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사랑의 서사는 늘 새롭다》
[신간] 《사랑의 서사는 늘 새롭다》
  • 현달환 기자
  • 승인 2024.10.11 01: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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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동현|140*195 / 265쪽 / 17,000원 / 979-11-6867-182-9 (03810) / 한그루 / 2024. 10. 9.
글 김동현|140*195 / 265쪽 / 17,000원 / 979-11-6867-182-9 (03810) / 한그루 / 2024. 10. 9.
《사랑의 서사는 늘 새롭다》 표지

땅과 기억, 텍스트를 다시 발견하기 위한 고군분투,

세상의 모든 상투를 이겨내는 사랑의 서사

김동현 평론가의 신작 비평집이다. 2부로 나눠 총 14편의 글을 실었다.

1부에서는 로컬리티의 발견을 중심으로 한 비평을 담았다. 성장이라는 오래된 거짓말로 여전히 지역을 파헤치고 있는 개발담론, 장소성을 바탕으로 한 지역의 서사, 호명하는 이의 욕망에 따라 전유되는 이재수란, 그리고 1962년 산업박람회 ‘해녀 전시’를 통해 시각적 재현의 정치를 돌아본다.

2부에서는 지역작가와 작품을 중심으로 한 문학비평을 다룬다. 명사로서의 4․3이 아닌 동사로서의 4․3을 이야기하는 김명식, 수직의 맹목에서 벗어나 낮은 땅의 읊조림을 들여다보는 김순남, 오독이 만들어낸 은유의 세계를 펼치는 김형로, 비념의 주술로 투창의 글을 쓰는 한진오, 폐허의 현장에서 오늘의 운동을 생산하는 김경훈, 지역어를 통해 지역에 새겨진 시간을 읽어 나가는 강덕환, 지역어의 존재를 서사적으로 재현하는 한림화, 진창을 건너기 위해 사랑과 혁명을 내세운 황규관, 지역의 장소에 각인된 기억을 소환하는 배길남, 그리고 오키나와전쟁과 대면하는 비극적 서정을 그린 오키나와의 대표 작가 오시로 사다토시 등의작품을 살펴본다.

저자는 이번 비평집을 “사랑의 서사를 만들기 위한 안간힘” “땅과 기억을 그리고 텍스트를 다시 발견하기 위한 고군분투”라 한다. 사랑은 그 서사의 힘으로 상투를 극복한다. 저자가 말하는 사랑의 서사는 발견과 기록, 추념과 투쟁과 다른 말이 아닐 것이다. 비참과 지리멸렬에도 포기할 수 없는 사랑의 서사, 그것이 어둠과 진창의 시간을 건너는 힘이다.

■ 작가 소개

김동현

제주에서 나고 자랐다. 국민대학교에서 「로컬리티의 발견과 내부식민지로서의 ‘제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제주4·3문학과 오키나와문학을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제주, 우리 안의 식민지』, 『욕망의 섬 비통의 언어』, 『기억이 되지 못한 말들』, 『김시종, 재일의 중력과 지평의 사상』(공저), 『제주, 화산도를 말하다』(공저), 『김석범×김시종-4·3항쟁과 평화적 통일독립운동』(공저), 『냉전 아시아와 오키나와라는 물음』(공저), 『전후 오키나와문학과 동아시아-반폭력의 감수성과 소수자의 목소리』(공저), 『비판적 4·3 연구』(공저), 『언어전쟁』(공저) 등이 있다. 제주의 진보적 예술운동 단체인 제주민예총 이사장으로 있다. 제주4·3 뮤지컬 ‘사월-The Great April’의 대본을 쓰기도 했으며 제주4·3 예술운동과 제주 제2공항 반대 투쟁에도 손을 보태고 있다.

