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자 칼럼](33)단편소설 《내미는 손》 - 연재 1
[이문자 칼럼](33)단편소설 《내미는 손》 - 연재 1
  • 현달환 기자
  • 승인 2024.08.12 09:44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인
소설가
한국문인협회 평생교육위원회 사무국장
서울 종로문인협회 사무국장
계간문예 작가회 사무차장

뉴스N제주는 ‘이문자 칼럼’인 '내 인생의 푸른 혈서'를 게재합니다.
이문자 님은 시인이자 소설가로 한국문인협회 평생교육위원회 사무국장,서울 종로문인협회 사무국장, 계간문예 작가회 사무차장으로 활발한 문학활동을 펼치고 있는 여류 작가입니다.

한국소설가협회 회원, 한국가곡작사가협회 회원, 경북일보 문학대전 시부문 문학상 수상 외 다수의 상을 받았으며 2024년 한국소설가협회 신예작가 선정되기도 했고 시집 <푸른혈서> 외 다수의 작품을 냈습니다.

앞으로 '이문자 칼럼'을 통해 자신이 쓴 시를 함께 감상하면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일상을 통해 자신이 앞으로 가야할 길을 모색해 보는 시간을 만들었으면 합니다.

현재 개인주의가 팽배한 우리 사회가 시라는 언어를 통해 내 마음의 힐링과 서로 소통하는 시간을 만들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었으면 합니다.

뉴스N제주에 칼럼을 허락해 주신 이문자 시인님의 앞으로의 건승을 빌며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응원과 필독바랍니다. 이번주부터 5회동안 단편소설을 연재합니다.[뉴스N제주 편집국]

이문자 시인
이문자 시인

내미는 손 

이문자

탁상시계로 눈길이 간다. 오전 7시 20분이다. 탁자 위에는 노란색과 빨간색이 많이 들어간 시화 액자가 놓여 있다. 내 작업실에 드나들던 소희가 주고 간 작품이다. 시화 속에는 엄마와 소녀가 웃으면서 손을 꼭 잡고 있다. 아침에 찌개 끓는 소리와 냄새에 눈을 뜨고, 엄마가 부르는 소리에 행복하다는 내용이다.

소년 소녀 가장들과 영화를 보기로 한 날이다. 인문학 모임 회원들과 얼마 전부터 계획한 일이다. 모임 장소인 청천동 부평 CGV 영화관으로 아침 일찍 출발했다.

부평 아이즈빌아울렛 건물주차장으로 들어섰다. 1층은 아웃렛 매장과 가까워서 CGV가 있는 주차장 쪽으로 올라간다. 몇 번을 돌아서 올라가니, 차가 빼곡하다. 어렵게 주차해 놓고, CGV 안으로 들어간다. 영화관에 있는 디지털 시계가 오전 11시 20분을 가리킨다. 정오 12시에 만나기로 약속했으니, 40분 정도 여유 시간이 있다.

유명 브랜드 상설할인매장으로 들어갔다. 노스페이스, 마코스포츠, 핑, 데니스골프, 링스골프, 디즈니골프, 겔러웨이 스포츠 매장을 차례로 돌았다. 마지막으로 들어갔던 겔러웨이 매장에서, 남편의 주황색 기능성 반팔 티셔츠 하나를 구매했다. 쇼핑으로 30분 정도 시간을 보냈다. 10분을 남기고 영화관으로 올라갔다.

 나머지 회원과 인솔자가 아이들을 데리고 도착했다. 아이들은 대부분 처음 보는 얼굴이라, 어색한지 말이 없었다. 자세히 보니, 낯익은 여자아이가 보인다. 너무 반갑기도 하고, 설마 아니겠지 생각하면서도, 가슴이 먼저 뛰고 있다. 그 아이도 나를 알아봤는지 웃고 있다.

  “안녕하세요?”

  아이의 얼굴이 조금 붉어진다. 나도 얼떨결에 미소를 지어 보인다.

  “너, 소희 맞지?”

  “네”

  “그래, 오랫동안 못 봐서 궁금했는데. 잘 지냈니?”

원룸에 작업실을 만들었다. 작업실로 옮기면서 그림 도구가 빠져나간 집 서재는 책상과 책장, 책과 노트, 필기구만 가득하다.

