 경험을 나누며 내가 얻은 삶의 지혜를 나누려고 했다. 그런데 특강을 하고 나면 학생들이 꼭 하는 질문이 하나 있다.

“신입사원을 뽑는 기준이 무엇입니까?”

취업문이 좁은 요즘, 학생들은 취업문제가 가장 심각한 모양이었다. 경영자의 입장에서야 일도 잘하고 부지런하며, 친화력도 좋아 동료들과 관계도 원만하고, 주인의식을 가진 성실한 직원이라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현실적으로 그런 인재를 만나는 것은 어렵다.

경영자로서 나는 사람을 뽑을 때 흔히 말하는 ‘스펙’에는 관심이 없다. 사람의 능력을 수치로 환산하는 것은 어렵고 장점이 없는 사람도 없다.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를 보더라도 토끼는 빠른 발을 지닌 대신 교만했고 거북이는 느리지만 성실하게 경주에 임했다.

그리고 현대사회에서 어느 것이 더 좋은 장점인지 말하기는 어렵다.

경영자로서 나는 추진력이 강하기 때문에 맡은 일을 불도저처럼 끌고 가는 경향이 있어, 주변에서는 상황을 잘 살피며 도와줘야 하는 단점도 있다. 꼼꼼하고 야무진 경영자는 새로운 도전을 주저하는 경향이 있으니 누가 더 좋은 경영자라고 할 수 없는 것처럼 직원을 뽑는 기준을 꼭 집어 이야기하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내가 직원을 채용할 때 눈여겨보는 것은 인품이다. 오늘만 장사한다고 그만둔다면 다소 못 믿을 직원이라도 일만 잘하면 되겠지만 꾸준히 회사를 키워가기 위해서는 믿을 수 있는 직원이 필요하다.

자신이 뱉은 말을 책임질 수 있는, 자신의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조직을 위해서 헌신할 수 있는, 정직한 인품을 지닌 사람은 아마도 모든 경영자들이 원하는 인재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토익시험의 성적과는 달리 인품은 수치로 환산할 수도 없고 인품을 알기 위해서 가끔 상처받는 일도 감수해야 한다.

내가 제민일보를 인수한다고 하자 외부에서는 경계의 대상이 됐지만 내부에서는 걱정의 대상이 됐다. 언론이라는 것은 제조업과 다르다, 제대로 언론을 이해하기 위해서 4~5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천마를 인수한 지 얼마나 됐다고 또 새로운 일을 벌이려고 하느냐, 가족부터 친지, 천마의 직원까지 한 목소리로 걱정했다.

평생 사업을 하면서 남들이 닦은 길로 가지 않은 것이 내 운명인 듯싶었다. 남들보다 질러가기도 하고 돌아가기도 했지만 한번도 결심을 굽혀 본 적이 없었다.

제주의 변화를 위해서 나같이 적극적인 성격의 언론사 사주도 한 명쯤은 필요하다고 여겼다. 물론 제조업과는 경영방식이 다르겠지만 원칙은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무엇을 경영하든, 투명한 경영과 직원들의 생활안정과 복리후생을 기업의 우선 목표로 삼는 것이 경영자의 원칙이라 믿었다.

인간의 도리는 신의에 있고 신문의 도리는 정론에 있다.제민일보의 좋은 기사는 누군가를 빛낼 기사가 아니라 도민통합의 시선으로 제주의 발전방향을 담은 기사다.
인간의 도리는 신의에 있고 신문의 도리는 정론에 있다.제민일보의 좋은 기사는 누군가를 빛낼 기사가 아니라 도민통합의 시선으로 제주의 발전방향을 담은 기사다.

내가 인수하기 전, 이미 제민일보는 경영난을 타파하기 위해 구조조정을 단행한 후였기에 조직적이고 효율적인 운영을 하고 있었다.

대주주의 변경에 따라 기존 임원들에 대한 사직서를 받긴 했지만 경영의 큰 변화를 막기 위해 진성범 대표이사의 사표는 수리하지 않았다. 언론사 경영에 경험이 없던 나는 편집권과 인사권에 대해서 관여하지 않기로 결심하고 원칙을 지키는 경영을 약속했다. 그러나 그 원칙이 사람마다 다른 모양이다.

내가 제민일보를 인수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000 편집국장이 찾아왔다. 기존에 제민일보는 기자들의 투표로 선정된 후보를 복수 추천하면 경영진의 회의를 거쳐서 편집국장을 임명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런 과정을 뻔히 아는 사람이 나를 찾아와 편집국장을 1년 더 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자신의 의사를 밝히는 것이 잘못은 아니다.

000은 창간부터 20년 가까이 제민일보에 청춘을 다 바친 사람이었고 후배들의 평도 나쁘지 않아 내심 그에게 힘을 실어 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러나 그가 나를 찾아온 시점이 문제였다.

당시 그의 모친은 큰 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 중이셨다. 편찮으신 모친을 챙기기에 앞서 자신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을 믿을 수가 없었다. 진실한 사람이라면 나를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모친의 병상을 지켜야 했다. 예상치 못한 그의 방문으로 나는 생각지도 않게 인사권에 관여하게 됐다.

