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제2회 뉴스N제주 신춘문예]시 부문 당선작
[2021년 제2회 뉴스N제주 신춘문예]시 부문 당선작
  • 현달환 기자
  • 승인 2021.01.01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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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석 / 발포진 랩소디
서동석 시인
서동석 시인

*발포진 랩소디

서동석

하늘에도 물길이 있어요 비와 바람이 드나드는 길목이죠
낙엽도 허공에서 노를 저어요
겨울나무들은 흔들리지 않기 위해 허공 깊이
닻을 내리는 법을 알죠
좌현 쪽으로 기울던 오동나무 잎이 다급히
우현으로 몸을 틀어요
놀라지 마요
이곳에선 파도치고 배가 드나들 듯 흔한 일이죠

운이 좋으면 좌초된 해초 한 줄기에
당신의 오후가 생포될 수도 있어요
그럴 때는 그를 알아볼 순간이 필요해요
어쩌면 어선 위에서
젊은 어부가 되어 양식한 물김을 뜯고 있거나
또 모르지요 누각에서 홀로 일기를 쓰고 있을지도

해풍이 부는 밤바다에서 어떤 그림자를 보거든
신호를 보내듯 말을 걸어야 해요
이렇게 물어보는 건 어때요?
혹시 12라는 숫자를 좋아하세요?
아니면 푸른 버드나무 냄새가 훅, 스치거나
정강이 어디쯤을 조금씩 절고 있는지 재빨리 살펴요
그가 조금만 망설여도
당신은 바로 돌아서는 것을 잊지 말아요
고독한 수염 과묵한 입술과 눈빛
밤이라면 횃불 하나는 오른 손에 꼭 챙겨요
가끔은 내 안에서도 횃불이 번지긴 해요
나도 내가 누군지 잘 몰라요
우리는 서로를 모르기에 낯익은 사람들
물가에 가면 *두정갑옷을 입은 듯 몸이 무거워요
온 몸이 비늘이에요 두드러기처럼 매일 철갑이 돋아나요

발포진에서는 환한 귀가 필요해요
깊은 밤 물가에 서서 눈 감고 하나, 둘, 셋, 세어 봐요
바람 속에서 갑옷의 기척이 먼저 말할 거예요
손 내밀 거예요
발포만호의 손에서 물비린내 날 거예요
손바닥에 짠 내 밴 굳은살이 쓸쓸할 거예요
밤이면, 그날의 수군(水軍)들이 지금도
송판으로 판옥선을 만들고 돛을 달아요
거북선 위에서 망치질 소리 들려와요

잠깐, 포구 저쪽이 술렁여요
순시를 마치고 돌아온 그가 한쪽 손에 등채*를 들고
나를 향해 걸어와요
그의 한쪽 가슴에 활 맞은 자국이 보여요
설마 그의 눈에 내가 보이는 건 아니겠죠?
아직 나를 들켜선 안 돼요
붉은 두정갑옷이 내 앞에 당도 했어요
해풍의 냄새를 맡은 장군 어깨의 견룡이
구름을 박차고 날아올라요
내 말을 아무도 믿지 않겠죠? 심장이 터질 듯한 밤이에요

*발포진-전남 고흥에 있는 바닷가 지명으로 이순신 장군이 수군으로 첫 부임했던 곳
*랩소디-서사적. 영웅적. 민족적인 색체를 띠고 있다
*등채-조선시대의 무관이 구군복 차림 때 손에 든 지휘봉
*두정갑옷-이순신 장군님의 갑옷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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