새로 마련한 작업실에서 편하게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생각으로 기분이 좋다. 그렇다고 이곳에서 그림만 그리는 것은 아니다. 글도 쓴다. 특별히 외출도 거의 하지 않는다. 그런 원룸에서 주어진 시간은, 상상의 시간을 만들어 준다. 집에서는 경험할 수도 느낄 수도 없는 또 다른 환경이다.

  “준비물 사야 하는데, 깨우지도 않고.”

  여자아이는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울먹거린다.

  “알았어. 마음 풀고 한 숟가락만 먹고 가.”

  “엄마는 늦었다는데 정말!”

  계속 울먹거리며 골목으로 사라진다.

  이 건물에 아이가 있는 줄을 미처 몰랐다. 얼마 전에도 아이 울음소리가 들렸지만, 다른 건물이거나 잘못 들었겠지 생각하며 지나쳤다.

영화 예약 시간은 오후 1시 40분. 12시 전에 만났으니 시간은 많이 남았다. 옆에 있던 인솔자가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말을 꺼낸다.

  “관람 전에 시간 여유가 있으니 뭣 좀 먹고 들어가죠?”

다들 별 의견 없이 따른다. 회원들과 아이들은 식당으로 이동한다. 식사 메뉴도 아이들이 좋아하는 피자, 샐러드, 감자튀김, 카레밥, 샌드위치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처음에는 무표정하던 아이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웃음과 말이 많아졌다. 나와 회원들도 덩달아 웃음이 많아졌다.  

수업을 끝내고, 작업실 쪽으로 차를 몰았다. 매일 조금씩 그리지 않으면 점점 그리기 싫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업 시간에 남편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퇴근하고 직원들과 스크린 골프 치고, 저녁을 먹고 온다는 내용이다. 알았다고 답장을 보냈다. 남편은 사람과 술을 좋아한다. 밥을 먹고 온다는 말은 술을 먹고 온다는 말이 된 지 오래다.

딸과 아들도 야간 자습을 하고, 학원에 다녀오기 때문에 늦는 경우가 많다. 많이 늦는 날은 데리러 갈 때도 있다. 대학이 뭔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그런 생각이 문득 든다. 이렇게 하고도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어쩌지? 아이들이 안쓰럽다. 대신해 줄 수 없는 일이기에 가슴이 더 찡해 온다. 주말에는 남편과 아이들이 먹을 홍삼과 비타민을 사러 가야겠다고 생각한다.

동네 사거리에 있는 대형 마트에 들렀다. 2층으로 올라가 보니, 한쪽에 미술 도구를 진열해 놓았다. 매장도 크고, 전문가용이 비교적 잘 구비되어 있다. 필요한 것을 마트 바구니에 담는다. 진열대를 막 돌아서려고 하는데, 전문가용 색연필 72색이 보인다. 연필화에 살짝 색을 넣고 싶어서, 그것도 바구니에 넣었다.

1층으로 내려와 페스트 푸드점을 찾았다. 저녁밥을 혼자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버거 세트를 샀다. 불고기가 들어 있는 버거를 선택했다. 음료는 커피로 바꿔 주문했다. 기본은 콜라로 나오지만, 커피 마니아인 나는 매번 바꿔 주문한다. 학원에 다녀오면 출출해 하는 딸과 아들을 위해, 치즈버거 두 개를 작은 것으로 주문했다. 단품으로 주문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작업실 앞에 들어서려고 하는데, 주차 공간이 없다. 골목 안에 오래된 원룸은 두 대의 주차 공간이 있을 뿐이다. 두 대 중 한 대는 3층, 주인집 아들이 주차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는 수 없이 원룸 건물과 옆 건물 사이 공간에 어렵게 주차했다. 내리기 전에 차 안을 둘러본다. 가지고 내릴 것을 쇼핑백에 담았다.

작업실 건물을 들어서면, 가장 먼저 우편함이 보인다. 각종 고지서와 광고지가 지저분하게 꽂혀 있다. 105호 작업실 우편함에는, 열정 헬스장 삼 개월 할인 행사 광고지와 도시가스 고지서가 꽂혀 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청소하는 여자가 있지만, 관리가 쉽지 않다. 엘리베이터도 없는 오래된 3층 건물이다. 우편함 밑에는 등받이도 없고, 앉는 가죽 부분은 날카로운 것에 찍힌 듯 보이는, 낡은 의자가 있다. 나도 앉아 본 적이 있지만, 움직일 때마다 삐걱거렸다.

(연재 5/1회 다음에 이어서.)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관련기사