편집국장으로 연임되지 않았지만 오랫동안 제민일보에 헌신한 공으로 그를 이사 대우로 승진시켰다. 그러나 뜻과 달리 한직으로 밀려났다고 생각한 그는 회사에 대한 불만을 여러 번 토로했고 결국 1년 3개월 만에 신문사를 그만두고 기자회견을 열었다.

편집권 독립을 보장하기 위해서 1년에 3~4번 연례행사나 노조와의 협상을 할 때를 제외하고 제민일보의 방문을 삼갔던 나를 권언유착(勸言癒着)의 비도덕적인 언론사 사주라 비난했다.

나를 비판한 것까지 이해할 수 있었지만 창간부터 20년 동안 청춘을 바친 제민일보까지 부정한 조직으로 몰아세웠다. 기자회견 내용으로 나뿐만 아니라 제민일보의 가족까지 검찰조사를 받기도 했다.

물론 근거 없는 비방에 불과했으니 검찰조사는 아무런 혐의 없이 마무리됐지만 제민일보는 부당한 기자회견으로 언론의 생명인 공정성에 타격을 입었다.

사내에서는 000을 허위사실유포 및 명예훼손으로 고발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지만 조직이 한 개인을 상대로 고소·고발하는 것은 공정해 보이지 않았다. 대신 억울한 마음에 반박 기자회견을 할까싶었지만 그 역시 그만두었다.

그의 인품을 시간이 밝혀주었듯이 제민일보가 부도덕하고 부패한 언론이 아니라는 것을, 시간이 증명해 줄 것이라고 믿었다.

시간은 모든 상처의 약이 된다. 시간은 제민일보의 결백을 밝혀주었을 뿐만 아니라 한 사람의 신뢰의 깊이도 알려주었다.

회사를 인수하면 기존의 경영진을 교체하는 것이 관례다. 한 번도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나눠 본 적이 없지만 새로운 경영체제, 변화를 위해서 제민일보 이사들의 사표를 수리했다. 그 중 백승훈 이사는 논설위원으로 후배나 주변의 신임을 받던 사람이었고 창간부터 20년 가까이 오랜 세월 동안 제민일보를 지켜온 신망있는 기자였다.

스스로의 잘못이나 과오 때문에 물러나는 것이 아니기에 서운한 마음도 없잖아 있었을 텐데, 떠나는 것이 제민일보를 위하는 길이라는 생각에 아무런 변명 없이 자리에서 물러났다. 떠날 때를 아는 사람의 뒷모습처럼 아름다운 것은 없다.

그 후 2년 동안 제민일보를 분열시킨 윤전기소송에서도 백승훈 이사는 누구의 편을 들어 이야기하지 않고 자신의 이익과 상관없이 조직에 남아있는 후배들을 위해 객관적인 태도를 유지했다. 자신이 떠난 후에도 제민일보의 후배 기자들을 꾸준히 만나며 제민일보의 변화를 기뻐하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앞모습과 뒷모습이 한결같은 사람을 만나는 것은 쉽지 않다.

비록 조직을 떠나 있어도 제민일보에 대한 애정이 가득한 사람이었다. 나는 미안함이 몰려왔다. 비록 내가 제민일보의 대주주이긴 하지만 제민일보의 진짜 주인은 백승훈 이사처럼 오랜 세월 ‘기자’라는 자신의 자리에서 언론의 사명을 다해 도민들과 소통하고 조직 안에서 후배들을 아끼고 사랑했던 사람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비록 시간이 늦었지만 내가 아닌 백승훈 이사가 제민일보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제민일보를 인수하고 두 번째 인사권을 사용했다. 얼굴 한번 보지 못하고 떠나보냈던 백승훈 이사를 얼굴 한 번 보지 않고 3년 만에 상무이사로 복귀시켰다. 경영진이나 제민일보의 기자들에게나 갑작스런 소식일 테지만 당사자인 백승훈 상무도 당황했을, 파격적인 인사였다.

주주총회에서 상무이사로 선임된 백승훈 상무에게 연락이 왔다.

감사하다며 인사를 전하는 백승훈 상무에게 ‘열심히 하세요’라고 인사했다. 구구절절 복귀 이유를 알려주기엔 얼굴 한번 제대로 본 적도 없었고, 내 말의 의미를 백승훈 상무는 나보다 더 잘 이해할 것이라고 믿었다.

육지에서, 고향에서 사업을 하면서 적잖은 사람을 만나왔지만,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하나의 덕목을 꼽으라고 하면 나는 주저 없이 ‘의리(義理)’를 꼽는다.

흔히 의리를 남자들 간의 진한 우정쯤으로 생각하지만 가만히 한자를 들여다보면 옳은 이치란 뜻으로 우리가 지켜야할 도리와 신의를 일컫는다. 요즘 의리를 지키는 것을 하찮게 여기고 작은 이익 앞에서 신의를 저버리는 것을 개의치 않는다.

의리를 지키지 않는 것이 쉽고 빨리 가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내게 백승훈 상무의 가치를 알려 주었듯이 시간은 의리의 가치를 증명한다. 자신의 자리에서 신의를 지키고 도리를 다한 삶은 절대 실패하는 법이 없고, 끝내 의리를 지켜낸 사람만이 성공하는 법이다.

인간의 도리는 신의에 있고 신문의 도리는 정론에 있다.
제민일보의 좋은 기사는 누군가를 빛낼 기사가 아니라 도민통합의 시선으로 제주의 발전방향을 담은 기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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