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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초미니 가족 시대...“제사는 축제다“
[데스크 칼럼]초미니 가족 시대...“제사는 축제다“
  • 현달환 편집국장
  • 승인 2018.09.22 10: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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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시대,여성의 종중 회원자격 인정해야“
”제사용 재산의 승계 문제는 또 다른 갈등“
사진은 기사와 관계없음

“제사는 축제다”

근 40년이 가까운 시절, 성산읍에서 중학교 3학년 때 담임이셨던 사회과목 담당 한석하 선생님께서 한 말이다.
나는 그때 ‘축제’라는 단어에 웃고 말았다. 엄숙해야 하는 제사에 축제라니...
살면서 가끔 제사 때가 되면 그 말이 생각나는 데 그 정의가 그렇게 잘 어울릴 수가 없다.

핵가족 시대인 현대에 갈수록 나를 중심으로 부모님, 조부모 등, 아래로 자식, 손자까지 얼굴보면서 만날 수 있는 경우가 한집에 살지 않는 한 어려워졌다.

과거 농경사회 농사를 짓던 시대에는 가족 구성원이 많아야만 되는 상황인지라 거의 매일 얼굴보고 살았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정보화 시대니 뭐니 하면서 환경이 변하고 아이들이 점점 개인주의로 가는 시대에서 가족 구성원은 수직보다는 수평으로만 연결된 느낌이다.

다음 두 가지 내용을 짚고 넘어가면 축제의 의미가 더 피부로 와 닿을 것이다.

“여성도 종중의 회원 자격이 인정된다“
5천년 역사를 자랑하는 우리나라 전통에는 종중宗中이라는 조직이 있다. 같은 성씨이면서 공동 직계 조상을 지닌 자손들이 조상의 제사를 목적으로 모이는 모임이다.

흔히 종중은 문중門中이라는 말과도 다소 의미가 차이가 있지만 같은 의미로 쓰이는 데 다른 모임과는 달리 인위적인 조직 행위가 필요하지 않고 자연발생적으로 성립한다는 특징이 있다.

그런데 그동안 대법원은 딸은 시집을 가면 남편 집안 제사를 모시게 되므로 종중(문중) 회원으로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구성원은 후손 중에 성년 이상 남자만 회원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해 왔다.

하지만 요즘은 딸만을 키우는 사람들도 늘어났고 조상을 모시는 문제도 아들들만 할 수 있다는 기존 생각에 많은 변화가 있어 여성들도 공동 선조의 후손이므로 종중(문중) 원으로서 자격을 인정해 달라는 요구가 점차 늘기 시작했고 그에 따라 소송이 제기됐다.

이런 추세에 맞추어 대법원도 종중(문중) 구성원을 성년 이상 남자로만 하는 것은 정당성과 합리성이 부족하다는 판단을 했다.

그와 같은 관습법은 양성평등의 원칙 등 오늘날 변화된 전체 법질서에도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다. 즉, 여성 후손도 당연히 종중(문중) 구성원이 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또, 민법 제1008조의 3에는 제사용 재산은 제사를 주재하는 자가 승계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누가 실제로 제사를 주재하는 자가 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규정을 두고 있지 않아서 그동안 ‘종손이 있는 경우라면 그가 제사를 주재하는 자의 지위를 유지할 수 없는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가 된다‘라고 판단하여 왔다.

그런데 2008년 대법원에 한 사건이 접수됐다.

본처를 놔두고 집을 나가 다시 결혼해 아들들을 낳고 살았던 한 남자가 사망하자 그와 함께 살던 아들이 아버지가 생전에 미리 마련해 놓으신 장지에 장사를 지냈다. 첫 결혼에서 낳은 자식인 장남이 뒤늦게 그 사실을 알게 됐다.

적자인 이 장남은 아버지의 유해는 집안의 선산에 모셔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유체 인도 소송을 제기했다. 말하자면 아버지가 아무리 재혼하여 아들이 생겼다 하더라도 아버지의 적자는 자신이므로 아버지의 유해는 자기 집안의 것이라는 입장이었다. 이런 입장에 따라 아버지가 재혼하여 낳은 다른 (서자)동생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이 사건에 대해 대법원은 단계를 두고 판단했다. 먼저 ‘제사를 주재하는 자’는 무조건 종손이라는 관습은 가족 구성원인 상속인들의 자율적인 의사를 무시하는 것이다,

또 적자와 서자 간에 차별을 두는 것이어서 개인의 존엄과 평등을 기초로 한 변화된 가족제도에 원칙적으로 부합하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무조건 적자가 아버지의 장사를 지내야 한다는 생각은 더는 관습법으로서 효력을 유지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상속인들이 협의하여서 정하여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협의가 되지 않을 때에는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지 하는 문제가 남게 된다.

그래서 그다음 단계에서는 이렇게 판단을 했다. 장남(장남이 이미 사망한 경우에는 장남의 아들)이 제사 주재자가 되고 아들이 없으면 장녀가 제사 주재자가 된다고 했다.

그 결과 이 사건에서도 장남인 원고에게 유해를 인도하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사망한 당사자의 바람보다는 장남을 우선시하는 관습법에 따라서 판결을 내린 것이다.

이 판결은 여전히 ‘아들이 우선이고 딸은 아들이 없을 경우에만 제사 주재자가 된다, 장남이나 장손에게 제사 주재자의 지위를 우선적으로 부여한다‘라고 판단한 것이어서 양성평등의 원칙이나 가족 구성원의 존엄성 존중 및 평등 원칙에는 반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가족관계법에서 보았듯이 우리나라 법체계 속에는 아직도 헌법과 서로 모순되거나 오늘날의 변화된 관습이나 의식과는 거리가 있는 조문들이 남아 있다.

물론 그 직접적인 원인은 우리가 식민지 시대에 일본을 거쳐 왜곡된 채 들어온 근대법이라는 기성품을 시대의 변화에 맞추어서 제대로 고치지도 않고 입어 버린 데 있다. 시민단체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이나마도 고쳐지지 않은 채 남아 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제사와 재산으로 인해 자식들의 싸움, 가족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사례는 종종 있다.

이번 추석에는 이러한 사건들이 언론 매체에 나돌아 다니지 않았으면 좋겠다.

조상님을 모시는 의미도 있지만 서로 모이기 힘든 삶속에서 그나마 제사, 명절이라는 이름으로 모일 수 있게 만들어준 조상들의 지혜(?)를 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다가오는 한가위 축제는 신이 내린 축제다. 가족들이 다함께 모여 사진도 찍고 즐거운 추억을 만들어 볼 것을 기대해본다. [참조 김영란의 열린 법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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