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산 시인, 평론가
■토요 시 창작 강좌(111)
□독자가 키우는 시인, 시 읽는 시인
명작으로 남는 시는 독자의 선택에 따라 결정된다. 결국 좋은 시는 널리 읽히고 오랫동안 기억되는 시다. 그래서 독자는 어설픈 시인보다 훨씬 낮다. 독자는 시인을 키우는 사람이다.
그러나 서점에서 잘 팔리는 시집을 보면 달콤한 사랑을 노래한 시집이 대부분이다. 시를 잘 모르는 사람은 사랑 시를 좋아한다.
그런 시도 나름의 의미는 있지만 그런 시만 좋아하는 것은 충치를 유발하는 사탕만 먹는 일과도 같다. 적어도 시인을 키울 수 있는 독자는 평균적인 시의 수준 정도는 향유 할 수 있는 사람을 말한다.
시인도 마찬가지다. 시를 읽어내지 못하는 시인은 자기가 비록 시를 쓰고 있다고 해도 시를 모르는 사람이다. 그래서 독자가 먼저 돼야 시인이 될 수 있다. 시를 읽어내는 능력이 시를 쓸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기가 쓴 시의 편수가 많다고 자랑하기 전에 나는 일정 수준의 시를 읽어낼 능력이 있는지를 점검해야 한다.
시를 많이 써보는 일은 장려할만한 일이지만 비록 발표한 작품의 수가 적어도 좋은 시를 발표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 번 발표된 시는 그 사람의 얼굴이 되기에 최대한 퇴고와 깊은 검토를 거친 후 발표해도 늦지 않다.
그렇다면 좋은 독자나 시인이 되기 위해서 시를 어떻게 읽어내고 써야 할까?
독자는 시의 문맥 속에 나타나는 언어조직의 충실도에 주목 한다. 시인이 아니더라도 시적 언어의 충실도는 짐작할 수 있다.
시가 내포하고 있는 인유(引喩/다른 예를 끌어다 비유함)의 요소를 발견하는 일은 시 읽기의 기본이다. 또한 인유가 아니라도 고도의 암시성, 즉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지만 그 시가 내포하는 뜻이 시적 대상과 어울리는 상태인지 아닌지를 알아보는 능력이다.
시인이 너무 감추어서 독자가 몇 번을 읽어도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상태는 일단 시인의 표현력의 부족이거나 자기만족을 위해 쓴 시일 가능성이 짙다.
적어도 독자를 생각하는 시인이라면 고도한 암시성의 문장이라고 해도 그 의미를 찾아낼 수 있도록 시적 장치 속에 반드시 열쇠를 감춰두고 있다. 이 경우 그 열쇠를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재미가 없다. 열쇠임을 짐작할 수 있는 손잡이에 달린 끈을 살짝 보여주는 정도라면 괜찮다.
항상 이야기 하는 것이지만 초보 시인은 “독자가 이해하지 못하면 어쩌나”라는 염려로 시적 대상이나 제목을 설명하려는 듯한 글이 많다. 다시 말하지만 “시인이 알고 있는 것은 독자가 알고 있는 것의 총량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라는 기본 인식이 시인에게는 반드시 필요하다.
시를 쓸 때 제발 살짝만 보여주라. 다 까발리지 말라. 내 뜻과는 달리 내 시가 독자에 의해서 다의적으로 해석된다면 그 시는 잘 쓴 시다.
또한 독자의 자세에서 중요한 것은 한 권의 시집에서 절창을 한두 군데만 찾아내어도 성공한 ‘시 읽기’라는 생각으로 시집을 읽으면 좋겠다.
아무리 이름 없는 시인의 시집이라고 해도 절창구 몇 군데는 있다. 끈기와 정독에 인색한 사람은 독자의 자세가 아니다. 쭉 훑어보는 것이 아니라 단 몇 편이라도 정독하고 자기의 취향이 아니면 덮어 놓으면 된다.
그러나 최소한 “왜 이렇게 썼으며 감춰진 의미는 없을까?”라는 생각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내가 시를 썼을 때도 살아남을 시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어차피 시를 좋아하는 독자가 시인이 되는 길이기에 그렇다.
시인은 아무렇게나 시를 써놓고 시집을 내지는 않는다. 수준의 높낮이는 차치하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쓴, 자신의 분신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므로 일단 시집은 다 위대한 것이고 그 사람의 일생이 담겨있는 보고서다.
남의 시를 함부로 대하면 나의 시도 남에게서 멸시를 당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자기가 배운 것이 옳은 것”이라는 믿음에서 남의 시를 제멋대로 평을 하고 시평이라는 말로 상처를 주기도 한다. 물론 시를 공부하면 잘 쓴 시와 그렇지 못한 시가 구분된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시를 평하는 자세를 보면 그 사람의 인격을 알 수 있다.
“시인은 사람이 되기 위해 공부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자기가 알고 있는 시 작법은 하나의 주장은 될 수 있지만 시 쓰기의 정답은 아니다. 시는 백인 백색의 시론으로 존재하기에 그렇다.
필자가 시를 처음 공부할 때 합평이라는 것을 하면서 동인의 시를 신랄하게 비평하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 앞으로 시를 쓰는데 자양분이 될 것이라고 믿었던 때였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지만, 오랫동안 시의 언저리에 머물러 오면서 깨달은 것은 그 방법은 오히려 못된 습성을 키우는 결과를 가져온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시를 울고불고 배운 사람은 다른 사람의 가슴에도 못을 박는 시평을 하기 쉽다. 자기가 그렇게 배웠으니까. 특히 비슷한 실력의 동인들끼리 시의 높낮이를 평가하는 일은 위험한 일이다. 도토리 키재기다. 시는 반드시 실력 있는 전문가에게서 공부해야 적어도 시가 산으로 가지는 않는다.
시 공부를 몇 년 했다고 자랑하는 사람 가운데는 안 했느니보다 못한 엉뚱한 고집에 사로잡힌 사람도 가끔 보기 본다. 그것은 소경 코끼리 다리 더듬듯 공부를 해서 시가 무엇인지도 잘 모른다. 시는 쓰는 것이 아니라 인간 됨을 배우는 일이기에 그렇고 고집을 버리는 작업이기에 그렇다는 생각이 필자의 시론이다.
■ 이주의 디카시 한 편
버킷리스트
섬진강 흐르는 강물 소리없이 흐느끼고
그 옆의 송림 경건하더라
윗마을 풍경소리 일침을 날리면서
실수투성이 나를 보고 마음의 땅을 넓히라 하네
_ 신현준
■ 페로디 시 우수상
지난 주 김광섭 시인의 시 '산'을 읽고 패로디 시를 올려 주신분 중에서 다음 분께 시집을 보내드리겠습니다.
1.안선숙 2.김병수 3.이수을 4.김항신 5.이상태리우스 6.이둘임 7.이이상 8.김충래 9.최재우 10.박기범 11.김승 12.박준희 13.박광섭 14.조홍래 15.다빛 16.유호종 17.권오숙 18.최해숙 19.노아 20.이국섭 21.김효운 22.최해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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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저희 서울사무소 이전관계로 이달의 작품상과 위 책은 1월말 쯤 보내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