■ 목차

1부

성장이라는 오래된 거짓말 10

장소의 상실과 예술의 기억 26

비어 있는 사실과 재현으로서의 기억 35

보는 것도 정치다 57

2부

오늘의 안온을 깨뜨리는 혁명의 죽비 김명식 88

엎드려야 보이는 것들 김순남 111

그럼에도, 사랑을… 김형로 125

사라지는 섬을 위한 비념 한진오 144

사랑을 생산하는 오늘의 운동 김경훈 163

마농지 해방구의 돌하르방 시인 강덕환 176

말할 수 없는 목소리들의 아우성 한림화 188

사랑과 혁명을 읽는 시간 황규관 209

사랑, 삶, 그리고 기억 배길남 219

오키나와전쟁과 대면하는 비극적 서정 오시로 사다토시 232

 

■ 머리글

사랑만큼 상투적인 것도 없다. 사랑을 해본 사람들은 안다. ‘사랑한다’는 말이 얼마나 힘이 없는지를. 때론 작은 위로조차 되지 못하는 게 사랑이다. 사랑은 쉽게 낡아간다. 하지만 그 모든 상투와 낡음에도 불구하고 사랑의 서사는 늘 새롭다. 새로운 사랑의 서사가 있어 ‘사랑’은 모든 상투를 이겨낸다. 우리는 어쩌면 사랑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서사를 사랑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매번 다시 태어나는 사랑의 서사가 있기에 우리는 여전히 사랑을 믿을 수 있다.

여기 쓰여진 모든 글들은 사랑의 서사를 만들기 위한 안간힘이었다. 땅과 기억을, 그리고 텍스트를 다시 발견하기 위한 고군분투였다. 그 모든 비참과 비굴함과 지리멸렬함에도 불구하고 끝내 사랑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지역에서 산다는 것은 때로는 일상적 모멸감을 견디는 일이다. 중심을 비판하기는 쉽다. 하지만 우리 안의 중심과 중심에 대한 욕망을 바라보는 일은 쉽지 않다. 2023년과 2024년을 지나오면서 나는 우리 안의 헤게모니와 인정 욕망의 민낯을 보았다. 한때 동지였다고 믿었던 이들이 하나둘씩 권력의 둥지로 깃드는 걸 보기도 했다.

희망이 사라진 시대라고 하지만 절망의 돌부리에 넘어지지 않기 위해 나는 사랑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여기 쓰여진 글들은 그 분투의 흔적들이다. 때로는 부족하고, 때로는 과잉의 포즈일 이 모든 문장을 써가면서 나는 한 걸음 더 걸을 수 있는 힘을 얻었다. 그 걸음에서 만난 사랑의 서사는 늘 새로운 것이었다.

문장의 한계가 오늘의 한계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어둠만이 가득한 시절이라도, 나의 글이 사랑의 서사를 발견하는 작은 희망이 되었으면 한다. 글을 묶는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다. 지독한 시절을 견뎌온 기훈, 재이에게 이 글이 작은 위로가 되었으면 한다.

읽고 쓰는 동안 이승환의 노래를 들었다. 음악이 있어 무도한 시절을 견딜 수 있었다. 그의 노래를 다시 듣게 만들어준 케이에게 뒤늦은 안부를 전한다. 부디 평안하기를.

■ 책 속에서

이야기가 힘이다. 멕시코 원주민 저항 운동세력이었던 사파티스타 반란군 부사령관 마르코스가 말했듯 ‘우리의 말이 우리의 무기’가 될 것이다. 지역의 서사는 서울의 언어가 아니라 지역의 언어로 말해질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지역의 서사는 장소에 깃든 기억을 지역의 신체에 각인한다. 평평하고 매끈한 자본의 세계가 아니라 울퉁불퉁하고 거친 지역의 세계를 오늘의 자리에 기입하는 힘. 그것은 결국 서사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 예술이 더 많은 지역의 서사를 지향할 때 그것은 폐허의 오늘을 창조의 내일로 바꾸는 하나의 실천이 될 것이다. (31쪽)

명식은 이러한 역사적 실체를 넘어서 근대성이 식민성의 다른 이름이자, 폭력을 수반할 수밖에 없는 근본적 한계가 있음을 지적한다. 이는 제주 4·3항쟁을 박제된 역사적 사건이 아닌, 여전히 현재적 문제로 바라보고자 하는 시각이다. 이를테면 그에게 있어 제주 4·3은 명사가 아닌 동사다. 그것은 운동이며, 혁명이다. 사람을 살리고, 땅과 하늘을 살리는 살림의 역사이다. (94쪽)

