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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이 칼럼](8)삶과 죽음의 사이에서
[현금이 칼럼](8)삶과 죽음의 사이에서
  • 뉴스N제주
  • 승인 2018.10.29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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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lden maple
캐나다의 단풍은 아름다움 그자체
캐나다의 단풍은 아름다움 그자체

무더위를 잘 견디고 온 이들에게 주어지는 소확행이라고 할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가을의 단풍이다. 캐나다는 단풍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나라에 속한다.

단풍은, 잎이 떨어지기 전 온도가 0도 부근으로 낮아지면, 나무의 잎이 더 이상 활동하지 않게 되어 초록색 엽록소가 파괴되고 자가분해가 진행되어 잎의 색깔이 변화하는 현상을 말한다.

캐나다 생활 정착을 돕기위해 무료로 제공되는 ESL 에 다닐때, 단풍을 일컫는 영어 표현이 궁금해 동료 학생들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별다른 대답을 듣지 못해서, 내 설명이 충분치 않아서인가 생각하고 질문을 포기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단풍을 일컫는 말이 한 단어로 정해져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단풍의 영어식 표현은 fall colours, fall foliage, autumn colours, autumn leaves 등등으로 다양하다. 명명에 화려한 맛이 깃들기를 바란 것 치고는 너무 소박해서 싱겁기까지 하다.

이 곳에서 맞은 첫 가을은 감탄 그 자체였다. 특별한 장소에 가지 않아도 집 주변 곳곳의 나무 하나하나가 장관이었고 호수 주변의 경치는 어떤 사진보다도 절경이어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엄청나게 기쁜일이거나 너무나 슬픈 일이라도 세월을 이길 수 없듯이 그 깊었던 감흥도 그리 오래 가지는 못했던 것 같다.

지금은 오히려 이 시기가 지나면 찾아오게 될 길고 추운 겨울에 대한 두려움과, 집 앞의 눈을 치우는 일로 벌어지는 남편과 아들의 은근한 기싸움의 결과가 기다려질 뿐이다.

화려하고 경이로운 단풍의 절경도 찰나이고, 바람이 한번 스치면 이내 떨어져 황량한 가지만이 존재를 드러내며 그리 달갑지만은 않은 동침의 계절을 불러 들인다. 짧은 순간 우리에게 눈호강 시켜주고 가는 것이 고맙기도 한 반면, 자가 활동을 중지하고 낙엽이 지기 전에 오히려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낸다니 안타깝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등동물의 수장으로 존재하다 별 의미없었던 생을 마감하며, 한없는 아쉬움만을 토로하다 마지막을 장식하는 대부분의 인간의 마무리에 비하면 부럽기도 한게 사실이다.

지나온 시간보다는 죽기전에 살아갈 날이 확연히 적게 남아있는만큼, 이제는 어떻게 살다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어렴풋이나마 해야하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

어떤 이들은 무슨 소리냐며 수명이 길어져 백세 인생인데 지금부터 시작이며 앞으로 어떻게 즐기며 살 것인가를 고민할 시기라 반박할 지도 모르겠다. 백세가 아니라 그 이상이라도 건강한 신체와 정신을 지니지 못한 채 생명줄만 붙잡고 있는 채 연장을 구걸한다면 너무 비루하지 않은가?

나이들어감을 안타깝게 생각하며 안달하느니 언제인지는 모르나 반드시 오게 될 죽음을 준비한다면 좀 더 폼나지 않으까란 생각이 듦과 동시에 죽음에 대한 준비는 결국 삶에 대한 갈망을 포함하는 것으로 어떻게 죽을 것인가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답은 하나일지도 모르겠다.

50여년 수많은 시간들이 때론 즐거움으로 때론 후회로 혹은 아쉬움으로 혼재되어 있으나, 그리 의미있는 삶의 여정이었는지는 의문이다. 그저 주어지는 대로 내 자신만을 위해 연명해온 것만 같아 부끄러운 마음에 갑자기 어깨가 움츠려든다.

인간이 욕심을 부리는 이유도 무소유의 해탈이 있는 이유도 모두 수명이 유한하기 때문임과 동시에 그 끝이 어딘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욕심이 절대악이 아니며 무소유 또한 절대선은 아닐 것이다. 다만 그 욕심도 무소유도 이타적일 때 진짜 해탈의 경지에 이르는 게 아닐까?

죽음의 시간이 다가왔을때 구차한 욕망이나 아쉬움으로 인한 미련에 허둥대지 않고 기쁘게 맞이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 시간에도 누군가는 세상 살만하지 않다고 탓하며 보낼 것이고, 누군가는 세상을 살만한 곳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 것이다. 현재 내 자신은 어느 쪽과 가깝게 서 있는가?

올해 뒷마당의 단풍잎 수명이 다하기 전에 난 나대로의 남은 여정의 첫 발을 내딛고자 한다. 억지로 해야만 하는 게 아닌,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게 아닌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말이다.

해야하는 일보다 하고싶은 일들을 하고 싶다. 나아가 그 하고 싶은 일이 결과적으로 나만을 위한 일이 아니게 된다면 더 바랄 게 없으련만…

긴 여정을 마치고 마지막 순간, 타인보다 나에게 칭찬받을 수 있는 삶, 내가 스스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삶을 살기위해 치열하게 고민하는 걸 멈추지 않으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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