김순남의 시편들은 엎드림을 지향한다. 수직의 맹목에서 벗어나기 위해 기꺼이 엎드리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그것은 “기꺼이 엎드려야 보여주는”(‘버먼초’ 중) 세계를 만나기 위한 과정이다. “맑고 투명한 속내”는 수직의 시선이 포착하지 못한 세계이자, 수직의 시간으로는 만날 수 없는 낯선 시간이다. 그 낯섦 앞에서 김순남은 이전과 다른 시선을 획득한다. (114쪽)

‘슬쩍의 윤리’란 그런 것이다. 거창한 구호나 요란한 목청이 아닌, 그렇게 슬쩍 사람의 일을 하는 것, 사람답게 슬쩍 사람으로서의 실천을 하는 것, 김형로는 그렇게 사람의 일을, 사랑의 일을, 사람의 실천이 우리 시대의 윤리라고 말하고 있다. 그것은 “짱돌 든 사람 없”고, “광장은 비”어 버렸고, “순정했던 온몸들”은 사라진 시대, 모멸을 견디는 그만의 방식이기도 하다. (136쪽)

그것은 오늘이라는 시간이 만들어낸 악무한의 모순을 외면하지 않는 대결이다. 오늘이라는 시간에만 매여 있지 않은, 오늘을 뚫고 가는 힘이다. 불가능하지만 반드시 가야만 하는 길의 생산이다. 오늘의 힘으로 내일을 만들어가는, 반드시 던져야 하는 마땅한 질문들이다. 맑스가 이야기했던가. “되돌아오는 사랑을 생산”하지 못한다면 사랑은 차라리 “무력하며 하나의 불행”이라고 ‘운동부족’이 현실의 무기력과 대결하는 이유 역시, 사랑을 생산하는 사랑의 힘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165쪽)

따지고 보면 오랫동안 표준어의 세계는 묵묵부답이었다. 시끌벅적한 외침과 비명으로 가득했던 제주의 말을 외면했던 침묵이었다. 제주는 혼자서라도 소리쳤다. 아무도 알아듣는 사람이 없어도, 때로는 알 수 없는 악다구니라고 구박을 받아도, 소리치고, 또 소리쳤다. 표준어의 세계로는 다 담을 수 없는 그 요란한 말들이 결국 어제를 잊지 않게 만드는 힘이었다. 땅을 닮은 말, 바다를 품은 말, 땅의 문장과 바람의 말들이 제주의 말들이었고 제주의 기억이었다. 땅과 바다가 낳고 기른 문장들을 깎고 다듬고 만든 것이 제주의 노래였다. 바람의 노래를 듣듯 바람의 문장을 읽을 수 있다면, 제주 땅에 새겨진 시간을 읽어갈 수 있으리라. (186-187쪽)

제주어뿐만이 아니다. 지역어를 전면에 드러내는 전략은 때때로 표준어와 지역어의 위계를 드러내는 불가피한 타협이자, 지역어의 존재를 표준어 문학장에 드러내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소설에서 주요 서사는 표준어가 담당하고 인물들의 대화에서 지역어를 노출시키는 방식은 이를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다. 이는 한국문학장에서 표준어 문학의 영향력을 전복한다는 것이 어려운 일임을 그대로 보여준다. 한림화가 서사를 노출하는 방식은 표준어를 자명한 세계로 인식하지 않음으로써 지역어의 서사를 발견하는 계기로 작용한다. (204쪽)

진창은 더욱 깊어지고 어둠은 더 짙어진다. 냉소와 혐오로는 진창을 건널 수 없음을 황규관은 누구보다 깊이 인식하고 있다. 김수영이 온몸으로 이야기했던 사랑과 혁명을 읽어가는 일은 오늘의 난관을 함께의 힘으로 넘어서고자 하는 몸부림이다. 그 몸부림이 결국 ‘사랑’이고, 그것이 ‘혁명’이라는 사실을, 황규관은 김수영을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이다. 김수영을 이해하기 위해, 그리고 오늘, 이토록 무도한 시대와 대결하기 위해서 지금 우리는 사랑에 미쳐 날뛰어야 한다. 시작도 사랑이고, 끝도 사랑이다. (2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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